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돈 법니까 청와대·공무원이 돈 법니까 돈 버는 것은 기업입니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정부가 기업 역할 하려다 망한 것이 사회주의
‘금·산분리’ 완화하자고 하니 ‘재벌편이냐’ 공격
좌파 사회주의는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로 접근
뒤뚱거리는 ‘오리교육’대신 선택과 집중 필요
중국·일본에 낀 한국, 개방과 경쟁만이 살 길
3년 임기를 마치게 해 준 임명권자에게 감사
인터뷰=박정훈 경제부장 jh-park@chosun.com
김정훈 경제부 기자
3년 임기의 금융감독위원장직을 마친 윤증현 전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설픈 좌파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경쟁과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윤증현(尹增鉉·61·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일 퇴임하자 직원들은 미니 홈페이지를 제작해 선물했다. 홈피 주소는 ‘따거’(大哥·중국말로 ‘큰 형님’)였다. 모처럼 공직 사회에 선 굵은 보스형 리더가 나와 3년간 묵직하게 한국 금융을 이끌었다.
윤 전 위원장은 바위 같은 인물이다. 얄궂은 시류(時流), 혹은 권력자 주변의 기세 등등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켜가는 사람이다.
심지어 불운(不運)조차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DJ 정부 시절, ADB(아시아개발은행) 이사로 5년간 마닐라에 ‘유배’갔을 때 다들 그가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정부의 금감위원장으로 컴백, 운명을 원래 페이스대로 돌려놓았다.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가 중용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가 내면의 생각을 숨김없이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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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지난 6일, 그의 퇴임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몇 번을 고사하다가 “그래, 한번 3년을 정리해 봅시다”라며 어렵게 응낙했다. 2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그의 말은 여전히 거침이 없었고, 모든 메시지는 국익과 시장과 기업으로 통했다.
■ 기업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것
― 역대 금감위원장 중 처음으로 3년 임기를 마쳤습니다만, 취임 초기엔 ‘조기(早期) 경질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집권 386그룹과 불편하다는 말도 많았지요.
“여러 소문이 있었을 텐데요, 아마 ‘증권집단소송제(키워드)’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왔을 겁니다. 금감위원장으로 와서 보니 증권집단소송제가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까지 문제 삼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겁니다. 옛날 것까지 문제 삼으면 살아남을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 기업은 1년에 120~130개씩 피소를 당하고, 한번 소송에 연루되면 그 기업은 망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변호사만 좋은 일 시킨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야겠다 했지요.”
― 증권집단소송제는 현 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개혁 정책 아니었습니까.
“기업의 분식회계는 막아야 되고 기업의 투명성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했던 특수 환경을 생각해야 됩니다. 정치자금부터 시작해서…. 노대통령에게 ‘이대로는 살아 남을 기업이 없습니다’ 보고했더니 놀라시더군요. ‘왜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냐’며. ‘청와대는 모른 척하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나서 관계 장관들을 설득했죠.”
― 당시 법 시행을 2년 유예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지요. 자기들이 해 놓은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와글와글했습니다. 소위 개혁을 후퇴시켰다 이거지요. 그래서 제가 ‘개혁이 밥 먹여 주나’ 그랬습니다. 개혁을 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해야지요. 그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지요. 저쪽 친구들이 굉장히 나를 불편해합니다. 그래도 내가 바른 소리를 해 대니까, ‘참여정부의 로드맵(정책일정표)을 한번 읽어는 봤냐’ 이런 식으로 얘기들을 합디다. 아니 로드맵이라는 게, 주변 환경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지요. 영원한 정책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저로서는, 3년 임기를 마치게 해준 임명권자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위원장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리’란 무언가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입니다. 제가 국회 가서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국회의원 여러분의 월급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요. 원천은 기업의 이윤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니 국회의원이 돈을 법니까. 청와대가, 공무원이 돈 법니까. 아니다 이겁니다. 결국 기업이 번 돈을 가지고 전부 순환이 되면서 나눠 먹는 겁니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역할을 정부가 하려다 망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 덕분에 비판 진영으로부터 끊임없이 ‘친(親)재벌’이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논리적으로 따질 생각을 하지 않고 말만 꺼내면 재벌 편든다고 합니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내가 금·산 분리(키워드) 완화하자고 하니까 ‘재벌에게 은행을 주자는 얘기냐’하며 딱 말문을 막는데, 참…. 좌파 사회주의는 문제를 단순 이분화해 버립니다. 이분화시켜 놓고 네편 내편 나눠서 싸움을 붙는 겁니다. 그런데요, 경제에 정답이 어디 있습니까.”
