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weekly chosun 197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경수 기자 kimks@chosun.com
“무슨 일이십니까?” 황당한 식당 직원이다. ‘어서 오세요’까지는 아니었지만 ‘무슨 일이냐’는 반응을 보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8월 5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벌어진 일이다.
오늘 하루 특수분장의 힘을 빌려 ‘외국인 체험’을 해보기로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건너 와 2005년 귀화한 조두리(36)씨가 동행했다. 그는 인형공장, 양초공장 등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근무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오늘 하루 한국어를 못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일종의 ‘몰래카메라’ 실험이었다.
우리는 결국 식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식당을 나오는데 ‘재수가…(없으려니)’ 라는 말이 뒤통수에 꽂혔다. 조두리씨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국제화 시대’라는 말이 난무하는 사회지만 아직도 이런 식당 직원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완전히 외국인으로 변장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얼굴색을 바꾸고 수염을 붙이는 정도로만 가능합니다. 복장은 꼭 청계천 헌옷 상가에서 구입하시고요.”
서울 동대문구 마장동에 있는 분장업체를 찾아가 “취재를 위해 외국인으로 변장시켜 달라”고 부탁했더니 분장사가 “체형이 다르다”며 고개를 저었다. 30분 넘는 분장이 끝나고 거울을 보자 외국인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가 ‘혹시 아랍 사람이냐’는 질문을 나에게 한 번 던졌다.
“빈 자리가 바로 저기 있는데 무슨 소립니까! 맥주집에 맥주 마시러 오지 왜 옵니까!”
호프집 사장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로 왔느냐, 예약이 돼 있어 오래 못 있는다는 말로 우리를 막아섰다. 영어를 쓰다 답답해진 동행자가 한국어로 신경질을 내자 그제서야 자리를 내줬다. 그것도 대부분 예약석이라며 직원은 출입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로 안내했다. 앉아서 맥주 한 잔을 마시다 보니 더욱 기가 막혔다. 지난 7월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주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런 일을 이날 찾은 30여개 매장 중 다섯 군데에서 겪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든 외국인이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두리씨가 하소연했다.
“같은 외국인 근로자라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하얀 사람은 사는 데 큰 지장이 없다고 해요. 그런데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에서 온 까만 사람만 한국사람이 싫어해요. 똑같은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우할 수 있는 건가요.”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 중에는 동행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근로자보다 나를 더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체형으로 인한 분장의 한계 탓이다. 그래서 목욕탕엔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 외국인 근로자 생활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외국인은 “목욕탕에 가는 게 꺼려진다”는 불평을 많이 했다. 온탕에 몸을 담그면 안에 있던 한국인이 대부분 그냥 일어나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피부색에 대해 동물적 거부감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기 싫어 목욕탕에 안 간다고 한다.
함께 서울 이태원·신촌·대학로·명동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평소 길거리를 다닐 때와 느낌이 달랐다. 사람들이 나를 피해서 걸었다. 어떤 여성은 아예 3~4m 거리를 두고 반원을 그리며 우리를 피해 걷기도 했다.
서울 용산구의 한 옷가게에 들어섰다. 영어로 가격을 묻자 주인은 “비싸, 익스펜시브!”라고 답했다. 다른 옷을 들고 다시 가격을 묻자 그는 “비싸서 너는 못 산다니까”라고 반말로 신경질을 냈다.
이번엔 가방가게에 들어갔다. 여성용 숄더백 하나를 손에 들었다. 순간 큰 소리로 주인이 가격을 말했다. 깜짝 놀란 나머지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다른 가방에 손을 대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은 내가 물건을 만지는 족족 큰 소리로 가격을 불러줬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 직원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지 않았다. 메뉴판에 있는 햄버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계산대 화면에 가격이 떴다. 말 한마디 안 해도 햄버거는 쉽게 살 수 있었다. 외국인이 패스트푸드점을 선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날 방문한 외국계 체인점은 대부분 정중하게 우리를 반겼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쓰지 않았지만 불편한 점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한국어를 못하는 줄 알고 있는 거리의 상인 중에는 영어로 “티셔츠 텐 달라”라는 말을 건네다가도 푸념처럼 “참 많다, 많아”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 많다는 것인지 정확히 물어볼 순 없었지만 파키스탄·방글라데시·필리핀 등에서 일하러 건너온 외국인이 많다는 의미로 들렸다.
한국인 23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다음 날, 서울 이태원 이슬람사원 근처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이슬람교도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고 한다. 조두리씨는 “한국 사람은 이슬람 자체를 싫어한다”며 “복지단체를 찾아가면 이슬람 사람인 줄 알면서도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자는 사람이 종종 있다”고 했다.
백인 남성이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를 본 기억이 없다. 그런 일은 요즘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동남아인이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을 본 기억도 없다. 이들이 이제 그들만의 유흥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동남아 등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은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공단 인근 외국인 타운에 모여 술을 마시고 여가를 즐긴다. 경기도 시흥, 서울 가리봉동 등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가 지금은 힘이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쌓였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것”이라며 “우리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더 많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의 한 전철역 화장실에 잠시 들러 세수를 하니 황토색 진흙 같은 화장품 덩어리가 손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
*외국인 분장 어떻게 했나/
J분장회사 정기운 대표가 직접 기자를 분장했다. “완전히 동남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지만 정 대표는 “머리 크기, 몸 크기가 동남아 평균보다 훨씬 커서 불가능하다”며 “다만 한국사람처럼 안 보이게 만들 수는 있다”고 했다.
30여 분의 특수 분장이 끝나자 기자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옷과 모자는 청계천 헌옷 시장에서 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