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國의원 27명"에서 右派의 공적(公敵)으로

정형근 의원, 2005년 초 고문(拷問) 논란, 묵주(默珠) 사건으로 곤욕
2005년 2월17일 밤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포착된 정형근 의원. YTN 영상 캡쳐
3선(選)인 정형근 의원은 96년 국회진출 이후 對좌파투쟁의 전면에 서왔다.

97년, 당시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북한을 방문했던 서경원 의원에게서 1만 달러를 받았던 사실을 폭로했고, 97년 말 대선을 앞두고는 「오익제 월북(越北)」을 둘러싼 이념공세에 앞장섰다.

99년 부산 집회에서는 『서경원은 국회 프락치 간첩이었다』며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을 찾아가 싹싹 빌고 곤경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또 『現정권의 뒤집어씌우기는 공산당이 전형적으로 쓰는 선전·선동 수법이며, 지리산 빨치산 수법과 다름없다』고 말해 검찰에 체포위협을 받기도 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가 뽑은 애국의원 27명

鄭의원은 17대 국회에 들어 상임위 활동을 보건복지위로 지원하고, 「저격수 노릇」은 그만 하겠다고 공언했다. 휴대전화 없이 잠적하는 일이 잦았던 그는 보좌관을 통해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폭로전문가」라는 부정적(?)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이라는 주변의 평가였다.

鄭의원의 「이미지」는 유연해졌어도, 「정체성」은 꺾이지 않았다. 2004년 7월29일 「反核·反金국민협의회」는 한나라당 내 「애국(愛國)의원」 27명 명단에 鄭의원을 포함시켰다.

『애국』의 기준은 한나라당 의원 중 親日진상규명특별법·南北교류협력에 관한법률·疑問死진상규명특별법 등 서명 발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이었다. 국민협의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의원이 30명도 안 되는 것이 비극』이라면서도 『우리는 이들 27명만이라도 의식이 제대로 박힌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04년 후반 까지도 좌파에 猛攻

鄭의원의 좌파세력에 대한 맹 공세는 2004년 말엽까지 계속됐다. 그는 같은 해 9월14일 한나라당 중앙위원 및 운영위원 선출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노무현 左派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립 이래 최고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노무현 정부는 답변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수도이전과 국보법 폐지로 대한민국을 변질시키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反민주·수구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하고, 주류세력 교체를 꾀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더 이상 이러한 세력에 맡겨둘 수 없습니다.』

2005년 3월 盧대통령 옹호성 발언

「폭로전문가」에서 『애국의원』으로 진화(進化)해 온 정형근 의원은 2005년 들어 이념적 변신을 시도한다. 鄭의원은 김영선·송영선 의원이 같은 해 3월10일 한나라당 상임운영위회의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문제 삼은 盧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입학식발언을 비판하자, 오히려 盧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송영선 의원은 『盧대통령의 발언은 韓美공조에 있어 불신을 낳게 한다』고 주장했고, 김영선 의원 역시 『韓美방위조약이 약화된 것에 盧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흥분했다.

이에 대해 鄭의원은 『나는 조금 견해가 다르다』고 말문을 연 뒤, 『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기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동의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통령으로서 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鄭의원은 이날 발언 이후 對北비료·쌀 지원(같은 해 5월), 對北전력공급 제안(같은 해 7월) 등 일련의 對北유화적 발언을 연발하기 시작한다.

『정형근을 감옥으로』 좌익들 삐라 살포

정형근 의원의 발언이 급변하던 시기, 그는 두 가지 곤욕을 치렀다. 하나는 2004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됐던 「고문(拷問)논란」, 다른 하나는 소위 「묵주(默珠)사건」이었다.

전자(前者)는 2004년 12월 미래한국의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조선로동당 입당」 보도 이후, 94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들이 자신들의 간첩 자백 등은 당시 안기부 수사책임자인 정형근 의원의 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촉발됐다.

후자(後者)는 鄭의원과 40대 한 여성이 2005년 2월17일 밤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여러 시간 머무르다 YTN에 보도된 사건이다. 당시 鄭의원 측은 동석한 40대 여성은 2002년 대선 때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사람이며, 동석 이유는 이 여성으로부터 부탁받은 묵주(默珠) 100개를 전달하고, 고문(拷問) 시비 등 제반 상황에 대해 토론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명했다.

소위 「피해자」라는 간첩전력들의 일방적인 「고문 주장」과 鄭의원 측의 「묵주 사건」에 대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2005년 1월과 2월 鄭의원은 좌파의 집중공세를 받아야 했다. 鄭의원에 대한 정계은퇴 촉구가 가해졌고, 해당 지역구인 부산에서는 『정형근을 감옥으로 보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으며, 심지어 정형근 의원 사진 등이 불 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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