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4일 발표된 한나라당의 新대북정책을 주도한 鄭亨根(정형근) 최고위원에 대한 보수층의 失望(실망)과 反撥(반발)이 계속되고 있다. 재향군인회를 비롯하여 국민행동본부, 자유시민연대, 자유지식인선언 등 정통보수 단체들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新대북정책 白紙化(백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재향군인회와 聖友會(성우회) 회장단은 8월6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를 찾아가 강재섭 대표에게 항의했다. 7월25일에는 「라이트코리아」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한나라당으로 몰려가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사 앞에는 『김정일 하수인 정형근, 조선로동당으로 당적 옮겨라』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鄭亨根 의원은 7월19일 서울 신천 향군회관 앞에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관계자 20여명으로부터 「계란 세례」를 당하기도 했다.
<96년 국회진출 이후 對좌파투쟁의 전면에>
鄭의원에 대한 보수층의 「憤怒(분노)」는 일종의 背信感(배신감)에 기인한다. 실제 3選인 정형근 의원은 96년 국회진출 이후 對좌파투쟁의 전면에 서왔다.
97년에는 『金大中(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북한을 방문했던 徐敬元(서경원) 의원에게서 1만 달러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DJ저격수로 나서고, 97년 말 대선을 앞두고는 「吳益濟(오익제) 越北(월북)」을 둘러싼 이념공세에 앞장섰다.
99년 부산 집회에서는 『徐敬元은 국회 프락치 간첩이었으며 金日成(김일성)을 만나 5만 달러를 받아 그중 1만 달러를 金大中대통령에게 주었다』며 『문제가 심각해지자 金대통령은 盧泰愚(노태우) 당시 대통령을 찾아가 싹싹 빌고 곤경을 벗어났다』고 주장했다. 또 『現정권의 뒤집어씌우기는 共産黨(공산당)이 전형적으로 쓰는 선전·선동 수법이며, 지리산 빨치산 수법과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가 뽑은 애국의원 27명>
鄭의원은 17대 국회에 들어 상임위 활동을 보건복지위로 지원하고, 「저격수 노릇」은 그만 하겠다고 공언했다. 휴대전화 없이 잠적하는 일이 잦았던 그는 보좌관을 통해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했다. 『暴露專門家(폭로전문가)라는 부정적(?)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였다.
鄭의원의 「이미지」는 유연해지만, 「정체성」은 바뀌지 않았다. 2004년 7월29일 보수단체인 「反核·反金국민협의회」는 한나라당 내 「愛國(애국)의원」 27명 명단에 鄭의원을 포함시켰다. 『愛國』의 기준은 한나라당 의원 중 「親日진상규명특별법」·「南北교류협력에 관한법률」·「疑問死진상규명특별법」 등 소위 左派的(좌파적) 법안의 서명 또는 발의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이었다.
反核·反金국민협의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의원이 30명도 안 되는 것이 비극』이라면서도 『우리는 이들 27명만이라도 의식이 제대로 박힌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2004년 후반 까지도 좌파에 猛攻>
鄭의원의 左派세력에 대한 猛공세는 2004년 말엽까지 계속됐다. 그는 같은 해 9월14일 한나라당 중앙위원 및 운영위원 선출대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노무현 左派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무장해제를 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립 이래 최고의 위기를 목도하고 있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것인지 노무현 정부는 답변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수도이전과 국보법 폐지로 대한민국을 변질시키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을 反민주·수구기득권 세력으로 매도하고, 주류세력 교체를 꾀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더 이상 이러한 세력에 맡겨둘 수 없습니다.』
<『비료·식량 즉각 북한에 지원하라』盧정권 규탄>
「폭로전문가」에서 『愛國(애국)의원』으로 進化(진화)해 온 鄭亨根 의원은 2005년 들어 이념적 변화를 시도한다. 左派세력 구미에 맞는 「전향적」이고 「유연한(?)」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2005년 7월에는 盧武鉉(노무현) 정권의 對北전력공급 제안에 대해 『매우 획기적인 조치』라며 전폭적 지지의사를 보냈다. 같은 해 5월에는 남북대화 재개를 조건으로 비료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盧정권을 비판하며,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했던 예년 수준의 비료와 식량을 즉각 북한에 지원하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 한 인터뷰에서는 北核제거 등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한 언급 없이 『종전협정, 평화협정, 北美수교 등이 올해 안에 이뤄질 것』이라며 『이를 조율하기 위해 南北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폈다. 鄭의원은 지난 2월 소위 進步(?)인사인 함세웅 신부와 함께 訪北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정권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鄭의원의 발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2005년 3월 盧대통령 옹호성 발언>
鄭亨根 의원은 한나라당 金映宣(김영선)·宋永仙(송영선) 의원이 2005년 3월10일 당 상임운영위회의에서「駐韓(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문제 삼은 盧대통령의 공군사관학교 입학식발언을 비판하자, 오히려 盧대통령을 옹호하고 나섰다.
