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과 전쟁이 一流국가를 만든다"

趙甲濟기자의 현대사강좌(11월3일) '一流국가의 공통점' 全文:"일류로 올라갈수록 德과 고마움, 교양 있어야"
오늘 참 날씨가 좋습니다. 저는 점심 때 강남에서 어떤 분의 산수연(傘壽宴)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오는 길에 한강, 남산, 단풍, 맑은 하늘이 어우러져서 한국에 태어난 것이,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더구나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에서 매주 이렇게 좋으신 분들과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는 차에서 운전사하고 잡담을 했는데, 운전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해외여행을 많이 해봤는데, 센 강이 좋은 줄 알았더니 직접 가보니까 굉장히 더러워서 파리보다 서울이 훨씬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나서 정치이야기를 하는데 시위해서 공항에 가야 할 손님을 태우지 못하게 하고, 당장 부도를 막아야 해서 은행에 가야 할 사람이 광화문 시위에 걸려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질서를 잡을 사람이 나와야한다면서 이회창(李會昌) 씨를 지지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치안문제나 법치를 안보·경제보다 낮게 보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또 이 사람이 말하기를 ‘언젠가는 이회창 씨가 한 번 돼야 합니다’ 이래요. 그래서 제가 ‘그 사람 나이가 지금 일흔 둘인데…’하니까, ‘일흔 둘이 문제가 아니고, 누가 나와서 딱 정리를 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왔습니다. 그 분은 자기 아들이 노무현(盧武鉉)을 찍었다고 하면서 요새 매일 불러서 ‘이번 선거는 북한하고 치르는 선거다. 김정일 세력과 치르는 선거다’ 이렇게 교육을 한다고 하더군요.

나이가 여든에 들면 산수(傘壽)라고 하지 않습니까? 산(傘)자가 한자로 쓰면 아주 묘한 모습입니다. 사람 인(人)이 네 개가 들어있고, 가운데가 십 자(十)로 나누어져 있어요. 제가 ‘산수 안에 왜 사람 인자가 네 개 들어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아마 사람이 네 단계로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아기 때는 네 발로 기고, 다음에 두 발로 걷고, 또 나중에 연세 드시면 지팡이를 짚어야 하니까 세 발로 걷고, 마지막에는 네 발로 다시 돌아와서 돌아가신다’ 이런 뜻이죠. 한국에서 여든을 산다는 것이 이제 일상사가 되어버렸어요. 평균 수명이 여든이 되었죠. 그 글자를 보면서 ‘한자라는 게 참 깊은 뜻을 가지고 있구나. 한자를 보고 여러 가지 연상 작용을 하게 되면 저절로 공부도 하고, 인생도 생각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사안내를 말씀드린다면, 11월 6일 화요일 오후 2시에 국민행동본부 주최로 서울시청광장에서 ‘NLL 사수(死守) 국민대회’가 있습니다. NLL 문제에 대해서 노무현(盧武鉉) 선생이 또 망언을 했죠. ‘어릴 적 땅따먹기 하는 것 같다’ 확실히 그 사람 머리에는 김정일(金正日)적인 사고방식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해군이 NLL 지킨다고 싸움을 하고 경고사격을 하는 게 기분 나쁘다는 것이죠. NLL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기분 나쁘다는 뜻이죠. 왜냐? 김정일하고 친하니까 김정일을 괴롭히는 사람을 굉장히 기분 나쁜 존재로 여기는 거죠.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사람을 꼴불견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그게 바로 이념, 가치관이죠. 여기 계신 분들과 상황 판단을 완전히 거꾸로 하는 거죠. 우리가 반역자라고 보는 자를 애국자로 보고, 우리가 애국자로 보는 사람을 노무현이는 반역자로 봅니다. 이렇게 보면 노무현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실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아직도 30%라는 게 아주 경이적인 거예요. 김대중(金大中) 때 마지막 지지율이 20%대였고, 김영삼(金泳三) 때는 10%대였습니다. 노무현은 지금 지지율이 30%대입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그동안 좌경화의 영향 또는 양극화 선동의 영향으로 우리와 생각이 다른, 가치판단이 다른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노무현이 링컨을 참 좋아한다고 하는데, 링컨은 말을 해도 참 점잖게 했어요. 아주 아름다운 말을 한 사람입니다.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은 이유는 물론 노예해방을 하고, 분단된 남북을 통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쓰고 남긴 말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너무나 명문(名文)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링컨의 말과 노무현의 말을 비교를 하면 상놈의 말과 선비의 말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노무현은 링컨을 좋아한대요. 인간이란 게 항상 이런 묘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1865년에 한, 두 번째 취임사의 마지막 문장이 아주 좋은 문장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때가 남북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종전을 해서 남부를 다스릴 것이냐가 현안이었는데 한 쪽에서는 남부에 보복을 해서 다 빼앗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화해의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 시대 상황에서 마지막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을 영문으로 읽으면 제 맛이 나는데, 번역된 걸 한 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누구한테도 원한을 갖지 않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神)께서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면한 과업을 끝내기 위해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기 위해 이 전쟁의 짐을 져야 했던 사람과 그 미망인과 고아가 된 아이를 돌보고 우리들 사이는 물론 모든 나라들과의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고 누리기 위해 우리 모두 매진합시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to bind up the nation's wounds, to care for him who shall have borne the battle and for his widow and his orphan, to do all which may achieve and cherish a
just and last peace among ourselves and with all nations.)」

여기에 보면 증오심이 없죠? 다 용서하는 마음, 화해하는 마음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 정치도 가끔은 웃기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너무 살벌한 이야기만 많이 나옵니다. 지난주의 살벌한 이야기로는 이방호(李方鎬)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이회창(李會昌) 씨가 쓴 대선 잔금에 대해서 폭로를 하는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글을 쓸 때 처음으로 ‘싸가지 없다’는 말을 써봤습니다. 그 돈은 공금(公金) 아닙니까? 한나라당이 같이 쓴 거 아닙니까? 그걸 노무현이 철저하게 수사를 해서 노무현이 받아먹은 것은 덮고, 이회창 씨가 받은 것은 다 수사를 해서 감옥을 보내서 끝난 사건 아닙니까. 검찰이 아주 편파적인 수사를 해가지고 차떼기 당이라는 말을 만들어서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욕은 노무현과 검찰을 상대로 해야지 피해자인 이회창 씨보고 ‘그걸 다 어디에 썼느냐? 수첩에 많이 적어 놓은 것을 내가 봤다’ 이런 표현을 하는 정치인은 세계에서 한국인밖에 없습니다. ‘최병렬(崔秉烈) 씨가 가지고 있는 수첩을 봤더니 많이 적혀 있더라’ 이런 걸 가지고 공갈을 치는 건 인간이 끝난 거죠. 정치란 것은 사람장사입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정치기 때문에 밑천도 없고, 공장도 없어요. 그러면 사람의 도리를 지키면서 정치가 진행돼야 하는데, 좌익들도 하지 않는 짓을 하니까 오히려 이회창 씨를 자극해서 출마를 선동하는 것처럼 되고 있어요.

사람의 지혜라는 게 똑똑한 것 같지만(저까지 포함해서) 별 것 아닙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예측하는 능력은 ‘인간은 참 작구나’ 하는 것을 실감케 하죠. 그러니까 내일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우리가 다 모르고 있어요. 미래를 예단하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하는 것을 실감한 게 바로 이회창(李會昌) 씨의 출마 아닙니까? 한 달 전에 이회창 씨가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분, 여기 혹시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 이회창 씨도 자기가 출마할 거라고 생각 안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명박(李明博)도 몰랐을 거고, 박근혜(朴槿惠)도 몰랐을 거고, 똑똑하다는 한국의 정치부 기자들도 몰랐겠죠. 그 어떤 점쟁이도 이회창 씨가 출마한다는 점괘를 낸 사람이 없어요. 정치란 것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기 때문에 ‘1 더하기 1은 2다’ 라는 게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면서 새삼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달쯤 전에 이명박 씨 주변에서 선거 전략을 짜는 데 관계하는 사람과 저녁을 먹었어요. 이 사람한테 ‘왜 이명박 씨가 지금 대북(對北)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나오느냐, 우리가 보기에는 좌익과 싸움으로 인해서 지지기반이 더 다져질 텐데 왜 노무현, 김정일의 10·4선언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확실한 반대 입장을 취하지 않고, 거기에 융화돼 가느냐’ 이렇게 주변에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 쪽 설명은 ‘지금 지지 세력이 중도(中道)와 보수(保守)로 되어있는데 중도표를 계속 잡고 가려면 그런 이념 투쟁을 하면 안 된다는 계산이 확실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중도표를 잡기 위해 좀 희미한 소리를 하더라도 보수 세력은 양해를 해주고 참아줘야 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그것도 일리가 있겠다 싶었어요. 다만 그 자리에 참석한 대사 출신 사람이 ‘당신 말을 들으면 참 그럴듯한데, 너무 논리적인 것 아니냐? 정치란 것은 그렇게 논리로 가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 말이 상당히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말로는 다 설명하는 거예요. 결국 무엇을 몰랐느냐? ‘이렇게 하면 한국의 정통 보수 세력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그러면 이회창 씨가 출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는 요소를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아무도 몰랐어요. 이회창 씨는 출마할 사람이 아니다 하고 접어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어요.