― 위원장께서는 현 정부의 기본 입장과 어긋나게 3년간 줄기차게 금·산 분리 완화를 주장해왔죠.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시중은행이 7개인데 6개가 외국계입니다. 외환·한국씨티·SC제일은행은 외국계이고, 국민·하나·신한은행도 지금은 한국 사람한테 경영권 맡겨 놓고 있지만, 3~4년 내에 외국인을 (경영진으로) 내세울 겁니다. 아니, 외국 투기자본에 (은행을) 주면 괜찮고, 우리 산업자본에는 주면 안 되는 겁니까.”
■ 선택과 집중의 전략
― 평소 ‘가난은 죄악’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나는 단연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죄악이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인간성을 비틀고, 나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온갖 좋은 소리들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보다 무서운 죄악이 있으면 한번 대보라고 하고 싶어요.”
― 이젠 우리는 가난을 걱정할 단계는 지난 것 같습니다만.
“이만큼 부(富)를 창출한 게 결국 기업 아닙니까. 한 나라의 경쟁력은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바로 연결되는 겁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는 문제도 있지만, 외국에 나가서 ‘당신네 나라 자동차 공장이 있느냐’고 누가 물어봐서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전자·반도체 얼마나 신납니까. 포항제철 그거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 그러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됐다는 걱정이 나옵니다.
“가게가 세 곳 생겼는데, 한 가게는 세계에서 가장 값싼 곳이고, 한곳은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처음 가게는 중국, 두 번째 가게는 일본입니다. 그 가운데 낀 한국은 둘 다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두배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무슨 노력을 해야 합니까.
“동물 중에서 육·해·공(陸海空)을 다 다닐 수 있는게 오리라고 합니다. 오리는 땅에서 걷고, 물에서 헤엄치고, 하늘도 납니다. 근데 다 반쪽이죠. 걷기는 걷는데 뒤뚱뒤뚱, 나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나는 겁니까?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을 ‘오리교육’이라 그러는 겁니다. 전인(全人)교육이라고 해서 전부 다 가르치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겁니다.”
― 어떤 쪽에 집중하자는 말씀인가요.
“결국은 금융에서 승부가 납니다. 우리가 몇년 조선(造船)산업 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국제 투자은행(IB)은 몇 십초 돈 굴려서 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거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금산 분리 완화를 강조한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1000대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보금이 360조원입니다. 이 돈을 쓸 데를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쓸 데를….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얘기입니까.”
― 한국 사람의 적성이 금융 산업에 맞습니까?
“저는 우리에게 타고난 금융의 DNA가 있다고 봅니다. 선물·옵션 시장은 우리가 세계 1위입니다. 2등보다 10~20배는 더 큽니다. 지금 뉴욕 월가나 도쿄, 싱가포르, 또 우리 국내에 나와 있는 투자은행을 보면, 일하는 곳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도박이 능한 사람이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이 쫓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금융에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 제조업에선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나오는데,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안되는 겁니까.
“금융 경쟁력의 핵심은 전문인력을 키우는 겁니다. 사람들을 키우면서,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됩니다. 그게 한국에서 쉽지 않습니다. 얼마전 영국의 프로 축구팀이 우리나라에 왔잖아요. 그때 비행기를 함께 탔던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그러는 겁니다. 1등석에 선수 3명이 타고, 비즈니스클래스에 5명이 타고, 나머지 선수는 이코노미에 타고 오더라는 겁니다. 그것이 시장경제입니다. 그래야 열심히 하지, 안 그러면 누가 혼자 코피 터지고 다리 부러지고 열심히 뛰겠습니까?”
■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
― 스스로를 민족주의자(nationalist)라고 생각합니까.
“외국계 은행도 이사의 절반을 한국 사람으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수주의자가 나타났다’고 해요. 그런데 내 얘기는 정확하게 알고 하자는 겁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은행 임원의 자격을 따질 때 국적(國籍)만 문제삼는게 아니라, 거주요건까지 따집니다. 심지어 그 지역 반경 몇㎞ 안에 몇년 이상 살아야 한다는 기준도 있어요. 강대국이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약소국이 하면 국수주의입니까.”
