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자유북한방송 우체국 사서함으로 귀한 편지 한 통이 왔다. 중국에서 자유북한방송을 청취하고 있는 탈북자가 자신의 심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 온 것이다.
중국 산동성에 살고 있는 40대의 탈북여성은 자신이 '자유북한방송'의 애청자 임을 밝히면서 방송을 듣고 자유의 소중함을 새삼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편지에서 북한에서는 중국에 가서 밥이나 실컷 먹고 살았으면 하는게 소원이 였지만 지금 중국에서 먹는 문제가 해결되니 또 다른 자유의 갈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신분증이 없어서 늘 신변에 불안을 느낀다면서 같은 탈북자로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방송국의 동지들에게 자유에로 가는 길을 묻는다고 절절히 호소했다.
김대성 기자 lstarkim@naver.com
[중국에서 자유북한방송을 청취하고 있다는 在中 탈북자의 편지]
안녕하세요
멀지 않게 보이는 여기 중국 산동성 위해에서 당신들이 보내오는 자유북한방송을 듣고 힘을 얻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달려가는 마음 억제하며 글로 나마 마음을 달래보려고 펜을 들었어요.
오늘도, 래일도 마음은 자유민주나라 한국으로 가고 또 가는 이 마음이고, 언제면 가는 날이 있겠는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안타까운 저, 어김없이 매일 새라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시고 또 감동 깊은 많은 사연을 전해주시는 당신들, 하나 된 통일 자유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해 대담하고 지혜롭고 용감한 일을 하시는 당신들께 여기 중국의 탈북자들을 대표해서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저는 1998년 12월 손과 발을 얼구며 무산땅을 걸쳐 길림에서 4개월도 못돼서 다시 북송되여 평남도 증산교화소에서 7개월 동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2월 증산교화소에 있는 모든 월경자들을 집으로 보낼데 대한 김정일의 지시로 출소 되여 집으로 돌아갔지요.
그러나 출소되여 집으로 와보니 가족도 집도 다 없어지고 더 살수가 없어 다시 2000년 10월 량강도 위연군 역전에서 매매군(인신매매자)의 알선으로 무사히 북조선을 빠져 중국에 들어와 이런 저런 마음고생 7년째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함경남도 함흥이구요. 사회 생활은 함흥의 한 기업소 선전대에서 생활해온 저였지만 김일성이 사망하고 1년도 못돼서 식량난과 전기부족으로 모든 것이 몰락되고 기업소가 가동을 멈추면서 생활유지가 안 돼 저의 희망과 삶은 시들어졌고 죽음의 고비도 많이 겪었습니다.
모든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더 견딜 수가 없고 그 땅에서 더는 살수가 없기에 정다운 저의 형제, 자식, 친구, 고향을 뒤로 멀리하고 고생 끝에 중국으로 들어 왔지만 기다리는 것은 더 무서운 것은 신변안전의 위험을 받는 것입니다. 한 번 북송된 경험까지 있다 보니 지금 현재도 불안하고 붙잡히면 어쩌나 정말 하루 저의 생활은 락이란 없고 어떻게 말했으면 좋겠는지 글로는 다 표현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십분 리해 되겠지요.
옛 속담에 ‘행복하면 더 행복해 지고 싶고 부자는 더 잘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속담이 있는데 북조선에서는 배고파 죽을 지경이여서 중국에 가서 실컷 배불리 먹었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였는데 실지 배부르고 항상 먹을 것이 넘쳐 나 있는데도 또 모자라는 것이 있는데 왜서 그러겠습니까?
사람이란 만족이 없다는데 저도 사람이니깐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나라 없는 백성은 상갓집 개만도 못하다는데 남의 땅에서 신분증 하나 없이 사람 아닌 사람으로 살려니깐 짐승보다도 못하다고 봐야지요.
저는 가끔 가만히 생각하지요. 이 중국의 바보, 남자,여자,짐승들도 하나같이 저처럼 붙잡힐 걱정 없이 웃고 떠들고 자유롭게 살고 있는데 저만은 왜서 죽은 목숨과 같이 락(樂)이 없고 숨막히게 살아야 하고 되돌아 갈 수 없고 되돌리려 해도 되돌려 지지 않는 인생을 한 하는 때가 종종 있지요. 정말이지 당신들이 죽도록 부럽습니다. 이런 부러움에 저도 그날을 고대하며 힘을 버리지 않았기에 지금 이렇게 당신들을 그리며 글을 써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국장과 여러 방송 일군들 소리로 나마 저 멀리 불쌍한 우리 부모 형제, 또 3세계에서 떠돌고 있는 우리 탈북자들에게 작으나마 보탬이 되려고 힘쓰시는데 대해 감사하구요, 미안한대로 또 저의 자그마한 가슴한구석에는 구언의 요청을 받고자 하는 바램도 있다는 것을 전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구요?
첫째도 둘째도 아무 경로를 통해 한국으로 가고 싶구요 또 우리 친척을 찾고자 하는 거예요 한국전쟁 때 50년 넘게 헤여진 저의 큰 아버지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20살까지 남한에서 중학교 교원으로 일하시다가 전쟁 때 북한으로 가셔서 거기서도 교원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북한 군관인 아버지와 결혼해 살다가 남조선출신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당했습니다. 마음 고생 많으셨던 어머니는 끝내 세상을 떠났어요. 어머니는 생전에 저에게 남조선에 있는 친척들을 그리워했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외우셨는데 그 소원 이루지 못하시고 영영 떠나셨습니다.
동지들! 당신들은 저와 같이 피눈물 흘린 분들이고 무엇보다도 저의 심정 다 이해하시리라 보기에 친근감이 있어 무턱대고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부디 저 하나의 운명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친누이, 친언니라 보시고 도와주시면 얼마나 감사하겠나요. 혹시나 이 다음에 만나면 귀 잡고 절할 때가 있겠지요.
바쁘신 동지들! 저의 신변안전을 위해서 편지를 방송국에 보내는데 저의 믿음 저버리지 마시고 한국으로 갈수 있게 좀 방조자를 련락해 주십시오. 지금 남편과 함께 작은 장사를 하지만 신분증이 없어 늘 불안하기만 하답니다. 제가 자유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동지들게 도움이 못되고 어려운 부탁만 드리는데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만나는 그날 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2007년 7월 11일
정경화(가명) 씀
在中 탈북자의 편지
- 자유북한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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