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개 사업가가 너무 꿈이 많아 걱정이에요』

李明博은 일을 중심에 놓고 사물과 인간을 판단하는 사람이다. 자연히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고 타산적이니 사무적이란 말을 듣는다. 인간미가 없다는 말도 따라온다.
李明博 혁명

民心의 大逆轉이 한반도에 대변혁을 몰고온다.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 흐름과 노년층의 反共결집 흐름이 合流하여 역사의 쓰레기를 일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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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博 혁명과 金大中의 생존투쟁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 흐름’과 노년층의 ‘保守결집 흐름’이 合流하여 역사의 쓰레기를 치우고 한반도의 대변혁을 몰고 온다!





머리글/'李明博 혁명'은 암살될 것인가?



말이 쉽고 구체적인 사람

李明博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말을 쉽고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쉽지만 내용이 있다. 그가 특히 힘주어 말하는 분야는 일이다. 그는 일을 중심에 놓고 사물과 인간을 판단하는 사람이다. 자연히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니 타산적이고 사무적이란 말을 듣는다. 인간미가 없다는 말도 따라온다. 人情과 義理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평가가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李 후보가 그런 치명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자기확신 덕분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의 공통점이 이 자기확신이다.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때로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객관성을 상실한 자기확신이 逆境에서 그들을 붙들었고 넘어졌을 때 다시 일으켜세웠다.
李明博 후보는 여기에다가 현대건설과 서울시 같은 큰 조직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이 있다. 이번 競選을 통해서 李 후보는 '싸울 줄 아는 지도자'라는 새로운 평가를 얻었다. 그는 '킴노박', 즉 김정일-노무현-박근혜측으로부터의 집중공격을 견디어내었다. 고려대 학생 시절에 反박정희 운동을 이끌었던 투지가 되살아난 듯했다.
그가 현대건설 회장직을 그만두고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政界에 입문할 때인 1992년 초에 月刊朝鮮은 그와 긴 인터뷰를 했다. 그해 3월호에 실린 기사를 다시 읽어보니 인간 李明博의 본질을 드러낸 인터뷰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솔직한 토로는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을 할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이런 말들을 했다.
『나는 입사 때부터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일을 찾아서 했습니다. 그랬기에 일을 엔조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작 때 습관이 평생 간다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정부 조직은 보완 정도가 아니라 완전개편해야'


그때나 지금이나 李 후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관료적 非효율성과 시간낭비이다.
『외국에선 행정관서에 볼 일이 있으면 전화나 팩스로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건방지다 생각해요. 이렇게 바쁜 시대에 몇 번씩 찾아가야 일이 됩니다. 그러니 비용이 많이 들지요. 이런 식으론 경쟁이 안 됩니다. 또 전문경영인의 역할에도 너무 제한이 많습니다. 社主가 능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나라에선 정부 고위층 주관 모임이 있을 때 社主가 나가야 되고 대통령 외유時에도 社主가 가야 합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 우리 정부 조직은 ‘보완’이 아니라 '완전 개편'이 필요합니다. 고도의 생산성을 가진 작은 정부가 필요하다 이겁니다. 지금과 같은 비효율을 그대로 둔 채 정부만 작게 만들면 안 됩니다. 작은 정부는 필연코 오겠지만, 생산성과 효율성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는 자기가 할 최소한의 일만 하고 나머지는 민간이 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1992년 초 鄭周永 현대그룹 회장은 정당을 만들어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鄭 회장의 합류 제의를 거절했던 李明博씨는 그 내막을 밝혔다.
『내가 입사할 때 정 회장도 나를 기억하긴 했을 겁니다. 현대 1차 시험 합격 후 신원조회 과정에서 대학(고려대 상과) 때의 학생운동 경력이 문제돼 약간의 논란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현대건설은 社運을 걸고 태국 고속도로 공사 계약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나는 신입사원으로서 경리출납 업무를 맡아 현장에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문제가 생겨 현장의 과장, 부장이 다 해임되고 내가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입사원을 겨우 면한 처지에 한국으로 돌아와 입사 1기 후배를 데려가 공사를 치러냈습니다. 그 후 현대에 큰 사건이 하나 터져 정 회장이 간부들을 일일이 면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책임을 피하는데 나는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한 적이 있고, 그게 社主로선 기억에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鄭 회장과 나는 일을 통해 맺어진 사이라고 생각합니다. 父子之間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적합한 표현이 아닙니다』
그는 鄭周永 회장에 대해서는 객관적 자세를 취하려고 애썼다.
『정 회장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40대 후반이었는데 이젠 그 분도 80이 다 되었습니다. 정 회장은 대단한 사업가입니다. 추진력 면에서 어떤 이도 못 따를 것입니다. 한국에 많은 창업 1세들이 있지만 정 회장은 그야말로 창업가 중의 창업가입니다.
그러나 정확히 정주영을 말한다면 연령별로 다르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이전엔 거의 全力을 기업에 쏟고 기업을 통한 국가 발전에 승부를 걸었지요. 나도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했고, 그래서 완벽한 콤비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업에서 은퇴한 후 정치를 통한 국가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鄭 회장과 나와의 관계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 평가는 좀더 시간을 두고 해야 될 거라고 봅니다』