― 잘 모르고 무작정 글로벌 스탠더드 만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무조건 외국한테 맞춰주면 좋은 줄 압니다. 헤르메스펀드 사건 때, 헤르메스 영국 본사까지 가서 조사시켰는데, 영국 사람들 자존심 많이 상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영국과 사이가 나빠졌습니까? 아닙니다.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면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압니다. 천만에요. 균형을 잡고 개방을 해야지요. 어정쩡한 개방론자들이 개방만 외치는데, 물론 개방해야 합니다. 하되 외국자본과 내국자본, 그걸 역차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에 국익을 우선에 두지 않는 개방론자가 어디 있습니까.”
― 한국 경제는 지금 성장 잠재력이 위축되는 증세에 걸렸다고 합니다.
“개방과 경쟁만이 살길입니다. 경쟁력 향상에 경쟁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차별성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국정운영에 개방과 경쟁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장 잠재력을 채울 수 있습니다.”
― 위원장 말씀은 양적(量的)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젠 질적(質的)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우리의 복지예산 비중이 낮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데, 문제는 늘어나는 속도입니다. 복지비용 지출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 질적인 해결이 뭡니까. 복지비용을 늘려 1인당 얼마씩 주는 것과, 그 사람한테 일자리를 주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질적인 해결책입니까. 당연히 일자리가 질적으로도 우월한 해답이지요.”
― 성장과 복지 사이의 균형점은 어디에서 잡아야 합니까.
“내 결론은 이렇습니다. 복지를 확충해 나가되 꼭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이 훼손될 때까지 가면 안 됩니다. 사회지출을 늘려서 시장경제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따뜻한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줘야 하지만, 성장 잠재력까지 해치면 다음 세대는 어쩌란 말입니까. 약자(弱者) 문제는 시장경제의 본질적인 약점일 수 있는데, 그러나 대안은 없어요. 성장의 질이 가장 좋다고 하는 사회주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요컨대 하향 평준화로 가면 안된다 이겁니다.”
― 기업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이 현금 쌓아 놓고 투자하지 않는 것,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들이 돈을 쓸 명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새로운 투자처를 열어 줄 수 있는 것이 정부, 혹은 기업과 정부 쌍방의 역할이거든요. 지금도 종합병원 가면 연줄을 동원해야 병실을 얻습니다. 왜 그런 데 투자를 못하게 합니까. 학교는 어떻습니까. 제주 특구에 외국학교를 만들려 해도 결국 못 만들었잖아요.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다들 해외로 나가고. 왜 학교를 안 만듭니까. 결국 시대정신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개방과 경쟁이지요.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 말입니다. 왜 우리는 자유와 경쟁을 꽃피우지 못합니까. 이념적으로 접근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나는 한반도 전체를 경제특구로 운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방과 경쟁이 온갖 부문에서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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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은 누구
윤증현 전 위원장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 10회에 수석 합격했다. 국제금융과장·은행과장·금융과장 등 옛 재무부의 핵심 보직을 거치며 승승 장구했다.
19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시절, 외환 위기의 한복판에 섰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999년부터 5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변방’을 떠돌아야 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 이 전 총리의 동생 고(故) 이수인 의원을 통해 꼬마 민주당 시절 이 의원과 절친했던 노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이제 공직(公職)은 안 한다”고 했다.
* 증권집단소송
분식회계·내부거래 등을 한 회사나 대주주에 대한 소송. 소액주주 50인 이상이 소송을 내서 이기면, 다른 주주들도 판결의 효력을 함께 누리게 된다. 올해부터 적용이 시작됐다.
▶ 금·산분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에 벽을 치는 것.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도입됐다.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 이상 못 갖도록 제한하고 있다.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정부가 기업 역할 하려다 망한 것이 사회주의
‘금·산분리’ 완화하자고 하니 ‘재벌편이냐’ 공격
좌파 사회주의는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로 접근
뒤뚱거리는 ‘오리교육’대신 선택과 집중 필요
중국·일본에 낀 한국, 개방과 경쟁만이 살 길
3년 임기를 마치게 해 준 임명권자에게 감사
인터뷰=박정훈 경제부장 jh-park@chosun.com
김정훈 경제부 기자
3년 임기의 금융감독위원장직을 마친 윤증현 전 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어설픈 좌파의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경쟁과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윤증현(尹增鉉·61·사진) 금융감독위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일 퇴임하자 직원들은 미니 홈페이지를 제작해 선물했다. 홈피 주소는 ‘따거’(大哥·중국말로 ‘큰 형님’)였다. 모처럼 공직 사회에 선 굵은 보스형 리더가 나와 3년간 묵직하게 한국 금융을 이끌었다.
