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근을 하고 새벽녘에 택시를 탔습니다. 비가 꽤 많이 오고 있었습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사가 말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큰일입니다. 농사 지은 것, 막판에 다 망치게 됐어요. 작황이 안 좋으면 경제에도 나쁜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에요.”
- 저도 노무현 싫어하지만, 날씨 나쁜 것까지 대통령 탓이라고 할 수야 있나요.
“아니죠. 옛날에는 날씨가 안 좋으면 임금이 하늘에 죄를 빌었다고 하잖아요. 날씨 같은 것에서도 운이 따르는 지도자가 있고, 그렇지 않은 지도자가 있어요. 노무현이야 이런 걸 알 지도 못하겠지만....”
나는 택시를 탔을 때, 기사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괜히 잘못해서 말싸움이라도 벌어지면 피곤하니까요.
하지만 그날은 뭔가 얘기가 통할 것 같았습니다. 기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다음 번에는 틀림없이 박근혜가 될 것”
- 대통령 선거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이명박이 이기겠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 사람들이 경제를 너무 망쳐놨어요. 부동산값 잡겠다더니 집값을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올려놓고....
지금 대학 다니는 내 자식들은 평생 내 집 갖기 힘들겠어요. 우리 때는 그래도 노력하면 집 한 채는 마련할 수 있었는데....경제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 네, 그런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도 없이 시작하셨지만, 집도 마련했고, 그걸 바탕으로 노년을 보내고 계시죠. 저희 세대는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 ‘선진국에서는 할부제도가 발달했다’고 배웠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는 거죠. 집도 할부로 사고, 평생 집값 갚으면서 사는 ‘할부인생’이 되는 거죠.”
- 이명박씨를 좋아하세요?
“그렇진 않아요. 사실 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여자 대통령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나 봐요.
그래도 박근혜가 경선 승복한 것은 정말 잘했어요. 참 훌륭해요. 다음번에는 틀림없이 박근혜가 한나라당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박근혜 지지자들은 쉽게 승복 안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럼 안 돼죠. 박근혜가 승복했는데.... 박근혜 지지한다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돼죠.”
“그래도 이명박이 수백만 표 차이로 이길 것”
- 이명박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려서는 찢어지게 가난했고,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CEO로 성공한 사람이잖아요. 재산도 수백억이고...
무일푼이던 사람이 그렇게 재산을 일구었다면, 그 과정에서 비리가 얼마나 많았겠어요. 아마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이명박씨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 될 거에요. 여당 사람들이 있는 거 없는 거 다 들추어 낼 테니....”
- 그러면 결국 이명박이 대선에서 지지 않을까요?
“아뇨, 그래도 이길 겁니다. 이 정권 사람들이 너무 경제를 잘못했어요.”
- 우리 사회가 좌우로 딱 나누어져 있잖아요. 여권 후보가 단일화되면 지난 번처럼 50만표 내외로 승부가 갈릴 것이고, 여당 사람들이 ‘한방’ 제대로 먹이면 다시 정권을 가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번엔 이명박이 수백만표 차이로 이길 겁니다. 노무현이 경제를 너무 잘못했어요.”
문득 ‘그리 길지 않은 대화 속에서 ‘경제’ 얘기가 벌써 몇 번째인가? 그만큼 서민들이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는 얘기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국현에게 호감, 하지만 “여당이면 안 찍는다”
- 여당 사람들 중에서는 누가 괜찮은 것 같습니까?
“다 고만고만해서....개중에 손학규가 조금 나은 것 같기는 한데...그냥 한나라당에 있지, 왜 거기로 갔는지...”
- 이해찬씨는 어떤 것 같습니까?
“이해찬? 누구...아, 그 골프나 치러 다니던 인간.... 되겠어요?”
- 문국현씨는 어떤 것 같습니까?
“아, 그 양반, 괜찮은 분으로 알고 있어요.”
- 문국현씨가 대통령 출마선언하기 전에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네. 제가 사실 몇 달 전까지 경기도에서 종이박스 회사를 했어요. 20년 했죠. 같은 종이업계다 보니 그 양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 무슨 얘기를 들으셨어요?
“노동자들에게 잘 해 준다고 하더군요. 자기가 번 것을 다 노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허걱, 이게 무슨 소리? ‘우리 사회 일각에서 「문국현 신화」의 싹이 자라고 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국현에 대해 조금 알려진 것조차 아주 피상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문국현에 대한 인식이 취약하다는 얘기기도 하겠습니다.
- 글쎄요, CEO로 평판이 좋기는 하지만, 자기가 번 것을 노동자들에게 다 나누어준다는 건 잘못 아신 것 같네요.
“그런가요? 아침에 문국현씨가 라디오에 나와서 얘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토목공사 하는 것보다, 사람을 잘 키워야 경제가 잘 될 수 있다’는 얘기는 공감이 가던걸요.”
이번에는 기사 아저씨가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문국현이 나오면 어느 쪽 표를 더 깎아먹을까요?”
- 그게 무슨 얘깁니까?
“문국현이 나오면 이명박 표를 더 깎아먹을까요, 아니면 여당 표를 더 깎아 먹을까요?”
아, 그러니까 이 아저씨는 문국현이 여(與)도 야(野)도 아닌 ‘제3후보’로 나오는 줄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 아저씨, 문국현은 사실상 여당 사람이에요. 생각하는 것도 노무현하고 아주 비슷하고.... 지금은 혼자 뛰는 것 같아도, 결국에 가서는 여당 사람들하고 단일화할 겁니다. 그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에요.
“그런 거였어요? 그럼 그 사람 못 찍죠! 안 찍죠!”
‘비단 노무현에 대해서 뿐 아니라, 여당 사람들, 「진보」라는 사람들로부터 민심이 완전히 떠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택시가 집앞에 도착했을 때, 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비 오는 것도 다 노무현 때문”
- 강철군화(프리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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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17, 21: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