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亡國的 역사관 : 新羅 죽이기=대한민국 죽이기 ●
오늘이 가을 단풍놀이로는 제일 좋은 날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강연차 창원, 강릉, 풍기 이 세 군데를 다녀왔습니다. 강릉을 거쳐 속초로 갔는데, 설악산 단풍이 신흥사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마등령은 1주일 전에 피크를 지났다고 합니다. 단풍 코스 중에서 제일 좋은 코스가 백담사에서 마등령을 넘는 것이죠. 그것을 넘으면서 ‘대한민국이 정말 아름답구나’ 하는 이런 나라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감동, 그러니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나서 국토 사랑이 바로 애국심으로 전환하는 현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물가가 비싸다고 하는데 사실 지방에 가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속초 시내로 들어가기 직전에 오른쪽에 휴게소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물 회’라고 붙여져 있어요. 그곳에 다섯 명이 가서 자연산 회도 먹고 끓여주는 탕까지 같이 먹었는데, 배부르게 먹고도 많이 남겼어요. 그랬는데도 7만원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2시간 반밖에 안 걸리니까, 차를 타고 가서 회를 잔뜩 잡수시고 와도 기름 값이 뽑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기는 원래 잘 사는 데고, 창원도 기계공단 때문에 잘 사는데, 창원에 가서 행사를 할 때 이 창원 공단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느냐고 제가 한 번 물어봤어요. 옛날 창원 같으면 마산에 붙어서 거의 존재도 없던 곳이었는데, 70년대부터 기계공업단지로 만드는 바람에 오늘날의 창원이 되었죠. 호주의 캔버라라는 행정수도를 모델로 해서 계획도시로 만들었어요. 구획이 가장 잘 정리된 도시이고 도로도 넓기 때문에 자동차 경주도 합니다. 인구가 50만 명 정도 되고, 연간 수출이 200억 달러 되는 멀쩡한 도시인데, 누가 이 도시를 만들었냐고 물으면 박대통령 시절이라는 것은 알지만 잘 몰라요. 그래서 제가 꼭 설명합니다. 청와대 제2경제수석을 했던 오원철(吳源哲)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기억나시죠? 오원철 씨라고 중화학 공업 개발을 전담했던 분입니다. 이 분의 아이디어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방위산업과 중화학 공업이 아주 이상적으로 결합이 되었습니다.
보통 외국에서는 무기 만드는 공장은 국방부, 군대가 주관을 하기 때문에 무기만 만듭니다. 다른 상품은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무기 주문이 줄어들면 놀아야 돼요. 1년의 몇 달을 놀아야 됩니다. 지금 북한의 무기 공장이 그렇지 않습니까? 또 영국이라든지 서유럽의 무기 공장도 거의 그렇습니다. 그래서 냉전시대가 끝나니까 무기 공장들이 고민에 빠졌어요. 그런데 우리는 처음부터 어떻게 했느냐 하면, 중화학 공업 속에 무기 만드는 업종을 결합시켰습니다. 그래서 주문이 있으면 무기를 만들고, 주문이 없을 때는 그 시설을 가지고 수출품을 만들었죠. 이렇게 해서 지금 어느 공장도 무기 주문이 없어서 문 닫은 데는 없습니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런 방식으로 출발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오원철 씨에요. 이분이 지금 78세가 되었는데 ‘한국 경제 개발사’라는 7권 되는 책을 내셨어요. 아주 안심하고 인용할 수 있는 책이지만 서점에서 별로 잘 팔리진 않습니다. 그분의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이분은 엔지니어 출신인데 아이디어가 아주 기발해요. 기발한 아이디어는 보통 실천이 불가능한데 이분은 실천 가능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예컨대 지금 동해안에 보면 묵포 밑에 북평이라고 있습니다. 요새는 동해시라고 하죠. 거기에 쌍용 시멘트 공장이 있었는데 시멘트를 운송하기 위해서 항구가 필요하다고 김성곤(金成坤) 씨가 항구 하나 만들어 달라고 계속 박대통령한테 졸랐답니다. 그래서 박대통령이 오원철 수석을 불러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어요. 지도를 보니까 해안선이 들쭉날쭉해서 바다 쪽으로 나가서 항구 만들기가 참 어려운 곳이었어요. 그래서 지도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오원철 수석이 그 옆에 있는 비행장만 치워주면 근사한 항만을 만들겠다고 했대요. 무슨 방법이 있느냐? 기존 해안선에 붙여서 항만을 만들지 않고 아예 내륙 쪽으로 항만을 파버렸습니다. 미사리에 있는 조정경기장을 파듯이 항만을 파서 만든 것이 지금의 북평항입니다. 바로 그런 아이디어죠. 항구 하면 항상 기존 해안선은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은 운하를 파듯이 아예 내륙 쪽으로 파버렸습니다.
그런 분 덕분에 지금 창원 사람들이 잘 사는데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동상도 하나 만들어주지 않고, 거리에 이름도 붙여주지 않고 그럽니다. 그게 한국 사람들의 못된 민족성의 한 부분으로 고마움을 모르는 것 때문이죠. 테헤란 로(路)는 트루먼 로로 바꿨으면 좋겠고, 고액권에는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얼굴을 넣어야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이죠. 그 고마움을 모른다는 게 아직도 한국 사람들의 몸속에 남아있는 노예근성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노예와 주인의 차이는 주인은 고마운 것을 아는 사람이고, 노예는 고마움을 모릅니다. 고마움을 모른다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신라를 부정하는 이런 역사관과 직결됩니다.
세계에서 고마운 걸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 같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고마운 것을 기리죠. 예컨대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장벽을 극복하고 흑인으로는 최초로 선수가 된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이 있습니다. 1947년까지 마이너리그에는 흑인 선수들이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백인 선수만 플레이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재키 로빈슨 하면 완전히 영웅처럼, 워싱턴처럼 다 아는 인물이에요. 재키 로빈슨의 데뷔 60주년이 되는 바로 그날, 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강연차 갔다가 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을 모셔 와서 유명한 선수들이 나와서 덕담을 하고 기리는 식전 행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니까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사람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고맙게 여기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심으로 승화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 동안 가장 큰 뉴스는 이회창(李會昌) 씨가 출마하느냐 마느냐는 것이었죠. 10월 24일에 서울 시청광장 행사에서 이 분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강연을 했습니다. 거기서 자기는 애국 운동에 몸을 던지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출마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출마하느냐 마느냐를 主테마로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회창 씨를 한나라당 경선이 있기 이틀 전에 만났는데, 그때 이분은 출마한다는 것은 꿈에도 꾸지 않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만 한나라당과 이명박(李明博),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남북문제에 대해서 너무 소홀히 한다, -평양회담이 열리고 있을 때인데-그것이 지나고 나면 틀림없이 큰 일이 일어날 텐데 너무 안일하게 대처한다, 이런 걱정을 아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마음에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노무현(盧武鉉), 김정일(金正日)의 10․4합의에 대해서 너무 미온적으로 나오니까 거기에 화가 나 있습니다. 정통 보수 세력-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들도 화가 나 있는데 그런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져서 이분이 처음으로 대중 집회에 나가고 활발하게 활동을 하겠다고 하니까 이것을 출마로 연결해서 생각하게 된 거죠. 또 극성 지지자들이 박근혜 지지자들하고 함께 몰려가서 출마를 권유하는 이런 모양이 되니까 이회창 씨가 출마하지 않겠느냐 하는 추측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현재로서는 이회창 씨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애국투쟁 하겠다고 하는 것이 진심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상황 변화에 따라서 이 사람이 출마를 하겠다고 한다면, 몇 가지 명분은 있을 거예요. 첫째는 애국운동을 제일 확실하게 하겠다든지, 아니면 일종의 스페어 후보론인데 이명박 후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대체후보가 되겠다든지, 아니면 막판에 가서 단일화하면 될 것 아니냐 주변에서 이런 식으로 권유하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가 설득당하면 출마를 하겠지만, 이회창 씨가 출마해서 큰 변고가 없는 한 당선 될 가능성은 없죠. 그러나 이회창 씨가 출마하면 10% 정도는 얻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10%는 전부 다 이명박 지지율을 잠식하게 됩니다. 이명박 씨한테는 아주 큰 타격이 될 것이고, 이럴 때 또 BBK라든지 이런 외부에서의 폭로가 덧붙여진다면, 이게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되어가지고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회창 씨한테 이런 무대를 제공한 것은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의 아주 애매한 대북(對北) 정책, 또 그 대북 정책에 대한 애국 유권자들의 분노, 이것이 그런 명분을 제공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선거에 한번 참여해서 아슬아슬하게 졌던 사람들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가만있지 못하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일종의 ‘선거의 추억’인데, 더구나 아슬아슬하게 30만, 50만 표 차이로 진 이회창 씨의 심리는 아마도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아깝게 진 사람이 아닌 3등, 4등한 사람도 선거철이 되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못견뎌가지고 출마 결단을 합니다. 남이 보기엔 뻔한 게임인데 본인은 이긴다고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것을 가만 보면 남의 일에 대해서 논평하는, 훈수 두는 입장에 서면 아주 객관적이에요. 바둑 둘 때 그렇지 않습니까? 객관적 입장에서 구경을 하면 뭐가 딱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싸우는 입장에 들어가면 보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바닥에서 기는 입장이 되니까 큰 대국(大局)이 안 보이는 거죠.