윤 전 위원장은 바위 같은 인물이다. 얄궂은 시류(時流), 혹은 권력자 주변의 기세 등등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켜가는 사람이다.
심지어 불운(不運)조차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DJ 정부 시절, ADB(아시아개발은행) 이사로 5년간 마닐라에 ‘유배’갔을 때 다들 그가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노무현 정부의 금감위원장으로 컴백, 운명을 원래 페이스대로 돌려놓았다.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가 중용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야인으로 돌아간 그가 내면의 생각을 숨김없이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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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이뤄진 것은 지난 6일, 그의 퇴임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몇 번을 고사하다가 “그래, 한번 3년을 정리해 봅시다”라며 어렵게 응낙했다. 2시간 동안 인터뷰에서 그의 말은 여전히 거침이 없었고, 모든 메시지는 국익과 시장과 기업으로 통했다.
■ 기업이 번 돈으로 먹고 사는 것
― 역대 금감위원장 중 처음으로 3년 임기를 마쳤습니다만, 취임 초기엔 ‘조기(早期) 경질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집권 386그룹과 불편하다는 말도 많았지요.
“여러 소문이 있었을 텐데요, 아마 ‘증권집단소송제(키워드)’ 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왔을 겁니다. 금감위원장으로 와서 보니 증권집단소송제가 기업의 과거 분식회계까지 문제 삼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겁니다. 옛날 것까지 문제 삼으면 살아남을 기업이 어디 있습니까. 미국 기업은 1년에 120~130개씩 피소를 당하고, 한번 소송에 연루되면 그 기업은 망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변호사만 좋은 일 시킨다, 이겁니다. 그래서 내가 총대를 메야겠다 했지요.”
― 증권집단소송제는 현 정부 초기의 대표적인 개혁 정책 아니었습니까.
“기업의 분식회계는 막아야 되고 기업의 투명성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했던 특수 환경을 생각해야 됩니다. 정치자금부터 시작해서…. 노대통령에게 ‘이대로는 살아 남을 기업이 없습니다’ 보고했더니 놀라시더군요. ‘왜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냐’며. ‘청와대는 모른 척하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하고 나서 관계 장관들을 설득했죠.”
― 당시 법 시행을 2년 유예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시민단체가 들고 일어났지요. 자기들이 해 놓은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며 와글와글했습니다. 소위 개혁을 후퇴시켰다 이거지요. 그래서 제가 ‘개혁이 밥 먹여 주나’ 그랬습니다. 개혁을 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해야지요. 그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지요. 저쪽 친구들이 굉장히 나를 불편해합니다. 그래도 내가 바른 소리를 해 대니까, ‘참여정부의 로드맵(정책일정표)을 한번 읽어는 봤냐’ 이런 식으로 얘기들을 합디다. 아니 로드맵이라는 게, 주변 환경이 변하면 정책도 바뀌어야지요. 영원한 정책이 어디 있습니까. 사실 저로서는, 3년 임기를 마치게 해준 임명권자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 위원장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리’란 무언가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업입니다. 제가 국회 가서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요, ‘국회의원 여러분의 월급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요. 원천은 기업의 이윤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니 국회의원이 돈을 법니까. 청와대가, 공무원이 돈 법니까. 아니다 이겁니다. 결국 기업이 번 돈을 가지고 전부 순환이 되면서 나눠 먹는 겁니다.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 역할을 정부가 하려다 망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입니다.”
― 덕분에 비판 진영으로부터 끊임없이 ‘친(親)재벌’이라는 비난을 받았지요.
“논리적으로 따질 생각을 하지 않고 말만 꺼내면 재벌 편든다고 합니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은 내가 금·산 분리(키워드) 완화하자고 하니까 ‘재벌에게 은행을 주자는 얘기냐’하며 딱 말문을 막는데, 참…. 좌파 사회주의는 문제를 단순 이분화해 버립니다. 이분화시켜 놓고 네편 내편 나눠서 싸움을 붙는 겁니다. 그런데요, 경제에 정답이 어디 있습니까.”