'건설업은 매일 매일 창업하는 것'

李明博 후보의 장점인 스피디한 결정, 저돌적으로 보일 정도의 추진력은 그가 건설회사 경영자로 오래 일하면서 터득한 후천적 자질인 듯하다.
『무슨 사업이든지 창업 후 몇 년이 지나면 본궤도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설업은 「본궤도」라는 게 없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망할 수 있는 거지요. 하는 일마다 창업이요, 하는 일마다 새롭습니다. 전문경영인의 입장에서 봐도 건설업은 적당히가 아니라 100% 社主라는 개념을 갖고 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사업 추진력으로는 정주영 다음 이명박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나도 건설업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얻게 된 평가일 겁니다. 내가 보기에 鄭 회장은 본능적으로 추진력이 있는 데다 건설업을 택함으로써 그 추진력이 천성이 되어버린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鄭 회장이 하면 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식의 家父長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정치도 사람 중심에서 탈피하자고 하지 않습니까. 정 회장에게도 얘기한 바 있지만, 내가 같이 가면 그게 現代黨이지 公黨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 자연히 정 회장과 가까이 의논하게 될 테니 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소외될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내가 제대로 하려면 黨이 안 되고 黨이 제대로 되려면 내가 소외되는 우스운 모양이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으로 기업에서의 鄭 회장과 나의 역할이 黨에선 절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확신도 했습니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는데 있어 오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李明博씨가 인정에 이끌려 정주영 회장과 같이 정치를 했더라면 오늘날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독립선언이 대통령 후보를 만든 셈이다.

