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黃長燁 선생과 대화하다가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알게 되었다.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을 불러 직접 면접을 보고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했다는 주장이 러시아측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아래 자료 참조)'는 이야기를 꺼냈다. 黃 선생이 빙긋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김일성이가 그런 말을 합디다. 제가 직접 들었어요. 스탈린한테 두 사람이 불려가 시험을 쳤다는 겁니다. 스탈린이 출제한 것을 가지고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에 들어가 답안을 썼다고 해요. 여기서 김일성이 쓴 답안이 합격된 셈이지요'
黃 선생의 이 증언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이다. 따라서 학자들이 하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사자의 증언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박헌영 두 사람이 불려간 시기에 대해서 러시아 전문가들은 1946년 7월이었다고 증언하다. 이때 박헌영은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비밀리에 북한을 경유하여 모스크바로 갔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해 10월에 미 군정의 추적을 따돌리며 북한으로 피신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데일리 엔케이 손광주 편집국장은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 앞에서 시험을 본 적이 있다. 누가 공산주의 지도자로 더 적합한가를 놓고 시험을 본 것인데, 사실은 누가 더 스탈린에게 충직한가를 따져본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무슨 문제를 ‘출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이 끝난 후 스탈린은 박헌영의 답안지까지 김일성에게 주면서 “알아서 처리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 기술은 황장엽 선생의 주장과 매우 비슷하다. 북한정권을 세울 때 스탈린은 김정일을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國號(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와 헌법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희대의 독재자 앞에서 시험을 친 뒤 북한의 독재자로 결정된 김일성, 미 군정과 대결하여 대한민국을 자유民主의 초석 위에 세운 李承晩, 그 차이가 오늘의 한국과 북한의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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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7월 김일성과 박헌영은 극비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해 스탈린을 만났다.
“두 명의 후보자가 있었습니다. 박헌영과 김일성이었죠. 1946년에 박헌영과 김일성은 모스크바에 왔습니다. 스탈린은 그들을 만난 후에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선택했죠.”
(유리 바닌 / 러시아 동방학 연구소)
“김일성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가 깨끗하고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투철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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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지미르 리 교수 / 러시아 외교 아카데미)
조선노동당은 이미 세 번 죽었다
[논설] 국제사회 북한인권 목소리 막을 수 없어
[2005-10-09 18:50 ]
10월 10일은 조선노동당 창건 60돌이다.
김일성은 소련극동군 88특별교도여단에서 대위로 근무하다 1945년 9월 평양으로 돌아왔다. 스탈린은 88여단 소속 항일 빨치산들이 북한해방에 한 명도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은 군정을 실시하면서 조선노동당을 세운다. 소련은 당 사업을 비롯하여 주요 국가기관에 고문들을 배치하고 스탈린주의 노선에 따라 북한을 재편했다. 따라서 조선노동당은 스탈린이 세운 것이다. 스탈린은 이후에도 당 사업 경험이 있는 재소(在蘇) 고려인 허가이를 보내 조선노동당 사업을 주관하도록 했다.
45년 10월 24일 ‘김일성 장군’이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처음 등장한 김일성은 47년 인민위원회 위원장, 48년 9월 내각 수상이 되었다. 김일성의 뒤를 봐준 사람은 스탈린이었다.
김일성과 스탈린 사이에는 흥미있는 일도 있었다. 김일성의 라이벌은 남로당 박헌영이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스탈린 앞에서 시험을 본 적이 있다. 누가 공산주의 지도자로 더 적합한가를 놓고 시험을 본 것인데, 사실은 누가 더 스탈린에게 충직한가를 따져본 것이다. 당시 스탈린이 무슨 문제를 ‘출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험이 끝난 후 스탈린은 박헌영의 답안지까지 김일성에게 주면서 “알아서 처리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김정일이 후계자 되면서 2차 사망선고
김일성은 6.25 전쟁을 일으키면서 결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전쟁중 박헌영을 ‘미제 간첩’으로 몰아 남로당계를 숙청했고, 허가이 등 소련파를 몰아내고 당권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중소간 이념분쟁을 교묘히 이용하여 소련파, 중국파를 모두 몰아내고 58년 빨치산파를 주축으로 유일독재체제를 세웠다.
이후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독재의 기반으로 삼고 94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이라는 작은 땅에서 ‘신’(神)으로 군림했다.