출마하는 사람들은 4등하는 사람도 투표 직전까지 자기가 이긴다는 확신을 가집니다. 예컨대 교통사고가 나서 앞서가는 세 사람이 다 죽었다든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까지 포함해서 항상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金泳三) 씨가 큰 차이로 이기고 있을 때 3등을 하던 정주영(鄭周永) 씨가 투표를 하고 기자들하고 가면서 오늘 당선은 틀림없고, 조각(組閣)을 해야 되는데 추천할 사람 없냐는 이야기를 했다는데 결코 농담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회창 씨는 더구나 30만 표, 50만 표 차이로 졌으니까 자기 욕망을 다스리기가 아주 어렵겠죠. 그러나 상도를 벗어난 행동을 했던 분이 아니고, 또 법관을 하신 분이기 때문에 아마도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행동을 할 것이다 이렇게 믿습니다.
시리아․이스라엘 관계, 여기에 북한까지 끼어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지금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폭격했던 시리아의 핵(核)시설이-이스라엘에서는 핵시설이라고 이야기하고, 시리아에서는 아니라고 하는데- 인공위성으로 사진을 찍어보니까 거기 들어섰던 큰 건물이 없어져버렸다는 거예요. 거기에 있던 큰 건물이 폭격을 받았으니까 잔해가 있고 이래야 되는데 깨끗하게 치워버렸대요. 이게 참 이상하다는 거죠. 게다가 그것이 북한이 영변에서 만든 원자로하고 같은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인공위성 사진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시리아에 영변 원자로를 지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거의 100% 확실한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 이것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부시 행정부에도 이견이 있어요. 체니 같은 사람은 이걸 가지고 6자회담을 그만 둬야 된다, 다시 강경노선으로 돌아서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국무장관은 지금 6자 회담을 잘 하고 있다. 이걸 계속하면서 오히려 이 카드를 가지고 북한을 압박하면 될 것 아니냐, 공개적으로 깽판을 내지 말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정부, 언론, 야당까지도 이 문제에 대해서 무관심합니다. 어떤 조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않고 언론에서도 이것을 취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문제이기도 하고, 만약 이것이 공개적으로 되면 지금 6자 회담이나 그런 것이 진행될 수가 없습니다.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인데 이것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원래 한국 사람들은 국방에 대해서 명(明)나라, 청(淸)나라가 대신해주고 미국이 대신해주는 것으로 알고, 우리와 전혀 관계없다, 우리는 오직 권력 투쟁에만 열중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안보가 배제된 정치가 계속되니까 아주 더티(dirty․더럽게)하게 되고, 사소한데 목숨을 거는 정치가 되어버리는 바로 그 현장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뉴스가 한국 언론에서-조선일보를 포함해서- 1면에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어요. 오히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에서는 1면 톱으로 계속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도 사흘 전에 힐 대사를 불러서 추궁을 많이 했습니다. 미 의회에서도 왜 그렇게 덮어놓고 있느냐고 계속 문제 삼고 있는데, 제일 한가한 게 한국입니다.
속초에 가보니까 참 존경스러운 애국 투사들이 있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애국집회를 하면 속초에 계시는 국민행동본부 영북(嶺北)지회에서 항상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옵니다. 그 본부장 되시는 분이 윤중국(尹重國)이라고 강원도 의회 의장을 하신 분인데 일흔 일곱 살이십니다. 이분들은 항상 차를 가지고 와서 참석하고 아무소리 안하고 그냥 또 차타고 내려가 버립니다. 소개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시고. 작년에 부산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이분들이 속초에서 부산까지 버스를 몰고 내려오셨습니다. 속초에서 부산까지 한 10시간 걸릴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코스죠. 이분들이 요새 뭘 하고 있느냐면, 거기에 한나라당의 국회의원 정문헌(鄭文憲)이라고 젊은 사람이 있어요. 아버지가 정재철(鄭在哲)이라고, 옛날에 민정당 다선(多選) 의원이죠. 그분 아들인데, 이 사람이 계속 좌파단체하고 어울려 노는 모양이에요. 속초는 또 남다른데 아닙니까? 실향민들도 많고, 최전선기지이고, 요새 금강산 관광 때문에 설악산이 죽어서 참 고생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죠. 이 단체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서 반드시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리겠다고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지방의 애국단체가 해야 될 가장 모범 케이스 같아요. 즉, 국회의원이 유권자들을 배신할 때에는 유권자들이 조직적으로 그 국회의원한테 압박을 하는 겁니다. 성명서도 내고, 기사도 쓰고, 간판도 달고, 불러서 호통도 치고 하는 이런 게 있어야 지금 정동영(鄭東泳)이처럼 저런 망언이 안 나오죠. 유권자들이 조직해서 압박해가지고 내년 선거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분들이 현재 잘 싸우고 있습니다. 제 사이트에 그 기사를 띄워 놓았으니까 한번 보시고 격려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격려도 해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시사저널’이라는 잡지는 이런 걸 발표를 합니다.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해서 조사를 하는데 항상 현직 대통령이 나오고, 각 분야에서 사람들이 뽑히고 그럽니다. 이것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행정관료,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 기업인, 금융인, 사회단체 활동가, 문화예술인, 종교인에서 각 100명씩을 뽑아서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이 누구냐 하는 설문이 있어요. 그걸 보니까 1등 세종대왕 28.2%, 2등 이순신 24.6%, 3등 김구 24.3%, 4등 박정희 11.4%, 그 나머지는 반기문, 김대중, 광개토대왕, 박지성, 안창호, 정약용 이렇게 10위까지 되었습니다. 여기에 꼭 들어가야 될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의 삼국통일의 주역들이죠. 즉 이승만, 김유신(金庾信),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문무왕(文武王) 이런 사람들이 되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몇 등이냐? 박찬호, 최경주보다 한참 뒤쳐져서 27등입니다. 신라 삼국통일의 3대주역인 김유신, 태종무열왕, 문무왕은 아예 한 사람도 없어요. 58등까지 이름이 적혀있는데 들어가 있지도 않습니다. 조선조를 개국한 이성계는 33등, 을지문덕 강감찬은 58등인데 어떻게 된 판인지 박지원, 유시민 이름은 들어있는데 민족 통일 국가의 원훈(元勳)들 이름은 다 빠져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조사에는 이렇게 안 나올 거예요. 일반인들의 조사는 어떻게 나올 것이냐? 대충 짐작해 보면 1등 박정희, 2등 세종대왕, 3등 이순신, 4등 김구 이렇게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도층이라 그렇습니다. 지도층은 일반사람들하고 다른 아주 정확한 인물관을 가지고 있어야 되죠. 이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한국 지도층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신라 삼국통일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느냐? 자기가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 발을 딛고-한국민으로 큰소리치면서, 한국말 써 가면서, 한민족의 자랑을 읊으면서-서 있는 실존의 이유가 바로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의 삼국통일인데, 여기에 대해서 적대적이거나 냉소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이런 사람은 정신병적 존재입니다. 자아를 부정하는 사람이죠.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죠. 이것은 병적 상태입니다. 멀쩡한 부잣집에 태어나서 그 조상들을 욕하고 다니는 사람과 똑같죠. 불효자라고 말하기 전에 정신병자입니다. 지금 한국의 1000명에 해당하는 국가 지도층에 있는 분들이 이런 역사관, 인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게 합쳐지면 국가 반역입니다. 또는 인생관으로도 됩니다. 그러니까 ‘이거 참 한국인의 정신이 지도층에서부터 병이 들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나름대로 10대 순위를 매긴다면 저는 이렇게 하겠어요. 1등 김유신, 태종무열왕, 문무왕 세 사람. 왜냐? 민족 통일국가를 만들어서 민족이 만들어지는 출발선을 만들어 준 사람이기 때문이죠. 2등은 누구냐?