『일개 사업가가 너무 꿈이 많아 걱정이에요』


李明博씨는 자신이 政界로 들어간 이유도 일과 결부시켜 설명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해외에 나가다 보니 바깥에서의 일이 마치 국내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해요. 나는 세계의 변화를 체험하며 내가 밖에서 보고 느낀 걸 이 한반도 남쪽에만이라도 불어넣는 주사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또 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했습니다.
여행하고 돌아오면 그때부터 답답해집니다. 권력을 잡겠다는 것도, 大權에 도전하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그만 주사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죠. 그런데 기업에 몸담고 있어서는 주사기 역할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북방문제에 관한 한 내가 실무적으로는 제일 가는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소련에서 보니까 레닌그라드 시장이 가장 먼저 개혁을 부르짖고 개혁을 주도하더군요. 그걸 보고 나도 서울시장을 하면서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 데서 변화의 생각이 싹튼 것입니다』
1992년의 이 인터뷰를 읽어보니 그는 그때 벌써 서울시장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10년 뒤 그는 서울시장으로 당선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일개 사업가가 너무 꿈이 많아 걱정이에요』
야망이 너무 큰 것이 걱정이란 이야기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 1년 전에 물러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격찬했다.
『고르비는 소련 과자를 건네주며 「이게 얼마나 맛이 없는지 한번 먹어보라」는 말도 해요.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를 바꾼 것 아닌가 싶어요. 공산주의下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민주적 자세를 가질 수 있는가. 민주사회에서 자라난 나보다 더 민주적이지 않은가 싶어 불가사의처럼 느껴졌습니다. 고르비를 만난 후 나는 사실 기업체 대표로서의 내 자세에 문제가 없는지 많이 생각했고 실제로 태도를 바꾼 것도 많아요』
李明博씨는 자신의 한계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위대한 전문 CEO라도 社主의 자리를 넘볼 순 없다는 것이다.
『내 경우엔 오랫동안 오너와 같이 있었고 또 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런 예가 한국 기업史에 없었으니 일반인이 자꾸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 같아요.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의 관계를 이해 못하고 나를 거의 오너의 경지에 들어간 것으로 보는 듯해요. 일에 관한 점에선 오너 경지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소유나 재산문제 등에 있어선 엄격한 선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현장을 중시한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그럴 것이다.
『나는 누구를 불러서 묻기보다는 현장 부서에 가서 묻고 또 바로 거기서 결재하는 편입니다. 결재는 생산의 과정이요 수단에 불과한데 그것이 권위와 격식에 치우치면 안 되겠지요. 요즘 같은 컴퓨터 시대에도 필경사를 따로 둔다든지 차트를 만든다든지 하는 일이 여전합니다. 그게 군사문화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빨리 없어져야 합니다』
한국인의 本性에 대한 그의 관찰이 재미 있다.
『외국의 경우 아무리 엘리트라 할지라도 수지타산만 맞으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게꾼도 비굴한 일은 안 해요. 길 가다가 지게꾼을 불러 내 구두 끈을 매주면 5만원을 준다고 해 보십시오. 지게꾼한테 작대기로 맞을 겁니다. 외국인은 진급과 봉급 중 봉급을 택하지만 우리는 돈을 덜 받아도 진급하길 원해요. 그런 기질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는 사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70년대 초 내가 압구정동 아파트에 산 적이 있습니다. 내가 사장 취임할 때 아내는 29세였어요. 나는 새벽에 나가고 해외근무도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나는 못보고 아내만 봤나 봅니다. 사람들이 내가 으레 50대는 됐겠거니 짐작하고 내 아내에 대해 오해하기도 했어요. 나는 20대 후반에 중역이 돼 운동과 클래식 감상에 취미를 붙이고 몸가짐을 완벽하게 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당시로서 제일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장만했습니다. 이젠 20년이 다 된 구식이지만요. 나는 연주회에 자주 갑니다. 봉급생활자는 일에만 전념해서는 全人수양을 할 수 없어요. 문화, 예술, 체육활동도 해야 합니다. 일이 취미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사장이 말단직원 여론 듣고 하면 안된다'

