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적으로 말하자면, '파괴적 삐딱이' 노무현이 나쁜 이무기의 '브라퀴'처럼 한국사회를 삐뚫어지게 만들어 교란시키더니, '창조적 삐딱이' 심형래가 선한 이무기처럼 나타나서 삐뚫어진 한국사회를 바로 세우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한다. 심형래는 노무현 정권 하에서 부정적이고 폐쇄적이고 파괴적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하면 된다'는 긍정적이고 성취적이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만들고 있다. 나쁜 이무기의 '브라퀴'들이 설치는 한국사회에 선한 이무기로 심형래가 등장하여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기운을 주는 듯하다. 세계에 나가서 이것 저것을 구경한 심형래가 우물 안 개구리들이 된 좌분자들의 파괴적 문화선동에 '브레이크'를 밟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과연 심형래는 선한 이무기가 되어, 대한민국을 파괴하는 나쁜 이무기 브라퀴들의 문화선동을 극복할 수 있을까?
건축이 한 문명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하듯이, 영화는 한 사회의 지식과 예술의 총제적 표현이다. 문화는 사회가치를 재원으로 한 상징산업이다. 심형래의 '디-워'도 한국사회의 많은 현상들을 내포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래서 '디-워'에 문화나 예술의 차원을 넘어 사회정치적 논란까지 생긴다. 그러나 '디-워'의 형식이나 기술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그것의 스토리나 메시지에 관심을 둔 평론이나 논란은 많지 않았다. '디-워'의 스토리나 메시지에 관심을 둔 평론이 거의 없다가, 진중권이라는 얼치기 지식인이 '디-워'의 컨텐츠에 대한 날림공사식 혹평을 하였고, 이러한 얼치기 평론에 대중들이 반발을 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되먹지 못한 엉터리 지식으로 방송을 장악하여 대중들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은 바로 진중권과 같은 얼치기 좌파 지식인들이라고 국민들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으로부터 언로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폭력을 당했다고 난리법석을 떠는 진중권을 국민들은 오히려 적반하장의 얼치기로 보는 것이다.
진중권이라는 얼치기 지식인이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이분법적 판단기준을 들이대면서 '디-워'에 퍼부은 독설을 언론이 되받아서 호들갑 떠는 난리법석 자체가 한국사회의 지적 천박성을 증명하는 사회현상이다. 원래 진중권, 유시민, 강준만, 강정구, 김용옥과 같은 빠돌이들의 지식 수준은 피상적이고 경박한 것이다. '디-워'에 대한 자신의 혹평에 맞선 대중들에게 진중권이 '('디-워'에 대해 비판을 못하는 상황은) 파쇼다. 나치정권 때도 그랬다.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의견이 다른 사람을 때려 잡자고 한다. 대중들이 지식인을 쫓아내고 있다. '애국 깡패'짓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대항하며 자기정당화에 악을 쓰고 있지만, 정작 국민들은 진중권이 나찌시대의 선동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중권은 심형래에게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가해진 얼치기 평론가들의 폭력(악평)은 간과하면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대중들의 비난만 보는 외눈박이 지식인이 아닌가? '디-워'는 한국사회의 얼치기 지식인들의 지적 한계나 사회병리적 현상도 잘 폭로해 주었다.
김대중 집권 이후 얄팍하고 천박한 정보나 지식이 한국 지식계의 골격(infra-structure of knowledge)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깊이 있는 전문가들은 사회적으로 변두리로 밀리고, 깊이를 상실한 피상적이고 천박한 명망가들(celebrities)이 한국사회의 정보와 지식을 교란시키고 한국인들을 무지하고 무책임한 군중들로 만들어 가고 있다. 얼치기 좌파 지식인들이 바로 한국사회를 파괴하는 '지식 브라퀴'들이다. 한국에서 깊이를 상실한 얼치기 지식을 팔아먹기 시작한 우파인사들은 이어령이나 이문열다. 이어령이나 이문열은 우파에서 얼치기 지식을 팔아먹은 대부이며, 좌파에서는 리영희를 비롯하여 많은 피상적 지식 얼치기들이 있다. 김용옥의 지식은 제법 폭이 넓고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깊이를 상식한 유시민, 강준만, 리영희와 같은 종류의 피상적 지식이다. 피상적이고 경박한 좌파 지식인들이 방송에 의해 설치면서, 한국인들도 천박하고 단견적이고 피상적인 군중들로 바뀌었다.
