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이 무조건 '민족'을 외면케 하는 것은 아니다.
김 영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이제 '조국과 민족'은 사라진다.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대한민국 국기'에 대한 시행령(안)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대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짐하기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내세우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조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 온 민족이 투쟁하고 저항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희생됐다. 6.25 전쟁 때는 공산 괴뢰들을 물리치고 태극기 휘날리는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초개(草芥) 처럼 목숨도 바쳤다. 아직도 그 아픔, 그 고통,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조국과 민족'은 목숨 바쳐 가면서도 지켜 내야만 할 고귀한 가치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소중한 정체성의 상징인 '조국과 민족'이 세계화의 트렌드에 밀려 사라지게 된 것이다.
수십년 동안 우리가 지키고 가꿔온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게 된 그 배경이 궁금하다. 입만 벌리면 '민족'을 부르짖는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정권이 감히 '민족'을 버리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대변신이요, 변화다. 다른 분야도 세계화의 시대정신에 보조를 맞출 것인가? 생각과 행동도 바꿀 것인가? 진정으로 세계화 때문인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 과연 “민족”은 걸림돌인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공유성이 핵심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집단 귀속 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 최대의 문화 공동체가 민족이다.
민족!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감격이 용솟음 친다. 민족은 외부세력에 의해 짓밟히거나 강탈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면 이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그리고 그 투쟁은 애국이요, 애족의 산 교훈으로 승화된다. 민족은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함께 잘 가꾸고 섬겨야 할 공동체다.
민족이란 집단을 선용(善用)하면 자존심이 되고 긍지가 되고 자랑이 된다. 민족 문화의 꽃도 활짝 피게 된다.
그러나 민족을 악용(惡用)하면 파멸이요, 고통이며, 파쑈와 독재의 싹이 트게 된다. 민족을 앞세운 음흉한 음모와 흉측스런 야욕은 배타(排他)를 낳고 국수(國粹)와 쇄국(鎖國)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선량한 백성을 광신도 집단으로 몰고 가는 '쇼비니즘'의 노예로도 만들어 낸다.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다. 그래서 억압받고 신음하는 슬픈 민족이 되고 만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 민족의 진로는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폐쇄가 아니라, 열려 있는 개방의 길로 나가야 한다. 민족문화의 빛나는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가며 세계인과 호흡할 때 '민족'의 존재는 번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바탕으로 교류와 개방의 길로 나아갈 때 '민족'의 존재는 희망의 먼동이 트게 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이 무조건 민족을 외면케 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을 악용하는 국수적 자세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다른 민족을 배타적으로 몰고 가는 편협성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고통 받고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고 우리를 도와준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해 설득력 없는 논리로 미워하고 멀리 할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신뢰와 우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안 수정을 계기로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민족정신'과 참다운 '민족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성찰 해 봐 할 때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의 허구성과 위선도 이제는 비판받고 평가 받아야 한다. 민족공조를 부르짖으면서 동족을 핵폭탄의 볼모로 삼는 것은 참민족의 길이 아니다. 지구촌 시대의 세계화 흐름, 그 안에서 열려 있는 민족의 길로 우리는 힘차게 나가야 한다.
김 영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이제 '조국과 민족'은 사라진다.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대한민국 국기'에 대한 시행령(안)은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 대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짐하기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화 시대에 '민족'을 내세우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맞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조국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태극기를 지키기 위해 온 민족이 투쟁하고 저항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희생됐다. 6.25 전쟁 때는 공산 괴뢰들을 물리치고 태극기 휘날리는 '조국과 민족'을 수호하기 위해 우리의 부모형제들이 초개(草芥) 처럼 목숨도 바쳤다. 아직도 그 아픔, 그 고통,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조국과 민족'은 목숨 바쳐 가면서도 지켜 내야만 할 고귀한 가치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 소중한 정체성의 상징인 '조국과 민족'이 세계화의 트렌드에 밀려 사라지게 된 것이다.
수십년 동안 우리가 지키고 가꿔온 '국기에 대한 맹세'를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게 된 그 배경이 궁금하다. 입만 벌리면 '민족'을 부르짖는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정권이 감히 '민족'을 버리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대변신이요, 변화다. 다른 분야도 세계화의 시대정신에 보조를 맞출 것인가? 생각과 행동도 바꿀 것인가? 진정으로 세계화 때문인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 과연 “민족”은 걸림돌인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족은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공유성이 핵심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집단 귀속 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 최대의 문화 공동체가 민족이다.
민족!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감격이 용솟음 친다. 민족은 외부세력에 의해 짓밟히거나 강탈당할 위기에 놓이게 되면 이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저항이 들불처럼 일어난다. 그리고 그 투쟁은 애국이요, 애족의 산 교훈으로 승화된다. 민족은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함께 잘 가꾸고 섬겨야 할 공동체다.
민족이란 집단을 선용(善用)하면 자존심이 되고 긍지가 되고 자랑이 된다. 민족 문화의 꽃도 활짝 피게 된다.
그러나 민족을 악용(惡用)하면 파멸이요, 고통이며, 파쑈와 독재의 싹이 트게 된다. 민족을 앞세운 음흉한 음모와 흉측스런 야욕은 배타(排他)를 낳고 국수(國粹)와 쇄국(鎖國)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선량한 백성을 광신도 집단으로 몰고 가는 '쇼비니즘'의 노예로도 만들어 낸다. 국민을 도탄에 빠트린다. 그래서 억압받고 신음하는 슬픈 민족이 되고 만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 민족의 진로는 대문의 빗장을 걸어 잠그는 폐쇄가 아니라, 열려 있는 개방의 길로 나가야 한다. 민족문화의 빛나는 정통성과 정체성을 지켜가며 세계인과 호흡할 때 '민족'의 존재는 번영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바탕으로 교류와 개방의 길로 나아갈 때 '민족'의 존재는 희망의 먼동이 트게 할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적 흐름이 무조건 민족을 외면케 하는 것은 아니다. 민족을 악용하는 국수적 자세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다른 민족을 배타적으로 몰고 가는 편협성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고통 받고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우리를 구원해 주고 우리를 도와준 그 나라와 국민에 대해 설득력 없는 논리로 미워하고 멀리 할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신뢰와 우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문안 수정을 계기로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민족정신'과 참다운 '민족위상'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성찰 해 봐 할 때다.
우리 사회 일부에서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의 허구성과 위선도 이제는 비판받고 평가 받아야 한다. 민족공조를 부르짖으면서 동족을 핵폭탄의 볼모로 삼는 것은 참민족의 길이 아니다. 지구촌 시대의 세계화 흐름, 그 안에서 열려 있는 민족의 길로 우리는 힘차게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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