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겨죽이는 것이 목적인 북한의 부랑자 수용소

[인터뷰] 생존탈북자 이진영 씨(가명): "보이는 데서 죽지 말고 안보이는 데서 죽으라는 시설"
김필재 기자 2007-08-28 오전 3:15:24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대북퍼주기에도 불구하고 북한 각지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각지에 부랑자 수용소(일명 ‘상무’)를 설치·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덕 15호 정치범수용소 수인들의 강제노동 모습. 2004년 2월 일본 후지TV가 공개했다.ⓒ fujitv.co.jp
북한 각지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아사자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김정일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각 지역에 부랑자 수용소를 설치·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일 정권은 지난 94년 김일성 사망 후 대기근으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아사한 사태를 존재하지도 않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에 비유해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러왔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대다수의 대북전문가들은 이 기간 동안 최소 150만 명에서 300만 명의 주민들이 굶어죽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던중 북한은 지난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을 맞으면서 돌연 ‘고난의 행군’의 종언을 공식 선언했다.

당시 노동신문은 두 면에 걸친 장문의 정론(政論)을 통해 “한 나라, 한 민족의 역사에서나 인류사에 있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악의 시련이었다”는 말로 지난 6년을 회고했다. 북한 독재자 김정일도 이듬해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조선은 이제 고난의 행군을 마치고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 탈북자 이진영 씨(74세·가명·이씨의 요청으로 사진은 찍지 않음)는 26일 <프리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수감됐던 ‘교화소’ 및 ‘6.20 상무’의 실태에 대해 언급하며 “고난의 행군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6.25 전쟁 발발 닷새 만인 1950년 6월 30일 뜻을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동족상잔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북한 당국에 의해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10년 형을 언도받은 후 ‘죽음의 수용소’로 알려진 ‘수성교화소’(함북 청진 소재)에 수용됐던 인물.

이후 그는 천신만고 끝에 지난 2002년 한 차례 탈북을 기도했으나 이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북송 됐다. 북송과 함께 그는 북한 당국이 굶어 죽어가는 주민들을 수용키 위해 설치한 부랑자 수용소 가운데 하나인 ‘6.20상무’에 감금됐다 다시금 북한을 탈출, 올해 4월 남한으로 왔다.

이씨는 “‘상무’란 유랑자들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북한 당국이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이후 각 지역의 부랑자들을 분리 수용하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만든 임시 감옥과 같은 것으로 현재 북한 각 시도 역전(驛前) 근방에 설치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일이 상무를 설치한 진짜 이유는 굶어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을 한 곳으로 모아 외부인들이 왔을 때 고난의 행군이 끝난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 북한 인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식량사정은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심하다”고 폭로했다.


이씨의 증언에 의하면 현재 북한의 각 시·도·군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는 상무에는 평균 100~120여명의 남녀가 분리 수용되어 있으며, 하루 평균 3~4명의 수감자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사망자 가운데에는 어린이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으며, 이 같은 이유로 이씨는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김정일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 사람들, 속으로는 김정일 나쁜 놈이란 거 다 안다. 그러나 이를 대놓고 말하면 죽으니 못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가 없다. 일례로 김정일은 북한 최대 반란 사건으로 알려진 ‘6군단 사건’(96년 발생)에 연루된 사람들을 모조리 숙청했다.”

남한이 지원한 쌀이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묻자 이씨는 “구호물자가 다 뭔가. 주민들에게 하나도 안 온다. 남한이 보낸 쌀 모두 군대에 보내고, 그 다음에 남은 쌀이 시장으로 나오는데 인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 쌀을 사겠느냐”면서 긴 한숨을 쉬었다.

한편 이씨는 “가난한 조선백성이 그나마 지금처럼 세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대통령 하겠다고 나서지 말고 박정희 대통령 동상부터 세우라”면서 이날 인터뷰를 마쳤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인터뷰 전문>
(프) 북한의 교화소에 대한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북한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지닌 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를 분리해 관리하는데 교화소의 경우 재판을 통해 1년 이상의 형량을 선고 받은 정치범을 비롯, 경제범이나 강력범들이 수용되는 곳입니다. 이 가운데 ‘수성교화소’의 경우 과거 체제전복 기도자나 반당·반혁명·북송 재일교포들이 주로 수감되던 곳인데 요즘은 탈북하다 붙잡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프) 수성교화소에 수감된 사연이 있을텐데요.

(이) 이런 말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만 6.25전쟁이 터지고 나서 닷새 만인 30일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 20여명과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나중에 발각되어 1963년 11월 20일 사형을 언도받고 65년도에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동 골짜기에 있는 수성교화소에 수감됐습니다.

(프) 교화소에 있는 동안 죽어 나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셨을 것 같습니다.

(이) 들어가면 곧 죽는 곳이 교화소입니다. 수성교화소의 경우 초기에만 4천 6백여 명의 수감자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는 얘기를 해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교화소의 실태가 어떤지 아는 사람들이 드물죠. 형이 끝나면 나오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김정일은 노동당원 300만 살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나올 수 있느냐 없느냐는 김일성-김정일 마음에 달려 있는데 어떻게 나옵니까. 내 경우 그나마 교화소에서 나를 동정해 준 정치보위부 사람이 있었고, 때마침 늑막염에 걸려 운 좋게 나올 수 있었죠.