1993년이 취임한 金泳三 대통령은 좌파적 역사관의 포로가 되어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고 소위 역사바로 세우기를 한다면서 12.12사건 및 5.18사건 수사, 前職 대통령 구속, 옛중앙청 건물 철거를 强行했다. 그즈음 만난 李明博씨(당시 신한국당 국회의원)는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회사를 경영해보니까 사장이 간부들 말을 듣고 해야지 말단 사원들의 여론에 영합해서 하면 큰 일 납니다'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그는 당시 金泳三 정부가 추진하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 이런 설명을 했다.
“한국사람들은 아는 사람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식사하고 골프 치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야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터인데 맨날 아는 이들끼리만 몰려다니면 거기서 무엇을 얻겠습니까. 세계화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르는 나라들과도 친해져서 함께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2004년 무렵 청계천 복원공사가 진행중일 때였다. 李 서울시장은 “왜 朴正熙 대통령이 높게 평가되는가”라고 自問하더니 이런 自答을 내어놓았다.
“朴 대통령은 고속도로 건설, 새마을 운동, 중화학 공업 건설 등 눈으로 보이는 일들을 했습니다. 따라서 설명이 필요 없어요. 보면 압니다”
청계천 復元 공사에서도 그런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2005년에 청계천이 복원된 이후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李明博씨를 높게 평가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당돌한 사람이다.
'청계천 復元공사의 여부를 결정하는 국무회의가 열렸습니다. 한 장관이 이런 말을 해요. '제가 택시를 자주 타는데 운전자들 이야기가, 청계천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공사를 시작하면 교통체증이 심해서 시민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던대요'라고 해요. 제가 정색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 눈을 응시하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더 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국가 정책이 택시 운전사들의 여론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겠는가'. 그때 盧 대통령이 내 편을 들어주었어요'
李明博씨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경영자로 일했던 한 기업인은 곁에서 지켜본 李 후보에 대해서 이런 평을 했다.
“현대 그룹 사장단 회의를 할 때 보면 鄭周永씨가 李明博 사장을 어려워한다고 할까, 눈치를 본다고 할까, 여하튼 인간적으로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鄭 회장은 자신의 영향력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잘 대해주지만 자신의 영역 안에 들어오면 비정하게 대합니다. 李明博씨만은 鄭 회장의 氣에서 눌리지 않았어요. 李明博씨가 유능하기도 하지만 원칙주의자의 면이 강해요. 윗사람이 결정한다고 무조건 따라가지 않습니다. 현대그룹 안에선 李明博씨의 고속출세에 대해서 의외로 반발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의 능력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李明博씨는 건설업을 경영한 식으로 행정과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때도 있다. 건설업은 工期단축을 생명을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결정이 빨라야 하고 현장주의로 가야 한다. 정치도 타이밍의 예술이다. 정치는 항상 변화하는 민심과 情勢 속에서 매일 매일 결단해야 한다. 결정이 늦은 정치인은 변화무쌍한 時流에 밀려나가 버린다. 金泳三씨가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결단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가운데 金泳三씨처럼(혹자는 그 이상이라고 한다) 결정이 빠른 이가 李明博씨였다.

선명 보수화

李明博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는 지난 8월29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와 보수右派의 대결이기 때문에 중요한 선택이다. 汎여권은 민족공조라면서 남북관계를 중요시하고, 우리는 남북관계도 중요시하지만 전통적 우방국가와의 국제 협력도 중요시한다. 저쪽과는 생각이 다르다”
“한반도에서 핵이 없어져야 한다는 철저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핵이 없어져야 경제협력도 가능하다. 평양회담이 核을 용인하고 기정사실화하는 쪽으로 가선 안 된다. 核문제를 두고 평화협정을 맺는다든가 해선 안 된다”
'걱정하는 부분은, 여권이 한나라당을 ‘집권하면 전쟁하려는 세력’으로 몰려고 한다. 평화를 유지하고, 核문제가 해결되면 북한을 개방시켜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의지는 한나라당이 더 갖고 있다”
李明博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을 前後하여 매우 선명하고 보수적인 對北觀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1. 그는 鄭亨根 의원이 주도적으로 만든 새 對北정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2. 그는 김정일을 '최장기 독재를 하고도 가장 실패한 독재자'라고 明言했다.
3. 그는 北侵說을 주장하는 김정일 정권과는 통일을 논의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경제교류나 협력문제는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4. 그는 김정일이 核을 포기하기 전에는 평화협정을 맺을 수 없고 본격적인 對北지원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5. 그는 또 對北 인도적 지원에 대해선 북한도 납북자나 국군포로 등의 송환 등 인도적 상응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6. 그는 올해 大選이 '친북좌파 對 보수우파의 대결이다'고 규정했다. 그는 '좌파로부터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위의 항목들은, 현재의 한국 정치인들중 가장 보수적인 발언에 속한다. 문제는 남북한 좌파연합세력이 大選전략으로 평화공세를 펼 때 李明博씨가 이런 엄정 자세를 유지해갈 수 있느냐이다. 이는 본인의 신념과 여론의 동향에 의하여 결정될 일이다.

