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에서 역사와 현실을 생각하다

장사에서 만난 김구와 모택동, 역사와 국가 정체성 생각
장사에서 만난 김구와 모택동, 역사와 국가 정체성 생각
 
 발전하는 '야만의 중국'곁에서 우리가 살아남자면?
 

와와! 장가계


 지난 4박5일 동안 아내와 함께 중국 장가계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전 같으면 ‘방콕’하면서 책이나 읽으며 휴가를 보냈겠는데, 다들 “결혼 후 처음 맞는 여름휴가인데, 아직 애기가 없을 때 많이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일정이나 제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택한 곳이 장가계입니다. 회사 동료들도 많이 추천하더군요.


장가계는 워낙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곳이라(가이드 말로는 연간 30~40만명의 한국인들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중국 호남성 서북부에 자리 잡은 명승지로 총면적은 130만 평방미터에 달합니다. 3억8000만 년 전에는 바다였는데 후에 지각변동으로 해저가 육지로 솟아올라 형성된 곳으로, 깊은 협곡과 기암괴석, 우거진 원시림으로 유명합니다.

 

요녕성 심양출신이라는 조선족 가이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북경은 많은 곳을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해서 ‘발 빠지는 관광’, 역사유적이 많은 서안은 설명을 많이 들어야 해서 ‘귀 빠지는 관광’, 절경인 계림은 볼 것이 많다 해서 ‘눈 빠지는 관광’이라고 한다. 장가계는 보는 것마다 감탄사가 나온다고 해서 ‘와와! 장가계’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감탄사 연발하다가 ‘턱 빠지는 관광’이 될 수도 있다”

 

원가계, 천자산 자연보호구, 보봉호수, 황룡동, 천문산, 황석채 등으로 이어지는 명승지를 돌아보는 것이 주된 일정이었지만, 그 외에도 마왕퇴 한묘(漢墓) 유적이 있는 호남성박물관, 1937~1938년 김구 선생이 피신해 휴양했던 악록산 김구선생기념관, 송나라 때 만들어졌고 젊은 시절 모택동이 수학했던 악록서원 등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내륙의 시골에서도 발전하는 중국의 힘을 느낄 수 있어


관광도 좋았지만, 짧은 여행 중에도 역사와 현실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특별할 것도 없는 진부한 얘기지만, 그 장가계 시골구석에서도 날로 약동하는 중국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을 맞은 장사 황화(黃花)국제공항은 사실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도청소재지의 버스터미널 수준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지금 있는 공항 앞에서는 새로운 공항청사 건설이 한창이었습니다. 가이드말로는 “새 공항은 인천국제공항 수준으로 지어질 것이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중국의 가늠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호남성의 성도(省都)인 장사시는 아마 전남 광주(광역시로 분리되기 이전의) 정도의 위상을 갖는 도시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지방도시에 인천국제공항급의 국제공항을 짓는다?


530만 명이 산다는 장사시내는 후진과 선진이 공존하는 도시였습니다. 과거 서울 삼일고가도로 인근의 퇴락한 주상복합아파트들 같은 낡은 아파트들이나 다 쓰러져가는 낡은 주택들이 있는 한편으로, 신시가지 지역은 서울 중심부나 고급아파트촌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높고 멋진 건물들이 솟아 있었습니다. 새로 건설하고 있는 건물들도 많았습니다.


장가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지 불과 10년 남짓한 이 도시의 인구는 150여만 명, 그 중 70%가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으로 치면 전북 무주나 강원 정선쯤 되는 도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당연히 거리는 초라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새로 짓거나 짓고 있는 건물들은 서울 시내의 신축빌딩들 못지않았습니다. 전북 무주나 강원 정선쯤 되는 도시에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멋진 외양의 고층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기가 막히더군요.


