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대선 후보들 중 김정일을 직접 대면한 사람은 박근혜 후보 한 사람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후보의 김정일 면담과 관련된 일련의 상황이 우리들에게는 미스터리로 알려져있다. 특히 방북이후 박근혜 후보가 김정일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평하는 것이 가장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 중의 하나다. 김대중의 ‘식견있는 지도자’발언과 정동영의 ‘통큰 지도자’ 발언에 부가하여 박근혜의 ‘약속지키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는 김정일을 미화시키는 것이어서 그 배경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어제 저녁에 있었던 SBS TV 토론회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그 약속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것은 ‘6.25전쟁중 행불자’생사확인, 금강산댐 공동조사 철도·도로 연결을 조건으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 남북한 축구경기, 북한 보천보전자악단의 11월 중 남한방문 공연 등으로 언급하였다. 박근혜 후보는 그동안 여러 기회에 김정일이 자신과 약속한 이러한 일들을 실제로 지켰고 그래서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며 또 김정일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정당한가? 한 마디로 아니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김정일을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규정짓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며 나아가 김정일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만큼 자신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일종의 과대망상증 환자 같은 인상을 준다.
우선 김정일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박근혜 대표가 그 때 김정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김정일을 서울 답방 약속이었다. 그 당시 워싱턴 타임스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일정과 관련하여 박근혜 후보가 “김 위원장은 답방하겠다는 용의를 분명히 밝혔다”면서 “그는 적절한 시점에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말했다”고전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김정일은 이번에 노무현을 평양으로 불러 들였다. 그 이유가 평양이 노무현을 모시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위싱턴 타임스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박 의원이 최근 북한을 방문, 김 위원장과회동한 자리에서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울 답방 성사여부를 묻자 김 위원장은 약속을 존중, 답방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김정일이 약속을 존중한다고 말했다는데 그것은 아마 6.15공동선언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은 한국정부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 별로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반도비핵화선언이다. 김정일은 이 공동선언을 어기고 핵실험까지 강행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기본합의서도 지키지 않고 6.15공동선언을 김대중과 합의하였다. 그리고 6.15공동선언에서 약속한 서울답방도 지키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남북이산가족면회도 구실만 있으면 중단시킨다. 그런데도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한 것이다.
너구나 박근혜 후보가 김정일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보는 것도 나이브하다못해 김정일의 한국 선거 개입 전략에 놀아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박근혜 후보가 2002년에 북한을 방문하고 김정일과 여러 가지 약속을 한 것도 김정일의 대선개입 전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선이 있기 불과 몇 개월 전에 김정일의 특별대우를 받고 북한을 방문하였다. 김정일이 전용기를 내주었을 뿐만 아니라 판문점을 통과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도 자진해서 허락하였다. 마치 한국의 특사를 대하듯 한국의 국회의원 신분인 박근혜 후보를 대우하였던 것이다.
그 때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총재에 반기를 들고 탈당하여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의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김정일을 박근혜 후보에 대한 환대는 따라서 한나라당 후보에 반대하는 전략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일보 사설은 “북한언론이 ‘유럽코리아’재단이라는 민간단체 이사 자격으로 방북한 박 의원을 굳이 ‘남조선 국회의원이며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으로 부른 것도 유념해 볼 대목이다”라고 주목한 것도 이 까닭이다. 결국 박근혜 후보는 김대중과 김정일의 반한나라당 선거전략에 이용당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박근혜 그 당시 의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방북한 것도 아닌데 박근혜 의원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하고 그 후 그 약속들을 지켰다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적 약속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개인적 약속을 김정일이 지켰다면 그것은 김정일의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의미가 강하다. 김정일이 남북관계와 관련하여 한 개인과 약속한 것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6.25전쟁중 행불자’생사확인에 대해 박근혜 후보가 그것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본다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김정일이 박근혜라는 일개 개인과 약속한 것을 지킬 정도로 나이브한가? 아니면 김정일이 박근혜라는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미끼를 던지는 것은 아닌가? 김정일이 한국과의 공식적인 합의도 지키기 않으면서 박근혜라는 개인과의 약속은 지킨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또 그것을 박근혜 후보가 철저히 김정일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행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등등 의문이 많이 생긴다.
여기까지 박근혜 후보의 김정일과의 약속과 관련된 일련의 상황을 돌아보면 박근혜 후보의 김정일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수준이며 김정일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기대 또한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어쩌면 박근혜 후보가 당대표로 있던 시기 한나라당의 당헌당규를 소위 개혁적으로 개정한 것도 이러한 기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또한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로 있던 2006년 3월 북한이 박근혜 후보를 ‘유신의 창녀’라는 극단적 용어로 비난한 것은 이러한 약속과 기대와 관련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한다. 북한이 박근혜 대표에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 후보가 자진해서 노무현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고자 했던 것이나 지충호가 테러를 한 배경이 이러한 일련의 정황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을 해보게 만든다.
어찌되었건 박근혜 후보가 김정일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김정일이 한국과의 관계에서 박근혜 개인과의 약속을 공식적인 합의문서보다 더 비중을 두고 지킬 것으로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박근혜 개인을 한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수단으로 김정일이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후보가 북한을 방문한 당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 있었고 그 정당이나 그 총재 신분인 박근혜 대표는 북한의 반한나라당 전선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김정일이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가 김정일을 만났을 때 김정일이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율 변화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것도 이런 정황을 말해준다. 그 때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후보는 “김 위원장은 올해 대통령 선거 등 남한의 정치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자세히 알고 있었다. (여야 후보의) 지지율이 몇 %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었다”라고 답하였다.
2002년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물론 당시 이회창 총재의 경선 관련 불만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탈당하여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려고 했던 박근혜 후보가 그 5년 후인 지금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경선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도 역사적 아이러니다. 1997년 이인제 의원이 신한국당을 탈당하여 독자적으로 당을 만들어 출마한 것과 대비되는 사건이다. 이인제 의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인제 의원은 철저한 보수주의자로서 김정일과 그 어떤 관계도 없는데 반해 박근혜 후보는 김정일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그를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박근혜 대표가 지금도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든가 또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것은 객관적 상황과 맞지 않는 순전히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만약에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표현이 맞다면 그것은 김정일이 한국의 대선에 개입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박근혜 후보를 이용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나온 것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그러나 금년 대선에서 김정일은 반한나라당반보수대연합 지령을 이미 내린 바 있고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나선만큼 김정일의 이러한 전략은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배신감으로 박근혜 대표에 대해 유신의 창녀라는 극단적인 용어로 비난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직도 박근혜 후보가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란 인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러한 근본적 상황변화를 감안하지 않은 비현실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박근혜 후보에게 그래도 아직 김정일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정창인 독립신문 주필]http://blog.chosun.com/cchungc
‘김정일이 나와의 약속을 지킨다?’
- 정창인(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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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8-12, 1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