저번에도 제가 여기서 한 번 설명해드린 것 같은데, 이회창 씨를 평양회담 있기 전에 만나니까 다른 것은 걱정 안하고 남북문제만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저보다도 더 걱정을 해서 너무 심한 것 아니냐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남북회담이 끝나면 틀림없이 무슨 사태가 날 텐데, 한나라당과 이명박 씨는 거기에 대한 대비를 왜 안하고 있느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때 그 분의 걱정은 저보다도 훨씬 심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강재섭(姜在涉) 씨한테 경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북문제에 대해서 확고한 태도를 취하라는 편지도 썼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출마할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도 출마를 결정하기 전이에요. 그러나 모든 상황이 출마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회창 씨가 출마하려면 ‘왜 출마하려느냐’는 이 설명으로 국민들을 납득시켜줘야 돼요. 형식적으로는 완전한 경선 불복(競選不服)입니다. 한나라당 당원 아닙니까? 경선에 나왔어야지 (나왔으면 물론 졌겠지만) 나오지도 않고, 이것은 명백한 경선 불복이죠. 그 점에서는 아무리 비난 받아도 변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수 분열을 방지하지 못해서 10년 동안 좌파정권을 만들어낸 사람이, 이젠 자기가 나서서 보수분열을 시킨다. 그러면 거기에 대한 이유가 있어야 될 것 아니냐?

왜 경선에 출마를 하느냐’ 는 설명이 나와야 할 거예요. 그 설명이 국민들을 납득 시키느냐 못시키느냐에 의해서 그 사람 지지율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그러니까 첫 연설이 굉장히 중요하죠. ‘내가 왜 이런 경선 불복을 하면서도, 나이 칠십 두 살에 나와서 대통령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느냐’를 가지고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지지율이 달려있죠. 설득시키지 못하면 아마 3등쯤 하겠죠. 15~16% 받고, 욕은 욕대로 얻어먹고 아주 비참하게 끝날 겁니다. 그러나 그 설명이 국민들을 설득시키면, 지금 여론조사에서 22%로 2등을 달리고 있는데 그것을 30%정도까지 올립니다. 그 표는 이명박 표를 다 깎아먹는 거죠. 그러면 이명박 표는 쭉 내려오고 두 사람 사이가 5% 포인트 정도가 되는 상황이 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런 설득이 있기 전에 이미 지지율이 22%까지 올라갔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저는 이 사람이 출마하면 10%에서 출발해서 올라가서 3등 정도 될 것이라고 봤는데, 제 예상보다 훨씬 많게 22%에서 출발하고 오히려 정동영(鄭東泳)이가 13%로 3등이죠. MBC 조사로는 이명박(李明博) 40%, 이회창(李會昌) 22%, 정동영(鄭東泳) 13% 이렇게 돼있습니다. 이 조사가 또한 이 사람의 출마를 더 부채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 지지층의 이동을 보면 나이 드신 분들, 50세 이상은 거의 이명박 씨 쪽으로 많이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회창 씨 쪽으로 많이 이탈을 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씨의 지지가 강한 대구·경북 사람들이 대거 이회창 씨 쪽으로 넘어갔습니다. 한국 보수 세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세력이 박근혜 지지층이었는데 현재 이회창 지지로 돌아섰습니다. 이것이 가속화되느냐, 여기서 멈추느냐 하는 것은 참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이회창 씨는 지금 조직적으로 보면 참 약해요. 그 분이 5년 동안 출마를 준비한 흔적이 별로 없어요. 자기 사무실 하나 내어놓고, 따라다니는 사람 두 사람 정도 있었고, 그 주변에 현역 국회의원 하나 없어요. 완전히 가분수 아닙니까? 그 분 얼굴도 조금 삼각형을 거꾸로 한 가분수처럼 생겼죠. 하체가 없어요. 국민중심당하고 뭐 어떻게 한다고 하는데, 그런 걸 보면서 사람들이 ‘이건 너무 정당정치가 아니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면 또 표가 내려갈 수도 있지요. 그것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안보제일주의다’ 안보·법치(安保·法治) 두 개를 들고 나오는 거죠. 아마 그렇게 할 생각인 것 같아요. ‘안보·법치만 제대로 유지되면 경제는 따라온다, 그러니까 이명박의 경제제일주의 그것은 경제기획원 장관이 하면 될 것이다, 나는 대통령 할 사람이니까 안보·법치는 내가 책임지고 챙기겠다, 경제는 기업인들이 똑똑하니까 저절로 될 것이다’ 이렇게 주제를 선명하게 하면 이회창, 이명박이 주로 싸우게 됩니다. 이명박 씨가 저런 식으로 하는 데 대해서 제가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지금 이명박 씨는 지지율이 60%기 때문에 자신 있게 노무현·김정일의 야합(野合)을 비판해도 표가 절대로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가 자신 있는 싸움을 피하면 아주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이명박 씨가 이회창을 상대로 보수선명경쟁을 할 것 같은데 이건 본인한테 불리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초미의 관심사가 이게 보수분열(保守分裂)로서 좌파정권이 재집권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불안 때문에 잠이 안 오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이것도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보면 보수 분열이 확실하죠. 대선(大選)에서 거의 400만 표 차이로 이기게 돼 있는 이명박 씨 표가 반 토막이 납니다. 그렇게 되면 정동영 씨가 되는 게 아니냐 하는 악몽이 있죠. 이 악몽 때문에 아마 이회창 씨가 지금도 출마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어요. 다만 지금의 이명박 1등, 이회창 2등, 정동영 3등의 여론 구조가 계속 되면 (저는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1등, 2등을 다 보수 세력이 잡는 거죠. 그러면 ‘이명박이 되든지, 이회창이 되든지 일단 빨갱이는 정리할 테니까’ 이러면서 오히려 느긋하게 볼 수도 있어요. 두 사람 중에 누구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은 열외로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명박, 이회창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 되면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입장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것이 보수 분열이 아니라 보수 확대(保守擴大)를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할 수 있다 이거죠. 이게 참 아슬아슬한 겁니다. 그렇게 생각되는 면을 제가 하나 말씀드린다면 첫째는 이명박, 이회창, 정동영 이렇게 딱 놓고 보면 이명박, 이회창 두 사람이 좀 크게 안 보입니까? 과거의 경력도 그렇고, 기복도 많고 스케일이 크죠. 그래서 사람의 크기로 계산을 해도 자연스럽게 이명박, 이회창의 타이틀 매치가 되고 정동영 이하는 마이너리그가 되죠.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관심이 이명박, 이회창씨 쪽으로 집중이 되죠. 지금 이미 정동영 씨는 일주일 이상 자기 이름이 뉴스에 나올 찬스가 없었죠. 온통 이회창 판으로 가버리니까. 지금 대선이 50일도 안 남았는데, 일주일 이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다면 잘못하면 잊혀지는 존재가 돼버리는 거예요. 그 결과가 13%로 나온 겁니다. 정치는 인기로 먹고사는 것이기 때문에 연예인과 그 생리(生理)가 똑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냐가 참 볼거리예요. 재미로 치면 이 이상의 재미가 없죠. 그런데 나라의 생존을 걸고 지금 즐길 수 있는 입장이 아니죠.

그래서 마지막에 어떻게 되느냐? 과거에는 선거기간 중에 여론조사 공포가 금지돼 있었죠? 12월1일부터는 여론조사 공개가 안 되니까 누가 1등 하는지도 모르고 귀동냥을 하고 이렇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 대선 때는 대부분 이회창 씨가 이긴다고 봤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이회창 씨가 이긴다, 소문으로 들려오기는 조금 불리하다고 하는데 그럴 리가 있느냐,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이회창이 크게 이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해서 투표 안하고 놀러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성세대의 투표율이 낮았습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이회창 씨가 졌다고 봅니다. 투표율이 1987년 직선 할 때는 89%였고, 1997년에는 80%였고, 2002년에는 70%였습니다. 10%나 줄었어요. 기성세대가 해외로 많이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아마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높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행히 투표 6일 전에 마지막으로 여론조사를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암중모색(暗中摸索)을 할 필요 없이 누가 이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상으로 지지율이 이명박 36%, 이회창 32~33%, 정동영 20% 이렇게 되면 단일화(單一化)가 필요 없죠. 거꾸로 이명박 36%, 정동영 33%, 이회창 씨가 20% 이렇게 된다면 단일화해야 된다는 압력이 전개될 거예요. 좌파도 지금 단일화해야 될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단일화하는 그 효과로서 이겨야 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정동영 이하 사람들이 합쳐서 이길 수 있는 퍼센트가 아니에요. 다 합쳐도 20%입니다. 그러니까 단일화를 해도 효과가 없다, 그러면 단일화가 안 됩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양쪽 다 단일화가 안 된 상태에서 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단일화를 누가 하느냐? 본인들은 안하더라도 국민들이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럴 경우죠. 이명박 36%, 이회창 32~33%, 정동영 25% 이쯤 되면 선거는 더 볼 필요도 없죠. 두 이(李) 氏 중에 한 사람이 당선되면 되니까 표 쏠림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나 예컨대 정동영 35%, 이명박 36%, 이회창 씨가 20% 이렇게 되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서 이회창 표가 이명박 표로 몰릴 것입니다. 그것은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더라도 유권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상이 됩니다.

이회창 씨가 여론조사 카테고리에 들기 전에 이명박 씨의 지지율이 52~55%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회창 씨를 집어넣으니까 이명박 40%, 이회창 22%로 둘이 합쳐 62%가 되었어요. 이명박 혼자 나왔을 때보다 두 사람이 나오니까 보수표가 10%가 늘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물론 보수 분열적인 면도 있지만, 보수 확대가 되어버렸어요. 즉, 시장에서 한 사람이 독점을 해 장사를 잘 하다가 라이벌 업체가 생기면 ‘우리 몫이 줄어들겠다’ 걱정을 해서 열심히 제품을 만들고 서로 경쟁을 하게 되죠. 그러면 시장이 커져버려요. 월간조선(月刊朝鮮)도 신동아(新東亞)가 있었기 때문에 부수가 경쟁적으로 더 많이 나가게 됐던 거죠. 이게 시장의 원리입니다.

