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화려한 휴가의 화려한 왜곡’이란 제목의 글에서 “영화 ‘화려한 휴가’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전남도청을 지키던 공수부대가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집단적으로 발포해 수십 명이 죽거나 다치는 대목이다. 이 영화를 본 국민들은 공수부대를 살인집단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영화 제작 의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조 전 대표는 “이 영화는 도입부에서 ‘사실에 근거해 극화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려면 사실을 본질적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 장면(공수부대 진압장면)은 사실을 왜곡하는 정도가 아니라 조작(造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수부대 발포, 자위적 조건반사적 대응” 그는 영화에서 공수부대가 누군가로부터 사격명령을 받고 탄창을 M-16 소총에 일제히 끼운 뒤, 무릎 쏴 자세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을 향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일제 사격을 가한 것을 예로 들면서 “그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그런 사격 명령을 내린 장교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조 전 대표는 지난 95년 서울지검·국방부 검찰부의 광주사태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당시 “공수부대의 발포는 시위대가 탈취한 장갑차를 몰고 군인들을 향해 돌진, 공수부대원을 깔아 사망하게 한 사건을 계기로 자위적·조건반사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영화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시위대를 향해 공수부대가 집단 발포하는 장면에 대해서도 조 전 대표는 “공수부대가 대한민국에 대해 발포하는 듯한 상징성을 풍긴다”면서 이 때문에 “영화 관람자는 공수부대가 반란군이라는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대표는 “국방부는 이 장면에 대해 영화사에 항의하고 국민들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는 해명을 했어야 한다”면서 “공수부대의 난폭한 몽둥이 진압이 광주 사태의 한 원인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실을 근거로 해서 공수부대를 ‘동족을 무차별 사살하는 살인집단’으로 그릴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지적했다. “국방장관, 대통령 찾아가 사실왜곡 설명했어야” 계속해서 그는 “이 영화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이 영화는 사실과 다릅니다’라는 주의를 주어야 할 터인데 거꾸로 ‘사실에 근거해 극화했다’고 한 것은 2중의 왜곡이다. 이 영화를 노무현 대통령도 봤다고 한다. 국방장관은 노 대통령을 찾아가 이 영화의 이 장면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을 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한편, 우파시민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10일 ‘영화 화려한 휴가의 터무니없는 왜곡에 왜 군(軍)은 침묵하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영화 제작진의 광주사태 진압작전 왜곡을 비판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80년 5월 21일 낮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발포한 것은 탈취한 장갑차와 트럭 등으로 무장한 시위대가 공수부대를 돌진, 한 사병을 깔아죽이고 조건반사적으로, 자위적 차원에서 사격을 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 뒤,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95년의 검찰 조사에서도 전남도청 앞에선 사격을 명령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밝혀져 공수부대 지휘관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전날 밤 전남도청 부근에서 시위대가 밀어붙인 버스에 깔려 네 명의 경찰관이 죽은 뒤에도 공수부대는 발포를 하지 않았다.” 국민행동본부 “진압과정서 27명의 군인·경찰관 죽어” 성명은 이어 “진압작전 초기 돌을 던지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방패 등 진압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공수부대가 곤봉으로 과잉 진압한 사실이 있고 이것이 광주사태를 촉발한 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트럭·장갑차·버스 등으로 밀어붙이는 시위대를 향해서는 (군이) 발포하지 않고 인내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명은 “광주사태 진압과정에서 27명의 군인과 경찰관도 죽었다. 5.18재판에서도 책임은 정권장악을 위해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하고 광주에 공수부대 투입을 결정한 신군부 인사들이 졌고, 공수부대 지휘관들은 처벌받지 않았다”면서 “공수부대도 역사의 피해자다. 국군을 매도하는 그 마음을 김정일에게 돌릴 것”을 촉구했다. 한편, 영화 ‘화려한 휴가’의 사실 왜곡을 지적한 조 전 대표와 국민행동본부의 주장은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댓글’(9일 기준, 총 댓글 5,145개, 야후미디어 관련뉴스 9월 8일자)을 통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조 전 편집장의 경우 현재(9일 20시 30분 기준) ‘야후미디어’ 국내유명인사 검색어 순위에서 신정아·이창호·진중권에 이어 4위에 등재됐으며, 상당수의 네티즌들(총 댓글 5145개, 야후미디어 관련뉴스)이 영화의 사실 왜곡과 관련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네티즌 “상업영화도 철저한 고증 거쳐 만들어야” 일례로 아이디 samhwa5057의 경우 “군 진압부대에 총질한 것은 반정부 국가전복세력이외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무기고를 탈취하고 군 장갑차를 빼앗는 그런 조직적 행위는 계획적인 폭동이었지 민주화운동으로 보기에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아이디 beatoben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광주사건도 재조명 될 것이다. 이제 좌익들의 시대도 십년이 다 됐으니 그들의 악다구니도 이제 잦아들 것”이라고 했으며, 아이디 kimyj8824는 “상업영화도 다큐멘터리처럼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야 한다”면서 ‘화려한 휴가’의 역사 왜곡을 질타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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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2006년 12월 20일자 프리존뉴스
 