김정일을 敵으로 돌리는 부담


한나라당 競選 후 어느 모임에 갔더니 70세 기업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해찬씨가 한 방에 이명박씨를 보내버리겠다는데 그 한방이 혹시 '콩알'을 의미하는 것 아닙니까'
이 사람이 말한 '콩알'은 입으로 먹는 콩알이 아니라 머리나 가슴이 먹는 '콩알', 즉 총알을 의미한다.
심심풀이로 google.com 검색창에서 '한 방에, 이명박'이라고 쳤더니 놀랍게도 12만8000건의 기사가 나타났다. 우리가 '한 방에'라고 할 때는 세 가지 뜻이 있다. 폭로나 말로써 상대방을 '한 방에' 날린다는 뜻, 주먹으로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뜻, 총이나 폭탄으로 끝장낸다는 뜻이다.
이해찬씨가 '한 방에 이명박을 날려버린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할 때의 '한 방에'가 위의 세 가지 의미중 어느 뜻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해찬씨는 서울 정부 부시장 시절 자신의 兄에 대한 세금부과 문제로 부하 직원을 '한 방' 때린 적이 있다. 그의 말은 노무현 대통령 이상으로 거칠어 한 방이 아니라 수십 방이 이미 터졌다.
그의 '한 방에'가 혹시 총알을 의미한다면 이는 신고감이다. 그렇지 않아도 李明博 후보에 대한 암살 지령 가능성이란 예민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해찬씨는 '내가 이명박 후보를 한 방에 날려보내겠다고 말한 그 한 방은 총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들중에 이해찬씨를 '살인예비음모'나 공갈혐의로 고소하는 이가 나타날지 모른다.
李 후보가 이번 大選의 의미를 친북左派와 보수우파의 대결로 규정한 것은 정확하다. 한나라당과 汎여권의 대결이면 정권교체를 놓고 다투는 싸움이지만 친북좌파와 보수우파의 대결은 체제교체의 여부를 놓고 다투는 선거라는 의미가 된다. 단순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교체하는 선거가 아니라 全사회적 권력을 장악한 친북좌파를 보수우파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李 후보는 작년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좌파로부터 권력을 되찾아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런 결심은 정확한 이념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李 후보는 아마도 과거 한나라당과 다른 방법으로 싸우려 할 것이다. 보수우파 세력 전체를 동원하는 방식의 큰 싸움판을 벌이려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김정일 정권을 敵으로 돌리게 된다. 우파가 집권하면 자신이 위험해진다고 생각하는 김정일은 李明博 암살을 지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1974년 朴正熙 암살 지령(육영수 피살 사건), 1983년 全斗煥 대통령 암살 지령(아웅산 사건, 17명의 장차관급 인사 피살)을 내렸던 김정일이 李明博 암살을 지령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다.
암살, 테러 전문집단의 수괴인 김정일이 촌스럽게 북한공작원을 보내 李明博 암살을 기도하리라고 보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열렬한 한나라당 당원을 포섭하여 이명박씨를 저격하게 하든지 특히 한나라당 당원중에서 李明博 반대파를 세뇌시켜 암살자로 고용하든지 방법은 너무나 많다.
이런 저격은 절대로 배후가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을 自中之亂을 몰고갈 수가 있다.