그렇다면 이게 문제가 됩니다. 보수 시장이 그만큼 넓으냐? 시장이 좁은데 두 사람이 제 살을 뜯어먹게 되면 이건 보수 분열이 되고, 한 사람은 집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 시장이 조금 넓은 것 같아요. 이명박 씨에 의해서 중도표가 개척이 되었기 때문에 중도, 보수 합쳐서 70~80%되는 시장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두 사람이 들어가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면 서로 자기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통해서 보수표가 확대되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느냐? 이회창 씨가 만약 출마를 하게 되면(아직도 만약이란 말을 붙여야 되는데) 총선까지 가는 기본 구도에서 정개개편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회창 씨가 만약 된다면 한나라당은 해체 수준의 대 변혁이 일어날 거예요.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그 쪽으로 많이 몰려가서 당(黨)이 두 개가 생기는 거죠. 이회창 당 對 한나라당이겠죠. 그러지 않고 이회창 씨가 아주 아슬아슬한 차이로 2등을 했다고 하면 그 세력이 당을 만들어서 또 다음 총선에 도전을 하겠죠. 그러면 보수 양당체제가 됩니다. 보수가 당이 두 개가 되죠. 그 여파로 좌파가 아마 조금 줄어들 거예요. 그러면 한국정치가 좌우대결구도가 아니라, 보수 중에서 선명보수(鮮明保守)와 중도적 보수(中道的 保守)의 양당체제로 갈 가능성도 있다는 거죠.

단순하게 좌파정권 종식보다는 그게 더 확실한 우경화(右傾化)일 수도 있습니다. 원래 한국은 좌우 양당체제로 갈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 있기 때문이죠. 좌우 양당체제로 가면 좌파는 반드시 북한하고 손을 잡아서 반역질, 역적질을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좌우 구도가 성립될 수 없는 나라입니다. 선명 보수와 중도적 보수가 양축을 이루고, 민노당 같은 것은 소수 정당화되어 버려야 정치가 튼튼해지는 정상적인 정치 판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낙관적으로 생각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언론을 보면 특히 조선, 동아, 중앙일보의 사설에서 이회창 씨의 출마에 대해 연일 비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절차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22%로 치솟아 올랐다는 것은 우리 정치 관계자들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가 국민들의 가슴에 있다는 겁니다. 그 무엇이 뭐냐? 안보(安保)와 법치(法治)입니다. 제발 김정일 저 놈 죽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노무현·김대중이 법정에 서는 걸 봤으면 좋겠다, 이런 시위 안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의 희망이 상당히 큰 데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그동안 언론에 의해서 대변되지 않았어요. 방송은 불법시위를 편들고, 동아일보·조선일보까지도 눈치를 보면서 우리 국민들 편을 들지 못하니 우리 편이 없다, 그랬는데 이회창 씨가 국민들의 민심과 직결되는 안보와 법치를 들고 나온다면 그 쪽으로 가겠다는 겁니다. 현재의 22%는 그것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안보와 법치를 바라는 생각이 의외로 클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회창, 이명박이 대등한 게임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일단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설하려고 합니다. 일주일 뒤가 되면 또 제 말이 달라질지 모릅니다. 현재로서는 제가 최선을 다해서 이렇게 설명을 했습니다.

제가 요새 인터넷에 들어가서 ‘이회창(李會昌) 씨도 잘못한 것은 있다. 그러나 명분을 제공한 것은 이명박(李明博) 씨다’ 이렇게 하면 ‘당신 옛날에는 박정희(朴正熙) 전기를 써서 박근혜(朴槿惠) 편인 줄 알았더니 경선기간 중에는 이명박 편을 들고, 이제는 또 이회창 편을 드는 것 아니냐’고 욕을 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항상 판단의 근거를 ‘사실과 국가의 이익, 헌법(憲法)’ 이 세 개에 두고 있습니다. 거기에 배치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하느님이라도, 이회창, 이명박, 박근혜라도 사정없이 비판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의 판단 기준은 이명박도 아니고, 이회창도 아니고, 박근혜도 아닌 ‘대한민국과 국법과 진실이 무엇이냐’ 그 입장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려고 하니까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거죠. 그걸 좀 이해해 주십사 하는 겁니다.

참 기가 막힌 사건은 정연주(鄭淵珠)라는 KBS 사장이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아들 둘을 군대 안 보냈다고 그렇게 욕을 하고 반미(反美)에 앞장서고 이러더니, 이 사람 자신은 한겨레신문 미국 특파원 때 아들 둘은 미국 영주권을 받아 군대도 안가고 그랬습니다. 자기 아들 둘을 군대에 안 보낸 이유를 설명하면서 ‘두 아들이 미국에 내린 뿌리를 뽑아 한국으로 움직인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18년 동안 미국에 몸을 둔 두 아이는 미국 시민권을 갖게 되었고 나는 두 아이를 늘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 라고 200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야기했어요. 좌파(左派)들은 항상 감성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그런데 요새 드러난 사실은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는 그 아들이 미국에 살 줄 알았는데, 그 때 이미 삼성에 취직해서 바로 옆에 살고 있더라는 겁니다.

왜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사람을 좋아하냐는 거죠. 우리가 보면 인간 말종도 이런 인간 말종이 없는 것 같은데, 노무현이란 사람은 이런 상식을 벗어난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사람을 아낀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게 핵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권위와 법과 질서를 조정하고 싶고, 김정일, 김일성, 스탈린, 히틀러, 모택동 이런 사람 전기를 읽으면 가슴이 뛰는 사람이에요. 이런 참 희한한 인간형이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정도로 버티고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로 언론자유(言論自由)죠. 언론자유가 살아있어서 감시를 하기 때문에 그런 반역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조심을 하고 겁을 내는 겁니다. 4900만의 눈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항상 의식하고 청와대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대로 가만 두었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언론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어머니다’ 하는 것이 요새처럼 실감나는 때가 없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권씩 좋은 책을 내서 드려야 하는데, 이번에 강의록을 정리하다 보니까 차라리 책으로 내는 게 좋겠다 해서 이렇게 책이 하나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려고 하는 일류국가(一流國家)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책이고, 또 이 일곱 나라에 대해서는 제가 평소에 여행도 하고 생각도 하면서 나름대로 조사해 놓은 게 있어서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일류국가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만 그것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놓은 책은 없습니다. 일류국가론(一流國家論)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류국가가 도대체 어떤 나라냐는 데 대해서 선을 그어놓고 정해놓은 것도 아니죠.

일류국가란 말이 제일 많이 나오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대통령부터 입만 열면 일류국가, 일류국가죠. 처음에는 일류대학, 일류대학 하다가 이제는 일류국가, 일류국가하면서 한국에서 일류 아니면 다 죽어야 되는 사람처럼 보는 것 아닙니까? 이류(二流)도 괜찮은 나라입니다. 이류가 얼마나 좋습니까? 세계 이류 국가群에 들어가 있는 나라가 한 서른 개 정도 있는데, 세계 200여 개국 중에서 상위 20~30등 안에 들어가면 굉장히 좋다고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당신 이류야’ 하면 화 안내는 사람 있습니까? 한국 사람이 전부 일류 지향이에요. 야심이 많고 그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되는 거죠. 일류국가의 꿈을 반드시 키워줘야 됩니다. 그래서 그 일류국가론을 이제는 조금 논리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일류국가를 제가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까 공통점이 몇 가지 있어요. 우선 일류국가 중에 최고로 큰 공통점이 전쟁을 많이 해 본 나라라는 겁니다. 전쟁을 많이 하지 않고 (적게 해도 안 돼요) 일류국가가 된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을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1868년 이후에 명치유신(明治維新·메이지유신)을 하면서 내전이 세 번쯤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청·일(淸·日)전쟁 했죠, 러·일(露·日)전쟁, 태평양 전쟁까지 한 여섯 번 했습니다.

독일은 후발국가(後發國家)입니다. 통일이 안됐기 때문에 유럽에서 좀 뒤에 출발한 나라죠. 19세기부터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나폴레옹과 전쟁했죠, 통일을 하기 위해서 덴마크와 전쟁을 했죠, 오스트리아하고 전쟁을 했죠. 그래서 독일 민족이 패권국가(覇權國家)가 된 다음에는 불란서로 처들어가서 보·불 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했죠,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까지 여섯 번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일류국가 반열에 들어선 거예요.

불란서와 영국은 말할 것도 없죠. 18세기, 19세기에 온통 전쟁으로 세월을 다 보냈어요. 나눠드린 책을 보시면 네덜란드 또한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이상하게 전쟁을 한 나라들이 일류국가가 되었단 말이에요. 한국이 일류국가를 내다 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한국전쟁이 있기 때문이죠. 한국전쟁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일류국가 꿈도 못 꿉니다.