당시 宋永仙 의원은 『盧대통령의 발언은 韓美공조에 있어 불신을 낳게 한다』고 주장했고, 金映宣 의원 역시 『韓美방위조약이 약화된 것에 盧대통령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흥분했다.
이에 대해 鄭의원은 『나는 조금 견해가 다르다』고 말문을 연 뒤, 『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기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동의 없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통령으로서 그 말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北韓에 비료 보내라며 盧정권 비판>
鄭의원의 3월10일 발언은 이어지는 變身(변신)의 序幕(서막)이 된다. 그는 2005년 5월12일 홈페이지 글에서 『지금 盧武鉉 정권은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을 상대로 느닷없이 당국자 간 회담 재개를 요구하며 비료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며『정부의 이러한 조건부 대북 비료지원 방침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거름은 제때에 주어야한다. 즉각 북한에 비료를 보내야 한다』며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했던 예년 수준의 비료와 식량을 즉각 북한에 지원해야 할 것이다』라고 촉구했다.
金正日은 99년 4월22일 로동신문에서 스스로 밝혔듯, 돈이 있어도 식량과 비료를 사들이는 대신 무기를 사들였고, 모자라는 식량과 비료는 外部(외부)지원으로 충당해왔다. 그나마 북한지원 물자의 절반 이상은 軍부대로 흘러가고 있으며, 나머지 물자 역시 철저한 계급차별로 인해 북한의 절대다수를 구성하는 소위 敵對(적대)·動搖(동요)계층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親北세력은 북한의 수령 독재를 유지·강화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는 對北식량·비료지원에 대해, 「모니터링」등 어떠한 조건도 달지 말고 지원하라고 주장해왔다. 「안보의 첨병」이자 「우익의 맹장」으로 불리어 온 鄭의원이 어느 순간부터 이 같은 논리에 共鳴(공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력지원, 국회 동의 不필요』>
鄭의원은 2005년 7월13일 KBS라디오 「박에스더입니다」에서 盧정권의 對北전력공급 제안에 대해 지지의사를 보냈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저지시킬 수 있다면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제안을 金正日 위원장이 받아들여서 북핵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보수세력이 제기하는 「군사적 목적에 전용될 우려」에 대해서도 『한반도가 핵 위험지대로 빠지게 되면 아무리 많은 자원과 재산이 있다 해도 소용이 없다』며 『다소 군사적 전용이 있다 해도 한반도 平和(평화)를 위해 다소 희생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국회동의절차를 강조하고 나선 데 대해서는 『지금까지 남북협상이라는 게 아주 전격적으로 서로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국민 전체의 검증이나 논의를 거치지 않고 하는 것이 상례였다. 충분히 관계자들의 검토와 검증을 거쳤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언급된 200만Kw 對北송전을 위해서는 송전시설 건설에 약 1조6천억 원이 소요되고, 10년간 전력요금이 최대 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군사적 전용이 가능한 전략물자인 電力(전력)을 천문학적 규모로 主敵(주적)에 보내자는데, 鄭의원은 국회동의마저 필요 없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정부가 DJ방북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鄭의원은 2006년 7월6일 CBS라디오「시사자키 오늘과내일」에서 DJ방북에 대해 『남북 간의 긴장을 중재하는 게 필요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金大中 前 대통령의 방북이 필요한데, 문제는 북한에서 金大中 前 대통령의 방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金大中 前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결정하거나 북한에 필요한 여러 도움을 주거나 지원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對坐(대좌)해봤자 별로 얻을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자꾸 거부하는 것 같다. 미국에서 前 대통령의 巡廻(순회)대사라든가 특수한 미션을 주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해야만 힘이 실리고 북한이 대화를 할 텐데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盧정권이 전직 대통령인 DJ에게 힘을 실어줘 DJ방북을 추진해야한다는 주장이었다.