다른 공산권 나라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당-국가 체제로 출범했다. 당이 국가를 지도하면서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당은 곧 ‘수령의 영도’로 변질됐다.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그 길을 걸었다. 그러나 소련은 53년 스탈린 사망 후, 중국은 개혁개방과 동시에 수령론과 개인숭배를 용도폐기했다.
하지만 74년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김일성은 더욱더 ‘신’이 되어갔다. 김정일은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면서 김일성을 살아있는 신으로 만들어준 대신 아버지로부터 절대권력을 물려받았다. 58년 김일성이 유일독재체제를 세움으로써 조선노동당이 1차 사망선고를 받았다면, 74년 김정일이 유일사상체계와 10대 원칙을 정식화 하면서 두 번째 사망한 것이다.
시체가 된 조선노동당
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실시했고 조선노동당은 완전히 김정일의 사(私)조직으로 전락했다. 조선노동당은 세 번째 죽음을 맞은 것이다. 94년 이전까지 그나마 김일성사상(주체사상)이 당의 지도사상이었다면, 지금 북한은 이미 주체사상도 사망했고, 선군사상, ‘총대사상’이 대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남한의 지도사상이라면, 북한은 ‘장군님의 총대사상’밖에 남은 것이 없다. 조선노동당은 이미 시체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기괴한 일이 21세기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록 취소되긴 했지만 조선노동당 60돌을 맞아 남한의 민간대표단이 방북을 추진했다. 백보를 양보해도 이미 시체가 된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식에 참석해보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김정일은 10년간 선군노선을 밀고나가면서 대외적으로는 핵과 미사일, 내부적으로는 공포, 감시로 체제를 유지해왔다. 식량과 에너지는 한국과 중국,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버티고 투자가 필요 없는 관광사업과 무기밀매, 마약, 위조달러 등 각종 국제비리로 달러 고갈을 벌충해왔다.
DJ의 햇볕정책이 김정일의 ‘수호천사’로 등장한 이후 김정일은 햇볕정책을 달러와 식량, 비료 등이 들어오는 창구로 활용했다. 이 정책은 노무현 정부 들어 ‘민족공조’ 노선으로 더욱 격상됐다.
김정일, 독재통치의 한 축 잃어
10년 전의 김정일 정권과 지금을 한번 비교해보라. 탈북자는 줄어들었고, 남한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과거와 같은 식량난은 사라졌으며, 북한을 둘러싼 대외관계는 남한을 비롯하여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김정일은 악몽 같던 10년 전을 떠올리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조선노동당이 주민들로부터 왕따가 되면 될 수록, 군으로 통치중심이 옮겨가면 갈수록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조선노동당은 북한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한 지 오래다. 지금 당을 믿는 북한주민은 거의 없다. ‘영광스런’ 당원증은 이제 귀찮은 종이조각으로 변질돼 버렸다. 김정일은 독재통치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의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중국이 인권문제를 ‘방어’해내는 힘은 중국 공산당의 힘이
지, 인민해방군의 힘이 아니다. 군이 인권의 힘을 방어해낼 수는 없다. 이미 주민들로부터 외면받은 조선노동당이 인권의 힘을 물리칠 방법은 없다. 조선인민군이 인권의 힘을 물리칠 수는 더욱 없다. 김정일은 내부에서부터 점차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조선노동당 창건 60주년을 맞은 김정일 정권의 현주소다.