그럼 왜 전쟁을 통해서 일류국가가 만들어지느냐? 여기에 국가나 사람의 상당히 오묘한 진리가 있는 거죠. 우선 전쟁을 한다는 것은 살아남아야 된다는 생존(生存)의 문제입니다. 인간이든, 군대든, 국가든 ‘나는 살아남아야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진실이 보이는 것 아닙니까? 내가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그때부터 누가 친구냐, 누가 적이냐를 먼저 봐야 되는 겁니다. 거기에 명분론이 들어갈 자리가 있습니까?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과 동지를 정확하게 가려야 됩니다. 즉 사람이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되는 거죠. 다음으로 살아남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됩니다. 맨주먹이 세든지, 돈이 많든지, 아니면 배움이 많아서 지식이 있든지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습니다. 대포가 있든지, 권총이 있든지 아니면 야전삽이라도 있든지 그렇게 해야 살아남는다, 즉 실력주의(實力主義)로 가는 거죠. 그 다음에 전쟁을 하면 조직이 커집니다. 군대라는 게 왜 생겼느냐 하면, 혼자서는 용감할 수 없다는 거죠. 중대, 사단, 군단 이런 식으로 조직을 딱 만들어 놓아야 싸우지 혼자서 싸우라고 하면 다 도망가지 누가 싸웁니까? 그래서 군대란 조직이 생긴 거죠. 따라서 전쟁을 하면 사람들이 조직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조직이 얼마나 소중하냐, 이 조직을 어떻게 유지해야 되느냐, 또한 조직을 어떻게 운영해야 되느냐 하는, 조직을 아는 인간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뭐하고 연결이 됩니까? 산업화, 기업과 연결이 되죠. 산업화와 기업은 사람을 조직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전에 살았던 농사짓고, 날품팔이하고, 고기 잡고, 상행위 하던 농경시대에 무슨 조직이 필요합니까? 조선조(朝鮮朝)는 마지막에 단 50명의 월급을 주는 기업도 없었어요. 조직이 없었다는 이야기죠. 우리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조직을 알고,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을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운영해서 목표를 달성하느냐, 적자를 보지 않고 흑자를 보냐 하는 것을 알게 된 거죠.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라는 일본계 미국인 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신뢰(Trust)’라는 책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원래 유교 문화권에서는 신뢰가 잘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큰 기업이 생기지 않는답니다. 그 신뢰라는 게 가족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죠. 한국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는 서로 믿습니다. 부자간에 돈 주고 할 때 차용서 쓰는 사람 있습니까? 부자(父子)간, 부부간, 부녀간 뭐 이런 가족단위로는 굉장히 신뢰가 형성됩니다. 가족만 벗어나면 살벌한 풍경이 전개되어 약속도 안 지키는데 가족 안에만 들어가면 약속 안 해도 다 지킨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데서는 절대 큰 기업이 생길 수 없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은 예외다. 일본은 무사문화(武士文化)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은 무사문화도 없는데 어떻게 된 거냐?’ 이 사람이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는 전쟁을 통해서 커진 군대란 조직, 두 번째는 신뢰를 넓힌 기독교가 있었다는 겁니다.

따라서 전쟁을 많이 해 본 나라는 어떻게 되느냐? 우선 전쟁을 하면 돈이 많이 듭니다. 그 돈은 국민 세금에서 나오죠. 그럼 세금을 거두는 협력기관, 국세청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무조건 세금을 걷어갈 수 있습니까? 국민들이 돈을 벌게 만들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경제를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맨땅에 머리 박듯이 해서 경제가 키워지고, 물건이 팔립니까? 과학이 있어야 되죠. 과학으로서 좋은 물건을 팔아야 되죠. 이렇게 되면 과학도 발전하고, 경제도 발전하고, 군대도 발전하죠.

그 다음에 전쟁을 해보면, 전쟁을 해보지 않은 나라와 뭐가 달라지느냐? 외교(外交)를 잘하게 됩니다. 나라가 생존하려면 친구가 많아야 됩니다. 동맹외교(同盟外交)를 잘하게 되죠. 그래서 우리가 6·25를 거치면서 외교를 잘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외교라는 건 오로지 사대주의 외교 하나밖에 몰랐는데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맺는 아주 슬기로운 외교정책을 썼고, 또 박 대통령이 한·일 수교를 한다든지 또는 우리가 중동에 진출할 때 외교가 잘 뒷받침을 해주었습니다.

이러다보니까 우리가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명분론(名分論)을 좀 줄여서 실용주의(實用主義)로 되고, 또 사람이 경제, 과학, 기술, 외교 이런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똑똑해졌다 이 말이죠. 또 무엇보다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1950년대에 한국 사람과 약속을 하면 보통 30분 정도 늦는다는 코리안 타임이라는 게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뒤에 10분도 못 기다리는 사람으로 바뀌었죠.

따라서 일류국가는 다 전쟁이 만들었습니다. 전쟁이 제일 없었던 나라가 주로 어떤 나라입니까?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아프리카 이런 곳이죠. 그런 데 무슨 전쟁이 있었다는 소리를 들어봤습니까? 아프리카나 동남아에서 (베트남 전쟁은 빼고) 무슨 큰 전쟁이 있었다는 이야기 혹시 들었습니까? 남미(南美)에도 참 전쟁이 없었죠. 남미에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있었다는 소리 들었습니까? 없었죠. 전쟁이 제일 많았던 곳이 유럽 아닙니까. 그러니까 유럽에서 일류국가가 많이 만들어졌죠.

일류국가(一流國家)를 여행해보면 이류국가(二流國家)와 제일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일류국가에 가면 참 조용합니다. 그런데 이류국가, 삼류국가(三流國家)에 가면 사람들이 굉장히 시끄러워요. 목청이 높습니다. 왜 이러느냐? 일류국가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절도 있고, 말을 정확하게 하고, 글도 정확하게 씁니다. 깨끗하죠. 이것도 군사(軍事)문화와 전쟁을 많이 한 것하고 다 연관이 됩니다.

우선 목청을 높여서 득 될 게 없죠. 미국에서 교통사고 났다고 해서 목청을 높이면 득 되는 게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그래도 목청 높이면 좀 득 되는 수가 있지 않습니까. 요새는 차 세워 놓고 싸움박질하는 게 줄어들지 않았습니까? 그게 제도가 일류가 되고 보험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악수하는 습관도 미국에서 ‘나는 총이나 칼을 가지고 있지 않다’ 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일류국가는 대부분 조용하고, 깨끗하고, 사람들이 절도가 있습니다.

일류국가에는 국가 엘리트층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하고 다른 아주 엄격한 도덕률(道德律)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이런 자그마한 뉴스가 나왔습니다. 일본에서 후쿠다(福田康夫)라는 사람이 총리가 되었는데, 그 쪽도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죠. 일본의 장관들 등록한 재산이 한국 장관들 등록한 재산보다 훨씬 적습니다. 한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될 거예요.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3배나 되는 나라에서 장관들의 평균재산 등록액수가 우리보다 3분의 1밖에 안 된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진국이란 건 돈과 권력과 명예가 다 분리가 돼야 되는 것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권력을 탐하면 안 되고, 권력 있는 사람은 권력만 탐해야지 명예와 돈을 탐하면 안 된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돈·권력을 탐내면 안 된다는 거죠.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굽니까? 성직자, 지식인들이죠. 문화 하는 사람들, 시인 이런 사람은 가난하죠.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영향력이 큰 것이죠. 기업인들이 명예와 권력까지 탐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는 거죠. 일류국가가 대충 그런 나라가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류국가는 일류국가의 혼(魂)이 있습니다. 국가魂이 뭐냐? 사람의 정신, 혼이 있듯이 국가에도 혼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신 나간 사람하면 무슨 일을 해도 갈 지(之)자로 하고, 도대체 행동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천박하다고 하는, 혼이 없다고 하면 가장 큰 욕이지요. 이렇듯 국가에도 혼이 있습니다. 그것을 민족혼(民族魂) 또는 국가혼(國家魂)이라고 한다면 일본에서는 그것이 무사도(武士道)이고, 미국에서는 플리머스 청교도 정신일 것이고, 독일은 게르만족의 어떤 신비한 생각일 것이고, 불란서는 박애(博愛)정신, 영국은 신사도(紳士道)겠죠. 이런 국가의 혼을 유지해 가는 그룹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별로 여론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여론에 의해 생각이 좌우되지 않고 어떤 고매한 이상과 국가이익 또는 종교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 그룹이 국가의 혼, 즉 국가의 정체성과 국가의 큰 진로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고민하고, 또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경청을 해서 따라가는 거죠. 일본에서 총리대신이 높은 것 같지만, 총리대신이 무슨 연설문을 쓰려고 하면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한테 가서 꿇어 앉아가지고 ‘좋은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연설문을 부탁합니다. 이런 배움의 자세를 가진 엘리트 그룹이 있어야 반드시 일류국가가 됩니다. 한국도 엘리트 그룹이 형성되려고 하다가 좌파가 집권하는 바람에 그 엘리트 그룹이 흩어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중앙을 장악하지 못하고 사회 주변에 가 있습니다. 그 엘리트, 국가의 혼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 이런 이야기죠.

제가 작년에 일본의 노보리베츠(登別)라는 마을에 갔더니 그 옆에 노보리베츠 다테 지다이무라(登別伊達時代村)라는 게 있습니다. 이게 에도시대(江戶時代), 도쿠가와 막부시대(德川幕府時代)의 마을을 재현해 놓은 민속촌 같은 데에요. 거기 가니까 사무라이館이 있는데 거기에 무사도(武士道), ‘Spirit of Samurai'라고 영어로 써놓았어요. 그 영어문장이 아주 근사해서 제가 우리 책 63 페이지에 번역을 해 놓았어요. 일본의 정신이 사무라이라고 하는데 사무라이, 무사도라는 게 뭐냐? 일본사람들에게 무사도가 뭐냐고 물어보면 ‘무사도란 죽는 것이다’ 이렇게 답을 합니다. 무사도는 어떻게 죽느냐로, 그 반대가 뭡니까? 어떻게 사느냐죠. 즉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느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마음 자세를 무사도라고 한다’ 이렇게 했는데, 여기에 보니까 꽤 길게 써 놓았어요. 한 번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의 투쟁본능은 보편적인 것이고, 또 자연스러운 것이다. 일본은 이 거친 투쟁본능에 제어장치를 붙여, 통제하려고 했다. 이를 무사도(武士道)라고 한다. 이는 사회를 통제하고 또한 활력을 주었다. 그리고 투쟁본능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어떤 신성한 것의 존재를 일본인에게 깨우쳤다. 봉건제도는 무너져도 그것을 지탱해준 무사도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를 체현(體現)한 이를 사무라이라고 한다. 무사도를 일본인의 독특한 관념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독특한 출생의 비밀에 있다. 무사도의 아버지는 선(禪)이고 어머니는 유교이다. 선은 불교에 있어서 명상이며, 심사묵고(深思默考)에 의해 지(知)의 영역을 넘어서서 절대의 영역을 지향하는 것이며, 유교는 조선(祖先)숭배신앙을 기초로 민족의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도덕적 규범이다.

