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東泳, 2005년 巨物간첩 '박용' 입국 관련 논란

鄭후보 측 "오래 전 일이라 확인 어렵다"
■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정동영 분석(分析) 시리즈 - (1)
 
박용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대선후보가 2005년 8월15일 조총련 거물간첩 박용(朴勇)을 입국시킨 사실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鄭후보 측은 『오래 전 일이라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朴勇은 2004년과 1997년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실형을 받은 민경우(閔庚宇) 통일연대 前 사무처장을 북한정권의 지시에 따라 지휘·조종한 인물이다.


朴勇은 이 사건 외에도 2006년 11월 간첩 강순정 사건 등 각종 공안사건에서 『북한의 지령에 따라 활동해 온 조총련 소속 對南공작원』으로 확인돼왔다(98노755 97도2021 97도985 96노2834). 


좌파매체인 인터넷 「통일뉴스」는 2005년 8월13일 「朴勇이 소위 「8·15 민족대축전」 행사 차 입국하려 했다가 공안당국에 저지됐으나, 鄭東泳 당시 통일부 장관의 도움으로 해결됐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한때 법무부와 검찰청이 지난 10일 일본 대표단에서 「조선」 국적을 가진 입국자 중 6·15 해외위원회 朴勇 사무국장과 범민련재일조선인연합 임태광 의장의 입국(入國)을 불허(不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곽동의(郭東儀) 의장(일본에서 對南공작을 벌여 온 한통련 前의장; 편집자 주)의 의전을 맡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소식이 개성실무 회담時 북측본부에 알려졌으며, 이를 항의하는 북측 안경호 위원장 명의의 글이 남측에 전달됐다.


郭東儀 의장도 백낙청 상임대표와 수차례 연락을 취했고, 결국 12일 오전 鄭東泳 장관과 백낙청 상임대표의 면담時 입국 불허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내가 들어온 것은 6·15 선언의 성과」中)》


이 기사대로라면 ①2005년 朴勇이 서울에 공식 입국하려 하자, ②법무부·검찰청이 이를 저지하려 했음에도, ③鄭東泳 당시 통일부 장관이 북한정권과 곽동의·백낙청 등의 요구에 따라 허용했다는 것이다.


간첩이 한국 영토에 들어오면 체포해 법정에 세워야 할 의무를 가진 정부 관료가 오히려 간첩의 활동을 지원하고 편의를 봐준 셈이다. 


鄭후보 측은 사실 확인을 구하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2년이 넘은 일이라 너무 오래돼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밝혀왔다.


<朴勇 북한 명령 받아 閔庚宇에 지령>


공안기관에 근무하는 한 전문가는 『朴勇은 한통련을 이끌어 온 곽동의(郭東儀·77)가 고령과 지병으로 활동이 어려워짐에 따라, 郭東儀에 이어 사실상 일본에서 對南공작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2004년 再犯간첩 閔庚宇 사건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朴勇은 이메일과 팩스를 통해 閔씨에게 지령을 내리고, 수천만 원대의 공작금을 주면서 국내 상황을 보고받았다.


閔씨는 2001년 1월22일 통일연대 결성時에도 20여 차례에 걸쳐 추진과정을 보고했고, 朴勇은 『통일연대가 윗동네(북한)의 큰 관심사항이다』, 『광범위하게 묶어질 수 있도록 사업하라』, 『제 때 제때 상황을 보고하라』는 등 지령을 내렸다. 


<在日간첩 朴勇,애국단체 반발로 入國좌절>


朴勇은 2005년에 이어 2006년 광주(光州) 6·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 참석차 다시 한국에 올 예정이었지만, 국내 애국단체의 거센 항의로 입국이 좌절됐다.


朴勇은 광주행사에서 南측·北측·海外로 구성된 「6·15 공동선언실천민족위원회」의 海外위원회 사무국장 자격으로  조총련 회원 등 150여 명을 인솔할 예정이었다.


朴勇 등의 입국이 좌절된 데는 재향군인회, 星友會, 육사·해사·공사총동창회, 국민행동본부 등 6대 軍 관련 안보단체의 法的대응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들 단체들은 2006년 6월9일 오전 대검찰청을 방문, 朴勇의 입국불허 및 그의 하부선(下部線)인 閔庚宇에 대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리고 朴勇을 국가보안법상의 反국가단체 가입·간첩 등 행위로 고발했다.


이 일이 있은 직후인 6월13일 인터넷 통일뉴스는 「보수단체들의 朴勇 고발로 공안당국이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 결국 입국이 좌절됐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朴勇 사무국장은 지난 해 서울에서 열린 8·15 민족대축전 당시 아무런 제재 없이 입국했지만 지난 9일 일부 보수단체가 대검찰청에 朴勇 사무국장의 간첩활동을 수사할 것을 촉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입국이 불투명해졌다. 이와 관련 통일부 관계자는 『박용 사무국장의 경우 고발장 접수 등으로 사안이 쉽지 않은 문제』라며 난색을 표했다.


朴勇 사무국장이 몸담고 있는 범민련 이경원 사무처장은 『정부에서 입국을 불허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들어오면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입국을 불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국민행동본부는 2006년 6월15일 서울역에서 「『6.15반역후원-간첩비호-세금폭탄』 盧武鉉 퇴진촉구 국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朴勇·閔庚宇 문제를 집중 거론했었다.


서울에서 폭로된 朴勇의 실체는 日本에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끌어냈다. 때마침 일본 내 민단의 주류인 反김정일 세력을 격분시킨 것이다. 이는 당시 진행되고 있던 민단·조총련 야합(野合)의 핵심 인물이 朴勇이었다는 데 기인한다.


애국단체의 문제제기 직후, 민단 주류세력은 조직에 침투해 들어 온 朴勇 같은 프락치들을 규탄하기 시작했고, 결국 2개월 후 민단·조총련 야합은 실패로 돌아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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