결국 대통령은 자기가 만든다

이런 암살지령을 국정원이 막아줄까?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뇌물을 보내주는 심부름을 한, 혼이 빠진 국정원이다. 국정원장이, 김정일 정권과 '우리민족끼리'(그 진정한 의미는 '우리민족반역자끼리') 공조하겠다고 선언했는데 김정일의 암살지령을 국정원이 막아줄까?
강정구도 구속하지 못한 검찰이 막아줄까? 친북좌파들의 폭력시위도 막지 못하는 경찰이 김정일 암살 계획을 저지할까?
그렇다면 국군이 막아줄까?
물론 李明博 암살기도가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노무현 정권에게 물어야 한다. 그들은 김정일과 공조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李明博씨가 유고가 되어 汎여권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는 보수우파가 들고 일어날 것이다. 이런 혼란을 수습할 현실적 세력은 국군이다. 국군이 헌법제5조의 명령에 따라 국가의 안전보장이란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행동할 것인가? 그럴 때 남북한의 좌익연합세력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李明博 암살기도는 국군의 결정적 역할을 부를 것이고, 자칫 하면 憲政중단이나 內戰상태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서울 법대 동기회 모임에 갔더니 장차관급을 지낸 많은 참석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김정일이 반드시 테러로 나올 것이다'고 예언했다. 선거기간중 有力후보가 유고되면 그 정당이 代替후보를 낼 수 있도록 선거법을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과반수 의석을 가진 汎여권이 거기에 응하지 않을 때는 李明博 후보가 당할 때를 대비하여 스페어 후보를 내야 한다는 발상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李明博씨의 경호는 충분한가? 이것이 문제이다.
결국 대통령은 자기가 만드는 자리이다. 참모들이, 후원자들이 도와줄 순 있겠지만 결정적 선택은 후보만 할 수 있다.

박근혜를 敵으로 돌리고도 이길 수 있지만 박정희를 敵으로 돌리면 진다


모든 통계와 大勢는 12월19일 선거에서 李明博 후보가 수백만 표 차이로 大勝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특히 두 가지 큰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와 반공적인 기성세대의 결집이란 흐름이 李明博 지지로 合流한 상태이다. 좌파들의 표밭이던 지역구도와 계층갈등 구조는 약화되고 있다. 좌파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大勢를 돌려놓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변칙과 작전이 동원될 것이다. 그들은 김정일을 선거판에 끌어들일 것이다.
李明博 후보가 보수세력을 대동단결시킨다면 이런 변칙을 쉽게 꺾을 수 있다. 大同團結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朴槿惠 전 대표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朴 전 대표가 적극적으로 李明博 후보를 깎아내리지 않도록 만들면 이긴다.
약25%의 고정지지표를 갖고 있는 朴槿惠씨는 약900만 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朴 전 대표의 배경은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朴正熙이다. 朴槿惠 지지층은 바로 朴正熙 세력이다. 朴槿惠씨가 가진, 역사적 추억에서 우러나는 막강한 득표력을 가볍게 보고 '우리는 朴槿惠 없이도 이길 수 있다'는 오만을 부리는 순간 大運은 사라질 것이다.
李明博 후보는 朴槿惠 전 대표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하여 至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정치적 求愛의 자세가 국민들을 감동시킬 때 그리하여 여론의 동정을 받을 때 그는 朴 전 대표가 협조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李明博 대표가 앞으로 직면할 두 가지 도전이 있다. 하나는 汎여권이 전개할 李 후보에 대한 폭로작전, 다른 하나는 노무현-김정일 회담이 만들어낼 평화의 환상이다. 李 후보가 朴 전 대표와 손을 잡고 있으면 이런 濁流를 쉽게 헤쳐갈 수 있으나 분열되어 있을 때는 이런 좌파 공세가 먹힐 것이다. 만약 朴 전 대표 진영이 좌파의 폭로공세, 평화공세에 동조하면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은 분열될 것이고 李明博 후보는 어렵게 이기든지 근소한 차로 질 것이다. 진다면 李會昌씨가 이인제, 정몽준, 김종필을 잡지 못한 책임을 지금도 추궁당하듯 李明博씨도 포용력의 부족으로 역사적 失機를 한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60%대의 지지율을 믿고 “朴槿惠 없이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魔가 끼여들 것이다. 朴槿惠씨를 敵으로 돌리고도 이길 수 있지만 朴正熙 세력을 敵으로 돌리고선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죽은 朴正熙가 산 金大中을 누르고 있는 현실을 直視해야 한다.
李明博 암살과 朴槿惠 이탈이 '李明博 혁명: 청장년층의 脫좌파실용화+노년층의 反共결집'을 좌절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다. 이런 변칙이 없다면 李明博 혁명은 조종실을 점거한 反韓세력을 평화적으로 몰아내고 국가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韓美日 동맹-우호관계도 복원될 수 있다. 이는 김정일 정권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이다. 12월19일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東北亞의 암덩어리가 제거되는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다. 세계가 지켜보는 선거이다.
*이 책은 필자가 지난 1년간 月刊朝鮮과 조갑제닷컴(chogabje.com)에 기고했던 것을 모으고 재정리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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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4