따라서 상호모순 된 개념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생긴 무사도를 체현한 인간, 즉 사무라이는 이 둘의 조합의 비율에 따라, 또 그 시대의 요청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나타난다. ‘사람의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이며, 서두르지 말고 참는 것이 무사장구(無事長久)의 기본이다’라고 말한 도쿠가와는 일본 최고의 사무라이이고, 강함을 추구하면서 결투에 생애를 걸고 상대를 죽여 간 미야모토 무사시도 사무라이이다. 이 두 사람 간에는 공통된 삶의 방식이 없어 대국(對局)에 위치하는 듯하다. 단 하나 있다고 한다면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신(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이 마지막 문장이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간난신고(艱難辛苦)의 한가운데서 각각 신(神)에 다가가 체감한 것, 이것이 사무라이 정신이다’ 사람이 신에 다가간다는 이 말이 종교적인 말인데, 원래 인간이라는 것은 짐승과 같은 야수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하느님처럼 아주 자비롭고 온화한 마음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즉 인간은 짐승과 하느님 사이의 중간적 존재라는 거죠.

그러나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서, 하느님처럼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계속 추구하고 갈망한다는 것 이게 바로 종교 아닙니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서 하느님을 닮아라, 또는 부처님을 닮아라, 알라신을 닮아라 하는 게 종교의 공통적인,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종교가 있는 가운데서 만들어 낸 예술, 건축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거죠. 로마에 가면 항상 보는 성 베드로 사원, 피렌체에 가면 있는 두오모라 불리는 거대한 성당, 거기 가서 느끼는 게 뭡니까? ‘이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어떻게 14,15,16세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느냐? 이런 산더미 같은 돌로 공을 들여 만든 예술품 하나하나가 다 완벽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이것을 어떻게 인간이 만들 수가 있느냐? 불가능하다. 하느님이 만드신 것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통해서 만드신 것이다’ 즉 사람이 하느님과 같은 절대자(絶對者·절대자란 것은 완벽한 존재란 의미입니다)에 다가가기 위한 집념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니까 그런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거죠.

이 종교적 심성(心性)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을 완벽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교라는 것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종교가 없으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되는 거죠. 무종교 국가에서 일류국가가 된 사례는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이해할 때 이 무사도의 정신을 놓치면 이해가 안 되죠. 기독교를 모르고 유럽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읽어보면 ‘이 무사도가 종교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신성(神聖)이라고 하는데 영어로 말하면 신성함 즉 ‘holiness’죠. 그러니까 일본의 무사들, 그리고 그 무사들의 후손인 지금 일본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어떤 마음 자세로 하느냐는 것을 이것이 암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성실하게 하는 거죠.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과 사무라이 정신이 바로 통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드라마에서 일본 칼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게 있었어요. 마사무네(正宗)라는 장인(匠人) 집안이 代를 이어서 칼만 700년 동안 만들어오고 있더라고요. 그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000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 살아있을 것입니다’

즉 칼을 만들 때 자기의 정신을 투입을 해서 베스트(best·최선)를 다하니까 자기의 영혼이 칼에 들어가 있다는 거죠. 이런 마음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데가 바로 도요타 아닙니까? 올해 들어와서 세계에서 가장 큰 제조업체가 되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GM을 능가하는, 규모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었어요. 도요타의 성공 비결이 많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나온 책이 지금 서점에 가면 수십 권이 있을 거예요. 저도 그 중에 한 권을 봤는데 거기서 느낀 게 바로 이 사무라이 정신입니다. 물건을 만들고 뭘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완전무결하도록 한다는 그 정신이 기업으로 들어가면 세계에서 최고가는 기업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종교적 심성이죠.

혹시 북경(北京)의 이화원이라는 데 가보셨습니까? 이화원이라고 호수도 있고 서태후가 살았던 별궁인데 굉장히 크죠. 그러나 거기에 감동이 있었습니까? 성 베드로 사원을 보고 느낀 감동을 저는 이화원, 만리장성, 자금성에서는 못 느꼈습니다. ‘이건 사람이 만든 거다, 편의상 만든 건데 참 마무리가 잘 안되었다, 크기만 크다’ 이 정도죠. 거기에는 종교적 심성이 없죠. 권력자가 편의대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석굴암(石窟庵)을 계속 존경을 하는 이유는 비록 작지만, 거기에는 만든 사람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 같기 때문 아닙니까? 봉덕사 종 그것도 그 안에 만든 사람의 정신이 들어가 있어 종을 치면 그 정신이 나온다는 거죠. 실제로 만든 사람이 자기 자식을 집어넣었다는데, 그건 뭐 야사(野事)겠지만 사랑하는 자기 아이를 끓는 쇳물에 던져 넣어서 종을 만들 정도의 자세로 만든 것이 봉덕사 종, 성덕대왕 신종, 에밀레종이라는 거죠. 그런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가 일류국가였다는 겁니다. ‘예술혼이 살아있었다, 화랑도 정신이 살아있었던 때가 우리 최고의 예술혼이 살아있었던 때다, 그게 바로 신라다’는 거죠. 불교정신이 있었던 때죠. 불교 없이는 통일도 불가능했고, 불교 없이는 신라가 일류국가가 될 수 없었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의 역할이 있다면,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밀어 올리는데 큰 동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도 큰 역할을 해왔어요. 무슨 역할을 했느냐? 조선조(朝鮮朝)에서는 ‘돈 버는 것은 죄다, 청빈(淸貧)이 최고다’라고 했어요. 그러나 기독교 정신은 뭡니까? ‘열심히 돈 벌어라, 돈 버는 것은 죄가 아니다, 돈 벌어서 잘 쓰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청부(淸富)정신, 돈은 깨끗한 것이다’ 뭐 이런 등등이죠. 그래서 일류국가는 엘리트가 있고, 엘리트가 종교적 심성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한국은 종교가 너무 많아서 그게 탈일지 모르지만, 한국 사람들은 다 마음속에 종교적 심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교적 심성일 수도 있고, 유교적 심성일 수도 있고, 샤머니즘 심성일 수도 있고, 기독교적 심성일 수도 있는데 그 종교적 심성을 잘 다스리면 우리가 아주 멋진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 그런 것 아닙니까? 서울 올림픽의 성공, 서울 올림픽의 준비부터 끝마칠 때까지, 서울 올림픽을 통해 얻은 것,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이 바로 종교적 심성에서 나온 것이죠.

평생 동안 가장 감동했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저는 1988년 9월 17일 아침에 서울 올림픽 개막식을 보고 느꼈던 감동이 죽을 때까지 최고의 감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모르죠, 또 이번 대통령 선거에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을지. 서울 올림픽을 만들어 낸 것은 종교적 심성입니다. 최선을 다한 거죠. 그래서 서울 올림픽의 정시 개최율 그런 게 있습니다. 99%였죠, 아마? 서울 올림픽은 돈이 굉장히 많이 남았어요. 3000억 이상 흑자를 봤습니다.

그리고 서울 올림픽 때 만든 시설이 꽤 괜찮지 않습니까? 방이동 근방에 사시는 분들, 올림픽 공원 근방에 사시는 분들은 설명을 안 해도 아실 것 같아요. 서울 올림픽 공원은 동양에서 최고의 공원입니다. 그 공원이 서울 올림픽 때문에 생긴 것 아닙니까? 조각공원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조각품들입니다. 그거 다 모으면 한 1조 될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90억 원으로 만들었어요. 문신(文信)이라는 그림 그리는 분이 박세직(朴世直) 씨한테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서울 올림픽이라는 게 좋은 브랜드니까 세계의 유명한 조각가들을 초청해서 그 조각가들한테 ‘우리가 재료는 지원해줄 테니, 당신 이름이 남는 작품을 여기서 만들어놓고 가라’ 해서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만들어서 그냥 두고 간 거예요. 돈 받고 간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람 그것 때문에 욕 많이 먹었어요. 그걸 볼 때마다 문신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가 없었고, 박세직이 그 아이디어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이 올림픽 공원이 안 생겼는데, (요새 밤에도 개방해서 잘 이용하더군요)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알아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원에 가서 그 창원공단을 만들어준 오원철(吳源哲)이란 사람을 아무도 모르는 걸 보고 실망을 느꼈는데 일류국가의 또 하나 조건이 감사할 줄 안다는 거예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잘 되겠습니까? 일류국가일수록 국민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표현물이 많지 않습니까? 일류국가와 이류국가의 차이는 뭐냐면, 동상이 많다는 거죠. 제일 동상 많은 데가 불란서, 영국, 독일 이런 데 아닙니까? 특히 미국에 동상 많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도 동상을 만듭니다. 보스턴에 가면 하버드대학 맞은편에 자세하게 기록을 해서 청동으로 기념물을 만들어 놓았어요. 읽어보니까 뭐라고 써놓았냐 하면, 독립전쟁을 할 때 영국군이 상륙했다는 소식을 들은(이름도 다 나와 있어요) 세 사람인가 두 사람이 그 독립군한테 알리기 위해서 이 길 앞으로 갔다 해서 하나 만들어 놓았어요.

또 일본의 니가타(新潟)에 가면 유자와 온천이라고 있는데 여기가 카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쓴 소설 ‘설국(雪國)’의 고향입니다. 거기에 설국 기념관이 있어요. 거기에 가보니까 이만한 판떼기가 하나 있어요. 웬 판떼기가 박물관 안에 들어있나 해서 설명을 읽어보니까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설국에 나오는 고마코(駒子)라는 기생(소설의 주인공인데)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 유명한 여자배우가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그 고마코라는 실제 인물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었는데 추워서(왜 고타츠라고 있죠? 온수통이라고 하는데) 온수통을 놓고 같이 발을 녹였는데, 그 때 온수통을 받치던 나무 판떼기가 이거다’ 이렇게 써 놓았어요.

