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당은 1979년 5월30일 마포의 새 黨舍(당사)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2차 결선 투표에서 金泳三 후보를 새 총재로 선출했다. 金씨는 당선 의석수인 재석 과반수보다 두 표가 많은 376표를 얻었고, 1차 투표 때 1위였던 李哲承 총재는 367표를 얻었다. 1차 투표 때 92표를 얻어 3등을 했던 李基澤 후보가, 마포 당사 앞에 모여 金泳三 지지 聲援(성원)을 보내고 있었던 대학생들과 청년당원들의 영향을 받아 결선 투표 때 金泳三 지지를 선언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한 作家의 방청기는 이 全黨대회의 역사적 의미를 이렇게 전했다.
<나는 예상 밖의 대역전 드라마를 감격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민주회복의 새 시대가 마침내 열렸음을 믿자고 그는 선언했다. 너무 격앙하여 기표소에 들어가 주먹을 치며 우는 대의원이 있었다. 그러다간 뛰어나와 손바닥이 깨지도록 박수를 치는 대의원이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이번 신민당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희망이었다. 뭔지는 모른다고 나는 우선 말해 두겠다. 그러나 李哲承씨가 아니고 金泳三씨가 黨首가 된 것이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른 것일까>
필자는 이때 金泳三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서구 지역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였다. 金泳三 총재가 등장한 다음날 아침 경찰서로 나갔더니 정보과 형사 한 사람이 즐거운 듯 말했다.
『간밤에 우리 관내에서 소주가 많이 팔렸대요』
역사의 흐름이 두 표 차이로 크게 선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선 공화당 후보 부시와 민주당 후보 고어가 플로리다주 선거인단 투표용지의 무효, 유효 논란으로 근 한 달간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부시가 승리했다. 이때 부시는 유권자 표에선 고어에게 졌으나 선거인단 표에서 이겨 승리했다. 1 대 1 대결을 하면 마지막으로 갈수록 표차가 좁혀지는 경향이 있다. 2000년에 부시가 한 표 차이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대법원에서 부시의 손을 들어준 판결이 한 표 차이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한 표 차이로 결정된다?
- 趙甲濟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7-08-20, 1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