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세력, 김 위원장의 민족적 정통성 왜곡” | |
| 김필재 기자 2007-10-15 오후 12:28:32 | |
곽동기 한국민권연구소(소장 김승교) 경제과학분과 상임연구원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분석 자료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출생지는 백두산 밀영이다. 그의 출생지를 문제 삼는 것은 민족적 정통성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김정일 가계 우상화물인 ‘구호나무’와 북측 자료인 ‘김일성, 반일민족해방투쟁의 강화발전을 위한 공산주의자들의 임무, 남호두에서 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에서 한 보고, 1936년 2월 27일’, ‘김일성, 선군태양 김정일 장군, 평양출판사, 2005년’ 등을 예로 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두산 출생설은 사실이 아니고 북한 당국에 의해 추진되는 신격화라고 주장하며 한국국민들에게 북한 사회에 대한 이질감을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 모든 의혹제기의 목표는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족적 정통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곽 연구원은 이어 “안락한 가정이 아닌 백두산 밀영에서 탄생해 성장한 경험은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노선과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쳐 미국의 강대함에 머리를 숙이는 일반적인 제3세계 국가들의 정치인들과는 달리 군력(軍力)으로 미국에 맞서는 대미 정치노선으로 표현되고 있다”면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적극 옹호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정일이 백두산이 아닌 구(舊)소련에서 출생했다는 국내 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면서 “최근 북한의 거침없는 사회주의 건설과 대미행보를 북한 사회의 내부적 동력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자꾸만 외부적 요인에서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곽 연구원의 분석 자료를 홈페이지에 게재한 한국민권연구소는 친북성향 시민단체인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이하 실천연대) 산하 조직으로 소장은 송두율·민경우 등 친북인사들을 변호해 온 김승교 변호사가 맡고 있다. 실천연대는 강령에서 “주한미군을 하루 빨리 철거하고, 미국의 지배양식을 완전히 제거한다(2조)”, “민족공조로 가까운 장래에 6·15공동선언이 지향하는 연합·연방제 통일을 달성한다(3조)”고 규정하는 등 주한미군철수와 남북한 연방제 통일을 단체의 지향 점으로 하고 있다. 실천연대와 한국민권연구소는 “북한의 핵무장은 어떻게 보더라도 북한의 자위적 차원의 무장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실험은 동북아시아의 핵 확산을 방지하고 상호군축을 통한 평화와 안정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이상 2006 북미핵대결교양자료집 등)”, “북한의 성공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지향적인 강대국의 등장, 작은 거인의 등장을 의미한다(2006 북핵실험특집 인터넷단행본 등)”며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을 옹호했다. 연구소는 또 “북한의 성공은 사회주의 이념의 부활을 의미한다. 이제 사회주의는 실현가능한 인류의 또 다른 미래로써 자신의 지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중략) 북한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냈다. 그들은 오직 빈손으로 세계 4강의 군사대국이 되었다. 이러한 북한의 성공은 예속의 굴레를 벗고 자주적인 발전을 열망하는 제3세계의 모든 약소국의 민중들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안겨 줄 것”이라며 사회주의가 부활을 격찬하기도 했다. (북한 핵 실험특집 인터넷단행본 등) 이 같은 이유로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송찬엽 공안1부장검사)는 최근 연구소 소장인 김 변호사의 이름이 ‘일심회 간첩 사건’ 주동자인 장민호가 작성한 ‘대북보고서’ 문건에 몇 차례 거론됐다는 점을 들어 김 변호사에게 장민호와의 접견을 불허한 바 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
[관련기사] 김정일 “백두산은 나의 고향, 나는 백두산의 아들”.. 새빨간 거짓말