한국에서 창원사람들은 오원철이가 누군지 모르고, 트루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했다고 해도 트루먼이 누군지 모르고 멍하니 듣고만 있고 그러니까 아직도 일류국가가 못 되고 있는 거죠. 일류국가가 되려면 그 나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 바쳤던 사람, 땀 흘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서 달달 외우고, 아이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책으로 나오고 해야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나라를 망치려고 했던 사람 이름은 잘 외우는데 정작 기억해야 될 사람 이름은 잘 모르죠. 이러면 또 고액권 이야기가 나오는데 고액권에 김구(金九)를 넣겠다는 사람은 있어도, 이승만(李承晩)을 넣겠다는 사람은 적죠. 그런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마음가짐으로는 죽었다 깨나도 일류국가가 될 수 없죠. 일류국가는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일류로 올라갈수록 덕(德)이 있어야 되고, 고마움을 알아야 되고, 사람이 교양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대표선수가 지금 청와대에 들어가 있죠. 우리나라에서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랭킹을 냈는데 1등으로 대통령을 뽑았답니다.

따라서 일류국가는 어떠냐? 공동체의 적(敵)은 반드시 응징을 받습니다. 배은망덕한 자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고 감옥에 보내야 되는 거죠. 공동체에 도전하는 자를 용서하면 반란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자살하겠다는 거죠. 그러니까 공동체의 적이 반드시 응징되는 나라가 미국이나, 영국, 일본 이렇게 되는 것 아닙니까? 일본 사람이 죽고 싶으면 이런 자리에 와서 천황(天皇) 욕하면 됩니다. 특히 공인이 천황을 욕하면 그건 하루 만에 죽을 거예요.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있다고 해서 어디 시장이 총 맞고 그런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보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 공동체 안에서는 ‘일본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천황이라는 존재가 없으면 안 된다, 거기에 흠집을 내는 사람은 가만두지 않는다’고 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극우(極右)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극우라고 하는 거예요. 김두한이가 마지막 극우고 그 뒤로는 한국에서 극우를 본 적이 없죠.

이회창(李會昌) 씨 출마에 대해서 무슨 폭로한 이방호(李方鎬)라는 사람이 저하고 며칠 전에 통화를 하는데 ‘왜 그런 아주 애매모호한 대북(對北)정책을 씁니까’ 하니까 ‘우리는 극좌(極左)와 극우(極右)를 탈피해야 됩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래서 ‘극우란 말을 이런 식으로 쓰는구나’ 해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 극우, 극우 하는데 그 극우가 5% 같으면 피해도 되는데, 미안하지만 그 극우가 40%다’ 극우란 말을 그런 식으로 쓰는 사람은 그 머리에 좌파(左派)가 들어있습니다. 그런 식의 논리, 극우라는 말은 좌파가 쓰는 말입니다.

애국세력이 극우라는 말을 쓴 적이 있습니까? 극우라는 것은 존재도 하지 않아요. 자꾸 한겨레신문, KBS에서 극우, 극우 하니까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듣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나오는 게 극우다, 그렇게 내가 이야기하면 끝에 정신을 차려요. ‘아, 극우라는 것이 그런 뜻이 아니구나’ 그것은 한나라당 (이방호 씨가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니까) 안의 그 머리에 좌파의 논리가 들어가 있다, 그 사람들이 이명박을 에워싸고 있다가 그런 쪽으로 끌고 가다가 예상 못한 복병을 만났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No revolution, No democracy. No war, No nation state.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고, 전쟁이 없으면 국민국가가 없다」국민국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반드시 전쟁이 일어나고, 민주주의를 만들 때는 반드시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과 전쟁을 통해서 일류국가가 되고 민주주의를 성숙시킨다. 이것이 역사다. 전쟁, 혁명 없이 일류국가를 만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는데, 세계 역사를 들여다보면 전쟁·혁명이 많은 데서 일류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성숙되었다, 이 말이죠.

우리도 지난 60년 동안 이것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일류국가를 내다볼 수 있게 된 것 아닙니까? 4·19혁명, 1987년 6월 사태도 6월 혁명이라 붙여도 되요. 근대화 혁명, 5·16군사혁명입니다. 그리고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다 겪었으니까 우리는 일류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혁명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왜냐? 혁명이란 것은 기성질서를 바꾸는 것인데, 기성질서를 바꾸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몇 번의 혁명이 있었어요. 지주계급을 없애는 농지개혁이라는 혁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라는 위대한 지도자도 나중에 ‘나라에 부담이 되니까, 나이도 연로하시고 하니까, 당신 좀 내려가 주세요,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해서 밀어내버리는 4·19혁명도 있었어요. 그래서 40대의 젊은 기수 박정희(朴正熙)가 18년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장기집권에 취해있으니까, 역사가 김재규(金載圭)를 시켜서 62세의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49세의 패기만만한 전두환(全斗煥)이라는 사람을 새로 지도자로 앉히는 이런 종류의 혁명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뤄져왔고, 지금 또한 혁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즉 국민혁명, 의식혁명, 가치관의 혁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혁명의 흐름 중 의식의 혁명으로 다만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외국에 가보면 선진국 사람들은 조용하다고 했는데, 또 하나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것이, 선진국 사람들은 허례허식(虛禮虛飾)이 적습니다. 생활이 심플(simple·간단한)합니다. 복장에서도 나타나죠. 세계에서 넥타이를 가장 많이 매는 나라가 일본, 한국입니다. 유럽에서는 점점 넥타이를 안 매기 시작했고, 네덜란드에서는 이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넥타이를 안 매는 정도까지 가 있습니다.

가끔 백악관에서 무슨 공연을 한다고 할 때 대통령이 어디에 앉아있는지 보신 적 있습니까? 바로 이런 자리,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근사한 자리를 맞춰서 앉히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중의 하나죠. 의자의 크기 가지고 인간을 차별하는 나라는 절대 일류국가가 안되죠. 의자는 의자일 뿐이죠. 그렇다고 해서 상하 구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자의 크기를 가지고 사람의 지위를 결정한다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요새 무슨 행사를 준비한다는 사람들 제일 골치 아픈 게 그 의자 아닙니까? 의자의 순서 그것 때문에 구청장이 높으냐, 경찰청장이 높으냐가지고 싸우고 의자 잘못 배치했다고 해서 뺨 맞는 비서들 아마 많을 겁니다. 서열의식이 너무 강하면 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서열의식은 내면적인 것이라야 되고, 존경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존경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해야지 그걸 꼭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해서 자리로 차별을 하고, 무슨 집회에서 내빈 소개가 한 30분 정도 계속되는 걸 봤어요. 수를 가만히 세보니까 반 이상을 소개하더라고요. 내빈이 아니에요. 손님 소개가 아니고 자기들 소개하는 거죠. 또 내빈 소개에 자기 이름 빠지면 얼마나 원망을 듣는지 아십니까?

그러니까 허례허식을 줄여서 생활이 심플해야 됩니다. 일류국가에 가려면 생활이 소박해야 됩니다. 왜냐? 허례허식 아무리 해봐도 결국은 남는 게 없더라, 득 되는 게 없더라, 남보다 먼저 발언한다고 해서 그때 기분 좋은 것뿐이고 오히려 여러 사람 기분 나쁘게 했더라는 거죠. 넥타이를 계속 맬 필요가 있느냐, 화장도 좀 덜 하자, 지금 세계적으로 여자들 화장이 옅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게 다 일류국가로 가는 모습인 거죠.

바다와 관계가 있는 국가에서 또 일류국가가 만들어집니다. 바다와 일류국가는 굉장히 친하고, 내륙과 대륙이라는 말은 이류국가와 굉장히 친합니다. 일류국가를 세계사에서 쭉 훑어보면, 그리스·로마가 일류국가였죠. 그때 만든 원로원이나 변호사 제도가 지금까지도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다와 친한 나라였어요. 이탈리아도 반도고, 그리스도 반도, 섬, 그러니까 서로 교류를 하고 개방했죠.

중국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일류국가가 당(唐)나라죠. 당나라는 북방민족하고 한족(漢族)하고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가 합쳐져서 당이라는 나라를 만들었는데 황제들은 보통 북방계통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8~10세기 사이의 이슬람 사람들이 육지에서도 팽창을 했지만, 바다를 건넌 아라비아 상인들이 유명해진 때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9,10세기의 세계사에서 아라비아 상인들이 안간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신라의 괘릉에 가보면 아랍사람들의 석상이 있죠. 동지나해는 또 신라상인들이 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아랍상인들하고 신라상인들이 동지나해나 중국에서 만났고 그렇게 해서 아랍사람들이 신라에 와서 살고, 또 아랍사람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신라가 세계에 소개되었죠. ‘신라’라고 그 발음 그대로 Shilla, 그런 식으로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때가 이슬람의 전성기였죠.

베니스는 그 자체가 해상강국이죠. 1000년 동안 한 번도 정변이 없었던 영원한 일류국가입니다. 13세기의 몽골제국도 일류국가였죠. 이 나라는 육상중심 국가였습니다. 15, 16세기에는 이스탄불을 무대로 했던 오스만 투르크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 나라는 육상국가였는데 해군력을 길러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쳐들어가려다 메판토 해전이라든지 하는 전쟁 때문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그 다음 15세기에 본격적으로 서양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포르투갈이 제일 먼저 해양을 개척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원래 제노바 출신의 선원이었죠. 이탈리아에서 해군이 강했던 나라가 베니스와 제노바였어요. 포르투갈에서 항해 기술을 익히고, 스페인 왕의 보호를 받아서 미국대륙을 발견했죠. 15세기에 포르투갈의 엔리케라는 황태자가 항해학교를 만들어서 선원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래서 남미로 진출해서 자기 몸보다 몇 십 배나 큰 브라질을 식민지로 만들고, 동양으로 와서 조총을 일본에 전해준 것 아닙니까? 일본은 그 조총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죠. 똑같은 시대에 포르투갈 상인들이 조선에 왔다가 잡혔어요. 조총을 쏘아보게 되었는데 활보다 못하다 해서 처박아 버렸어요. 그래서 임진왜란 때 우리가 당한 거죠.