손광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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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다시 보는 김일성과 김정일
정 성 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냉전시대 국내의 많은 북한연구자들은 김일성이 이미 소련군으로부터 해방 후 북한을 이끌 지도자로 내정되어 있었으며, 그의 권력장악 과정은 바로 그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25군 정치사령부 정치담당관이었던 메크레르 중좌는 “처음부터 김일성을 데려다 교육시켜 북한을 담당하게 했다는 건 소련을 잘못 보는 겁니다”라고 단언하였다. 그는 또한 “김일성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의 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것은 조만식 선생도 마찬가지였고 최용건․김책도, 그리고 박헌영도 마찬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이 두 주장 모두 일정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주장은 무엇보다도 소련이 한반도 북부 진주 초기부터 북한에 독자적인 분단정권을 수립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자료들은 1945년 12월 미․영․소 3국 외상회의의 한국 신탁통치 결정을 둘러싸고 한국 내의 좌우갈등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면서 남북을 망라하는 임시정부 수립의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소련이 북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의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소련이 처음부터 김일성을 북한을 이끌 지도자로 내정해 두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반면 메크레르의 주장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만 의존해서 주관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그의 주장처럼 김일성이 단순히 ‘가장 유력한 후보자의 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은 1945년 5월 독일의 패망 이후 조직된 원동사령군 총사령부의 대일(對日) 작전계획 검토 회의에 참석하였다. 그는 또한 소련의 대일작전 개시 직전에 모스크바로 가서 소련군 총참모부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하였으며,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겸 비서인 쥬다노브를 여러 차례 만나면서 해방 후 정권수립과 신탁통치문제까지 논의하였다. 이처럼 김일성은 해방 직전에 북한의 정치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사람들과 만났고, 이들이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김일성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결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해방 직후 소련의 외무성(특히 前 서울 주재 부영사 샤브닌)과 정보기관이 박헌영을 최고지도자로 추천하고 지원한 사실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일성이 해방 직전 접촉하였던 원동소련군 총사령관 와씰렙스끼(바시리예프스키), 제1원동전선의 사령관 메레쯔꼬브(메레츠코프)와 군사회의 군사정치위원 스티코프 상장은 김일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소련군대가 김일성에게 보였던 특별한 관심은 9월 19일 원산항을 통해 입국한 그를 마중하기 위해 소련군정 사령관인 치스차코프 대장이 평양에서 원산으로까지 직접 내려간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소련군정 사령부는 또한 1945년 10월 14일 평양공설운동장에서 ‘김일성장군 개선 환영대회’를 개최해줌으로써 김일성에 대한 소련군정의 지지를 명확히 드러내었다.
소련이 처음부터 김일성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내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해방 직후 스탈린의 지명이 없었던 것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스탈린이 실제적으로 김일성과 박헌영을 면접하고 공식 지명을 한 것은 1946년 7월 말이었다. 그런데 이미 이 때에는 북한에서 김일성의 지위가 공고화되어 있었던 시점이었고, 이를 반영하여 스탈린의 마음도 김일성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따라서 이 때 스탈린의 ‘낙점’은 기존의 상황을 재확인한다는 의미만을 가질 뿐이었다.
소련군이 초기에는 민족주의자인 조만식을 북한의 지도자로 내세우려했다는 주장이 있다. 특히 1945년 말 신탁통치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소련은 ‘조만식 대통령․김일성 군부책임자’ 안(案)을 제의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만식에 대한 소련군정의 입장은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에서 “아직은 공산당원을 정권 전면에 절대 부상시키지 말고 정권 초기에는 민족주의자 또는 민주주의자를 내세우라”는 지시를 내린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조만식이 대통령직에 선출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는 실권자에 의해 교체될 운명에 놓여 있었으므로, 소련의 초기 구상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냉전시대 많은 연구자들이 주장한 것처럼 김일성이 해방 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김일성은 소련군의 적극적 지원을 받음으로써 처음부터 조만식이나 최용건 또는 박헌영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명확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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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만 해도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우파 정치인이었다. 對北강경발언도 많이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對北정책도 신랄하게 비판했다(아래 지료 참조). 지금 그는 좌파진영의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家臣그룹인 설훈 전 의원이 손씨의 측근 참모로 들어갔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대그룹을 앞세워 김정일에게 4억5000만 달러를 주고 평양회담을 매수한 사건에 대한 수사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말을 바꾼다. 그의 주변엔 친북인사들이 많다. 이제는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탈당을 좌파 세력에 의한 한나라당 분열공작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는 탈당한 후 북한에 가서 고위직 인사를 만났다. 김정일 정권도 그를 밀어주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남북한 좌파가 손학규씨를 지원한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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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막내’ 설훈은 왜 손학규 캠프로
배성규 기자 vegaa@chosun.com
지난달 24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 캠프에 합류한 설훈(薛勳·54)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家臣)그룹인 동교동계의 막내로 통한다.
설 전 의원은 “오래 전부터 돕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동교동 선배들과 상의했지만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설상가손(薛上加孫·설훈에 손학규가 더해졌다)’이며, 손 전 지사가 공작정치의 유혹에 이끌려 있다는 증거”라며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설 전 의원과의 정치적 악연 때문이다. 15~16대 의원을 지낸 설 전 의원은 2002년 3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서울 가회동 ‘빌라 게이트’를 폭로했다. 이어 이 전 총재가 ‘최규선 게이트’의 주역인 최씨로부터 20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설 전 의원의 연이은 네거티브(비방) 공세에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한나라당으로선 설 전 의원이 ‘대선의 공적(公敵)’이자 ‘공작정치의 대명사’인 셈이다.
