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랍선원 130일째 감금…손놓은 정부

외교부는 가족들의 항의에 “언론에 떠들면 협상이나 현지상황이 더 곤란해진다”는 말이 전부.

피눈물 흘리는 피랍선원가족

지난 20일 외교통상부와 해양수산부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소말리아 피랍 선원의 가족들이 장·차관 면담을 요구하며 해당 부처를 항의방문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장·차관 면담을 하지 못한 채 언론에만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프리존뉴스>에서 이미 수차례 보도한 것처럼, 정부는 ‘언론에 보도된 게 납치범들에게 알려지면 협상에 불리하다’ ‘선주가 취재를 원하지 않는다’며 취재를 제한했던 것과 거의 유사한 말을 피랍자 가족들에게도 했다. 정부는 또한 가족들에게 치료비와 생계비 명목으로 모두 13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현재 피랍 선원들은 해적들로부터 고막이 터지고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구타를 당했으며, 신체절단 협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자신만만했던 인질 석방 협상 또한 진전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지난 17일 피랍선원을 구타한 뒤 가족에게 연락해 ‘가족들이 직접 협상에 응하라’고 요구했던 것이 알려지면서 이런 가족들의 주장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

한편, 인질들의 스트레스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소말리아 공해상에 있는 미군함이 우리(피랍 선원)를 포격해 차라리 죽여 달라’고까지 하소연하는가 하면 ‘우리들이 잡혀 있다는 것을 청와대와 언론에 알려 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부의 모습은 무성의하기 그지없다. 외교부는 가족들의 항의에 “언론에 떠들면 협상이나 현지상황이 더 곤란해진다”는 예의 발언을 하면서 “언론을 동원하든 말든 우리는 관여 안 하겠다”고 말했다. 해양부 관계자도 장관 면담 요구에 무성의로 일관했다.

이 상황을 보면서 국민들은 대체 소말리아 피랍 선원과 아프간 피랍 인질들이 뭐가 다르기에 한 쪽은 대통령이 나서고, 국정원장은 ‘목숨을 걸고’ 얼굴을 노출하면서까지 현지에 가서 인질 구출 협상에 나서고 다른 한 쪽은 언론에게 말조차 못하게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정부, 소말리아 피랍 외면하는 이유

지난 5월15일 소말리아에서 288㎞ 떨어진 공해상을 항해하던 ‘마부노 1호’와 ‘마부노 2호’가 피랍된 직후부터 <프리존 뉴스>는 피랍대책본부가 꾸려진 주 케냐 대사관을 비롯해 주 탄자니아 대사관, 외교통상부 등에 현지 상황을 물어보며,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했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현지 공관의 대답은 언제나 ‘선주가 원하지 않는다’ ‘언론에 노출되면 협상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대답뿐이었다. 당시 현지 공관에서는 ‘(언론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본국의 훈령이 있었다, 죄송하다’고 말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 아프간 피랍 사건의 경우 위험지역에 아무 효과도 없는, 무분별한 선교활동을 벌인 개신교계에 큰 책임이 있다. 반면 소말리아 피랍선원들은 모두 탄자니아를 근거지로 원양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피랍된 지역 또한 소말리아에서 무려 288㎞나 떨어져 있어 법을 어기고 위험지역에 들어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프간 피랍 사건 때는 아프간 정부와 주요 이슬람 국가, 미국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우리 정부가 우리 국민 4명을 포함, 중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 선원까지 모두 24명이 피랍된 사건에 대해서는 왜 신경을 쓰지 않을까? 신경을 안 쓰는 게 아니라 능력이 없는 건 아닐까? 이에 현지 소식통과 지금까지의 상황 등을 종합해 보면 이런 추측이 가능하다.

먼저 정부의 정보 능력 부족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1999년 국가정보원 개편, 이후 소위 ‘국정원의 투명성 제고’ 정책으로 인해 예산이 대폭 감축되면서 해외 주재 정보요원들이 크게 줄었다는 설이 있었다. 때문에 대사관에 배치되는 공식 정보관(일명 ‘화이트’)도 줄어 아프리카와 같은 곳에서는 혼자 여러 개 나라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제대로 된 정보를 만들기는커녕 그날그날의 언론보도 확인도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현지 공관과의 통화에서도 이 같은 부분을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외교’가 ‘통일’의 하위 개념이 되면서 대외정보능력이 크게 줄었다는 해석이다. 현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상임의장은 통일부 장관이다. NSC에서는 국정원, 국방부, 외교통상부가 통일부의 지휘(?)를 받는다. 또한 이들 부처는 1급 상당의 간부를 NSC사무처에 파견해 NSC업무에 협조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전 세계에서 우리 국익 증진과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외교가 통일 정책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국민들의 활동범위는 범세계적으로 늘어났음에도 정부의 정보력과 외교력은 한반도 주변으로 오히려 축소됐다는 것이다. 여기다 정보 취약 지역의 정보와 각종 지원을 미국에게 요구만 하면 언제든지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착각도 문제다.

자국민 보호가 정부의 존재 이유

마지막으로는 권력층의 시야가 한반도에만 국한된 탓에 해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무지해 정부 조직들 또한 어쩔 수 없이 따랐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과거사와 이데올로기, 선거 승리에만 연연한 권력층의 모습을 보면 일면 이해가 가는 해석이다.

한편, 이 같은 문제를 알아도 그동안에는 자국민 피랍과 같은 사건이 없었기에 해당 부처들도 별다른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막상 자국민 피랍 사건이 일어나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피랍된 선박의 선주 이름 등을 파악하는 데만 2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였다. 납치범의 정체를 알아내는데도 수일이나 걸렸다. 협상 또한 제대로 주도권을 쥐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노력은 없었다. 협상 경험이 많으며 현지에 많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안보회사나 협상 전문가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보다는 현지에서 고용한 소위 ‘전문가’를 통해 인질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상황이다. 인질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130일이 넘게 아프리카 오지의 무법지대에 붙잡혀 있다. 주요 언론과 가족들이 정부의 성의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기밀’을 이유로 가족들에게조차 현지 상황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인질 몸값 또한 초기 모든 인질을 석방하는 대가로 7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지난 8월 이후 1인당 200~3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때문에 국민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다. 아프간 피랍 당시 ‘단기선교’인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홍보부처를 동원, 기자들에게 ‘기사에서 선교라는 단어를 봉사로 바꿔 달라’고 주문하고 국내 언론의 현지 취재를 막은 반면, 외신 앞에서 온갖 ‘폼’을 잡고, 외교관계는 아예 무시한 채 미국, 아프간 정부를 조르던 정부가 정작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소말리아 어선피랍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네티즌들은 ‘자국민 보호에도 차별이 있나’ ‘혹시 이번 대선에서 1천만 명이 넘는 개신교계 신도의 표를 의식해 아프간 사건에 신경 쓴 거 아니냐’는 등의 비난을 퍼붓고 있다.

현재 정부의 태도로 미루어 협상이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국가의 존재 이유는 자국민 보호’라는 점을 부각, 피랍자 가족과 언론, 정치권이 정부에 다방면으로 압력을 가한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전경웅 기자(enoch@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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