16세기는, 스페인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다음에,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1492년 스페인 남쪽에 있던 그라나다를 마지막으로 점령해서 800여년에 걸친 기독교의 수복운동이 끝이 났습니다. 800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에는 이슬람 세력이 남아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그라나다, 코르도바, 세비야 같은 안달루시아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다가 그 예쁜 알함브라 궁전을 남겨놓고 아프리카로 물러가면서 통일이 되었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한참 싸우다가 통일이 되면 일류국가에 도달합니다. 피크(peak·정점)에 도달하죠. 한국은 아직 피크 타임을 맞기 전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한 다음에 그 싸우던 힘이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상승효과)를 보면서 아마 한국이 일류국가로 가는 큰 걸음을 내딛고, 전성기를 맞을 것 같아요. 16세기 스페인이 통일을 한 다음에 국력이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죠. 개척지에서 은을 가져와서 근사한 건물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구경하면 16,17세기에 만든 건물이 지금도 그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1년간 관광 수입을 한 500억 달러 벌게 만들고 있죠. 16세기는 스페인의 세기였습니다.

다음으로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세기였습니다. 이 나라를 미국에서는 보통 저지대 국가(Low country)라고 불렀습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가 붙어있어서 우리는 베네룩스라고 하죠. 불란서에 가면 포도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방이 있습니다. 부르고뉴란 공국(公國)이 있었어요. 공국이 하도 힘이 세서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 점령하고, 나중에 북상해서 베네룩스를 부르고뉴 사람들이 지배를 하고 있었어요. 왕들이 결혼을 하면 나라를 선물로 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중에 스페인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그 때가 종교전쟁 때인데, 네덜란드에 신교(新敎)가 들어왔어요. 당시 스페인의 왕이 누구냐면 필립 2세, 스페인 말로 펠리페 2세라는 사람인데 ‘나는 가톨릭의 수호자다’ 해서 종교 탄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청교도를 잡아들이고, 종교재판을 열어서 불태워 죽이고 했습니다. 이때 네덜란드에 신교가 들어오니까 네덜란드 사람들이(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도 작용해서) 독립전쟁을 일으켰습니다. 한 80년 동안 스페인이 탄압을 했는데, 독립운동을 끝까지 지지한 사람이 지금의 네덜란드 사람들이고 중간에 운동 포기하고 ‘우리는 독립 안 해도 좋다’고 했던 사람들이 벨기에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끝까지 싸웠기 때문에 17세기 초에 독립을 쟁취한 다음에 힘이 넘쳐났어요. 스페인과 싸워서 독립을 쟁취했으니 얼마나 힘이 넘쳐나겠습니까? 그래서 바다로 갔습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안 간 데가 없습니다. 세계 곳곳에 17세기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설치고 다니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유령이 모는 배가 마음대로 돌아다닌다는 플라잉 더치맨(Flying Dutchman)이란 말이 있죠. 그래서 17세기에 한국하고도 만났지 않았습니까? 하멜(Hendrik Hamel)이라는 사람이 탄 자카르타에서 출발한 배가 대만을 거쳐서 나가사키(長崎)로 가는 길에 제주도에서 파선(破船)을 해서 32명이 붙잡힌 거죠. 그 중에 16명인가 살아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쓴 책이 ‘하멜 표류기’입니다.

3년 전에 제가 하멜의 고향에 갔었습니다. 하멜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지역이 항구예요. 그쪽이 당진하고 교류가 있습니다. 하멜 표류기를 한 번씩 읽어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저는 기행문을 많이 읽는데, 참 잘 읽힙니다. 특히 한국을 기행하고 쓴 글을 보면 우리가 못 보던 것을 봐요. 제가 추천해드리고 싶은 좋은 책 세 권이 ‘하멜 표류기’, 그 다음에 저번에 말씀드렸던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란 책으로 일본사람이 중국을 기행하고 쓴 것인데 거기에 신라 사람도 많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이사벨라 비숍(Isabella Bishop)이 쓴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 이란 책이 있어요. 이건 19세기의 한국을 기행하고 쓴 책입니다.

하멜이 쓴 책을 보면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중간에 반은 죽고, 또 도망가려다 붙잡혀서 몇 사람은 목이 달아나고, 전라도 지역에 흩어져 있다가 결국은 나가사키로 도망을 갑니다. ‘이 사람 눈에 비친 17세기의 조선이나 21세기의 한국이나 똑같네’ 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나라가 발전을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구나. 그것이 뭐냐? 바로 교육열입니다. 하멜이 감탄한 것이 ‘한국 사람들은 50세가 되도 과거 시험을 친다, 과거시험에 평생을 건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이런 이야기를 조금은 못마땅한 눈으로 써놓았어요. 자기들은 배를 잘 몰고 총을 잘 쏘는 것을 최고로 아는데, 이 사람들은 매일 책만 붙잡고 비생산적인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어요. 또 공무원들이 가혹하다, 고문도 많이 하고, 많이 뜯어가고 하는 공무원에 대한 비판도 많이 써놓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왕조실록에 하멜에 대한 기록은 한 줄 정도 나오죠. 이 사람들이 일본 나가사키로 돌아갔을 때 막부 사람들이 취조한 기록이 있습니다. 하멜을 조사한 기록이 있어요. 형사가 피의자를 조사하듯이 일문일답으로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나가사키 사람들이 하멜을 통해서 조선의 사정을 알려고 책 한 권 분량의 심문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게 바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죠. 외국사람 하나 나타나면 우리는 좀 이상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불러다가 구경이나 하고 처박아 놓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빼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통해서 조총도 만들고 사람을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로 본 거죠.

하여튼 이렇게 네덜란드가 17세기의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그러다 네덜란드가 쇠퇴기로 접어듭니다. 나라의 운명이라는 것은 반드시 기복(起伏)이 있습니다. 불란서에서 베르사이유 궁전을 만든 태양왕 루이 14세가 60년 동안 통치를 하면서 전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보기에 네덜란드가 해군은 강한데 육군은 약하니까 제일 만만했죠. 그래서 불란서가 막 쳐들어와서 쇠퇴해가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다시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죠. 저는 취재를 한다든지 하면서 네덜란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공통점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똑똑해요. 그 예가 바로 히딩크 감독이죠. 히딩크의 그 리더십이 바로 지성, 교양에서 나온 겁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이런 게 빈틈이 없지 않습니까? 딱 필요한 말만 하죠.

18세기는 프랑스의 세기입니다. 18세기에 루이 14세가 관료 제도를 확충하죠. 또 불란서가 유럽에서 농토가 제일 큰 나라입니다. 제일 좋은 나라예요. 농민들이 부자인 나라죠. 미국 농촌과 불란서 농촌이 세계에서 가장 풍족합니다. 그 생산력을 기반으로 해서 루이 14세가 전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18세기의 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하면 루이 14세를 봉쇄할 수 있을까’ 해서 영국을 중심으로 여러 동맹을 맺고 하죠.

전쟁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불만이 생깁니다. 경제가 망가지고 불만이 생기고 하다가 불란서 혁명이 일어나서 왕조가 타도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죠. 이 나폴레옹이 15년 동안 전쟁을 해서 100만 명 이상이 죽고, 유럽 전체가 일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다가 1815년에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지죠.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면 워털루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워털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굉장히 큰 데인 줄 알았는데 가보면 그냥 들판이에요. 한 3만 평쯤 될까요? 그 정도 들판에 양쪽의 10만 명 군대가 모여서 죽이고 살리고 하는 하루를 보낸 게 1815년 6월 18일입니다. 그 때 나폴레옹이 지고 영국 웰링턴이 이겨서 세계 역사가 달라졌죠.

그 다음 19세기는 영국의 세기죠. 불란서와 영국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서 서로 싸운 곳이 대체로 북미, 캐나다와 미국에서였습니다. 결국은 해군력이 강한 영국이 이겼습니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서 캐나다의 퀘벡 주, 몬트리올 이런 데 가보면 불란서 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고, 원래 불란서 식민지였던 뉴올리언스가 있는 루이지애나주는 미국이 독립을 해서 사들였습니다. 북미를 상대로 영국과 불란서가 자웅을 겨루는 식민전쟁을 하다 영국이 이겼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그 작은 섬나라가 19세기에 세계의 4분의 1을 제패하게 되었죠. 특히 인도 같은 나라를 지배해서 100여 년 동안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어요.

무엇으로 그렇게 성공했느냐? 첫째가 섬이기 때문이죠. 영국의 외교정책은 유럽에서 패권국가가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이었죠. ‘루이 14세나, 나폴레옹, 히틀러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면 틀림없이 유럽을 통일해서 영국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자기들끼리 싸우게 해서 유럽을 갈라놓아야 한다’ 즉 패권국가가 나타나면 안 된다는 그 정책으로 지금까지 유지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도버 해협을 건너지 못할 만한 강력한 해군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 번도 수도를 점령당한 적이 없죠. 노르망디의 저 바이킹 족(族)이 넘어가서 지금의 영국을 만든 셈인데, 그게 11세기니까 그 뒤로 천년 동안 영국은 한 번도 점령되지 않았습니다. 천년 동안 자기의 국토, 수도가 점령되지 않은 나라가 세계에 단 세 나라 있습니다. 베니스, 영국, 신라의 경주입니다. 수도를 잘 정한 나라였죠. 이러다가 독일이란 강적을 만난 것 아닙니까?