<평화협정에 맞춰 南北정상회담 해야>
2007년 3월23일 MBC라디오 손석희의「시선집중」에서는 『北美(북미) 간에 완전한 외교관계 수립이 내년 상반기 정도는 이루어지지 않겠나, 그렇게 보고 있다』『그러한 여러 가지 해결문제를 위해서 제가 알기로는 라이스가 아마 공화당 후보로 미국에도 내년 선거에 나오지 않겠나』『라이스가 6월쯤엔 북한을 방문하지 않겠느냐, 또 교차방문을 하지 않겠느냐』 등 미국의 對北유화정책에 대한 과대평가를 연발했다.
또 『종전협정은 아마 금년 내로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다만 내년 상반기에 평화협정과 북미수교도 아마 대표부 같은 설치는 빨리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이라든지 이런 것은 후반기에 이루어 질 건데, 그런 것과 병행해 가지고 저는 南北정상회담이 조율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략적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는 형식적 전제를 붙였을 뿐 『북핵 문제 완전 해결을 위하고 평화안정을 구축할 수 있다면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 정상회담이 北美관계에서 6자회담 진전이 있으면 그와 병행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소위 南北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北核폐기 등 평화정착의 핵심전제가 누락된 상황에서 추진되고 있는 汎여권의 소위 평화선언, 평화협정, 南北정상회담 등은 정권연장을 위한 수단이자, 對南적화의 도구로 악용될 것이라는 것이 상식을 가진 對北전문가들의 견해이다. 鄭의원은 이날 인터뷰에서 北核폐기 등 전제를 달지 않은 채 사실상 汎여권의 對北정책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통세력이 상용하는 「美北(미북)」이라는 표현 대신 「北美(북미)」라는 표현도 여섯 차례나 거듭됐다.
<親北左派 평화공세 걱정 말라더니...>
鄭亨根 의원은 2007년 3월9일 한나라당 大選(대선)필승대회에서 『올해의 대선은 평화와 통일이 주요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남한의 친북좌파세력은 2002년 대선에서 큰 성공을 거둔 감성동원 및 평화공세를 반복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이상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對北문제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대선을 요동치게 하고 대선에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기도를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장담했다.
북한과 親北세력의 大選개입에 대한 鄭의원의「憂國衷情(우국충정)」은 4개월 뒤 한나라당의 新대북정책 「한반도평화비전」으로 구체화되고 만다.
<鄭의원이 국정원 자리를 노리고 있다?>
鄭亨根 의원의 변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일고 있다. 조선일보는 7월14일 〈「우익 선봉」 정형근 그는 왜 변신했나?〉라는 기사에서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도대체 그의 변신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국정원의 고위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차기 정권을 잡으면 鄭의원이 국정원장 자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鄭 의원은 과거 국정원 브리핑 때마다 기밀로 분류되는 내용을 메모해 유출하는 바람에 국정원과의 갈등을 야기했다』며 『하지만 최근 들어 鄭의원은 더 이상 유출 행위를 하지 않으며 국정원을 이해하는 분위기로 코드를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햇볕정책」을 기안했던 국정원과 사사건건 다투고 그 내부 정보를 유출해온 前歷(전력)이 향후 국정원장이 되는 데 암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鄭의원이 차기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對北강경론자」로 낙인찍힌 그가 수구·보수 이미지를 벗어나 정치적으로 생존하기 위해 대북정책 카드를 들고 나왔다고 보는 것이다. 당내 한 의원은 『鄭의원이나 김용갑 의원은 對北정책이나 이념으로 버텨왔는데 이제 더 이상 기존 노선을 고집해서는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많은 對北정보를 확보하고서도 對北觀(대북관)과 統一觀(통일관)이 없다는 비난을 만회하기 위해 스스로 의욕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변신 이유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최병렬 前한나라당 대표는 『鄭의원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형근을 감옥으로』 좌익들 삐라 살포>
鄭亨根 의원이 左派세력 공세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스스로 변신하게 됐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鄭의원 발언이 급변하던 시기, 그는 두 가지 곤욕을 치렀다. 하나는 2004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계속됐던 「拷問(고문)논란」, 다른 하나는 소위 「默珠(묵주)사건」이었다.