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세종대왕으로 공동 2위. 3등 이순신(李舜臣), 4등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장군인 김방경(金方慶), 5등은 이병철(李秉喆)로 대표되는 기업인들, 6등은 한국의 불교사상을 세계적인 사상으로 만든 원효(元曉), 7등은 왕건(王建), 8등은 이성계(李成桂), 9등은 임진왜란 때 지휘관이었던 유성룡(柳成龍), 10등에 광개토대왕과 백제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근초고왕, 이렇게 뽑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인물랭킹입니다. 제가 말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이 사람들이 뽑아 놓은 게 맞는지 그건 알아서 판단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 주제가 ‘망국적(亡國的) 역사관, 신라 죽이기가 바로 대한민국 죽이기다’ 인데, 이런 강연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요새 마침 역사학계에서 김유신 재평가를 주제로 한 역사학회가 열렸습니다.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지난 10월 19일에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공동으로 주최를 했습니다. 주제가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으로 이런 학술제를 열었는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 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왜 이런 학술대회가 열렸느냐’ 요새 TV만 틀면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광개토대왕 같은 고구려 시대의 영웅들이 나옵니다. 이러다보니 ‘우리 민족사의 정통이 고구려다’ 하는 착각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연장되면 ‘우리 현재 민족사의 정통 국가는 북한이다, 김정일이다’ 하는 쪽으로 연결 되게끔 되어있는 데 대해서 정통 역사학자들이 화가 나서 이런 학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왜 이런 신라 죽이기, 특히 그 중에서 대표적인, 상징적인 인물인 김유신 죽이기가 이루어졌느냐, 그 시작은 신채호(申采浩)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때 조선일보에 연재를 해서 나중에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라는 책을 냈습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 ‘한국의 역사는 우리와 타국의, 외세의 대결이다. 즉 한(韓)민족과 외세의 대결이 우리 역사의 기본 줄거리다’ 하는 관점으로 정통론을 이렇게 세웠습니다.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 하면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고 신라를 한민족의 정통 노선에서 배제를 했습니다. 김유신을 비롯한 김춘추, 문무왕, 화랑도 이런 사람들이 당(唐)이라는 외세의 힘을 빌려 동족인 백제와 고구려를 쳤기 때문에 민족 반역행위를 했고, 동시에 고구려 땅을 다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일 신라가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하는 주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김유신을 민족 반역자로 몰았어요.
이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분들의 주장을 보면 이렇습니다. 신채호의 이런 주장이 여러 방면으로 확산되는 바람에 일제시대 때 역사소설을 많이 쓴 이광수, 김동인 이런 분들이 문학 쪽에서 김유신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광수는 이순신을 썼는데, 박대통령이 이광수가 쓴 이순신 전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서 군인의 길을 선택한 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김유신은 이때부터 제외 돼버렸습니다. 지금 서점에 가보면 김유신이란 제목이 붙은 책은 아마 한 권밖에 없을 거예요. 그 한 권은 전에 여기서 강연을 했던 정순태(鄭淳台) 씨가 쓴 ‘김유신과 그의 시대’죠. 아마 광개토대왕, 대조영, 연개소문, 주몽 이렇게 하면 여러 권이 나왔을 겁니다. 그래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의 논리가 확산되었다. 이게 오늘날까지 고구려 정통론, 신라 非정통론으로까지 전개되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는데 물론 정통 사학계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상적인 역사공부를 해서 실증주의 사학가라고 불리는 ‘한국사 신론’을 쓴 이기백 씨 같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신라의 통일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학자라고 보기도 어렵고, 선동가로 봐야 될지도 애매모호한 학자와 선동가의 경계선상을 달리고 있는 정치적으로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들과 PD, 재야사학자 또는 아주 아는 체하는 사람들, ‘배운 무식자’ 이런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압도적으로 신라 죽이기가 지금 컨센선스(consensus․여론)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글과 말을 오래 접하다 보니까 한국사회의 지도층 1000명 중 단 한 사람도 삼국통일을 한 사람을 58명 안에도 끼워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북한은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느냐? 원래는 말이죠, 북한의 역사서적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신라의 삼국통일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예컨대 1956년에 북한에서 나온 조선통사(朝鮮通史)에는 삼국통일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단일적인 조선 準민족, (완전한 민족은 아니고, 민족에 가깝다는 뜻이죠) 의 급속한 형성과 발전의 길이 열리고, 나아가 이로써 후세의 조선민족 형성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아주 정확한 평가입니다. 여기서 ‘단일적인 조선 準민족’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아주 과학적인 용어를 쓴 거예요. 단재 신채호의 신라 폄하가 왜 말도 안 되나 하면 삼국(백제, 고구려, 신라)이 싸울 때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백제 민족과 고구려 민족과 신라민족은 아무런 동족적인 유대관계가 없었어요. 한반도에서, 만주에서 같이 국경선을 접하고 있었다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교류는 자주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같은 민족이다, 우리가 남이냐 하는 동류의식, 동족의식은 없었습니다. 민족개념이라는 것은 19세기에 서양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이 신채호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가지고 신라를 완전히 작살내버린 거죠. 이렇게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것 같습니다.
왜 세종대왕은 민주주의를 하지 않았느냐, 왜 세종대왕은 직선제로 뽑히지 않았느냐고 욕하는 것하고 똑같은 것이죠. 세종대왕 때 민주주의가 없었잖아요. 삼국시대에는 민족이 없었습니다. 민족이란 것은 언제 생겼느냐, 삼국통일을 한 다음에 1000년 쯤 같이 살다 보니까, 또 외세가 침략하다 보니까 ‘우리가 남이냐’는 생각이 나서 최근 100년 사이에, 개화기 이후에 한국에서 민족주의라는 것이 만들어진 겁니다. 그래서 신라가 당(唐)나라 힘을 빌려 백제, 고구려를 친 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백제가 지금의 일본입니다. 왜(倭)와 손을 잡고 계속 신라를 친 것도 친일(親日)이라고 욕하는 것은 미친 사람이 하는 짓입니다. 백제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할 일을 한 것이죠. 동시에 고구려가 일본과 친화를 맺고 계속 사신을 보내서 일본과 신라에 대한 공동 전선을 펴기 위한 노력을 한 것도 외세를 끌어들이려 한 것이라고 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되는데, 이렇게 되면 여러분 머릿속에 ‘그럼 단군은 뭐야?’ 이런 의문이 들겠죠.
단군(檀君)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 하면, 정통 역사에서는 ‘신화적인 세계인데, 다만 단군이라는 이 말은 제정일치 시절에 권력자와 제사장을 겸한 북방유목민족 사이의 샤먼, 몽고에서는 탱글(단군과 어원이 같은)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체인물이 아닌 어떤 직책이다, 청동기 시절 고조선에 있었던 권력자 겸 제사장을 이야기한다’ 이 정도죠. 그렇다고 해서 개천절을 기념하고, 단군 조상을 기리는 것까지 비과학적이라고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과 민족과는 직결되는 관계가 아니고 민족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 고조전-부여-고구려-백제-가야-신라 이런 것들이 신라의 삼국통일에 의해서 한 흐름으로 합쳐진 거죠. 출신성분이 다른 사람들이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서로 섞여지고, 말도 같이 쓰고, 풍습도 같고 하다보니까 우리처럼 같은 사람이 된 거죠. 그러니까 어느 날 갑자기 창조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의해서 숙성된 것이 바로 민족이라는 점을 잊어버리면, 요새 민족주의를 앞세운 선동에 다 넘어가게 된다는 겁니다.