# 2002년 대선때 이회창 후보 공격에 선봉
설 전 의원은 30일 “20만달러 사건은 진실이며,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3년 재판 과정에서 그는 “당시 김현섭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기자회견을 했다”고 했다.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사실확인 작업 없이, 면책특권이 인정되지 않는 민주당 기자실에서 폭로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현섭 비서관은 미국으로 도피했고, 그는 근거자료와 제보자를 밝히지 못해 결국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를 놓고 청와대 등 윗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당시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은 설 전 의원과 절친한 사이며, 김한정 청와대 제2부속실장은 그의 5촌 외조카다.
# ‘20만달러 수수’ 허위유포 혐의로 유죄판결
이는 그에게 정치적 시련의 시작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었지만, 2002년 이후 계속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했다. 2004년 말 허위사실 유포죄로 국회의원 피선거권을 잃었고, ‘정치 낭인’의 인생유전을 겪었다.
그는 이전까지만 해도 동교동계에선 드문 영남(창원) 출신으로 촉망받는 차세대였다. 마산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나와 민주화청년연합(민청련) 결성을 주도하고,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5년간 옥살이를 했다. 1985년 김대중 총재 비서로 정치권에 입문했지만, 운이 닿지 않아 1996년에야 서울 도봉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DJ가 인간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비서이자 가신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지난 대선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3년 민주당 분당(分黨) 과정에선 민주당에 남았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 직후 민주당 지도부에 탄핵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5년부터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명단에서 빠졌고, 올 2월에야 사면·복권됐다.
# 형님이라 부르는 孫과 동교동 가교 역할?
설 전 의원은 1970년대 학생 운동을 할 때부터 손 전 지사와 친분이 깊었다. 그는 기독교사회연구소에서 만난 손 전 지사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작년 초 손 전 지사의 공관으로 찾아가 3시간 가량 술을 마시며 “형님, 한나라당에서 나오쇼. 그러면 돕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손 전 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캠프로 출근해서 뭐든 돕겠다”고 했다. 손 캠프에서 조직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이호웅 전 의원도 설 전 의원 합류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설 전 의원은 캠프 상견례에서 “손 전 지사가 본선 경쟁력이 제일 높지만, 경선에서 잘못될지 몰라 내가 끼어들었다”고 했다. 손 전 지사는 “설 전 의원은 씩씩하고 돌파력이 있으며, 선거경험이 풍부해 캠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활동에 제약… 정치적 재기 성공 장담 못해
설 전 의원의 ‘손 캠프’행(行)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중도 반영된 것으로 보이지만, 설 전 의원은 말을 아끼고 있다. 손 전 지사는 지난달 말 권노갑 전 고문을 만났다. 설 전 의원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가 손 전 지사와 동교동 간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설 전 의원이 이번 손 캠프 합류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한나라당이 공격하고 있고, 범여권에서도 “DJ가 손 전 지사 지원에 나선 것 아니냐”며 경계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적 활동 범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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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수구의 '상호주의'는 北 봉쇄'비난
'北 지원 주도권 가져야'
데일리NK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사진)가 ‘햇볕정책 계승론’에 이어 당내 대북 강경 세력을 ‘수구 보수세력’이라 지칭하며 ‘상호주의’ 원칙마저 비판해 논란이 예상된다.
손 전 지사는 12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햇볕정책과 상호주의 중 어느 쪽이냐는 질문에 “두부 모 가르듯이 가르는 것이 크게 유효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소위 수구적,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분들이 얘기하는 상호주의는 한마디로 북한에 대해서 포용보다는 봉쇄를 하고 고립시키자는 의미가 더 강하다”며 “그러나 우리는 북한을 끊임없이 국제사회로 끌어내고, 개방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범여권 후보로서 지지율이 올라가니까 좀더 유연성에 강조점을 둔 것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내가 발언하고 실천해 온 것을 봐야 한다”며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을 당시부터 공개적으로 햇볕정책을 지지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내 역할은 한나라당을 바꿔나가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냉전세력이라든지 수구세력이라든지 이런 낙인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며 “선진화 개혁세력, 평화세력으로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전 지사는 햇볕정책 계승론이 한나라당 당론에 배치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한나라당 당론이라는 것이 대북지원을 안하고 대북 경제협력을 안하겠다는 것이냐”고 반문한 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야 앞으로 남북통일의 장기적인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입장은 일단 핵 문제가 해결되고, 그 이후에 남북관계는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서로 주고받아야 된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지금 6자회담이 북경에서 거의 타결과정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고 답했다.
