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으로 끝난 국정원 과거사위의 DJ납치사건 진상 발표
국정원 과거사위(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1973년 있었던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발표했다.
사실 김대중 납치사건의 구체적 정황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질 만큼 알려졌었다. 관건은 이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것이냐 여부였다.
김대중은 “중앙정보부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대중을 납치해 현해탄에 수장(水葬)시키려 했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에 당시 중앙정보부 관련자들이나 정권 핵심이 있던 인사들, 사건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가 김대중을 납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잃어가던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자신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으며, 박대통령의 지시나 김대중 살해의도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과거사위는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과 더불어 최소한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그렇게 판단한 근거로 ▲ 이후락 부장이 이철희 정보차장보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며 역정을 냈다는 등의 정황 ▲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 직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았고 당시 김종필 총리 등을 파견해 일본과 마찰을 수습토록 한 점 등을 들었다.
국정원 과거사위는 이와 함께 “박대통령의 사전인지(事前認知) 여부 문제와는 별도로 대통령 직속 기관인 중정이 납치를 실행하고 또 사후 흔폐까지 기도한 사실에 비추어 통치권자로서의 정치적-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전부다. 참, 어쩌면 그렇게 당시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 “국정원 과거사위는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해 이렇게 발표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던 데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는지....
이번에도 국정원 과거사위는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 가능성과 더불어 최소한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추정’만을 내놓은데 그쳤다.
김정렴-김종필 증언
국정원 과거사위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후락 부장이 이철희 정보차장보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며 역정을 냈다는 등의 정황>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총애를 잃고 궁지에 몰려 전전긍긍하면서 김대중 납치사건을 결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후락 당시 중정부장의 초조한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이 곧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나 묵시적 승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자리를 지키려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건 직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았고 당시 김종필 총리 등을 파견해 일본과 마찰을 수습토록 한 점>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지시나 묵인 여부에 관계없이 대통령 직속 정보기구인 중앙정보부가 그런 사고를 치고, 그로 인해 일본 내 반한(反韓)여론이 비등하는 상황에서 김종필 총리를 진사 사절로 보내 일본과의 마찰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락 부장은 그로부터 4개월 후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것이 김대중 납치사건에 대한 문책이라는 것은 당시 정권 핵심부에 있었던 인사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오히려 국정원 과거사위는
(1) 1973년 8월8일 김정렴 당시 비서실장으로부터 김대중 납치사건 발생소식을 접한 후 박정희 대통령이 “정말이야! 무슨 일일까?”라고 깜짝 놀랐으며, 이후 ▲ 중앙정보부의 공작 가능성 ▲ 일본 우익의 소행 가능성 ▲ 재일거류민단의 과잉 충성에 의한 행동 가능성 ▲ 김대중의 자작극 가능성 등을 점검해 보도록 지시했던 점,
(2) 8월13일 김대중이 서울에 나타나자 박대통령이 김정렴 비서실장에게 “김대중이가 서울에 와 있대. 놀랍고 엄청난 일이야. 조금이라도 위해가 가해져서는 안 되는데...”라고 말했던 점,
(3) 8월14일 김종필 총리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이후락 이 자가 그를 옆에다 갖다 놓고 나서야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거야”라고 말했던 점 등은 무시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언들을 의도적으로 배척한 것이다.
거기에 국정원 과거사위는 “박대통령의 사전인지(事前認知) 여부 문제와는 별도로 대통령 직속 기관인 중정이 납치를 실행하고 또 사후 흔폐까지 기도한 사실에 비추어 통치권자로서의 정치적-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할 것”라고 사족까지 달았다. 어떻게 해서든 박정희 대통령을 얽어 넣으려 발버둥치는 그들의 모습은 가련하기까지 하다.
자의적인 ‘판단’과 ‘추정’ 일삼아
국정원 과거사위의 진상 발표는 늘 이런 식이었다.
2005년 7월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 발표 당시 국정원 과거사위는 “당시 중정 부산지부장 박모씨가 ‘박정희 의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 이 같은 정황에 미뤄 박의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발표했다.
2005년 12월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진상 발표 때에도 국정원 과거사위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 8명의 사형 자체가 대통령 재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국방부와 법무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형을 집행한 것도 청와대의 지시나 조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박정희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국정원 과거사위는 정황증거들만이 장황하게 제기되었을 뿐, 박정희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2006년 1월 동백림 사건 진상 발표 때도 마찬가지였다. 손호철 과거사위 위원은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해외거주 인사들을 강제연행하라고 지시한 증거는 발견 못 했지만, 중정이 최소한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를 하거나 승인을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좌파 진영에서 제기해 온 ‘의혹사건’들을 진실규명 대상으로 삼고, 나랏돈을 들여가며 어떻게 해서든 의혹을 확대 재생산해버려 안간힘을 쓰다가, 그게 잘 안 되면 자신들의 자의적인 판단을 근거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나 묵시적 승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판단)된다”는 진상규명 발표를 내놓은 것이, 국정원 과거사위의 일관된 공식이다.
이름은 '진실규명위'지만, 그들은 한 번도 진실을 '규명'하지 못했다. 진실을 '추정'하고, '억측'하고, 의혹을 확대 재생산했을 뿐이다.
차라리 진실억측위원회로 이름 바꾸라
이는 너무도 당연하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금년 1월 분석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 과거사위를 비롯해 각종 과거사위의 위원 및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올바른 과거청산 범국민위원회’,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주노총, 역사학연구소, 전남민주주의청년연합 등 좌파 단체 출신들이다. 반면에 확실한 보수 성향의 인사들은 10%가 안 된다. 이러니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럼 저들이 왜 지금 이때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이라는 것을 발표했을까?
한나라당을 김대중 납치사건과 같은 불법무도한 국가범죄를 저질렀던 독재정권의 후예로 매도하면서,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의 결집, 특히 김대중 사건의 피해 당사자(?)인 김대중의 후원과 호남표의 동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이다.
만약 지금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였다면 저들은 이번 진상 발표를 하면서 오도방정을 떨었을 것이다.
고작해야 기존에 자신들이 제기했던 ‘의혹’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나 묵시적 승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판단)된다”는 추정, 아니 억측만을 덧붙인 결론을 ’진상규명‘이랍시고 내놓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위원회’는 마땅히 그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추정위원회, 아니 진실억측위원회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