후진과 선진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장가계 관광지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사흘 동안 이용했던 천자산 자연보호구 입장권은 지문인식카드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정액권이나 호텔전자키처럼 생겼는데, 천자산을 처음 찾던 날 개찰구에서 전자인식기에 지문을 찍더군요. 입장권은 이용기간 동안 본인만 이용할 수 있고, 지문은 이용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지워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지문인식시스템 자체는 신기할 것이 없지만, 그것을 시골에 있는 국립공원에서도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중국의 화장실 문화는 악명 높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곳곳에서 들어가기조차 싫은 후진 화장실들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천자산 자연보호구 안에 있는 한 화장실은 끝내주더군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변기 덮개가 자동으로 열리고, 볼 일을 보고 일어서면 물이 자동으로 나오고, 문을 닫고 나오면 변기 덮개가 자동으로 닫히더군요.


민간기업이 건설한 관광 인프라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천자산에 있는 백룡엘리베이터는 운행높이 326m로 세계에서 가장 높고 크고 빠른 관광전용엘리베이터라고 하더군요.


천문산에는 장가계 시내에서 정상까지 편도로만 40분이 걸리는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고산 케이블카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구름 사이에 펼쳐진 기암괴석들을 내려다보며 산에 오르는 기분, 정말 신선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 케이블카는 홍콩자본이 운영한다고 들었습니다.


황룡동이라는 석회암 동굴도 근사했습니다. 총길이 15㎞, 개발된 면적이 20ha에 달하는 거대동굴인 황룡동. “처음 이 동굴 발견 당시, 토가족 젊은이 7명 가운데 한 명이 실종됐다”는 얘기를 가이드로부터 들었을 때는 으스스한 생각이 들었지만, 관광가능하게 개발된 지역은 계단과 조명 등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습니다.

시설이 너무 훌륭해 “중국인민들은 아직 가난하지만, 국가는 이런 개발사업을 해낼 정도로 이미 부강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황룡동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주체는 한 민간기업인이었습니다.


문득 이런 상상들을 해 보았습니다.

“북한산 인수봉 꼭대기까지 오르는 세계제일의 엘리베이터를 만든다면 어떨까?”

“세검정에서 북한산 정상까지, 혹은 수유리 4-19묘지에서 도봉산 정상까지 오르는 케이블카를 만든다면? 북한산-도봉산-수락산 정상을 잇는 케이블카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 순간 피식 웃었습니다.

‘천성산 터널, 지리산 케이블카를 놓고도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나서서 그 난리를 치는 나라에서, 될 얘기가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개발과 운영을 민간기업에 맡기겠다고 했다가는, 더 큰 난리가 나겠죠.


답답했습니다.

최근에 복원된, 마치 세트장 같은 경복궁, 구미(歐美) 부호의 저택만도 못한 덕수궁, 눈 씻고 보아야 고만고만한 높이의 고층빌딩들밖에 볼 것이 없는 서울시내, 좌우로 보이느니 아파트촌뿐인 한강유람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는 경주, 볼 것 없고 비싸고 불친절한 제주 -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야 한단 말입니까?

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지으면 안 됩니까?

세계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관광용 엘리베이터를 왜 우리는 못 만듭니까?

이미 중국 부호들은 우리나라 부호들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조만간 상해나 광동성의 GDP는 우리나라를 넘어설 것입니다. 중국 부자들이 놀러 와서 마음껏 흥청망청 돈 좀 쓰고 가게 관광위락단지 하나쯤 만들면 안 됩니까?


장가계의 아리랑


장가계 내 관광지 곳곳에서 아리랑 노래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토가족 민속촌에서 칼춤을 추던 노인과 청년은 우리들을 보내며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돈 안 주고 가면 심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의미였던 것 같네요.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관광을 앞두고 발병나면 안 될 것 같아서 너도 나도 1000원짜리 지폐를 던져 주었습니다 (장가계에서는 위안화나 달러가 필요 없었습니다. 한국돈이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었으니까요).