손 전 지사는 “회담은 최종적으로 북핵의 폐기 절차에 대해서 논의하고, 그 다음에 북한에 대한 지원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은 한국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되는데, 북한의 경제재건 계획이나 경제교류 협력 계획에 대해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래야지 앞으로 북한이 경재개발계획으로 나갈 때 북한의 몫을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것을 선점하자고 하는 것이 지금 얘기하는 대북포용정책 또 햇볕정책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선점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 전 대통령은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국의 경제적 이득을 강조했고, 이를 추진하지 않을 경우 중국이 들어가 북한을 빼앗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전 지사는 6자회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생각을 바꾸겠냐는 질문에 “북한에 대한 장기적인 대북포용론을 계속 끝까지 갖고 가야 한다”고 답했다.
손 전 지사는 또 '햇볕정책 지지 입장은 일관된 소신'이라며, 자신의 '햇볕정책 계승론'을 비판한 동아일보 사설에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동아일보 김학준 발행인에게'라는 공개편지 형식의 글에서 '귀 신문의 지난 10일자 사설은 `손 전 지사가 갑자기 햇볕정책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 여론 지지도가 뒤지는 상황에서 차별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안간힘'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저의 진의를 왜곡하고 발언의 취지를 폄훼하는 것으로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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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對北지원 중단하라'
'노무현 대통령은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을 삼가야'
독립신문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는 8일 성명을 내고 대북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손 전 지사는 성명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북한의 경제 건설은 영원히 그 기회를 잃을 것'이라며 '정부는 시멘트와 중장비 등 핵실험에 이용될 수도 있는 물자의 대북 지원을 즉각 중단함으로써 핵실험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당장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손 전 지사는 또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을 편들거나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결코 북한에 안보의 틈새와 국론분열의 틈새를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며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손학규(孫鶴圭) 전 경기지사의 성명 전문
민족의 생명을 볼모로 한 핵 도박을 즉각 철회하라
북한 핵실험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기어코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북한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핵실험은 북한 동포에 대한 국내외의 지원마저 어렵게 만들 것이다. 북한의 경제 건설은 영원히 그 기회를 잃을 것이다. 북한 동포의 피폐한 삶을 걱정하는 우리 국민들의 따뜻했던 마음도 날이 갈수록 식어가고 있다. 핵무기는 북한을 지키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내몰 것이다.
북한은 민족의 생존과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핵실험 계획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사태를 오판해서는 안된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질 것이고,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은 이제 누구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향후 전개될 모든 사태는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김정일 위원장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무기 실험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핵실험은 이제까지의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번에도 어물쩡 넘어가서 북한의 나쁜 버릇만 키워줘서는 안된다. 핵실험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당장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시멘트와 중장비 등 핵실험에 이용될 수도 있는 물자의 대북 지원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핵도박에 반대하는 우리국민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을 편들거나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언행을 삼가야 한다. 결코 북한에 안보의 틈새와 국론분열의 틈새를 보여 주어서는 안된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를 내고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한미양국은 이런 때일수록 한미동맹과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약화는 북한에게 오판의 가능성을 열어 주고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핵무장을 초래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한미공조를 공고히 하여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안전을 위한 기틀을 다져야 할 것이다.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도 새로운 상황 변화에 따라 전면 재검토하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을 촉구한다.
완전한 핵포기 선언과 조건없는 6자회담 복귀만이 남북간의 협력과 국제사회의 지원 여건을 개선할 수 있다. 나쁜 행동에는 반드시 나쁜 대가가 뒤따르고, 좋은 행동에만 좋은 대가가 있다는 것을 북한이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이다. 북한은 스스로 죽음의 무덤을 파지 말고 삶의 길로 나서길 간곡히 바란다.