독일의 통일과정과 한국의 통일과정은 참 비슷한데, 독일이 19세기에 통일을 한 것이 앞으로 한국이 통일을 할 때에 참고가 될 만한 사건이죠. 그 때 독일은 사람들이 게르만 족(族)을 워낙 용감하다고 보니까 전부 다 부족 중심으로 해서 도시국가가 3~4개 정도 있었습니다. 그 옆에 불란서가 있었는데, 그 불란서가 계속 독일을 분열시켜 놓으니까 통일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프러시아가 점점 커져서 워털루 전쟁 때는 큰 공을 세우고 프리드리히 대왕 같은 유명한 왕들이 나타나죠. 19세기에 들어서면 프러시아가 점점 커집니다. 또 그전에 괴테라든지 하는 문학가들이 나타나서 ‘독일어를 쓰는 사람은 같은 민족이다’ 는 개념을 계속 심어주고, 나폴레옹한테 한 번 당하다 보니 ‘우리도 뭉쳐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시대정신을 이어받은 사람이 비스마르크, 몰트케 두 사람을 쓴 빌헬름 1세, 이 세 사람이죠. 이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독일 통일을 위해 세 번 전쟁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덴마크하고 전쟁을 하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와 싸우죠. 당시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던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수구적인, 점잖은 나라였습니다. 이 오스트리아가 독일 민족을 대표하고 있었는데 프러시아가 오스트리아 하고 싸웁니다. 그래서 게르만 족(族)의 챔피언이 오스트리아냐 프러시아냐를 결정하는 전쟁을 해서 프러시아가 이깁니다. 이겼다고 해서 비엔나를 점령한다든지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앞으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다른 독일 국가를 다 통일할 텐데, 여기에 간섭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나폴레옹 3세이 독일이 통일을 하지 못하도록 자꾸 방해를 하니까 불란서와 싸움을 하는 거죠. 이것이 1870년의 보·불 전쟁이죠. 현대전(現代戰)이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화력이 동원이 되고, 철도가 동원이 되어서 수십만 군대가 붙는, 기존 전쟁과 다른 현대전의 출발이 보·불 전쟁입니다. 불란서가 센 줄 알았는데, 이 보·불 전쟁을 해보니까 간단하게 끝났습니다. 큰 이유가 독일이 철도망이 발달해서, 철도를 통해서 병력을 집중시키고 이동시키고 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인데, 산업력이 뛰어난 독일이 불란서를 이기고 파리로 쳐들어가서 포위를 했죠.

불란서는 안에서 내분(內紛)이 일어났습니다. 결사항전이냐 아니면 항복이냐,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독일에 포위가 된 상태에서 파리 꼼뮌이라고 하는 파리 시청을 장악한 노동자 중심의 세력하고, 베르사유 궁전을 장악한 국회파가 싸워서 3만 명이 죽었습니다. 불란서가 한국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내부단결이 잘 안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 해서 국회파가 이겨서 파리 꼼뮌이라는 공산주의자들, 동족을 3만 명이나 죽였어요. 이념전쟁이었죠. 그래서 그 뒤 어떻게 되었습니까? 빌헬름 1세가 ‘이제는 왕이 아니고 황제다’ 해서 대관식을 루이 14세가 만든 베르사유 궁전 안에서 했습니다. 불란서 사람으로서는 얼마나 치욕적적입니까? 그렇게 알자스·로렌 지방을 다 먹어버리고 돌아갔습니다.

이러니까 불란서 사람들이 절치부심해서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죠. 이런 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이 난 것 아닙니까? 1차 세계대전은 지금의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진지전을 오랫동안 하면서 그곳에서 불란서 20대 청년의 40%가 전사를 했습니다. 150만 명이 전사를 했죠. 그러나 불란서는 승전국(勝戰國)이 되었죠. 독일은 망한 게 아니라 뒤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데모를 해서 앞에서는 잘 싸웠는데, 뒤에서 공산당과 유태인들이 사보타주(sabotage·태업)해서 졌다는 주장을 하죠.

여기에 원한을 품은 히틀러가 (히틀러의 사병이 거기에 참전을 했었는데) ‘내가 반드시 집권을 해서 유태인들, 저 반역자들하고 빨갱이들을 내 손으로 처단하겠다’는 복수심을 가지고, 이걸 근거로 해서 ‘나의 투쟁’이라는 걸 써서 집권해가지고 원하는 대로 했습니다. 유태인을 죽이고 러시아로 쳐들어가서 공산주의와 대결하려다가 러시아의 중심이 깊은 국토에 걸려서 나폴레옹처럼 러시아 전선에서 녹아버렸죠. 이러니까 또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등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서냉전이 시작된 거죠. 러시아보고 강대국이라고는 하지만 일류국가라고는 안하죠.

그래서 영국이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힘이 다 떨어다보니까 미국한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그 뒤부터는 미국이 세계 강대국이 되면서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되었죠. 흔히 우리가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남북전쟁 때문이었죠. 남북전쟁을 혹독하게 치러가지고 분리주의자들이 입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연방을 튼튼하게 했기 때문에 나라가 합쳐지면서, 또 전쟁을 통해 발달된 산업력을 팽창시키면서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만들 수 있었다는 거죠. 남북전쟁이 없었으면 20세기는 미국의 세기가 될 수 없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죠.

남북전쟁 때 미국에서 60만 명이 죽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상자가 많으냐면 미국사람들 총 쏠 때 서서 쏩니다. 그래서 미국이 그 뒤에 전쟁 많이 해서 죽은 사람 다 합쳐도 아직 60만 명이 안돼요. 이렇게 해서 미국의 세기가 되고 동서냉전이 시작되다가 고르바초프라는 사람이 소련에서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미국에서 레이건이 나타났죠.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또 요한 바오르 2세와 대처, 이런 위대한 사람들이 1980년대에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바웬사라는 아주 용감한 노조 지도자가 반공(反共)노조운동을 벌이면서 폴란드가 중요한 역할을 해서 소리도 없이 공산주의가 몰락했습니다. 그래서 동구권(東歐圈)이 해방이 되었죠. 지금 우리하고 일류국가를 놓고 다투는 라이벌들이 동구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일류국가에 진입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나라가 한국, 대만, 이스라엘인데 이제는 라이벌이 세 나라 더 나타났어요. 헝가리, 체코, 폴란드입니다. 이 세 나라가 곧 쫓아올 거예요. 이 나라들은 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 경험도 오래되고, 산업화의 경험도 오래된 굉장한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이 공산당 물을 먹고 60년 동안 마취상태에 있는 사이에 우리가 앞장서 갔는데 요새 이 나라들에 가보면 정신을 차리고 역사의 힘으로써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일류국가를 두고 다투는 경쟁자가 일곱, 여덟 나라 정도 바뀐 상태입니다.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 그렇게 되려면 중국이 좀더 개명(開明)하고, 중국에서 한 번 혁명이 일어나야 되지요.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났지만 아직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천안문 사태가 너무 일찍 일어나서, 4·19 같은 것을 하려고 하다가 등소평이 딱 정리를 하는 바람에 성공하지 못했죠. 그러나 지금보다 조금 더 발전해서 사람들이 이제는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우리도 한국처럼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쯤 되면 중국에서도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겠죠. 그러면 지금 일당 지배체제로 가고 있는 공산당(共産黨)이 뭔가 바뀌어야 할 겁니다.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렵죠. 일당 독재체제를 민주화 체제로 바꿀 때 스무스(smooth·부드럽게)하게 되겠습니까? 반드시 혼란이 일어날 거예요. 그러나 그 혼란이 내전상태로 갈 것이냐 아니면 한국처럼 적당하게 공산당 서기장 세 사람 희생되고 하는 식으로 정리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두고 볼 일이죠. 그러나 그런 사태를 겪지 않고서 중국은 발전할 수도 없고, 일류국가가 될 수도 없죠. 미국이나 이런 나라에서는 그걸 기다리면서 그 때 중국의 힘이 약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리 동양사람 입장에서는 중국이 5000년의 역사가 있는 슬기로운 나라이기 때문에 민주화도 큰 부작용 없이 나라가 쪼개지지 않고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보여집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일류국가가 되어야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결정을 해서 ‘우리의 목표는 일류국가다’ 라고 이미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죠. 이미 기업, 과학은 이런 부분은 일류국가의 문턱에 다리 하나가 넘어가 있죠. 그런데 나머지 발 하나가 일류국가로 들어가 있는 발 하나를 계속 뒷걸음치도록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이 또 다른 발 하나가 바로 뭐냐? 바로 좌파(左派)죠.

그리고 그 좌파들이 설치고 있는 소위 지식인 사회, 사농공상(士農工商) 할 때 사(士)자 계급 있지 않습니까? 말로 하는 세력. 그 사람들 세력을 약화시키든지 아니면 그 사람들을 일류로 만들어야 되죠. 지금 일류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기업이 아닙니다. 일류가 되어야 될 사람은 누구냐? 정치가 일류가 되어야 하고, 검사가 일류가 돼야 하고, 교수가 일류가 되고, 언론이 일류가 돼야 대한민국이 일류가 되는 것이지, 기업인은 더 일류가 될 필요가 없이 이미 일류고 과학자도 이만하면 한국이 괜찮은 과학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문자는 사농공상의 사(士)자 계급이죠.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사(士)자 계급에 속하네요.

이런 자가비판(自家批判)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이 이제 일류국가로 갈 수 있는 찬스가 왔다고 보여집니다. 그 찬스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우리 국민들이 누구도 쓸 수 없는 최선의 시나리오를 하나 써내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여기서 이만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李知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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