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년 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최전방 군사 접적 지역인 비무장지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작전을 전개하다 북한군의 잔인무도한 도끼만행사건에 희생된 미군 장병을 추도하는 추모행사가 JSA 부대 장병과 한미 관계자, 지역 주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돼 순직전우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렸다.
특히 이 날 추모식에는 지난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 당시 JSA 부대장인 빅터 비에라(Victor S. Vierra, 예. 대령 75세)씨가 참석해 30년 아래 한미 후배 전우들에게 당시 상황을 전하고 희생자들의 자유·평화정신을 되새겼다. 8·18도끼만행사건 발생 하루 전날인 17일 오전 10시, 당시 북쪽 지역 시야를 가로막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다 순직한 미루나무가 위치한 현지(유엔측 3초소와 4초소 사이 광장)에서 거행된 아더 보니파스(Arthur Bonifs) 대위와 마크 바레트(Mark Barrett) 중위 추모식에는 미 육군성 내 군수지원사령관인 잭 스툴즈(Jack Stultz) 중장, 박세환 재향군인회 육군부회장과 김규 호국안보국장, 당시 한국군 중대장 김문환 (예) 대위와 JSA 전우회원, 1사단 행정부사단장과 전동진 JSA 대대장, 그리고 김동한 대성동마을 이장 등 마을주민과 한미 장병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 날 행사는 한미 장병이 의장병으로 도열한 가운데 ▲추모사 ▲도끼만행사건 역사 ▲비에라 대령 소개 ▲특별연설 ▲인원점검 ▲헌화 및 영결나팔 순으로 거행되었다.
르본(군종목사) 대위는 추모사에서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자유를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에 축복을 내리고 한미 양국이 항상 동반자가 되게 해달라' 고 기도했다. 이어 당시 대대장으로 JSA 부대를 지휘했던 빅터 비에라(Victor S. Vierra) (예) 대령이 특별연사로 나섰다. 비에라 대령은 한국을 떠난지 31년 만에 처음으로 방한, 전 날 재향군인회를 예방하고 향군으로부터 명예향군 메달을 수여 받고 박세환 (예, 육 대장, 당시 1사단 대대장)향군 부회장 등 오랜 전우들과 해후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연사로 나선 비에라 당시 대대장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당시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와 오늘 후배전우들이 하는 임무가 동일함에 공통의 인식을 함께 나누게 된다며 자유와 평화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JSA 부대에 대한 자부와 긍지를 갖고 있다고 아직도 녹슬지 않은 군인정신의 일단을 내보였다. 이어 보니파스 대위와 배럿 중위의 모습을 떠올리고 보니파스 대위 가족이 남겨준 편지와 한국군 병사가 보낸 편지의 일단, 당시 스틸웰 한미연합사령관의 지휘관심 등을 꼼꼼이 열거했다. 비에라 대대장은 한국을 떠난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초청을 받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이었기에 지체 없이 승낙하고 오게 되었다며 다소의 변화는 있지만 8·21의 지형은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고 상기했다. 그는 '도끼 만행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행사는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묻혀 버릴 수도, 작은 책자나 문구로 될 수도 있지만 JSA가 하는 이 행사는 전 세계에 자유수호를 위해 알 리가 위한 행사로 생각한다' 고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대대장 재임시절인 76년 7월 4일 미 독립 200주년을 맞아 JSA 대대원에 대한 연설을 하면서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희생을 다해 이 지역을 굳건히 지키자고 다짐했다 면서 부대원들에게 '후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최선을 다해 자유를 수호했노라 고 말하라'고 일렀다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비에라 대대장은 지난 54년 동안 한미장병은 적의 도전에 공동의 임무인 평화를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며 도끼만행사건이후 전 세계 각계로부터 수 백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 중 한국군 상병으로부터 받은 편지 내용을 잊지 않고 있다 며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기도 했다. 비에라씨는 도끼만행사건으로 순직한 두명의 장병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한국군의 숭고한 전우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가 '보고를 받고 곧장 현장으로 출동하자 이미 보니파스 대위 등은 한국군 장교의 품에 안겨 이송 중에 있었으며 온몸이 피로 얼룩진 그를 이 자리에 참석해 있는 김 대위(한국군 중대장 김문환 예비역 대위)가 안고 있었다. 김 대위의 두 눈은 적에 대한 분노와 동료전우에 대한 진한 안타까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며 '그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전우의 팔에 안겨 죽었다' 고 회상했다. 그의 당시 상황 이야기가 거론되자 장내 분위기는 더욱 숙연해 지고 있었다. 이어 보니파스 대위의 아내인 아더 보니파스 여사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JSA 장병 모두가 안전하게 가족품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고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는 내용의 편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스틸웰 사령관에 대해 '8·21 작전(폴 버니언 작전)으로 절단한 미루나무에 'FREEDOM IS NOT'(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글씨를 새겨 전달했더니, '이 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역사상 두 번째의 나무가 되고 이 글은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찬사를, 북한에게는 비난을 받게 하는 글이 될 것 이며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떠올리기도 했다. 비에라 대대장은 이 날 30여분 동안의 강연을 준비된 원고와 즉흥적인 발언을 곁들여가면서도 당시 상황과 지금의 한국군 장병들이 담당하고 있는 JSA 부대의 임무, 그리고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장병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되새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편 8·18도끼만행사건은 1976년 8월 18일 11시경, 유엔사측의 민간인 작업자들과 10명의 경비병들이 두 개의 유엔사 초소 사이에 위치해 아군의 시야를 마고 있던 미루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실시했다. 유엔사 인원들은 30여명의 북한군으로부터 아무런 경고도 없이 기습공격을 받았으며, 4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중대장이던 보니파스 대위와 1소대장이던 배랫 중위가 도끼로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다. 이에 유엔사령부는 도끼만행사건 3일만인 8월 21일 7시경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나무 제거 작전인 폴 버니언 작전을 전개해 미루나무를 제거했다. 현재 두명의 미군 장병이 희생된 미루나무 자리에는 그 흔적을 표시하는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Konas)
| ||||||||||||||||||||||
|
|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서 한미장병 등 참석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