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장의 두 풍경

북에서는 꿈에도 볼 수 없는 일이 여기 남한과 미국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선거장의 두 풍경 [2007-07-25 ]


내가 서울로 온 뒤 첫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 투표장으로부터 꽤 먼 곳에 떨어져 살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한 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거리였다. 선거 당일날, 나는 ‘충성의 한 표’를 바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집사람은 한가로운 낮 시간에 천천히 가도 된다고 하였지만 나는 바삐 전철을 타러 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30분도 넘게 기다려서야 첫 번째 전철을 탈 수 있었다. 전철에서 내려서도 행여나 늦을세라 헐레벌떡 투표장으로 달려갔더니 아무도 없었다. 혹시 내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했는데, 그곳이 분명 투표장이 맞다고 하였다.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나서야 하나 둘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비로소 투표가 시작되었다. 선거 축하 가창대도 없고, 쥐 죽은 듯한 고요함 속에서 선거는 시작되었다.

북한에서 선거는 축제와 같다. 나는 1950년 조국 해방 전쟁 참가자이고,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하여 줄을 서지 않고 선거자들의 제일 선두에 서서 기다리다가 모두의 박수와 꽃다발을 받으면서 투표에 참가했다. 선거장에는 선거 전날 밤부터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초 중고등학생 선거 선전대원들이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내가 선거당일, 이른 새벽에 옷을 차려 입고 가슴 하나 가득 훈장들을 주렁주렁 달고 선거자들 앞에 나서면 모두가 존경과 부러움의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렇게 투표를 했던 내게 서울에서의 대통령 선거는 너무나 싱거웠다. 천천히 가도 된다는 것을 '대통령 선거에 충성심을 가지고 빨리 가서 투표해야지' 하며 고집 쓰고 나온 것이 후회되었다.

그러나 그날의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놀란 것은 선거가 철저하게 비밀투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북한에서는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해마다 연간 생활총화가 열릴 때면 대학 당위원회의 위원 선거가 있다. 대학당 비서는 상급당에서 임명 받아 내려온다. 위원 선거는 말로는 민주주의적 비밀 투표로 한다 하지만, 사실은 상급당이 비준하여 내려 보낸 대상들이 뽑힌다. 북조선의 모든 선거가 다 그러하듯이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하여 그 어느 하나도 민주주의적으로 비밀투표를 하는 일이 없다.

대학당 위원 선거를 예로 들어보자. 사회자가 ‘이제부터 대학당 위원회 위원선거를 한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위원을 몇 명으로 하고 누구를 후보자로 하면 좋겠는가’라고 묻는다.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이미 상급당에서 지시를 받은 한 당원이 일어서서 회의 집행부에서 복안이 있으면 발표해 달라고 한다. 회의 사회자는 제기된 의견에 동의하는 당원들은 손을 들어 표시하라고 한다. 모두 손을 높이 쳐들면 ‘그럼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습니다’라는 선언으로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다음에는 위원 복안이 발표된다. 복안에 대한 찬성, 반대도 거수로 진행된다. 이것 역시 만장일치로 가결된다. 북조선의 모든 선거가 이렇게 진행되니 이것은 임명이지 선거가 아니다.

선거란 여러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뽑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국회의원)을 선거로 뽑지 않고 국가 최고 통치자와 중앙당에서 임명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국제 여론을 의식하여 그것을 선거라고 한다. 대외적으로는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서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국회의원을 뽑는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대외적 선전에 불과하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앙당에서 각 선거구에 후보자 한 명만을 찍어 내려 보내고, 모든 선거자들은 그에게 모두 찬성 투표하게 한다. 선거장에는 투표함도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은 허울이다.

투표소에는 감시인이 지켜 서서 선거자들이 투표지에 반대표시를 할 수 없게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래 놓고도 100% 찬성이라고 세상에 떠들어댄다. 또한 선거 전에는 대학생들이 매 선거구마다 선거 선전대로 파견되어 몇 달 전부터 중앙당에서 추천한 입후보 한 명에게 찬성 투표하라고 주민들을 교양한다. 선거 당일에는 이른 새벽에 주민 모두를 깨워 선거장에 나가서 인민반 별로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한다. 그러니 100% 참가, 100% 찬성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서울이나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학급반장부터 시작하여 읍장,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심지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적 원칙에 의해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뽑는다. 북에서는 꿈에도 볼 수 없는 일이 여기 남한과 미국에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개인 독재체제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보다 더한 것 같다.

북쪽 사람들에게 여기 남쪽이나 미국에서는 국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고 온 국민의 지지와 찬동이 없이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영화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고 싶다. 우물 안의 개구리들처럼 사는 그들이 지금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김현식, 예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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