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순금 콕스'의 한국 사랑

한국전 당시 영국 병사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서 출생해 미국에 입양, 홀트 인터내셔널의 공보담당 부회장 돼 訪韓.

한국전쟁 직후인 1956년 미국에 입양됐던 순금씨가 미국의 입양 전문기관인 홀트 인터내셔널의 부회장이 돼 남한을 찾고 있습니다. 수잔 순금 콕스라는 새 이름으로 입양아들을 돌보고 있는 순금씨의 얘기를 전합니다.

수잔(Susan). 1956년 당시 네 살배기 아이였던 순금씨가 미국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입니다. 순금씨는 한국 전쟁 중에 영국 병사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얼굴, 머리카락 색부터 달랐던 순금씨를 어머니는 더 이상 키우지 못하고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그러다 미국 오레건 주에 사는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된 겁니다. 순금씨의 말입니다.

Cox: (When I arrived to my family, I didn't speak any English. I spoke only Korean.)

“미국 양부모를 만났을 때, 저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한국말만 했죠. 미국 부모도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했습니다. 주변에 한국 사람도 없었고, 우리집은 오레건 주의 시골에 있었죠. 그래서 처음에는 손짓을 써가며 말을 알아들어야 했어요.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환경에 적응을 잘합니다. 아이들은 과거의 일을 뒤로 남기고 새 인생으로 옮겨갈 줄 알죠.”

양부모도 순금씨가 미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습니다. 순금씨에 이어 한국 남자 아이가 입양돼 한 가족이 됐습니다. 처음에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했던 양부모는 친자식 셋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피부색깔이 다른 일곱 명이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았습니다.

지난 1976년 당시 20대였던 순금씨는 미국의 입양 전문기관인 홀트 인터내셔널의 이사가 됐습니다. 초창기 미국에 입양된 사람들을 대표해 이사로 뽑힌 겁니다. 현재 순금씨는 홀트 인터내셔널의 공보담당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남한을 틈틈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입양자들이 어머니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를 남한의 경기문화재단과 재외동포재단 등과 함께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24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미국과 호주, 스웨덴 등 세계 여덟 개 나라에서 온 한국인 입양자뿐만 아니라 양부모, 입양기관 담당자 등도 참여합니다.

남한을 방문할 때마다 순금씨는 남한에 두고 온 남동생들과 그 가족을 만납니다. 남한에서 네 살 때 찍은 사진을 붙여 신문에 광고를 낸 끝에 지난 1992년 가족을 다시 찾은 겁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뒤였습니다.

Cox: (I didn't have chance to meet my mother again.)

'어머니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그러셨다는군요. 사실 네게 누나가 있는데 미국에 갔다고. 그 말씀만 남긴 채 돌아가셔서 동생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

남동생들을 찾은 뒤 순금씨는 마흔 살 생일 때 이름을 수전 순금 콕스로 바꿨습니다. 수전 콕스라는 영어 이름 사이에 어머니가 지어주신 한국 이름 순금을 넣은 겁니다.

순금씨에 따르면 한국전쟁 직후 미국으로 입양된 남한 어린이들은 매년 수백 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입양아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가 근래 다시 줄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에 입양된 남한 어린이들은 모두 20만 명 정도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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