아무튼 이런 좌우파 얼치기 지식인들은 깊이 있는 전문적 담론을 피하면서, 만물박사(pundit)와 같이 군중들에게 학자연하게 행세하다가 진짜 자신의 전문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나타나면, 얼치기 지식의 바탕이 드러나면서 숨어버리기나 피해버린다. 꼼꼼한 전문가가 아니라, 얼렁치기 좌파선동가들이 한국사회를 어지럽히고 한국인들을 무지한 군중들로 만들어가고 있다. 좌파성향의 얼치기 지식조작가들은 학문적으로 해적판 수준의 지식과 정보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얼렁뚱땅 책을 쓴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해적수준의 얼치기 지식인이 쓴 대표적인 책이다. 그것은 해적도 창작도 아닌, 참으로 얼렁뚱당 짜집기 해적이다. 유시민이 요즘 '한국개조론'을 논하는 것 자체가 좌파성향의 설익은 얼치기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피상적 세계관을 겁 없이 떠들어내는 사회적 병리현상 혹은 국가적 망조현상이다.
대한민국에는 김대중 정권 이후로 전문가들이 분야 분야마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무지하고 책임한 군중들(corwds)이나 혹은 깊이를 상실한 지식을 가진 명망가들(celebrities)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심형래도 그런 신지식인으로 설치다가 호된 인생공부를 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늬만 그럴 듯한 얼치기 지식인들이 대학과 연구기관들을 많이 장악했다. 요즘 신정아나 김옥란과 같은 엉터리 박사학위 소유자들이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것도 대학이 얼치기 지식장사꾼들에 의해 깊이 농락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 살아있는 지식을 생산하고 전파한다면, 노무현과 같은 얼치기 대통령은 벌써 퇴출되었을 것이다. 대학이 노무현과 같은 엉터리 정치인을 비호하는 엉터리 지식제작소이다. 솔직히 정치판에 떠도는 학자들 중에 성실하게 학문적 탐구를 한 자들은 극히 드물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들이 받은 박사학위는 사실상 구색을 갖추기 위한 엉터리 학위들이 많다. 한국사회에서 엉터리 지식으로 학문과 행정을 망치는 자들이 바로 한국 사회를 파괴하는 '지적 혹은 행정적 브라퀴'들이다.
후기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교조적 이념이나 정치가 약화되이서는 좋은데, 그 대신 이제 세상은 무늬만 그럴 듯한 '이미지의 시대'가 되었다. 다니엘 부어스틴이 간파한 것처럼, 사이비 영웅, 사이비 지식인, 사이비 사건, 사이비 연예인들이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미혹하는 '이미지 시대'가 된 것이다. 내용은 빈약한데, 그럴 듯한 껍데기만 있는 정치인, 지식인, 문화예술인, 기업가들이 많다. 기업도 무늬가 그럴 듯해야, 주식으로 돈을 번다. 정치판에는 요즘 범좌파세력이 국정실패를 감추기 위하여, 겉포장을 갈아치우는 정당변신극을 '대통합신당'의 이름으로 광란적으로 벌이고 있다. 모두 군중들의 단견적이고 피상적 판단을 전제로 한 정치사기극이다. 이제 민중들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의 폐단은 한국사회에서 물러났는데, 군중들을 피상적 지식과 몽상적 구호로 미혹하는 선동주의의 폐단이 한국사회에서 극에 달해가고 있다. 억압에 능숙한 군인통치자들이 물러나면서 선동에 능숙한 군중선동가들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군중의 룰(mob rule)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얼치기 지식인들이 파편적이고 피상적인 지식으로 군중들을 미혹하여 사기를 치는 험악한 군중사회가 되었다. 한국사회를 이러한 군중사회를 만드는 데에 얼치기 좌파지식인들이 많이 공헌했다. 세상의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요소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세상을 흑과 백, 적과 동지, 우리와 그들로 이분법적으로 단순화시킨 세계관을 단순성을 좋아하는 군중들에게 강요한 좌파지식인들이 바로 한국사회를 단순무식한 군중사회로 만든 원흉들이다. 한국사회의 지적 구조(infra-structure of knowledge and information)의 피상성과 파편성이 한국인들의 판단을 순간적이고 파편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파편적 지식인의 대표적 사례가 유시민이나 진중권이다. 군중(crowd)이 된 한국인들은 사회적 사안들에 대해 장기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순간적 사기와 선동에 군중화된 한국인들이 깜빡 속아넘어가는 판단력과 사회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군중화된 한국인들의 지적 구조의 피상성은 정치분야에서고 큰 폐단으로 나타난다. 군중들의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치의식을 전제로 좌파세력은 깜짝쇼나 정당변신극을 선거에 악용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대선후보에게 '마지막 한 방'을 집권 좌파세력이 벼려고, 선거 막판에 판세뒤집기를 위한 깜짝쇼를 집권 좌파세력이 준비하고, 집권 기간의 실정을 감추기 위하여 집권여당의 이름을 갈라치우는 좌파세력의 정당변신극은 모두 한국인들을 까마귀고기 먹은 군중들로 여기 좌파세력의 정치노름인 것이다. 남한의 좌파세력은 장기적, 복합적, 양심적,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피상적 정보와 지식을 방송을 통해 선전선동하여 한국인들을 천박한 군중으로 만들어서 통치하려는 악질적 망국세력이다. 그 선동세력의 가장 지휘자는 역시 김대중이다. 남한사회는 정치적 거짓예언자인 김대중의 선동과 미혹이 암처럼 퍼져있다. 김대중은 한국정치를 파괴적으로 몰아가는 나쁜 '정치적 이무기' 혹은 '정치적 브라퀴의 두목'이다.