한국의 지금 신라 폄하, 고구려 치켜올리기에 영향을 많이 준 사람이 신채호 이 사람도 있고, 또 최근에는 역시 북한의 영향이 큽니다. 북한이 언제부터 反신라로 돌아섰느냐 하면 1960년대부터입니다. 이때부터 ‘발해는 고구려의 후계국가다’ 하는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발해라는 나라는 고구려의 유민들이 만든 나라인데, 그 인종 구성을 보면 고구려사람 플러스 말갈족이 많습니다. 이 사람들이 뒤섞인 일종의 북방민족의 연합체적인 성격입니다. 그런 발해를 고구려의 후계국가라고 끼워 올리는 것과 비례해서,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를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김일성(金日成)의 교시가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의 외세 의존적 사대주의를 강력 부인하라, 조선 역사에서 외세 의존적 사대주의를 비판하라 하는 이런 지시가 내려지면서 공격적으로 삼국통일을 민족반역행위로 매도하기 시작했어요. 결과적으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나타난 고구려 정통론, 신라 민족반역자론, 그리고 발해 미화론이 김일성에 의해서 북한의 역사관으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1982년이 김일성의 70세 생일이었는데, 역사학자들이 총력을 다 해서 조선전사(朝鮮全史)라는 33권짜리 책을 만들었어요. 신라를 매도하는 모든 기록이 여기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 조선전사 33권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하면, 원시편, 고대편이 한 권씩이고, 삼국시대 시작부터 19세기 중엽 개화 직전까지가 10권입니다. 1926년까지를 근대편이라고 하는데 이게 3권이고, 문제는 김일성이가 등장하는 1926년부터 8․15해방까지가 7권, 해방 후를 다룬 것이 11권, 해서 민족사 2000년을 다루는 33권 중에 18권이 김일성의 개인역사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역사가 우리 민족 2000년의 역사보다 훨씬 더 양적으로 많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조선전사가 나온 그 무렵부터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북한으로 이어지는 자기 나름대로의 정통론을 조작하기 위해서 본격적으로 역사 조작을 시작합니다. 그동안 북한 사람들은 단군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환상적인 신화 이야기이다, 이것은 봉건시대 때의 기록이니까 이것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곤란하다 해서 그런 소리를 못하게 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바뀌어버립니다.
1993년에 김일성이가 평양에 있는, 예전부터 구전(口傳)되던 단군릉이라는 무덤을 파보게 합니다. 무덤을 파보니까 고구려시대 무덤이었어요. 거기에 사람 뼈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금동관 파편이 있었어요. 누가 봐도 5세기경 고구려시대 무덤이에요. 그런데 김일성의 주문에 맞춰서 그것을 단군릉이다, 이 사람이 바로 단군이다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상하다, 어떻게 고구려 무덤에 단군이 묻혀있을 수 있느냐?’ 하니까 또 이렇게 조작을 했습니다. ‘원래 단군이 묻혀있었는데 고구려 사람들이 단군을 존경해서 그 무덤을 잘 보존하다가 나중에 허물어지니까 고구려시대 무덤으로 개조했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탄소연대 측정을 하면 몇십 년의 오차를 가지고 정확하게 뼈의 나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학자들은 이미 개발되고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탄소연대 측정법이 아닌 뭐 전자 공명식 이런 방법을 가져와가지고 조사를 하더니, ‘이것은 5011년 전의 무덤이다’ 아주 정확하게 소수점까지 딱 떨어지죠. 그래서 북한에서는 단군은 5011년 전에 죽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그것을 또 거대한 무덤으로 복원을 해서 요새 남한에서 북한으로 가면 거기 가서 만세 부르고 ‘우리민족끼리’ 뭐 이렇게 지금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참 불쌍하게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말 한 마디에 5세기의 인골(人骨) 연대가 4000년 쭉 올라가서 5011년짜리가 된 바람에 북한에서 죽어버린 사람들이 있어요. 북한의 고고학자들하고 역사학자들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그동안에 북한사람들이 주장했던 역사이론하고 다 안 맞게끔 되어버렸어요. 그럼 5000년 전에 국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아무리 역사를 조작을 하고 미화를 해도 5000년 전이면 신석기 시대인데 평양에서 국가가 있었다는 주장을 할 수가 없어요. 신석기 시대에 무슨 국가가 있습니까? 부족이 있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또 5000년에 금 세공기술이 있었다는 주장도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이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 세공기술을 가졌다는 것이니까 이게 사실이라면 세계적인 발견입니다. 그것도 억지 주장을 해야 되니까 그 이후에는 북한 고고학자들의 말은 믿지도 않습니다. 한 개인의 취향을 맞춰주려고 하다보니까 북한의 학자들이 다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단군이 고조선이니까 그것이 나중에 고구려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일단 한때 부정을 했던 단군을 다시 끄집어 올려가지고 상징 조작을 하고, 평양이 한민족의 중심이다, 고구려가 평양에 있었다, 이런 것을 다 설명을 해서 신라를 죽이기 위한 작전을 쓰고 있고 여기에 한국 사람들이 잘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역사학자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기술할 때 다 고구려 중심으로 합니다. 백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약간 호의적으로 씁니다. 백제는 고구려의 선진 문물을 받아서 스스로 발전하고 이것을 가야와 신라한테 넘겨줬다고 써요. 신라에 대해서는 상욕으로 이야기합니다. 민족배신행위, 지배층의 탐욕, 신의 없는 군사행동으로 통일을 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사 가장 최고의 걸작품인 석굴암도 미신적인 종교의 작품이라고 부정을 합니다.
이런 신라 정통성의 부정은 바로 그 논리가 어디로 가느냐? 대한민국 부정의 논리로 갑니다. 신라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민족입니다. 이 민족주의-가짜 민족주의죠-를 잘 활용을 해서, 환상적인 민족주의라는 흉기를 만들어서 민족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삼국시대로 가져다가 김유신, 김춘추, 문무왕을 사대주의자로 모는 논리를 가지고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을 사대주의자로 모는 거죠. 신라가 당의 힘을 빌렸던 것처럼 이승만 도배(徒輩)들이 미국의 힘을 빌려서 조국을 분단시켰다, 북침(北侵)까지 하려고 했다, 그런데 김일성이라는 광개토대왕 같은, 고주몽 같은, 대조영 같기도 한 위대한 지도자가 그 음모를 저지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같은 논리가 대한민국 죽이기로 넘어가는 겁니다.
고구려 정통론을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아마 많을 거예요. 그 사람들의 심리에는 뭐가 있느냐? 고구려가 큰 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땅을 놓친 것이 아깝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좁은 땅에서 살고, 또 땅값이 비싸다 보니까 넓은 땅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넓은 땅에 대한 향수가 있는 거 같습니다. ‘넓은 만주벌판을 고구려가 가지고 있었는데 신라가 삼국통일 할 때 끝까지 다 접수를 했으면 이렇게 좁은 데서 10억짜리 되는 아파트에서 안살아도 됐을 건데…’하는 넓은 땅 숭배의식이 한국 사람들 마음에 있습니다. 고구려로부터 만주 땅을 신라가 인수하지 못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느냐? 그 넓은 땅을 갖고도 소백산 밑 구석에 있던 작은 신라한테 져버린 고구려한테 책임을 물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 넓은 땅을 왜 지키지 못했느냐, 그 넓은 땅을 갖고 왜 당나라와 괜히 싸움을 하다 망했느냐? 고구려한테 책임을 물어야 될 텐데 열심히 해서 삼국통일을 한 신라한테 책임을 묻습니다. 이 심리는 뭐냐? 이것은 성공한 사람은 질투하고, 이긴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진 사람을 동정하는 심리죠. 진 고구려를 동정하고 이긴 신라를 질투하는 심리, 이것을 잘 선동하는 겁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자학적(自虐的)인 역사관이고, 자위적(自慰的)인 역사관입니다.
