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우리는 절망하고 있는가?
중국·일본 등 주변 국가들은 잘 되고 있는데, 우리만 나라 전체가 엉망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개인 파산선고를 받은 이들이 IMF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고, 청년실업이 위기 상황이다.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외국으로 떠나면서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급증했으며,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전락했고, 아파트 값 폭등으로 온 국민이 절망상태에 빠져 있다.
교육면에서는 교육의 하향평준화로 공교육이 실패하면서 사교육비 부담 가중으로 서민경제가 도탄에 빠지고, 중산층 이상에서는 조기 유학 붐이 일어나 엄청난 국부 유출과 함께 가족해체라는 사회불안 요인을 낳고 있다.
또한, 사회적 측면에서는 법과 원칙이 실종되어 가면서 불법적인 노동운동과 시위문화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생계형 범죄와 노숙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OECD 국가 중 자살률, 낙태율, 이혼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면서 생명 경시의 죽음의 문화가 만연해 있다.
문화면에서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선진시민의식보다는 한풀이식 저질문화와 함께 향락, 도박, 상업주의에 물든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방송과 신문, 신문對 신문, old media와 new media가 모두 당파성에 빠져 정론보다는 親정부와 反정부, 보수對 진보로 나뉘어 정치권의 대리권 양상을 보이며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 가중시키고 있다.
외교·안보면을 보면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시점에서도 세계외교의 일반적 추세인 다자간 협력외교를 무시하고 실속없고 섣부르게 ‘자주외교’, ‘자주국방’ 노선을 내세우며 ‘戰作權(전작권)’ 이양을 추진하고 전통우방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으며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도 크게 안게 되었다.
정치권 또한 국민을 가장 걱정시키고 있는 집단인데, 때늦은 이념전쟁과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온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고 이는 경제 전반에 악재가 되어 불안을 가중시켰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들의 무책임과 막말로 인해 국민들을 분노케 하면서 짜증나고 불안한 상태 속에 몰아넣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어도 불행하게 할 수는 있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상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국민은 모든 권위가 권위주의와 함께 내팽개쳐지고 경제적 궁핍화와 정신적 황폐화를 몸으로 느끼면서 이로 인한 무질서와 불확실성 속에서 절망하고 있을 것이다.
2. 무엇이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었나?
좌파들의 그릇된 생각이다. 우리의 좌파는 서구 진보세력과는 다르다. 서구 진보세력은 liberal(자유주의)하며 세계주의(탈 민족주의)적인데 반해 우리의 진보주의를 표방한 좌파는 親北 반미주의이다. 이념적으로는 자유주의가 아니고, 폐쇄적이며 잘못된 민족관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세계적이지도 않고, 지역적 특성을 띠면서 진취적이지도 못하기 때문에 수구좌파라 함이 옳다.
다만 서구적 진보주의와 우리 좌파의 공통점이 있다면 평등이념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평등’ 이념이 문제이다. ‘평등’이란 말이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멋진 말인가? 그러나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인격은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게 태어난다. 환경이 다르고 능력이 다르고 심성도 다르며 생김새도 다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평등’ 개념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 말이지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결과의 평등이라는 이데아의 세계를 설정해 놓고 현실세계에서 구현하려는 이상주의자들, 공상가들이기 때문에 현실정치에서 실패를 거듭해왔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체제는 자유를 중심 가치로 여기는데 이 ‘자유’는 책임과 함께 경쟁이 수반되고, 이는 차별과 불평등을 낳게 되는 것이다. ‘자유’는 불평등을 초래하면서도 그 불평등 자체가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어 불평등을 치유할 수 있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반면에 사회주의자들의 ‘평등’ 이념은 구성원들에게 인간존엄에 대한 환상과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일면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자생적 동력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회전체가 침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 지난 1990년대 초 동구권 사회주의의 붕괴를 통하여 우리 모두가 학습한 교훈인 것이다.
