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善美라고 부르지만 이 가운데 美가 善眞보다 앞선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건축과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면 자연히 착해지고 진실해진다는 뜻이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을 감상하고 가르치는 이유도 아름다움을 통해서 眞善에 도달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진아 건축 회장 부대진씨는 尙美會 여행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전쟁과 지진을 거치면서도 살아 남는 건물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튼튼하고 아름답다는 점이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같은 건물들이다. 이슬람 사람들이 지은 이 건물을 기독교인들은 부수지 않았다.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차마 부수고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리라.
이스탄불에 있는 聖소피아 사원도 6세기에 동로마제국이 지었지만 1453년에 이 도시를 빼앗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이 건물을 부수지 않고 모스크로 이용했다. 너무나 장대한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부술 마음이 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콘스탄티노풀(이스탄불로 改名되지 전 이름)을 점령한 메흐메드 2세는 맨 먼저 聖소피아 사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부하 병정이 이 건물을 부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칼로 내리치면서 중지시켰다.
1945년에 원자폭탄 세례를 받기로 되어 있었던 일본의 교토가 살아난 것도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관계가 깊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면서 '표적선정위원회'를 만들어 어느 도시에 투하할 것인지를 연구했다. 5월10일 회의에서 이 위원회가 건의한 표적 도시는 교토가 1번이고 이어서 히로시마, 요코하마, 고쿠라였다.
이 위원회는 군사시설만 표적으로 삼아선 충격효과가 적다고 판단했다. 군사시설과 도심지가 함께 있거나 지금까지 폭격을 당하지 않은 도시에 원폭을 떨어뜨려야 충격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논리였다. 그런 점에서 교토가 가장 좋은 표적이란 것이다. 두번째인 히로시마는 인구가 35만 명이고 군사시설이 있으며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폭발시의 집중효과가 있다는 점에서 뽑혔다. 도쿄는 수차 폭격을 당했고 천황이 살고 있으므로 표적 후보에서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당시 국방장관은 헨리 스팀슨이었다. 그는 교토를 빼라고 原爆개발 책임자 레슬리 글로버 장군에게 명령했다. 글로버 장군은 여러 번 반발했으나 스팀슨은 그때마다 교토를 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교토는 일본의 문화적, 종교적 중심지이다. 이 도시를 원폭으로 파괴하면 일본인들은 미국에 대해서 반감을 갖게 될 것이다. 미국은 戰後 일본인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교토를 말살하면 일본인들은 오히려 소련에 접근하려 할지 모른다.
스팀슨 장관은 그해 7월 트루먼 대통령을 수행하여 3大國 정상회담이 열리는 독일의 포츠담에 갔는데 여기서도 교토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는 항공사령관 아놀드에게 '자신의 명령이 없이는 교토에 원폭을 투하해선 안된다'고 거듭 주의를 주었다. 스팀슨은 또 트루먼 대통령에게 몇 차례 교토를 빼야 할 이유를 설명하여 동의를 받았다. 교토가 빠지는 바람에 히로시마가 8월6일 아침에 얻어맞고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에드윈 라이샤워 전 주일미국 대사는, 스팀슨은 수십년 전 신혼여행 때 교토를 방문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한 적이 있었다고 증언한다. 그 강렬한 인상이 교토를 구한 한 요인이 되었다면 이는 결국 아름다움의 힘이 아니겠는가. 스팀슨이 교토에 간 적이 없었더라면 이토록 애착을 가지고 교토를 감싸고 돌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의 전환기에선 사소한 인연이 수십 만, 수백만 명의 生死를 좌우하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교토가 원폭을 맞지 않은 이유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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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9-30, 16: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