10. 8 손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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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호 월간조선의 孫鶴圭 당시 경기도 지사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사람이 4년 사이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4년 전 孫씨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업적을 변호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對北불법송금, 노무현의 對北정책, 특히 '평화적 北核 대책'을 비판했다. 요사이 孫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즉 對北굴종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하고 불법송금 사건에 대한 수사가 잘못 된 것이라고 말한다. 가치관을 이렇게 180도로 바꾸고도 미안해하지 않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다면 그런 사람을 뽑아준 유권자도 '손학규類의 사람들'이란 평가를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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孫鶴圭의 놀라운 김대중 옹호
-이 정도의 對北관을 가진 그라면 그는 좌파와 김대중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직할 것 같다.
孫鶴圭 전 경기도 지사는 2007년 3월호 月刊朝鮮과 인터뷰하면서 노무현 정부에 의한 '對北송금사건 특검수사'는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특검은 사법적인 부분에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북정책적 측면에서는 현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렇게 해서 이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 한 발자죽 나간 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이 정부가 대북관계에서 진전시킨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주 미시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큰 대전략을 운영하는 데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돈 퍼주고 뒷거래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그건 말이 안되는 것이죠. '까발릴 거냐, 이것보다 더 큰 상위목표를 위해 보류할 것이냐' 하는 전략적인 판단의 문제입니다'
이 말은 孫씨의 이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실이다. 孫씨는 對北불법송금 사건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하다. 만약 알고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법치국가의 대통령으로선 부적격자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에 김정일과 한 소위 남북頂上회담을 사실상 매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은 그가 회담 유치를 위해서 현대그룹을 앞세우고 국정원을 시켜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 등으로 4억5000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송금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특검 조사에 따르면 김대중씨는 이런 행위가 불법임을 알고도 실행을 지시했다. 국정원은 이렇게 들어가는 돈은 군사비로 전용될 위험이 있음을 알고도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했다.
국가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김정일의 비자금은 군사비, 핵개발비, 對南공작비로 쓰인다. 김정일 정권은 대한민국을 적화시킬 목적으로 존재하는 反국가단체이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反국가단체에 북한의 연간 수출액의 약 半이나 되는 거액을 불법적으로 제공한 김대중씨에 대해서 특검은 진술서 한 장 받지 못했다. 법정에 세워야 할 김대중씨에게 이런 면죄부를 준 특검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孫씨는 그 정도의 특검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對北송금사건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主敵을 도운 반역사건이다. 반역사건 수사를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김정일의 전위대와 從金세력에 대해 반역면허증을 발급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는 이 사건을 덮는 것이 더 큰 국익을 위한 것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역을 허용하는 것이 더 큰 국익이란 말처럼 들린다.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학살자에게 건네주고 김정일을 만난 김대중 대통령은 對南적화전략문서가 되어버린 6.15 선언에 합의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좌경화와 북한의 핵무장을 지원했다. 6.15 문서는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이름을 빌어가 대한민국이 북한정권의 對南적화 전략의 핵심인 연방제를 수용하는 것처럼 조작했다. 일종의 사기, 반역문서였다. 그 뒤 친북세력은 6.15 선언을 반역면허증으로 삼아 연방제 통일,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등 일대 赤化공세를 전개중이고 이 부분에서 공안기관은 손을 놓고 있다. 반역은 내어놓고 하고 애국은 숨어서 하는 세상을 만든 것이 6.15 선언이다.
孫씨는 6.15 선언이 중심부를 차지하는 햇볕정책을 지지할 뿐 아니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공언했고, 그 6.15 선언을 만든 對北불법송금 사건은 덮었어야 했다고 말한다. 孫씨는 좌파와 김대중 지지세력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6.15선언을 지지하는 것이고, 이는 연방제를 수용하는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헌법 위반행위이다. 대한민국헌법 1, 3, 4조는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을 자유민주체제로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만 인정하고 있다. 북한정권과 대한민국을 동격으로 놓는 연방제나 연합제는 헌법이 강제하는 國體와 국가이념을 부정하는 중대한 정치적 범죄행위이다.
현직 군군통수권자가 국민 몰래 主敵의 수괴에게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바친 행위를 수사하는 것을 미시적이고 옹졸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법치국가의 대통령이 된다면 법은 무너지고, 대한민국은 조종실을 김정일에게 열어주는 셈이 된다. 孫씨는 대통령이 超法的인 통치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王權神授說의 신봉자가 아닌가 의심된다.