자위적인 역사관이 뭐냐? 고구려가 졌으면 그 원인을 연개소문한테 찾아야죠. 연개소문 때문에 고구려가 망했습니다. 연개소문이 왜 고구려를 망쳤느냐? 집권과정에서 귀족들, 지배층 100명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혹독하게 민중들을 착취했느냐 하면 성을 쌓을 때 주민을 동원하고, 또 연개소문이 걸어가는 걸 보면 사람들이 겁이 나서 다 도망갔다고 합니다. 말을 탈 때는 엎드린 사람의 등을 밟고 올라탔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내부단결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나라가 쳐들어 올 때 양만춘이라는 안시성 성주는 연개소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신만의 지방 병력으로 지켜냈다고 합니다. 지방과 중앙 사이에 협조관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분열의 씨앗이 되죠. 연개소문의 또다른 결정적인 실수는 당나라하고 싸웠다는 겁니다. 당나라하고 친하게 지내면서 실리적인 외교를 했어야 하는데, 싸워서 이겼으면 좋은데 결국 져버렸다. 그리고 아들 교육을 잘못 시켜서 죽고 나서 아들들이 저희들끼리 싸우다가 한 사람은 당나라로 가버리고 한 사람은 신라 쪽으로 가버립니다. 앞잡이가 되어버렸죠. 이것이 고구려와 연개소문이 만주 땅을 당나라에 상납한 주원인이에요. 이 책임을 왜 신라가 져야 합니까? 이런 식으로 따지는 논리의 저변에 뭐가 있느냐? 신라가 외세를 등에 업고 자주적인 고구려를 쳤기 때문에 신라라는 놈들이 나쁜 놈이다,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 이렇게 설명하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그동안 승자의 입장에 있지 못했습니다. 한민족이 지배자였던 적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이 마지막이고, 그 뒤로는 당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1300년 동안 침략당하고, 식민지배 당하고, 몽고지배 하에서 종노릇하고, 명나라․ 청나라한테 사대주의 하다 보니까 한국의 왕부터 신하들, 밑의 장수들까지 다 당하는 입장에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긴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거예요. 성공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 눈에는 삼국 통일을 한 신라에 뭔가 거부감이 있습니다. 성공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사람 심리에 고구려처럼 당나라하고 장렬하게 싸워서 망한 나라는 호감이 가게 되어있습니다. 거기다가 이런 민족을 앞세운 근사한 선동 논리를 만들어서 나오니까 신라는 나쁜 사람이고 고구려는 민족을 지키다가 사망한 사람으로 되어버리는 거죠. 이것이 바로 그대로 대한민국 죽이기로 넘어가는 거죠. 어떻게 넘어가느냐? 고구려는 북한이고, 신라는 대한민국입니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도움으로 성공했어요. 북한은 고구려처럼 망했습니다. 그럼 북한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300만이 굶어죽은 것은 북한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을 지금의 좌파들은 누구한테 묻고 있느냐? 대한민국에, 미국에 묻는 것 아닙니까? 북한 사람들이 어디 굶어죽고 싶어서 죽었느냐, 미국이 대북(對北)경제봉쇄 정책을 썼기 때문에 북한이 이렇게 되어버렸다는 겁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싶어서 망했느냐,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과 똑같은 논리입니다.
패배자에 대한 동정,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질투가 한국 사람들 마음속에 잘 스며듭니다. 그러니까 신라 죽이기를 계속하면 반드시 대한민국 죽이기로 그 논리가 넘어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관을 무기로, 흉기로 잘 사용하는데 세계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있는 북한이 남한의 얼치기 학자들하고 손을 잡고, 대다수 한국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패배자에 대한 동정심, 승자에 대한 질투심을,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 신라가 삼국통일하면 배가 아프다’ 하는 심리를 꿰뚫고 들어가서 오늘날 이런 엉터리 역사관을 완전히 굳혀놓았다는 겁니다. 고구려 정통론, 신라 죽이기 論은 간단하게 말하면 노예근성의 발로이고, 2류․3류의 논리입니다. 신라를 인정하고 신라의 성공을 제대로 평가해서 거기서 대한민국이 일류(一流)국가로 갈 수 있는 본질적인 교훈을 끌어내겠다고 하는 것은 1류 시민의 논리고, 주인의 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을 주인으로 삼은 사람들은 그런 자세를 취해야 하고, 영원히 남 밑에서 굽히면서 남 잘되는 것 욕하면서 인생을 끝내려고 작심한 사람들은, 그런 역사관을 가지고 신라를 욕하고 대한민국을 욕하면서 결국 자기 인생뿐만 아니라 처자식, 제자들까지 망쳐서 병든 민족혼을 가진 집단으로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듭 설명하지만,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존경받는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책에는 고구려 정통론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주로 드라마를 통해서, 무책임한 글을 통해서 나오고 있죠. 이기백 씨나, 손진태 씨나 이런 존경받는 사람들은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80%는 긍정하고, 만주의 고구려 땅을 잃은 것은 아쉽다고 이야기합니다. 20% 비판, 80% 긍정이에요. 여기에서 하나하나씩 점검을 해본다면-이렇게 되면 쓸데없는 논쟁을 하게 되는데- 만주를 고구려가 가졌다, 그리고 그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이때부터는 아무 의미 없는 논쟁입니다. 왜냐하면 가상을 전제로 하는 논쟁은 하나의 말장난에서 끝내야 됩니다. 이게 어떤 판단에 영향을 준다면 이것은 꿈과 현실을 착각하는 거죠. 공상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공상과 실제를 분간을 못해요. 그러니까 고구려 정통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해서 만주 땅을 먹었으면 우리가 강국(强國)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라는 나쁜 놈이다, 라는 주장을 하는 거죠. 한쪽에는 공상의 탑을 쌓아올려 놓고, 신라는 현존하는 대한민국이고 우리의 삶의 실체인데 이것을 부정해버려요. 공상에서 끝내야 되는데, 공상에서 만든 이상한 논리를 가지고 와서 현실에 적용해버립니다. 이런 사고의 차이가 있죠.
그러면 고구려가 만주를 먹어서 광개토대왕 시절의 판도를 구축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하는 것을 추리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역사에서 고구려가 만주 땅을 영원히 가지고 있을 수 있었겠냐는 거죠. 절대 불가능하죠. 북방은 힘 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서 싹 쓸고 하는 무시무시한 지역 아닙니까? 특히 유목민족들이 사는 만주, 몽고 그런 동네입니다. 어떻게 됐을 것이냐?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한민족이 살아남지 못했죠. 왜냐? 거기는 평원지대고, 거기에서 등장하는 세력은 운명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북경 쪽으로 쳐들어가서 중국을 정복해서 정복왕조로 살아남든지, 아니면 중국에 먹히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만주에서 주인공 역할을 했던 민족이 지금 어디 살아있습니까? 만주족이 살아있습니까? 요, 금나라가 어떻게 됐습니까? 몽고 사람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러니까 중국 역사, 동북아시아의 원리를 보면 한족(漢族)이 아닌 사람이 만주를 차지해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고구려가 만주를 차지했으면 반짝하고 사라졌을 가능성이 많죠. 이것도 부질없는 설명이겠습니다만, 그렇게 설명을 드리면 저로서는 고구려 정통론과 신라 부정론의 핵심적인 것에 대해서는 다 답을 했다고 봅니다.