― 위원장께서는 현 정부의 기본 입장과 어긋나게 3년간 줄기차게 금·산 분리 완화를 주장해왔죠.
“예를 들어 볼까요. 지금 시중은행이 7개인데 6개가 외국계입니다. 외환·한국씨티·SC제일은행은 외국계이고, 국민·하나·신한은행도 지금은 한국 사람한테 경영권 맡겨 놓고 있지만, 3~4년 내에 외국인을 (경영진으로) 내세울 겁니다. 아니, 외국 투기자본에 (은행을) 주면 괜찮고, 우리 산업자본에는 주면 안 되는 겁니까.”
■ 선택과 집중의 전략
― 평소 ‘가난은 죄악’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지요.
“나는 단연코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죄악이 가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은 인간성을 비틀고, 나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합니다. 온갖 좋은 소리들 하는 사람들에게, 가난보다 무서운 죄악이 있으면 한번 대보라고 하고 싶어요.”
― 이젠 우리는 가난을 걱정할 단계는 지난 것 같습니다만.
“이만큼 부(富)를 창출한 게 결국 기업 아닙니까. 한 나라의 경쟁력은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바로 연결되는 겁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는 문제도 있지만, 외국에 나가서 ‘당신네 나라 자동차 공장이 있느냐’고 누가 물어봐서 ‘있다’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전자·반도체 얼마나 신납니까. 포항제철 그거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 그러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샌드위치가 됐다는 걱정이 나옵니다.
“가게가 세 곳 생겼는데, 한 가게는 세계에서 가장 값싼 곳이고, 한곳은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처음 가게는 중국, 두 번째 가게는 일본입니다. 그 가운데 낀 한국은 둘 다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값도 싸고 품질도 좋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두배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무슨 노력을 해야 합니까.
“동물 중에서 육·해·공(陸海空)을 다 다닐 수 있는게 오리라고 합니다. 오리는 땅에서 걷고, 물에서 헤엄치고, 하늘도 납니다. 근데 다 반쪽이죠. 걷기는 걷는데 뒤뚱뒤뚱, 나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나는 겁니까? 그래서 대한민국 교육을 ‘오리교육’이라 그러는 겁니다. 전인(全人)교육이라고 해서 전부 다 가르치는데, 사회에 나와 보니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지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겁니다.”
― 어떤 쪽에 집중하자는 말씀인가요.
“결국은 금융에서 승부가 납니다. 우리가 몇년 조선(造船)산업 해서 벌어들이는 돈을 국제 투자은행(IB)은 몇 십초 돈 굴려서 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거 아주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금산 분리 완화를 강조한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1000대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유보금이 360조원입니다. 이 돈을 쓸 데를 만들어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쓸 데를….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얘기입니까.”
― 한국 사람의 적성이 금융 산업에 맞습니까?
“저는 우리에게 타고난 금융의 DNA가 있다고 봅니다. 선물·옵션 시장은 우리가 세계 1위입니다. 2등보다 10~20배는 더 큽니다. 지금 뉴욕 월가나 도쿄, 싱가포르, 또 우리 국내에 나와 있는 투자은행을 보면, 일하는 곳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도박이 능한 사람이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이 쫓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금융에서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 제조업에선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나오는데, ‘금융의 삼성전자’는 왜 안되는 겁니까.
“금융 경쟁력의 핵심은 전문인력을 키우는 겁니다. 사람들을 키우면서, 한편으로는 능력 있는 사람을 데리고 와야 됩니다. 그게 한국에서 쉽지 않습니다. 얼마전 영국의 프로 축구팀이 우리나라에 왔잖아요. 그때 비행기를 함께 탔던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그러는 겁니다. 1등석에 선수 3명이 타고, 비즈니스클래스에 5명이 타고, 나머지 선수는 이코노미에 타고 오더라는 겁니다. 그것이 시장경제입니다. 그래야 열심히 하지, 안 그러면 누가 혼자 코피 터지고 다리 부러지고 열심히 뛰겠습니까?”
■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
― 스스로를 민족주의자(nationalist)라고 생각합니까.