(프) 북한을 탈출했다 중국공안에 잡혀 다시금 북송됐다고 하셨는데요.

(이) 2002년 중국 심양에서 공안에 붙잡혀 신의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북한에서 내 기록이 말소된 상태였고 보위부 요원들에게 정신병자인 것처럼 행동을 했더니 나를 양강도의 ‘6.20상무’로 보내더군요. 그래서 이곳에서 8개월 동안 생활했습니다.

(프) 김정일이 북한의 각 지역에 부랑자 수용소(상무)를 설치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 90년대 중반에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인민들이 길거리에서 굶어죽다 보니 김정일 입장에서는 집에서 앓다가 죽는 건 상관없는데 길 한복판에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죽어버리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조선의 상황이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 야단 아닙니까. 그래서 각 시도 역전 또는 여관 근처에 상무를 설치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김정일 정말 보통 인간 아닙니다.

(프) 굶어죽는 사람이 어느 정도나 됩니까?

(이) 한 상무마다 평균 100~120여명의 사람들이 수용되는데, 내 경우 들어가서 처음 만난 나이 60먹은 영감이 하는 얘기가 ‘99년도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수감자가 57명이었는데 이듬해 3월이 되서는 10명으로 줄어들었다’면서 신세한탄을 하더군요. 이후 ‘6.20상무’에서 8개월 동안 있으면서 하루 밤 사이 3-4명이 한꺼번에 굶어 죽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누가 죽었다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시체는 관리자들 몇 명이 와서 시체실로 가져가 화장시켜 버리기 때문이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도 김정일은 대외적으로 고난의 행군이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부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프) 수용소에서 먹는 것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이) ‘6.20 상무’에서는 연령별로 수용자들을 대인(17세 이상), 중인(13~17세), 소인(13세 이하) 세 부류로 나누는데 대인은 대인대로 중인은 중인대로 소인은 소인대로 순서대로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나오는 밥과 국이 가관입니다. 아주 조그만 종지만한 크기의 용기에 달랑 국 한 그릇과 밥한 그릇이 나옵니다. 밥 먹고 나면 뭘 하느냐. 한 군에 모여서 노래를 하게 만듭니다. 노래라는게 김일성·김정일 찬양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머리의 이를 잡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마다 평균 10마리 정도의 이가 끼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짓을 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여기 이 잡아 모아 밥 해먹으면 맛있겠지”하는 겁니다.

(프) 화장실 사용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 말해 뭐하겠습니까. 상무에는 방 한 칸에 30~40여명의 인원이 수용되는데 대소변을 보러 2인1조가 되어 모두 다 함께 화장실로 갑니다. 말이 화장실이지 시설이 말도 아닙니다. 게다가 처음 화장실에 들어간 사람부터 마지막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다 일을 마쳐야 합니다. 겨울에 이 짓을 해보세요. 죽을 지경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제때 문을 열어줘야 가는 거지 문도 안 열어 주면 방바닥 여기저기에 대·소변을 보는 인간들도 있습니다. 법도 없는 지옥이니 무슨 짓이든 다 하게 되는 겁니다.

(프) 휴지는 사용했습니까?

(이) 북한에서는 휴지란 단어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게다가 부랑자 수용소에 무슨 휴지가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휴지 대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이것마저도 없으면 손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화장실 벽이 온통 인분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일보고 손으로 닦은 뒤 그냥 벽에다 문질러 대는 거죠.

(프) 겨울에는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이) 난로도 없고 이불도 없이 오로지 몸에 걸친 옷이 전부였다. 그래서 북한의 부랑자수용 시설들은 일반적인 수용 시설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게 그냥 죽도록 내버려두는 시설이다.

(프) 남한에서 보낸 구호물자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까?

(이)구호물자가 다 뭔가. 내 경우 받을 대상도 못된다. 남한이 보낸 쌀은 김정일이 군대로 보낸다. 여기서 쌀이 좀 남으면 시장으로 유입되는데 돈을 주고 사야한다. 북한 사람들이 무슨 돈이 있어 쌀을 산단 말인가. 북한 인민들이 제대로 된 쌀을 먹는 날은 김일성·김정일 생일 때 뿐이다. 그런데도 이 같은 사실을 KBS나 MBC 등은 일체 보도를 하지 않는다. 보도를 해도 정확하게 해 주지 않는다. 북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보면 기가 막힌다.

(프) 김정일을 북한 주민들 스스로 처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궁급합니다.

(이) 말이 나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북한에서는 비밀이 없습니다. 서로가 모두 감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부모도 못 믿는 겁니다. 그리고 나만 죽으면 상관없는데 내 가족·친지·마을 사람들 모두가 다 피해를 봅니다. 그런데 쉽게 김정일 죽일 수 있겠어요. ‘6군단 사건’ 알죠. 김정일은 여기 연관됐던 사람들 모조리 숙청했습니다.

(프) 북한 체제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이) 김정일이 존재하는 한 절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김정일 밑에서 일하는 놈들은 모두 김정일이 죽으면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을 죽이지도 못하는 겁니다. 김정일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이 사라져야만 북한 체제에도 변화가 올 것입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위 기사의 출처는 인터넷 프리존뉴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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