이 정도의 對北觀을 가진 그라면 그는 좌파와 김대중 세력의 지원을 받는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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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탈당으로 확실해진 좌파 전략
-좌파의 2007 必勝 전략은 지역구도. 김대중, 노무현 분열하면 必敗. 박근혜-이명박 단결하면 必勝.
집권 좌파들이 그리는 2007년 대통령 선거 必勝 전략은 2002년과 1997년에도 그랬던 것처럼 결국 지역감정 선동이다. 김대중-노무현 세력은 그 전 어느 정권보다도 지역감정을 선거전략으로 잘 이용하여 성공했다.
1997년에 김대중씨는 이념적으로 절대로 같은 배를 탈 수 없는 김종필씨와 파트너가 되어 충청표의 지지에 힘 입어 대통령이 되었다. 2002년에 김대중-노무현 세력은 경상도 후보를 내세워 고정표의 일부를 잠식하고 수도이전 공약으로 충청표를 얻고 이를 더 강한 고정표인 호남표와 묶었다.
올해 대통령 선거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김대중씨가 그리는 선거판도 결국은 '호남+충청표 연합표'를 기반으로 한 전략이다. 호남과 충청표를 더하면 原籍地 기준으로 전체 유권자의 약42%이다. 여기에 좌파표와 수도권 표를 더하고 경상도 표를 조금만 당겨올 수 있다면 樂勝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친북좌파 세력은 여러 후보감들에게 好意를 보여 손학규씨처럼 미끼를 물게 만들곤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도록 하여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세울 것이다. 여성 표는 한명숙, 수도권 표는 손학규, 충청 표는 정운찬, 호남표는 천정배와 정동영, 경남 표는 김혁규씨가 열심히 개척하도록 부추겨 표밭을 확대해간다. 김대중씨 등은 오는 10월쯤 그 중 앞서가는 사람에게 영향력과 몰표를 몰아주어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굳힌다. 그렇게 되면 5~6명이 경쟁을 통해서 개척해놓았던 표들이 합해질 것이다. 김대중씨 측은 우선은 손학규씨의 지지율을 올리는 여론공작에 주력할 것이다.
이는 좌파식 分進合擊 전술이다. 그럼에도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경선과정을 통해서 분열하지 않고 협력하여 대응한다면 상당한 차이로 한나라당 후보가 이길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분열하면 必敗이다. 한나라당 경선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선거사무장이 되는 기분으로 협력해야 이길 것이다. 겉으로는 승복하는 척하면서 분란을 일으키는 형국이 되면 질 것이다.
좌파가 우파보다 잘 한 일은 그동안 大同단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김대중, 노무현 세력도 분열하면 좌파는 必敗이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이 손학규씨 탈당을 비판한 것은 그런 점에서 흥미롭다.
봉건시대의 지역할거주의 행태를 보여온 것은 좌파였다. 그 점을 잘 아는 그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입만 열면 지역감정 해소를 부르짖는다. 여기에 유권자들이 속아넘어가면 대한민국은 더 내려앉는다. 뭉치느냐, 죽느냐, 속느냐, 죽느냐, 문제는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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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訪北은 통전부의 계산된 전략
김운주
남한 대선은 북한 정권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 그 이유는 북핵문제로 국제적 고립이 강화되는 현 상황에서 남한에 계속 햇볕정책이 계승된다면 경제적 효과를 넘어 국제사회의 압박에 강경대응 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과 전략적 조건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북한은 대북 문제에 한에서 한미공감대가 재건되는 것에 대해 가장 두려워 하고 있다. 체제 경쟁 시기의 한미동맹과 오늘날의 한미동맹에는 큰 차이가 있는바, 사회주의 우방국이 전혀 없고 경제난까지 심각 한 현 상황에서 만약 한미동맹이 정책수평 수준으로 강화되면 북한 정권의 내부 결집력은 와해될 수 있다.
더욱이 남북관계에서 평화협박으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현 상황에서 한미동맹은 북한의 고강도 전략을 약화시키게 된다. 보다 심각한 것은 이전과 달리 북한 주민들 속에서 보편화된 한국 환상이 남한의 보수적인 대북정책과 맞물리면서 초래될 체제혼란이다.