보조적으로 재미삼아 몇 가지를 보면 우선 신라의 삼국통일이 가져온 혜택이 뭐냐? 신라의 삼국통일은 첫째로는 우리 민족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선은 평양-원산선 이남이었어요. 북쪽은 나중에 발해 땅이 되는 거죠. 그래서 불완전한 통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죠. 신라의 삼국통일은 불완전한 통일이었습니다. 백제의 땅은 다 먹었는데 고구려 땅은 일부만 먹었습니다. 거기서 우리가 가만히 있었느냐? 불완전한 통일이되 완전한 통일로 가는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려-조선에 걸쳐서 우리가 계속 북진(北進)했습니다. 계속 북진해서 김종서 장군 때, 즉 세종대왕 때 드디어 두만강, 압록강의 지금과 같은 국경선을 우리가 확보할 수 있었죠.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계 어느 나라의 역사와도 다른 진행방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죠. 북진해서 오늘날 한반도를 확보했습니다. 그 북진하는 중심세력은 역시 신라, 그리고 그것은 백제지역까지 확보한 통일 신라로 남한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남한이 중심입니다. 그러니까 서울이 인구가 많고, 약 1000년 동안 계속 민족사의 정통 수도이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남북 간의 대결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옵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어디가 이겼습니까? 북쪽이 이겼죠. 이탈리아의 통일은 북쪽이 중심이 되어 로마를 먹고 해서 된 겁니다. 독일도 그렇죠. 독일 북쪽의 프러시아가 강대해져서 남쪽으로 내려와 뮌헨, 바바리아 지방을 먹고 통일을 이룩했습니다. 불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쪽에 있는 파리가 남쪽에 있는 부르고뉴 지방을 먹어서 통일을 했습니다. 남예멘, 북예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북예멘이 통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만이 이상하게 남쪽이 주도권을 잡고 북쪽을 흡수해서 신라를 통일했습니다. 그 역사의 진행방향이 남북통일 때도 마찬가지로 북진자유통일 이 될 겁니다. 지금 북한이 줄기차게 고조선-고구려의 정통론을 만들어서 신라를 부정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뭐냐 하면 남한 중심의 통일에 대해서 어떤 논거를 끊어버리겠다는 것이죠. 남한의 북진통일을 저지하는 방파제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게 우리 민족사의 정통론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는 북진통일이란 말을 지금까지 북진무력통일로 해석해 왔는데, 사실은 이 북진통일은 우리 민족사의 무대를 도로 찾는 삼국 통일의 재판(再版)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신라가 대한민국이죠.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로 만들었습니다. 한민족의 활동 무대를 만주가 아닌 한반도로 했습니다. 한반도가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세계에서 22만㎢에 이런 땅이 어디 있습니까? 산이 70%, 큰 강이 있고 또 인구가 7000만이나 되면 굉장히 많은 겁니다. 그만큼 30% 되는 농토에서 소출량이 옛날부터 많았다는 거죠. 날씨가 삼한사온(三寒四溫)으로 좋고,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농토에서 소출이 부족하면 어획으로서 보충할 수 있고, 머리만 깨면 장사도 할 수 있습니다. 북쪽은 강이 두 개 있기 때문에 수비가 쉽습니다. 적이 쳐들어올 때도 산에 숨어버리면 되니까 민족이 멸망하지는 않죠. 해안선이 깊고 들쭉날쭉해서 항구도 많이 만들 수 있고, 아름답습니다. 여행을 많이 해보시면 돌아와서는 ‘한국이 최고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런 공간을 신라의 삼국통일이 확보를 했어요.
그 다음에는 여기가 워낙 좋은 땅이니까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여기가 사막이었으면 살다가 다른 데로 떠나고 했겠지요. 민족의 유동이 별로 없어져 버렸어요. 그 전에는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습니다. 가야 사람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가버리고, 백제 사람도 망하기 전후로 일본에 많이 건너갔죠. 그런데 신라가 삼국통일 한 이후로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가지를 않았어요.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먹고 살기 괜찮은 데라는 이야기죠. 그래서 단일민족의식이라는 게-엄격히 말하면 단일 민족은 아니지만- 생겨서 일민족 일국가(一民族 一國家)의 전통이 1300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세 번째는 당나라의 한족(漢族) 정권, 그 한(漢)족 사람들하고는 영원한 친선관계가 이뤄졌어요. 이게 어느 정도냐? 중국과 옆에 붙어있으면 싸우든지, 들고 일어나든지 해서 몽고처럼 계속 싸우고 점령하기도 하고 점령당하기도 하고 이럴 텐데, 우리 한민족과 중국의 한족 사이에는 모택동(毛澤東)이가 쳐들어오는 1950년까지 약 1300년 동안 친선관계가 계속되었습니다. 한족 정권은 한 번도 쳐들어오지 않았죠. 금나라, 요나라, 몽고가 쳐들어왔죠. 청나라도 쳐들어 왔지만. 한족 정권은 뭐냐? 당나라, 송(宋)나라, 명나라 이런 사람들하고는 다 친하게 지냈어요. 왜냐? 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신라를 트집 잡기 위해서 별별 묘수를 생각하다 보니까 이런 묘수까지 등장했어요. 신라는 당의 힘을 빌려서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에 그 당나라가 신라를 먹어치워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니까 당과 싸워가지고 대당(對唐)결전을 통해서 당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신라를 욕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 뒷부분은 이야기를 안 해요. 당의 힘을 빌려서 통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당의 힘을 빌려서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전반부 이야기고 그 뒤 당이 신라까지 포함해서 백제, 고구려를 다 식민지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거기에 신라가 들고 일어나서 대당결전을 통해 한반도에서 쫓아내었다는 이 후반부는 이야기를 안 해요.
어쨌든 그렇게 하니까 당으로서는 자존심이 무지하게 상했죠, 세계 최대 제국인데. 그렇게 30년 동안 국교 단절상태에 있다가 성덕대왕 때 비로소 다시 화친을 했습니다. 왜냐면 신라는 침략성이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자기 것만 지키면 된다, 당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겠다고 해서 한족 정권과 한민족 사이의 영원한 친분관계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국사람 하면 일본사람에 대한 생각보다는 상당히 우호적입니다. 우리가 청나라 사람들에게 오랑캐라고 하지 한족사람에게 오랑캐라고 안하잖아요? 한족사람과 한민족과의 우호관계는 신라에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신라삼국통일이 가져 온 것이고, 이것 때문에 앞으로 발전하는 중국과 한국이 계속 친선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이 있어야죠.
네 번째 공은 뭐냐?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신라만 안전하고 편안하게 된 것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에 300년 동안 평화가 유지됐어요. 동북아시아에 왜 전쟁이 많이 일어났느냐 하면 신라, 백제, 고구려가 싸우고 여기에 외세가 개입을 했습니다. 일본도 군대를 보내고, 중국도 군대를 보내고 해서 국제 전쟁터가 되었는데, 신라가 통일을 해서 한반도의 주인이 되니까 일본도 ‘이제 더 이상 한반도에 대한 욕심을 내지 말자, 우리나라만 잘 만들자’ 해서 일본 고대 국가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중국은 당나라가 있던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신라, 일본, 당나라 삼국이 7,8,9세기 한 250년 동안 고대사에서 가장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시대를 만들어냈습니다. 고대사의 황금기입니다. 그것은 신라의 삼국통일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만든 사람들이 신라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이 시절에, 이 250년 동안 평화로우니까 중국과 일본과 한국 사이에 교류가 아주 빈번합니다. 주로 배를 통해서 교류를 했죠. 그러면 배를 잘 모는 사람들이 득을 보지 않습니까? 신라, 일본, 중국 중에서 배를 제일 잘 다루는 사람들이 신라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동북아시아의 해상권은 신라 사람들이 쥐었습니다. 장사를 많이 했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지배층이 기마민족 출신이라 말도 잘 몰고, 해안선이 많으니까 배도 잘 다뤘습니다. 말과 배는 고대시대 때 기동성을 만들어주는 두 개의 무기입니다. 말 잘 타는 사람과 배 잘 모는 사람이 그 뒤에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말 잘 모는 사람들은 세계를 정복했고, 배 잘 만드는 사람은 나중에 대항해 시대에 또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배를 잘 몰던 실력, 말을 잘 몰던 실력의 아성이 조선조로 들어오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말, 배 이게 고대 한민족의 브랜드였는데 530년 동안 조선조를 지내면서 다 잊어먹고 있다가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요새 다 그러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마(騎馬)민족이고 다 말 잘 타던 사람이다, 신라 천마총(天馬冢)에 들어가 보면 천마도가 걸려 있는데 하늘을 나는 것 같이 근사하고, 마구가 많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그 민족적 아성은 조선조 530년 동안 다 죽어버리고 19세기 말이 되면 양반이 자기 혼자 말을 부릴 수가 없어서 종 두 사람을 데리고 가는데, 한 사람은 떨어지지 않도록 엉덩이를 받치고, 한 사람은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끌었다고 되어있어요. 