이 망국적 좌파세력이 남한에서 온갖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다가 그 영역을 북한에까지 확장시키려고 한다. 아니 북한을 통치하는 좌파선동세력의 세를 남한에 확산시켜서 한국인들의 지적 구조를 거짓과 몽상에 찌들게 만들려고 한다. 남한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면서 남한 국민들에게 철저하게 비호감의 대상이 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통일을 논하려고 8월말 국치일에 김정일을 만난다고 한다. 정말 나라를 망하게 할 짓을 골라서 한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이 정말 한민족의 통일을 원한다면, 남한의 계층갈등, 이념갈등, 세력갈등, 지역갈등부터 해소해야 할 것이다. 8월말 평양에서 열리는 盧-金회담은 통일에 진정성이 없다. 김정일은 북한사회를 파괴한 나쁜 '정치적 이무기'이고 '파괴적 브라퀴'라서, 그와의 건설적이고 평화적인 대화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화와 통일 운운하는 것은 그의 지식이 몽상적이고, 기만적이고, 피상적이고, 진정성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을 뽑아준 남한 국민들을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간 철저한 분열주의자 노무현이 어떻게 이념과 체제가 완전히 다른, 그리고 대를 이어 북한주민을 억압하고 선동한 김정일과 통일을 진정성있게 논한단 말인가? 한국인들의 분열적이고 파벌적인 정신구조를 고려한다면, 김정일, 김대중, 노무현이 선전하는 평화통일의 구호는 허황된 선동에 불과하다. 한국인들은 지금 남북통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더욱이 전체주의자 김일성-김정일 집단과 통일을 해야 한다는 선전선동에 매우 피곤해한다. 그것이 통일을 어렵게 만드는 한국인들의 지적 한계이면서 동시에 좌파세력의 몽상적 통일사기극에 속지 않는 한국인들의 지적 정직성이다.
한국인들은 사이비 통일몰이에 관심이 없다. 그 첫째 이유는 한국인들의 지적 구조가 통일에 적당하지 못한 개인주의적이고 파편적이기 때문이고, 그 둘째 이유는 지금 집권 좌파세력이 선동하는 남북통일극을 남한인들이 믿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세계최고의 이혼율을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남한일 정도로 지금 한국인들은 통합과 화해에 익숙치 못한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남한인들의 이성과 양심이 매우 천박하고, 피상적이고, 단견적이라는 사실은 높은 이혼율에서도 증명된다. 실존적 삶의 기본적 곤경(predicament)를 수용하지 못하는 여성주의, 쾌락주의, 평등주의에 젖어 조그만한 가정갈등 때문에 자녀들의 불행을 모두 무시하고 가정을 깨어버리는 지적 한계를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데, 남북통일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너무 과도한 낙관주의나 평화주의가 비극과 폭력의 가면이라는 사실은 이상적 현실주의자(idealistic realist)였던 정치윤리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가 충분히 설명해두었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노무현과 김정일이 연출하는 남북정상회담이나 통일담론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보여준 진정성 없음 때문이다. 한국인들의 지식이 피상적이고 파편적인 것도 문제가 되지만, 한국의 집권 좌파세력이 보여주는 대국민 사기극은 더 큰 문제이다. 한국인들의 지적 구조가 망조났다는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의 깽판정치, 막말정치, 독선행각에서 잘 증명된다. 대통령이 국가의 체제와 운명을 가름할 회담을 김정일과 하겠다는데, 그 의제와 방식 등이 누가 봐도 몰상식한 것이라면, 그 나라는 지적 결함을 가진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국치일에 엄청난 공물을 약속하고 거듭 적국의 수두에 가서 적장을 만난다는 것은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대통령이 아니라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분열과 해체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노무현은 남한을 파괴하는 '정치적 브라퀴'로 판명받아 마땅하다.