김정일이 '李明博 후보 암살 지령'을 내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후보가 죽어도 代替(대체)후보를 낼 수 없게 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朴正熙 대통령 암살 지령(8.15사건), 全斗煥 대통령 암살 지령(아웅산 사건)을 내린 김정일이다.

1.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오는 12월3일부터 19일 사이에 대통령 후보가 사망 또는 有故가 될 때는 소속 정당이 代替후보를 낼 수 없게 하고 있습니다. 1956년과 1960년에 야당의 신익희, 조병옥 두 후보가 투표일 직전에 사망함으로써 집권이 좌절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위헌적 법률이 살아 있으면 김정일은 대한민국편의 有力후보를 암살하여 집권을 저지시켜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2. 이 선거법을 개정하여야 합니다. 有力 후보가 선거운동기간중에 有故가 될 경우 투표일을 연기하여 소속 정당이 代替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김정일이 테러를 포기하게 될 것입니다.
3. 김정일과 김일성은 과거 여러 차례 한국의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1983년10월9일엔 미얀마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려던 全斗煥 당시 대통령을 죽이려고 폭탄을 터뜨렸다가 17명의 장관급 엘리트를 죽였습니다. 1974년 8월15일엔 문세광을 시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가 육영수 여사를 죽였습니다. 1970년 6월20일엔 국립현충원의 현충문에 폭탄을 숨겨 5일 뒤 참배하기로 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다가 설치중의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간첩이 爆死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1968년 1월21일 수십 명의 특공대를 내려 보내 박정희 대통령을 죽이려고 청와대 담까지 접근했다가 격퇴되었습니다. 1987년 11월 말엔 김정일이 김현희-김승일組를 보내 대한항공기를 폭파시켜 115명의 중동 노동자 등을 죽였는데 그 목적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혼란을 획책하고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4. 좌파정권하의 국정원, 경찰, 검찰은 對共수사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에 김정일의 이런 음모를 저지할 수 있을지 의문시됩니다. 한국사회에 깊게 넓게 포진한 친북좌익 세력은 김정일의 테러지령을 지원할 것입니다. 선관위도 요사이 좌익의 한나라당 반대 운동은 방치하고 애국세력의 국가정체성 수호 활동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5.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남한 대통령 암살지령범’과 大選 전략을 논의하지 말고 對테러 준비에 盡力(진력)하여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테러방지를 위한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다면 이는 김정일에게 大選테러를 유혹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선거기간중의 有力후보 테러는 한국을 전쟁이나 內亂상태로 몰아갈 것입니다. 與野 정치인들의 양식과 애국심에 호소합니다.

국민행동본부 의견광고


*알림: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빌딩 3층에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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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머리글/'李明博 혁명'은 암살될 것인가.
1. 金大中의 초조한 생존투쟁
2. 90만 공무원중 진실을 말한 단 한 사람
3. 대한민국 再生의 길
4. 레이건의 對蘇붕괴 전략: 한반도 적용 가능성
5. 한국을 두 번 구한 트루먼의 리더십
6. 도덕성 검증의 함정
7. 국민 대각성의 파도
8. 청장년층의 脫좌파 실용화 혁명
9. 죽은 朴正熙가 산 金大中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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