이사벨라 비숍이라는 영국 사람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이란 책을 보면 그렇게 개탄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얼마나 창피한 이야기 \입니까? 그것은 신라의 책임이 아니고 조선조의 책임입니다. 배도 몰고 나가지 못하면서 뱃놈, 뱃놈 하고 뱃사람들을 멸시하다가 이순신의 전통도 중간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동북아시아에서 7,8,9세기의 신라는 유동성이 있는 나라였습니다. 폐쇄적인 국가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신라에 보면 아랍 상인들도 와있고, 아랍이란 나라에 신라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것도 그 시기죠. 이 시대를 절대로 잘못 보면 안돼요. 요사이의 한국 사회처럼 아주 역동적인 시대였습니다. 예컨대 이런 일이 있었죠. 나라(奈良)에 가면 동대사(東大寺․도다이사)라는 절이 있지 않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물로 높이가 40m 정도 됩니다. 거기에 동대사 대불이라고 있지요. 그것도 아마 세계에서 가장 큰 앉아있는 불상(坐像)일 겁니다. 그게 완공된 게 8세기입니다. 그때 그것을 축하하기 위해 신라에서 배를 타고 관광단이 갔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는데 한 730명이 갔어요. 갈 때, 장사를 하려고 신라 물건을 많이 가져갔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신라 사람들이 좋은 물건을 가져오니까 사야겠다’ 해서 무슨 물건을 사겠다는 목록을 작성해서 신청한 것이 궁중유물을 보관하는 나라의 정창원(正創院․쇼소인)에 문서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의미냐? 그만큼 교류가 많았고, 그 때도 신라하고 일본이 사이가 좀 나빴는데 공통적인 문화가 하나 있었어요. 그게 불교였죠. 요새 민주주의, 자본주의 같듯이 공통된 문화인 불교 때문에 일본과 신라 사이에 굉장히 교류가 많았습니다. 이런 황금기를 만든 것이 신라의 삼국 통일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때가 한국이 최초로 일류국가가 되었던 시절입니다. 한국은 일류국가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7,8,9세기의 통일신라가 일류국가였습니다. 이것은 자랑도 아니고 미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7,8,9세기 지도를 펴놓고 보면, 문명의 중심권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당나라 쪽의 동북아시아, 그 다음에 지금의 이슬람, 이란, 시리아 쪽의 아랍이었습니다. 두 군데의 문명권이었습니다. 기독교의 문명권은 혼란 상태에 들어가서 소위 말하는 중세의 암흑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별로 볼 게 없었어요. 따라서 신라는 7,8,9세기에 세계에서 일류국가입니다. 그 때 신라의 국력이나 이런 것을 다 합치면, 지금 우리가 세계 10위 국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마 그 정도 되었을 거예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일류국가였던 나라만이 일류국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라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카피해서 지금 현재에 적용을 하면 일류국가가 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역사를 이야기할 때 조선조 역사는 시기가 비교적 가깝고, 또 드라마로도 나오니까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고려로 가면 조금 아득하게 느껴지고, 삼국시대로 가면 더 아득하게 느껴져서 실감이 안 나실지 모르지만, 7,8,9세기라고 이야기할 때 저는 굉장히 실감 있게 느껴져요. 그때의 상황이 저는 눈앞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생생합니다. 기록이 많기 때문이죠. 삼국사기(三國史記)라는 기록도 있고 중국과 일본에서의 기록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맞춰보면 7,8,9세기가 우리 민족 2000년史에서 굉장히 활발하고 역동적이고 아주 아름다운 시대였습니다. 그 아름답다는 것은 불국사, 석굴암, 경주의 세계적인 유물에서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죠.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것은 어떤 숙명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지배민족 중심으로 동아시아에서의 몇 개 나라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배민족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게, 민주정치를 해서 투표를 통해서 왕을 뽑았으면 지배민족 말고 그 밑의 사람도 좀 연구를 해야 되는데 옛날에는 오로지 창을 들고, 칼을 든 군사력을 가진 지배민족이 역사를 만들어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지배민족 중심으로 보면, 동아시아에서 부여족이 제일 먼저 개명(開明)이 되었습니다. 부여족이 만든 나라가 고구려죠. 또 고구려의 부여족 일부가 내려와서 만든 나라가 백제죠. 토착 정권인 마한을 정복하고 백제를 만들었습니다. 가야는 어떠냐? 가야의 종족적인 성격에 대해선 이설이 있지만, 요새의 다수설은 가야 또한 부여족이었다는 겁니다. 가야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천황家를 만들고, 일본을 통일했으니까 일본의 지배민족 또한 부여족이죠. 부여족 계통이 부여-고구려-백제-가야-일본입니다.
여기서 딱 하나 예외가 신라죠. 신라 김氏는 부여족이 아니에요. 신라 역사는 박氏, 석氏, 그 다음에 김氏정권이죠. 4세기 내물왕 시대부터 신라가 망할 때까지 김氏정권인데, 이 김氏는 흉노족 출신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합니다. 흉노족은 부여족과 다르죠. 알타이 산맥, 몽고 초원의 서쪽이 흉노족의 발상(發祥)입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하고 인종적으로 여러 접촉이 많았던 흉노족 출신의 기마 군단이 신라로 들어와서 정복왕조가 되고, 바로 김氏죠. 그 사람들이 만든 것이 바로 천마총 같은 고분입니다. 천마총 같은 고분은 우리 한반도에서 갑자기 나왔어요. 그것은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돌무지덧널무덤)이라고 해서 시체를 목곽 안에 넣어서 묶고 그 위에 자갈을 덮으면, 나중에 자갈이 눌러서 나무 관이 찌그러들기 때문에 도굴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신라 유물이 많이 남아있죠. 적석목곽분은 흉노의 무덤입니다. 이런 무덤은 시베리아, 몽고에 많고 터키까지 연장되는 무덤입니다. 신라의 지배민족, 김氏라고 하는 사람들은 부여족이 지배하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흉노족 계통이었던 겁니다. 그 사람들이 삼국을 통일했다는 것은 뭐냐, 바로 민족적 자존심이, 정체성이 굉장히 높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한민족이 동북아시아에서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한민족의 정신을 지금까지 지켜낼 수 있는 원동력이 거기서 나왔다고 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주로 일본에서 신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신라가 한반도의 주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신라=한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동시에 일본은 백제, 가야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신라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쓴 역사책이 일본서기(日本書紀)죠. 일본의 신라에 대한 감정은 백제, 가야와 신라에 대한 감정과 같습니다. 그래서 신라 對 백제․가야의 감정이, 그 뒤에 대한민국과 일본의 감정으로 옷을 갈아입은 거죠. 그래서 지금까지도 양국 간의 감정이 좋지 않고, 거꾸로 중국과의 감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런 민족적 감정, 한․중․일 사이의 친소(親疎)관계가 신라통일 하는 과정에서 그 뿌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는 한반도의 주인이 되었고 신라가 바로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동네북이 되고 있고 냉소적, 적대적으로 대하는 이런 마음이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 신라는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통계를 보니까 신라가 전쟁을 가장 많이 했어요, 174회. 신라는 어느 나라와 전쟁을 했느냐? 고구려하고도 하고, 백제, 가야와도 하고 특히 일본하고 많이 했습니다. 그것은 뭐냐? 지금 이야기한 나라가 다 부여족입니다. 어떻게 보면 부여족과 흉노족의 대결인데, 이걸 통해서 신라는 살아남은 거죠. 이런 투쟁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또 신라는 천재지변이 제일 많았습니다. 322회의 천재지변을 겪었죠. 두 번째는 백제인데 191회 정도. 차이가 크죠. 그러니까 전쟁을 제일 많이 했고 동시에 천재지변도 가장 많았다는 게 신라라는 나라의 특성입니다. 거기서 살아남은 거죠. 뭐로 살아남았느냐? 신라는 정치를 통해서 살아남았습니다. 정치를 잘 해서 살아남은 나라입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를 장기(長技)만 이야기한다면 고구려는 전쟁을 잘 하고, 백제는 중국문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생활이 상당히 풍족했다고 그래요. 백제, 고구려, 신라중에서 일반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아마 백제가 제일 나았을 겁니다. 신라는 정치를 잘합니다.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뭐냐? 지배층의 문제죠. 왕 이하 장군들이 지배자들의 솔선수범(率先垂範)이 있었기 때문에 밑의 사람들이 따라오는 거죠. 그리고 지배층끼리의 권력 투쟁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습니다. 없었던 것은 아니죠, 권력 투쟁이 없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민주주의 하는 데에도 있는데. 그러나 권력투쟁이 비교적 굉장히 적어서 55명의 왕 중에서 제 명에 못살고 쿠데타 당해서 죽은 사람이 5명밖에 없어요. 정권 승계가 굉장히 스무스(smooth․부드럽게)하게 잘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배계층의 단결, 그것이 바로 정치죠.