북한에서는 김정일을 김일성의 후계자로 점찍고 그를 민족적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작업을 오래 전에 착수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지도층은 김일성을 민족의 수령으로 만든 것처럼 김정일을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근거 없는 일들을 조작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이다. 북한은 김정일이 1942년 2월 16일 백두산 밀영의 한 귀틀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해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근교 브야츠크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은 당시 소련극동군의 정찰부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소속 동북항일연군에 배속돼 빨치산 활동을 벌이다 1940년경 하바로프스크의 소련군 영내로 옮겨왔고, 이곳에서 1945년 광복 직전까지 머물렀다. 이 때 김정일이 태어난 것이다. 김정일은 1945년 해방 전까지 4년간 연해주 지방을 전전하며 병영의 탁아소에서 성장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김정일을 알고 지내던 아우구스타 세르게예브나(여·73·브야츠크 거주)에 의해 밝혀졌다. 세르게예브나는 “김정일이 태어난 순간부터 떠난 날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서 “그는 1941년 2월 16일에 태어났으며 어릴 때의 이름은 ‘유라’였다”고 증언했다. (조선일보 2002년 8월 23일자 보도) 고위급 탈북자인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도 저서에서 “1930년대 말에 김일성이 소련으로 넘어가 99특별교도여단에서 생활할 때 김정일이 출생해 그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유라’라고 불렀으며, 둘째 아들도 ‘슈라’라고 불렀던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전 비서는 “이 사실은 기억도 생생하다. 김일성이 어느 날 빨치산 출신들을 불러 백두산 밀영자리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리자 어느 누구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김일성이 직접 나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내 ‘여기가 밀영지 였다’고 지적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이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그 뒤에 거대한 화강석 바위를 구해다가 거기에 엄청나게 큰 글자로 ‘정일봉’이라고 새기고 그것을 산봉우리에 올려다 붙이는 큰 공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황 전 비서는 북한을 소련의 붉은 군대가 아니라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해방시켰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그 유명한 ‘구호나무’(김일성 휘하의 부대원들이 항일투쟁을 하면서 김일성을 찬양하고 김정일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글을 먹물로 새겼다는 나무)가 발견되었다는 선전도 잊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김일성이 1940년 말에 소련에 들어갔다가 1945년 9월에 처음으로 평양에 들어왔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어떻게 1942년에 백두산 밀영에서 김정일을 낳았단 말이냐”며 “이것은 역사위조”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1982년부터 김정일의 출생지를 백두산 밀영으로 선전하고 있다. 1995년에 출간된 ‘김정일의 약력’에서도 출생지를 ‘양강도 삼지연군에 있는 백두산 밀영으로 구체화해 놓았다. 김정일이 이처럼 1980년대 들어 느닷없이 자신의 출생지를 언급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는 김정일의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시기로 김일성과 빨치산 활동을 같이 한 사람들 중에서 중국과 소련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대체로 이 시기에 세상을 떠났다. 또 1980년대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권력기반을 완전히 구축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김정일의 ‘백두산 출생설’은 김일성이 만주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백두산을 근거지로 하여 국내에서 싸웠고, 중국 공산당의 지도에 의거해 싸운 것이 아니라 조선혁명을 위해 투쟁했다는 사실을 선전하기 만들어낸 것이다. 김정일의 출생일도 실제보다 1년 늦은 1942년 2월 16일 생으로 되어 있다. 이 역시 1982년에 슬그머니 발표한 것이다. 그 전에는 1941년 2월 16일 생으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조선중앙방송은 1981년과 1982년 2월 초순경 2년 내리 ‘지도자 동지의 40회 생일을 맞이하여’라는 기사를 내보내는 등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출처: 손광주 저, 김정일 리포트-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일의 모든 것) 1974년 2월 김일성의 공식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은 이후 줄곧 북한의 2천 3백만 주민 위에 군림해왔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증언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의 기록날조와 신격화 작업을 처음부터 진두지휘한 것은 다름 아닌 김정일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김정일은 1972년 5월 간부들과 백두산 산행을 다녀오면서 “백두산은 나의 고향, 나는 백두산의 아들”이라며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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