또한 남한의 보수화가 더 증폭되면서 대북지원 폭이 좁아지고 이는 결국 햇볕정책으로 고착된 한국의 정치권에 심각한 지각변동을 줄 수 있는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북한은 2차, 3차 핵실험, 미사일 발사 같은 강경전략의 선택 폭이 좁아지며 결과 외부의 압박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
설사 한나라당이 집권하여 현 평화번영정책에서 크게 탈선하지 못한다 해도 한나라당의 정치적 이념이 대외 및 대내정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반드시 한나라당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반한나라당 대권인물을 지원하는 것은 지금 북한 통전 전략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현재 북한은 손학규를 주목하고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북한이 본 손학규 적합성은 우선 한나라당 대권주자 외 범여권에서는 가장 지지도가 높기 때문이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인물로서 인맥, 지지자 등을 감안할 때 보수세력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며, 탈이념화로 경제우선을 원하는 남한 국민들의 대선정서에도 부합되기 때문이며, 운동권 출신으로서 남한의 보수성을 자극하고 진보 지향적인 정치 환경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인물로서 이제는 반드시 한나라당과 반대되는 정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개인 사정의 적합성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손학규를 지원하는 통전 전략을 다음과 같이 구사하고 있다. 우선 5월9일 방북한 손학규를 북한의 국가주석직인 최고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이 접견하여 2.13합의 실행을 약속하였다.
과연 북한이 2.13합의를 실행하겠는지 국제적 관심이 집중된 형 상황에서 남한의 일개 정치인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영남이 직접 약속 발언을 한 것은 북한이 고도의 전략적 의도인바, 이는 전략적으로 철저히 계산된 손학규 띄워주기인 것이다.
더욱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범여권통합신당을 준비하는 손학규의 현재 상황을 의식하고 계기를 맞춰 진행된 전략적 계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은 김영남과 손학규의 이러한 대화내용을 한국 언론들이 대서특필할 것으로 타산했을 것이다.
손학규에게 이러한 정치적 조명을 주었는데 한국 언론들의 반응은 시쿤둥 하다. 또한 손학규가 김대중과의 연계가 심화된다면 이는 북한 띄워주기가 이미 이벤트성이 아닌 구체적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손학규가 만경대 방문을 떳떳하게 했다고 발언한데서도 그가 이미 북한 밀어주기에 힘입어 자신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의심해 볼만하다.
김정일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절대로 진행하지 않을 것인바, 만약 6.15전에 손학규가 통합신당을 만들고 대권도전을 공식 발표한다면 평양에서 진행 될 6.15공동 행사에서 김정일이 손학규를 접견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김영남 최고상임위원회 위원장이 손학규를 접견한 것은 김정일 접견의 전주곡일 가능성일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이번 열차시험운행 참석자 명단에 범여권 대권 주자로 지목된 정동영을 배제한 것도 사실상 반한나라당 집권 저지 유일인물로 손학규를 규정하고 집중시켜주기 위한 전략이다.
즉 정동영이요, 이해찬이요 하는 사람들로 표를 분산시키지 말고 손학규 한 사람을 내세워 그에게 표를 몰아주길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 손학규를 중심으로 반한나라당 정치세력을 구성하고 그를 지원하기 위한 북한의 통전전략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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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손학규 '탈당' 관련 발언록
2007년2월7일: '내가 한나라당 그 자체다'
토론방
▶'탈당하겠느냐는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먼저 물어본 뒤 나에겐 가장 나중에 하라.'(2006년 6월 6일 동아일보 인터뷰)
▶'내가 벽돌이 아닌데 어떻게 빼서 (여권 후보로) 넣겠느냐.'(2007년 1월 17일 충남도당 신년교례회)
▶'당의 분열을 기도하고 약속을 깰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품격이 낮아지는 것이다.'(1월 24일 당 상임고문단 주최 오찬 간담회)
▶'난 한나라당을 자랑스럽고 꿋꿋하게 지켜온 주인이며 기둥이다. 나의 행적을 봐라.'(1월 31일 경남도청 기자 간담회)
▶'손학규가 한나라당 수문장으로 대문을 지키고 있는 한 누구도 우리를 수구 보수, 영남당이라고 할 수 없다.'(2월 12일 강원도 홍천 당원 간담회)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내 목적이고 역할이다.'(3월 1일 한겨레 인터뷰)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중략)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저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3월 19일 탈당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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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 앞에서 시험 쳐 합격했다고 이야기"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8-03, 1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