왜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는 실패하고, ‘자유’와 ‘경쟁’을 추구하는 자유시장경제체제는 살아남는가 하는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옷을 살 때는 몸에 잘 맞고 잘 어울리는 것을 선택해야 편리하고 즐겁게 잘 입을 수 있다. ‘평등’이란 옷을 입은 인간은 원래 그 좋은 옷을 입기에는 체격(본성)이 잘 맞지(선하지) 않기 때문에 잘 어울리지도 편하지도 않은 것이다. 인간은 선과 악을 다 함께 가지고 있어 천사도 금수도 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본성은 선보다도 악한 요소가 더 많기 때문에 끊임없는 교육과 신앙생활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이 참으로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탐욕스럽고 어리석으며 때로는 상상할 수 없이 사악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류역사와 오늘을 사는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볼 때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우리 좌파의 특성을 더 알아보자면 우리 좌파는 순수 진보세력이 아니고 친북반미 수구좌파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구체적으로 그 문제를 알아보자.
1950년 ‘해방통일’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얘기는 너무 오래되었으니 그만두자.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최근 10여 년 동안 100만 명이 넘는 인민을 굶겨 죽이고 언론 종교의 자유도, 인권도 민주주의도 없는 체제, 정통사회주의도 아닌 부자세습종교집단, 핵실험을 통하여 한반도 평화에 먹구름을 드리운 집단인 북한을 지지하는 남한의 급진 좌파세력이, 순수한 진보세력과 민주화세력 속에 함께 어울려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또한 좌파들은 증오심을 주 무기로 한다. 불평등의 원인제공자로 보이는 대상에 대한 증오심은 바탕으로 모든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역사 청산’이다, ‘시대정신’이다, ‘개혁이다’, ‘정의’다 하며 ‘잘사는 사람’, ‘좋은 학교 나온 사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증오의 대상으로 몰면서 일반인들의 마음을 분열시켜 세상을 변화시키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다. 왜냐하면 ‘세상을 변하게 하는 힘은 증오가 아니고 사랑’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도 모두 깨달아야 한다.
3. 희망을 향한 율법적 선택
금년은 대통령 선거의 해다. 북한도 적극 개입할 의사를 거듭 밝히고 있는 이번 대선은 좌파와 우파가 격돌하는 마지막 대회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전망이다. 이번에 우파가 패배하면 ‘삼진(三振) out’이고, 좌파가 지면 ‘10년 공부 나무아비타불’이라고 한다. 우파입장, 아니 나라를 걱정하는 보통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오늘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반전시키는 율법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면 잠시 여기서 우리 좌파들이 어떻게 지난 10년 동안 진보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모아 세상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돌이켜 보건대 해방 직후 남한은 나라의 기초를 세우고 절대빈곤 상태에서 해방되려는 노력과 함께 산업화의 기틀을 다지는데 몰두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건강하게 하는 비용을 치르는데 소홀히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해방직후와 6·25 동란을 거치면서 발생한 좌우갈등과 권위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반공이데올로기로 인권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야기된 한(恨)을 치유하는데 소홀했다. 한편 연좌제 등으로 이념적 혈연화 현상으로 대를 이어 형성된 좌파들과, 미국의 묵인 속에 5·18 광주항쟁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미감정으로부터 새롭게 형성된 반미좌파들, 그리고 이들을 지역감정으로 불을 붙인 정치세력에 의하여 좌파정권이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성찰, 도덕성 개혁 등)을 치르지 않은 부패하고 게으르고 권위주의적인 기득권 세력을 버렸다. 그리고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보이는, 검증되지 않은, 그렇지만 조직화된 소수 좌파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좌파들의 실험은 끝나가고 있다. 정치소비자인 국민은 자신들이 충동구매를 한 결과, 상품을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아마추어적인 개혁에서 터득한 교훈을 통하여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해방 후 범한 우파들의 과오와 현재 우파들의 ‘정신 못 차림’, ‘수권정당의 부적격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국민들은 후진하는 자동차(좌파)에서 내리고 운전기사(대통령)가 누가 되든 간에 경제를 살리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전진하는 자동차(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바꿔 타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절망과 증오의 늪을 벗어나 희망과 사랑의 미래로 나아가야겠다는 신호를 각종 여론조사를 통하여 계속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목회자가 한때 과오를 범하였다 해서 교회를 떠나 하느님을 외면할 수 없듯이 오랜 한을 뛰어넘어 동서화합을 통하여 건강한 우익세력으로 재결집하여 증오와 빈곤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급진좌파세력을 저지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다.