前者(전자)는 2004년 12월 미래한국의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의 조선로동당 입당」 보도 이후, 94년 조선로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연루자들이 자신들의 간첩 자백 등은 당시 안기부 수사책임자인 鄭亨根 의원의 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촉발됐다.
後者(후자)는 鄭의원과 40대 한 여성이 2005년 2월17일 밤 서울시내 모 호텔에서 여러 시간 머무르다 YTN에 보도된 사건이다. 당시 鄭의원 측은 동석한 40대 여성이 2002년 大選 때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사람이며, 동석 이유는 이 여성으로부터 부탁받은 默珠(묵주) 100개를 전달하고, 拷問(고문) 시비 등 제반 상황에 대해 토론하기 위함이었다고 해명했다.
소위 「피해자」라는 간첩전력자들의 일방적인 「고문 주장」과 鄭의원 측의 「묵주 사건」에 대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2005년 1월과 2월 鄭의원은 左派의 집중공세를 받아야 했다. 鄭의원에 대한 정계은퇴 촉구가 가해졌고, 해당 지역구인 부산에서는 『鄭亨根을 감옥으로 보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으며, 심지어 鄭의원 사진 등이 불 질러졌다.
<『한나라당은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인가?』>
新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여론 속에서도 鄭亨根 의원은 정책수정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는 7월9일 선진화국민회의 초청토론회에서 『새 對北정책은 大選用(대선용)이 아닌 한나라당의 확고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新대북정책이 한나라당의 공식정책이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대해서도 『6개월 이상 십 수 차례 회의를 거쳤고, 의원총회에서도 논의됐다』며 『평화비전은 한나라당 모든 의원들의 소신』이라고 말했다.
鄭의원은 7월12일 성명을 통해서도 『기존의 대안 없는 비판, 冷戰的(냉전적) 사고와 現狀維持(현상유지)적 접근 등 당에 대한 否定的(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자 했다』『한나라당이 계속 保守的(보수적)이고 現狀維持(현상유지)적이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北韓崩壞論(북한붕괴론), 吸收統一論(흡수통일론) 등과 같은 비현실적인 주장에도 동조할 수 없다』며 『이제 한나라당은 스스로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鄭의원은 보수단체 관계자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은 직후인 7월2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평화비전은 12월 대선승리를 위한 구체적이고 전향적이며 실천 가능한 對北정책』이라며 『앞으로 계란투척을 10번, 100번 당한다고 해도 설득과 토론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세력과 鄭亨根 의원과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7월19일 계란투척을 한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현재 경찰에 고발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鄭亨根 의원실 보좌관이 자신들을 고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 박상학(탈북자) 대표는 『鄭亨根 의원이 계란세례를 맞던 당일 「봉변은 당했지만 보수우익의 용기를 높이 평가한다」라고 해 놓고, 뒤돌아서선 바짓가랑이 잡는 3류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한나라당과 鄭의원이 新대북정책을 포기할 때까지 한 치 물러섬 없이 규탄하고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鄭亨根 의원과의 인터뷰를 계속 시도했으나, 전화통화 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보좌진들로부터 『우리들도 의원님의 전화번호를 모른다』는 답변만 받았다. 의원실을 통해 서면으로 질문지도 보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