하룡공원(중국군 10대 원수의 하나였던 하룡장군을 기념하는 공원)에서는 토가족 소녀들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등 한국 노래를 부르며, ‘한국돈 1000원’을 벌고 있었습니다. 천문산에서는 토가족 소녀들이 북을 치면서 아리랑을 부르고 있더군요.


존중 받는 중국군, 천덕꾸러기가 된 한국군


장가계의 절경도 좋았지만, 관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일정이기는 했지만 장사관광도 좋았습니다.


장사에 있는 호남성박물관 입구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창건 80주년 경축 현수막과 중국인민해방군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대형포스터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군관련 시설물이 아닌 문화시설인 박물관에 그런 것들이 걸려 있는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장사 시내 한복판에는 국방과학기술대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는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우리 국군을 생각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국군의 날’ 행사는 계룡대에서 대통령과 군 수뇌부만이 참석하는 조촐한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 제 가슴을 뛰게 했던 국군장병들의 시가행진은 2~3년에 한 번, 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안 하는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도심에서 군부대들이 밀려난 것은 물론이고, 도시외곽에 있는 군시설들도 ‘혐오시설’로 낙인찍혀 이곳저곳으로 쫒겨다니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기무사는 ‘문화의 거리’를 만든다고, 특전사와 서울공항은 아파트단지 만든다고 이사가라고 합니다. 막상 이사가려고 하면 과천에서는 기무사 오지 말라고, 이천에서는 특전사 오지 말라고 난리입니다.

하기야 노무현과 김정일이 만난다고, 정례적인 을지훈련조차 연기하는 세상이니,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이렇게 군을 천시하다가 언젠가 대한민국은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모택동은 살아있다


호남성은 모택동의 고향입니다.  장사에서 1시간 남짓한 거리에 그의 고향이 있다더군요.

그래서인지 가이드는 “호남성에서 모택동은 거의 ‘신적(神的)인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4박5일 동안 이용한 버스 운전석 앞에는 모택동의 흉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 믿는 택시나 버스기사들이 운전석 앞에 십자가를 걸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황룡동 등 관광지의 노점상에서는 모택동, 심지어 강청(모택동의 아내로 문화대혁명의 수괴. 등소평 집권 후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자살)의 포스터까지 팔고 있었습니다.

호남대학 현판 글씨는 모택동이 쓴 것이었습니다. 호남대학 앞에는 모택동의 커다란 입상(立像)이 서 있었습니다.

모택동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악록서원에는 모택동의 사진과 그가 쓰던 서안(書案)등이 전시된 전시실이 있었습니다.

입구의 매점에서 구리로 만든 모택동의 흉상(胸像)을 하나 샀습니다. 앞에는 ‘개국영수(開國領袖) 모택동 동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이드는 “여기서 모택동 기념품을 사 가는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입니다”라고 하더군요.


모택동은 공과가 엇갈리는 인물입니다. 근 100년에 걸친 중국의 반(半)식민지 상태를 끝장내고 신중국을 건설한 것이 그의 업적이라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3000만~4000만 명을 죽이고 중국의 발전을 정체시킨 것은 그의 과오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의 과오보다는 공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중국 천안문 앞에는 여전히 모택동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고, 천안문 광장에는 모택동의 유해를 안치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호남대학에는 그가 쓴 현판이 남아 있고, 그가 공부한 악록서원에는 그의 기념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시민단체라는 무리들이 박정희 대통령이 쓴 탑골공원 현판을 부수고, 문래공원의 박대통령 흉상을 철거하는가 하면, 문화재청장이라는 자는 박대통령이 쓴 광화문현판을 철거하겠다고 공언하고, 박정희기념관을 짓겠다면 앙앙불락하는 인간들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도산서원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어린 시절 공부했다고 해서, 도산서원 건물 내부에 박정희 전시실을 만든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김구가 대한민국의 국부?