지금 한국의 지적 구조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데에 가장 핵심적 요인이다. 한국인들은 지식적, 양심적, 사회적, 정치적 판단력이 피상적이고 몽상적이라서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 먼저 대통령부터 이성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문제가 많은 정신구조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국회와 국민들의 공감을 먼저 구하지 않고 은밀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대를 이어 북한주민들을 억압한 독재자인 김정일을 만나러 국치일에 평양에 달려가서 한국인들의 세금을 왕창 퍼주겠다고 약속할 노무현은 지적으로 문제가 많은 대통령이다. 얼이 빠져도 한참 빠지고, 무지해도 한참 무지하고, 무책임해도 한참 무책임한 대통령을 한국인들이 세금 내어 호강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지적 구조가 망한 뒤에 사회가 혼란스럽고 국가가 쇠퇴하는 것이다.
'디-워'는 그 영화를 비난하는 좌파분자들의 지적 구조가 피상적이라는 사실도 폭로한 영화이다. 한국의 좌파 지식인들이 파괴적인 '지식인 브라퀴'들임을 이 영화는 폭로한다. '디-워'는 한국의 '이무기 설화' 혹은 '인연사상'을 현대식 영화기법으로 잘 그려낸 CG영화 SF영화이다. 솔직히 그래픽 기술과 영화의 내용이 크게 새롭거나 인상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재미와 교훈이 적당하게 '디-워'에 배합되어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限의 노래인 아리랑이 한이 스린 사랑을 그린 인연영화에서 마지막 한을 그려내는 가장 적당한 음악이다. 외세사상인 좌파이념에 찌들어서 아리랑을 국수주의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좌파 평론가 진중권은 맑시즘도 특정세력의 국수주의란 사실을 무시하는 무늬만 지식인이다. 진중권과 같은 좌파 지식인들은 방송을 통하여 사리에 맞지도 않고 보편성도 없는 엉터리 지식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문화적 폭력을 행사해왔다.
오늘날의 전쟁은 정보와 통신의 컨텐츠를 형성하는 가치와 문화의 전쟁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한 대중 선동은 집권 좌파세력의 핵심적 전략에 속한다. 문화전쟁은 모든 사회적 싸움의 상징이고 바탕이다. 문화전쟁에서 지는 세력은 정치적 싸움에서도 진다. 요즘 한국영화의 주제를 반미-국수주의로 촛점 맞춘 좌파분자들이 '디-와'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리랑을 국수주의적이라고 매도한다. 오직 한국적인 것만이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무시하는 '좌파 브라퀴'들이 한국적인 것은 국수주의적인 것이라고 지껄이고 있다. 한국적인 것만 국수주의적이고, 외국의 것은 세계적이라는 무식한 노예의 시각을 수구적 좌파분자들은 가지고 있다. 한국을 제대로 내세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어느 나라의 국수주의에 희생된 노예적 가치관이다. 심형래의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세계적인 영화 '디-워'를 통하여, 한국적인 것은 국수주의적이라고 치부하는 얼치기 좌파분자들의 엉터리 지식이 드러나서 대중들로부터 매도당하고 있다.
제임스 헌터의 '문화전쟁' 관점에 의하면, '디워'는 한국의 지적 브라퀴(나쁜 이무기)를 박멸하는 영화이고 문화전쟁의 표본이기도 하다. 반국가적이고 비인륜적인 좌파이념에 찌들어서 남한사회를 망조들게 하는 지적 브라퀴(좌파이념에 찌는 좌파분자)들을 심형래의 피땀어린 '디-워'가 퇴출시키고 있다. 좌파성향의 영화가 아니면 악평을 해대는 얼치기 좌파지식인들과의 전쟁을 '디-워'는 촉발시켰다. 얼치기 좌파이념과 좌경화된 지식으로 대중선동을 하던 좌파 문화선동대원들이 요즘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한국의 대중에 지적 반발에 직면하여 파멸되고 있는 사회현상을 '디-워'가 만들었다. 그 초기 희생자는 폐쇄적 좌파이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진중권이다. '디-워'가 좌파세력의 선동영화를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사회현상은 한국인들의 문화적 취향과 지적 구조가 좌파의 세뇌와 선동에서 벗어나서, 건강한 자유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방향으로 진보되는 것을 상징하는 현상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