“외국계 은행도 이사의 절반을 한국 사람으로 해야 한다고 하니까,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수주의자가 나타났다’고 해요. 그런데 내 얘기는 정확하게 알고 하자는 겁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은행 임원의 자격을 따질 때 국적(國籍)만 문제삼는게 아니라, 거주요건까지 따집니다. 심지어 그 지역 반경 몇㎞ 안에 몇년 이상 살아야 한다는 기준도 있어요. 강대국이 하면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약소국이 하면 국수주의입니까.”
― 잘 모르고 무작정 글로벌 스탠더드 만능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무조건 외국한테 맞춰주면 좋은 줄 압니다. 헤르메스펀드 사건 때, 헤르메스 영국 본사까지 가서 조사시켰는데, 영국 사람들 자존심 많이 상했겠죠. 그러나 그렇다고 영국과 사이가 나빠졌습니까? 아닙니다. 해 달라는 것 다 해 주면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줄 압니다. 천만에요. 균형을 잡고 개방을 해야지요. 어정쩡한 개방론자들이 개방만 외치는데, 물론 개방해야 합니다. 하되 외국자본과 내국자본, 그걸 역차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세상에 국익을 우선에 두지 않는 개방론자가 어디 있습니까.”
― 한국 경제는 지금 성장 잠재력이 위축되는 증세에 걸렸다고 합니다.
“개방과 경쟁만이 살길입니다. 경쟁력 향상에 경쟁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차별성을 인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국정운영에 개방과 경쟁을 도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성장 잠재력을 채울 수 있습니다.”
― 위원장 말씀은 양적(量的)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젠 질적(質的)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우리의 복지예산 비중이 낮다는 것을 근거로 드는데, 문제는 늘어나는 속도입니다. 복지비용 지출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정말 질적인 해결이 뭡니까. 복지비용을 늘려 1인당 얼마씩 주는 것과, 그 사람한테 일자리를 주는 것과, 어느 것이 더 질적인 해결책입니까. 당연히 일자리가 질적으로도 우월한 해답이지요.”
― 성장과 복지 사이의 균형점은 어디에서 잡아야 합니까.
“내 결론은 이렇습니다. 복지를 확충해 나가되 꼭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습니다. 성장 잠재력이 훼손될 때까지 가면 안 됩니다. 사회지출을 늘려서 시장경제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따뜻한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줘야 하지만, 성장 잠재력까지 해치면 다음 세대는 어쩌란 말입니까. 약자(弱者) 문제는 시장경제의 본질적인 약점일 수 있는데, 그러나 대안은 없어요. 성장의 질이 가장 좋다고 하는 사회주의는 어떻게 됐습니까. 요컨대 하향 평준화로 가면 안된다 이겁니다.”
― 기업들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이 현금 쌓아 놓고 투자하지 않는 것,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는 것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기업들이 돈을 쓸 명분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새로운 투자처를 열어 줄 수 있는 것이 정부, 혹은 기업과 정부 쌍방의 역할이거든요. 지금도 종합병원 가면 연줄을 동원해야 병실을 얻습니다. 왜 그런 데 투자를 못하게 합니까. 학교는 어떻습니까. 제주 특구에 외국학교를 만들려 해도 결국 못 만들었잖아요.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고, 다들 해외로 나가고. 왜 학교를 안 만듭니까. 결국 시대정신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요.
“개방과 경쟁이지요.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 말입니다. 왜 우리는 자유와 경쟁을 꽃피우지 못합니까. 이념적으로 접근하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나는 한반도 전체를 경제특구로 운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방과 경쟁이 온갖 부문에서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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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은 누구
윤증현 전 위원장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행정고시 10회에 수석 합격했다. 국제금융과장·은행과장·금융과장 등 옛 재무부의 핵심 보직을 거치며 승승 장구했다.
1997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 시절, 외환 위기의 한복판에 섰다.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999년부터 5년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로 ‘변방’을 떠돌아야 했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 이 전 총리의 동생 고(故) 이수인 의원을 통해 꼬마 민주당 시절 이 의원과 절친했던 노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이제 공직(公職)은 안 한다”고 했다.
* 증권집단소송
분식회계·내부거래 등을 한 회사나 대주주에 대한 소송. 소액주주 50인 이상이 소송을 내서 이기면, 다른 주주들도 판결의 효력을 함께 누리게 된다. 올해부터 적용이 시작됐다.
▶ 금·산분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간에 벽을 치는 것. 대기업 등 산업자본이 금융산업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1982년 도입됐다.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4% 이상 못 갖도록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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