악록산에는 작은 김구기념관이 있습니다. 김구 선생이 장사 피난 시절, 독립운동 진영 내의 갈등으로 총격을 당한 후, 요양했던 곳입니다. 근래 연변의 조선인 유지 등이 주동이 돼서 이 곳을 작은 기념관을 꾸몄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는 김구 선생 관련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분의 장사 시절을 소개하는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의 국부(國父)’로 소개하고 있더군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백범 선생의 무사무욕(無私無慾)한 애국정신, 특히 일제 시대에 간난신고를 겪으면서 상해, 가흥, 장사, 광동, 중경 등을 떠돌면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간판을 놓지 않았던 불요불굴의 정신을 깊이 존경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을 둘러싸고 그 분이 취했던 입장에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위대한 항일독립투사였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서는 부정적 내지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부’라니요?


대한민국의 국부는 단연코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이후 1960~70년대 발전의 토대를 닦은 분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말년의 과오가 없지 않지만, 그 분은 과오보다 공이 많은 분입니다. 중국인들이 모택동을 ‘개국영수’로 기리는 것 이상으로 존숭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역만리에서조차 ‘국부’의 존칭은 그 분의 것이 아니라, 김구 선생의 것이 되어 버렸네요. 하기야 10만원권 지폐의 인물로 백범선생이 압도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세태이니 긴 말이 필요 없겠습니다.


‘야만의 중국’, 그 곁에서 살아남자면....


마지막 날, 장사 황화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밖으로 LG필립스LCD공장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기업이 여기까지 진출해 있구나’하는 반가움보다는, ‘저들이 왜 여기까지 와 있나’하는 착잡함이 앞섰습니다. 국내에서 공장을 지을 수 없어서, 공장을 지으려 해도 좌파 정부에서 각종 규제로 옭아매서, 공장을 지어봤자 노조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곳까지 밀려간 것이겠죠.

중국에 공장이 옮겨간다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먹고 살 근간인 기술이 함께 유출된다는 얘기입니다. ‘머지않아 이렇게 중국으로 새나간 기술들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날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장사와 장가계 곳곳의 공사현장에서 ‘현대’나 ‘대우’에서 만든 굴삭기(포크레인)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브랜드는 ‘현대’나 ‘대우’지만, 이 두 회사가 중국 굴삭기 시장을 꽉 잡고 있지만, 그 굴삭기들은 한국 국내가 아니라 중국 북경이나 연태에서 만든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가이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한국이 잘 살아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이 기를 펴고 산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중국인들의 무례와 몰염치를 수없이 많이 봤습니다. ‘중국놈들은 야만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이 따위로 구는 한 중국이 아무리 돈을 벌고 부강해져도 영원히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죽하면 공항에 ‘중국공민출경여유행동지남(中國公民出境旅遊行動指南)’이라고 중국인들이 외국에 관광 나가서 주의할 사항을 22개나 써 붙였겠습니까? 그 중에는 ‘옷을 잘 입자’는 아주 초보적인 내용까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행태들을 보면서 ‘중국인들은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중국이라는 나라는 옆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남에 대한 배려와 예의가 없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동북공정’이라고 남의 역사를 도둑질하고, 자기 나라에 주재하던 대사급 외교관(대사관 공사)이 자기 나라 병원의 잘못된 진료로 죽었는데도 사과나, 조문 인사 하나 없는 나라가 중국입니다.


이런 나라 옆에서 우리가,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살아남자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잘 살아야 합니다. 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선진적인 정치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말려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저 장가계의 토가족처럼 말입니다.

우리 후손들이 중국 조선족자치구에서 박제화된 존재처럼 민속촌에서 아리랑을 부르고 부채춤을 추면서 외국 관광객들을 맞고, 요들송이나 샹송, 칸초네를 부르고 나서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 관광객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십시오.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한국이 잘 살아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들이 기를 펴고 산다”는 얘기가 들리게 할 것인지, 중국의 일개 변방으로 전락할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는 바로 우리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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