정치라는 것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지배층이 솔선수범하고 단결해서, 아랫사람들을 끌어가는 겁니다. 협조를 받아내려면 명령만 해서는 불가능하죠. 그것이 삼국통일 과정에서 극적으로 증명된 것이 언제냐? 황산벌 싸움이죠. 서기 660년에 당나라 군이 덕적도에 상륙을 했고, 신라는 김유신이 5만 군대를 이끌고 황산벌에 도착을 했는데, 백제에서 계백이 이끌고 나온 군대가 5천 명이었습니다. 인구는 그때 백제가 신라보다 훨씬 많았어요. 그런데 왜 동원된 군대는 10분의 1밖에 안 되느냐? 그것은 신라가 동원력이 훨씬 강했다는 겁니다. 동원력이라는 것은 조직이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아랫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됩니다. 백제는 동원령을 내리니까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이 탈영해버린 것 같아요. 지방에서도 협조를 안 해주는 거죠. 이것은 뭐냐? 정치의 실패입니다. 신라는 천재지변 많이 겪고, 전쟁 많이 겪고 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쪽으로 신경을 쓰다보니까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장군들이 제일 앞장서는 것이다’ 하는 걸 안 거죠. 황산벌에서 불리하니까, 청년 화랑 두 사람이 특공작전을 벌여서 돌격을 해서 죽어버렸어요. 한 사람은 잘 알려진 관창(官昌), 품일(品日)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사령관의 아들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잘 안 알려졌는데 반굴(盤屈)입니다. 이 청년 화랑은 김유신의 동생이 그 때 부사령관을 했습니다. 이름이 김흠순(金欽純)인데 그의 아들이 바로 반굴이에요. 이 두 부사령관이 각기 자기 아들을 차출해서 ‘둘이 먼저 돌격하여 장렬하게 전사하라. 그렇게 해야 부하들이 사기충전해서 싸우겠다‘ 해서 부사령관 아들 둘을 희생시켰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많죠. 1904~1905년 사이 러일전쟁 때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여순(旅順․뤼순)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노기(乃木希典)대장이라는 사람이 공격을 하는데, 자기 아들 세 사람을 보내서 다 죽게 만듭니다. 이 노기 대장은 또 명치천황(明治天皇․메이지천황)이 죽으니까-그때 할아버지가 되었는데- 할머니하고 같이 할복자살을 했습니다. 삼국 신라통일 때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무사들은 한국사람 같지 않고, 꼭 일본의 무사 같은 느낌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건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우리 화랑도가 신라가 삼국통일한 다음에는 사라졌는데, 화랑도의 전통이나 이런 게 일본으로 건너가서 신라 계통 도래인(渡來人)에 의해서 일본의 무사계급이 발달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어쨌든 솔선수범을 통한 정치, 솔선수범하면 거의 대부분의 밑에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권한이 큰 사람이 자세를 낮추고, 아랫사람을 사랑하고, 또 용감할 때는 가장 앞장서는데 누가 안 따라줍니까? 오늘날 한국 지도층의 문제가 있다면, 솔선수범을 안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해서 우리 민족을 만들고, 제일 중요한 게 국토를 만들어낸 거죠. 거기에서 우리가 1000년 이상 살다가 보니까 한민족을 형성하게 되고, 또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니까 우리가 과거의 신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저는 대한민국은 지금 우리 민족사의 로마인 신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 속에서 신라하고 제일 비슷한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 한국입니다. 지금의 한국과 옛날 1300년 전의 신라가 제일 비슷합니다. 개방적인 나라다, 상무(尙武)정신이 있는 나라다, 동맹을 잘 맺는 나라다-당나라, 미국. 동맹을 잘 맺는 나라입니다. 다만 지배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정신이 최근 십 몇 년 동안 부족했다는 게 아쉬운 점인데, 이것만 극복하면 한국도 통일해서 일류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일류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교과서를 외국에서 찾지 말고, 우리 민족사에서 찾으면 제일 쉬울 텐데, 그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모범사례를 빨갱이들이 억지 논리를 가져와서 그것을 계속 폄하해가지고 완전히 쓰레기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거기에 방송도 타고 있고, 배운 무식자들도 가담하고 있죠.
제가 지지난 주에 김용옥 씨를 비판했는데, 하나 평가할 것은 그 김용옥 씨의 삼국통일에 대한 시각은 아주 건전해요. 그 사람이 ‘삼국통일과 한국통일’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주장은 제가 지금 여기서 말하는 내용하고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말씀을 드리게 된 겁니다. 신라와 대한민국의 공통점을 아까 몇 개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이 있다면 신라와 대한민국은 종교와 정치를 잘 결합시켰다는 겁니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이 잘못되면 북한식의 신정국가(神政國家)가 되고 이슬람식의 원리주의국가가 되어서 나라가 발전을 안 하는데, 신라는 불교와 화랑도가 거의 동등하게 이상적으로 결합이 됐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통일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통일을 뒷받침했죠. 또 통일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 통일을 하게 되면 전쟁을 해야 되고, 사람이 많이 죽게 되고, 구재(救災)도 하고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불교가 담당했다는 겁니다.
오늘날 한국은 불교도 성하고, 기독교도 아주 많이 올라가고 했는데 이게 국가 권력과 비교적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종교적 갈등에 의한 학살 사건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 포용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한국 사람들이 속이 좁은 것처럼 보이지만, 종교적인 면에서 보면 굉장히 관용적입니다. 왜 이러느냐? 시대 순으로 보면 한국 사람들이 종교적인 심성을 갖게 된 것이 원래부터 우리 북방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샤머니즘이죠. 그걸 무당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 잘못됐고, 무속이라고 하는 건 괜찮은데, 그 ‘巫’자가 자꾸 점치는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죠. 샤머니즘, 즉 사람이 자연과 같은 수준에서 대화를 하고 인간이 자연 속에 들어가 있기도 하고 자연이 인간같이 보이기도 해서 자연을 아주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런 생각이 우리 심성 제일 밑에 깔려 있죠. 그 위에 들어온 게 불교입니다. 그 다음에 불교보다 약간 늦게 들어온 게 유교죠. 유교 위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종교적 심성은 4층입니다. 1층은 샤머니즘이고, 2층은 불교, 3층은 유교, 4층이 기독교예요. 그런데 이 1․2층을 이루는 샤머니즘과 불교가 포용성이 큰 종교입니다. 그런데 위에 들어와 있는 유교와 기독교는 상당히 배타적이에요. 그런데 1층, 2층이 워낙 튼튼하기 때문에 유교, 기독교의 배타성을 굉장히 중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이명박 씨가 기독교 장로니까 불교 쪽에서 들고 일어나서 ‘이게 무슨 기독교 지도자 뽑는 선거냐’고 이렇게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관용성 때문입니다. 김유신, 이순신을 딱 비교해 보면 두 사람의 인격 속에서 이순신은 굉장히 유교적인 모럴(moral․풍속, 습관)을 가진 장군이었고, 김유신은 불교적인 심성을 가진 장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나눠드린 자료에 보면 두 장군을 비교하는 글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참고해 주세요.
결론적으로는 신라의 삼국통일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건국이 가능했고, 이 두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통일해서 일류국가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민족사의 쾌거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있어야 하지요. 정당한 평가란 좋은 평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두 평가를 하지 못하는 국가 지도층을 갖고 있습니다. 아까 1000명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심리를 캐고 들어가면 북한의 영향력과 신채호의 역사관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오랫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DNA로 굳어버린, 잘 나가는 사람을 정당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성공한 것을 깎아내려야 한다는 피해의식, 쓸데없는 반항심과 연관된 비뚤어진 민족성 속에서 그 그릇된 역사관이 뿌리 깊게 확산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신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대한민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그야말로 명분론에서 실용주의적으로 생각을 바꿔가지고 우리가 일류국가 국민이 되기 위한 단계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관이라는 것은 국가관을 만들어내고, 국가관은 또한 인간관을 만들어내고, 인간관은 동시에 인생관을 만들어냅니다. 역사관, 국가관, 인간관, 인생관은 다 한 덩어리로 엮여서 돌아가는데, 역사관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역사관이 잘못된 자가 대통령 자리에 앉으니까 反국가적 행동을 해고 反인간적 행동을 해서 여러 사람의 인생을 괴롭게 만들고 망치기도 했죠. 따라서 신라, 대한민국을 제대로 보는 것은 국민된 도리뿐만 아니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될 필수적인 교육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강연을 끝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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