정치소비자인 우리는 좌파상인들의 상품인 국지적(局地的) 진실에 또다시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달콤하게 보이는 ‘평등’이란 작은 진실을 내세우며, 자유경쟁 속에서 복지사회가 건설된다는 ‘큰 진실’을 못 보게 만들어 왔다. 또한 근로자들의 권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작은 진실’로 기업인들을 위축시켜 국내 투자를 꺼리며 외국으로 떠나게 한 나머지 경제가 점점 어려워져 결과적으로 근로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게 만들고 결국 성장도 분배도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는 ‘큰 진실’을 보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 미국이 ‘敵(적)’이라는 ‘진실’보다, 약소국에게 모든 주변 강대국들은 똑같이 경계해야 될 대상이라는 큰 진실.
- 정직해보이지만 식구를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고 의타심 많은 흥부형(型)보다 욕심이 있어 보이지만 독립심이 강하고 부지런하며 식구를 넉넉히 잘 먹여 살리는 놀부형(型)이 평가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 감상적으로 생각하여 성급하게 한집(통일)에 살자고 해서 모두 불행해지는 것보다 따로 살면서 서로 돕고 열심히 사는 것이 합리적인 통일과 행복추구의 길이라는 사실.
- 내가 못사는 것은 잘사는 사람 탓이 아니라는 생각.
- 악한 동족(유대인)보다 선한 이방인(착한 사마리아인)이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다는 생각.
- 전쟁을 피하는 것은 조공을 바치는 것이 아니고 국방력과 상무정신을 키우며 외교 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생각.
- 가난한 사람이 대체로 선한 것도, 부자가 대체로 악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법을 지키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 등이다.
4. 지식인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국민들이 국지적 진실에 현혹되지 않고 큰 진실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갖도록 하는데 지식인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식인들이 과거 중요한 때에 침묵을 지키는 경우가 간혹 있었지만 이번 대선은 그럴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로 이번에도 일관하는 경우, 백로의 둥지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경우 학문과 종교가 설 땅이 없다는 것은 6·25 때 수많은 신부님들이 순교한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은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니고 악 속에서 피어난다.’는 말도 있다. 요즘 좌파들로부터 교육받은 군입대자들의 반수 정도가 6·25를 북침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참으로 무서운 현실이다. 그동안 중도보수지식인들은 과거 부패한 독재자들 때문에 진보세력으로 위장한 좌파들의 민주화 운동의 당위성을 일정부분 인정하느라 침묵을 지켜왔었다. 그러나 지금 백로의 둥지 자체가 사라질 위기상황에서 큰 진실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보서 26장)’라고 말씀하셨다.
미국 국립묘지의 한국전쟁참전 용사묘역에는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새겨있다. ‘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 글처럼 우리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비용을 용기있게 행동으로 치를 때가 온 것이다.
5. 사목적 리더십(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받아주신 하느님 마음)
하느님께서 아직도 제대로 회개하지 못한 불쌍한 한국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어 이 나라를 버리지 않으시고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다시 찾아주시는 경우에, 우리는 돌아온 작은 아들을 따뜻이 받아주는 하느님의 마음으로, 그리고 과거 우리 잘못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하여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20여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뒤에도 백인들을 용서하고 화해로서 남아공을 이끈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지난 10년 동안 좌파들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었던 그들이 주장해 온 똘레랑스(관용)를 실천에 옮기면서, 건강한 진보세력과 개혁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에 뿌리를 둔 인간의 얼굴을 한 겸손한 자본주의를 위하여….
2007. 7.
전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회장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강동순
이제 지식인들이 나서야 할 때다
- 강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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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07, 10: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