|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의 탈북자 모임인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 임천용·전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계급 상위)은 20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80년 발생한 5.18 광주사태 당시 북한군 개입의 실상을 낱낱이 공개했다. 아래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임천용 씨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 |||||||||
남한 내 친북세력들이 미군 기지를 공격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집회나 4.19나 광주봉기처럼 민주·평화·자주를 외치는 격렬한 시위가 전국을 뒤 덮을 때 민주·애국투사들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한다는 전략이다. 역대 남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불행한 사건들에는 빠짐없이 북한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왔다. “북한군 특수부대 광주사태 개입 공공연한 비밀” 다른 것은 접어 두고라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5.18광주민중항쟁의 경우에도 현역 북한군 출신들, 특히 특수부대 출신들은 북한군 정예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정도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음은 김일성이 76년 8월, 그리고 80년 5월 대남공작원들에게 내린 비밀지령의 전문이다. [비밀지령1] “남조선에서 노동자들이 드디어 들고 일어났습니다. 사북 탄광의 유혈사태는 반세기에 걸친 식민지 통치의 필연적 산물이며 인간 이하의 천대와 멸시 속에서 신음하던 노동자들의 쌓이고 쌓인 울분의 폭발입니다. 남조선 혁명가들과 지하혁명 조직들은 이번 사북 사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적극 불을 붙이고 청년학생들과 도시 빈민 등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중들의 연대 투쟁을 조직 전개해 더 격렬한 전민 항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비밀지령2] “결정적 시기가 포착되면 지체 없이 총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전국적인 총파업과 동시에 전략적 요충지대 곳곳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전신 전화국, 변전소, 방송국 등 중요 공공시설들을 점거하는 동시에 단전과 함께 통신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임시혁명정부의 이름으로 북에 지원을 요청하는 전파를 날려야 합니다. 그래야 남과 북의 전략적 배합으로 혁명적 대 사변을 주동적으로 앞당길 수 있습니다.” “북한군 특수부대 5.18 당시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 김일성의 이 같은 비밀지령과 80년 5월을 전후한 북한군의 움직임 등 제반 상황은 광주사태에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 |||||||||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또 북한군 4군단 70정찰대대 전투원으로 복무했던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원들의 광주 침투 상황에 대해 비교적 상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수부대 1개 대대 해상 통해 남파, 3분의 2가 희생” 이덕선 씨에 따르면 광주봉기 당시 2군단 정찰대대를 모토(motto)로 하고 각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덕선 씨가 알고 있는 광주봉기 침투자는 조장이었던 4군단 70정찰대대 상좌 황종인, 부조장이었던 4군단 33사단 중좌, 조원으로 침투했던 4군단 정찰대대 작전집체조의 홍씨 성을 가진 참모였다고 한다. | |||||||||
이덕선 씨에 따르면 80년에 2군단 75정찰대대에서만 41명의 공화국 영웅이 배출됐고 타 부대들에서 21명, 도합 62명의 영웅이 나왔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 평화시기에는 남파간첩이나 전투원이 아니면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는 일이 거의 없음을 감안할 때 한 해 동안에 62명의 전투영웅이 탄생했다는 것은 대남침투관련 거대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군 광주사태 개입 확신, 진상 반드시 밝혀야” 이외에도 당시에는 국군에 없었던 카빈 소총이나 M1 소총에 맞은 시신이 수십 여구라던가, 봉기자(시민군)들이 정부군의 탱크와 장갑차를 탈취해 진압군을 공격했다든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이 있는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북한에서의 체험과 이상의 근거들만 가지고도 광주민주항쟁에는 분명히 북한군이 개입됐다고 확신한다. 대남적화통일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신성한 민주시위를 유혈 폭동으로 몰아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제물로 바쳐졌을지도 모르는 5.18광주 민주화 영령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광주 사태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리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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