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會昌씨에게 당선은 유일한 목적인가?

안보와 법치를 살리고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겠다는 大義를 목표로 한다면 당선도 가능하고 낙선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李會昌씨는 신중한 분이다. 기동성은 떨어진다. 金泳三 전 대통령은 신중하진 않지만 기민하다. 타이밍을 잡는 결단이 빠르다. 수시로 변하는 정치판에서, 특히 時限이 있는 선거에선 기동성이 신중성보다 유리하다. 결정에 너무 시간을 끌면 상황이 앞서 달리는 바람에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의미가 없어진다. 졸속으로 빨리 한 결정은 실수로 판명되었을 때도 수정할 수 있다. 늦게 내려진 결정은 잘못되어도 수정할 수 없다.

李會昌씨가 신중한 것은 이해타산을 오래 한다는 뜻이다. 신념에 충실한 결단은 쉽게 빨리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李會昌 후보가 타산적 선거전략을 짜면 지고도 남는 것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신념에 충실한 전략을 짜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고, 져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李會昌씨가 대통령 당선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선거운동을 하면 실패할 것이고, 안보와 법치를 살리고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겠다는 大義를 목표로 한다면 당선도 가능하고 낙선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선 李會昌씨의 당락보다는 그가 이번 大選 이후에 자신의 지지층이 열망하는 선명보수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 임한다는 목표를 가졌느냐의 여부가 더 궁금하다.

그가 지고도 근사한 정당 하나를 남길 수 있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그 정당이 여러 명의 미래 대통령을 낳는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회창은 좌고우면 하지 말라! 기왕 나섰으니,

당신께서는 기억하시라. 가까이 보고 셈법만 읖조린다면, 귀하만 두 번 죽는 것이 아니라…

토론(회원)


좌고우면하지 말고,

귀하가 가고자 했던 큰,
곧게 뻗은 신작로로

우리의 소원과 귀하의 염원을 함께 담아
당당하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가시라.

당신께서는 기억하시라.
가까이 보고 셈법만 읖조린다면
귀하만 두 번 죽는 것이 아니라,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귀하를 지지했던 모든 사람,
세 번째 당신에게서 희망의 빛을 본 순수한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다는 걸 기억하시라.
당신이 멀리 보고, 크게 보시면
그래서 이 땅을 반듯하게 재건할 수 있는
계기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10년간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귀하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빚졌던 부채를
일시에 상환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그 남음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우리 현대사에 기록될 것이다.

깃발을 곧추세우시라!
진정,대의의 깃발이라면

총알이 날아들어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찢기면 꿰매 다시 세울 것이고,

당신이 쓰러지면 수십수백만의 아들들이 다시 집어들 것이다.
-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法治를 중시하는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게 오히려 충고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밀어주라고.

趙甲濟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에게 "이회창씨 출마는 正道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언론의 머리 기사이다. "이회창씨 출마는 정도이다"라고 해야 뉴스가 될 터인데 "물은 물이다"라고 한 말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세상은 비정상적인 행위가 일상적으로 정상으로 취급되어 왔다는 의미이다.

朴 대표의 이 한 마디에 李會昌 캠프는 실망하고 李明博측은 용기 백배했다고 한다. 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7일의 출마 성명문에서도 박근혜씨를 거명하면서 추켜세우고 이명박씨에 대해선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비판했다. 朴씨에 기대를 거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회창씨의 親朴反李 자세는 자기 부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회창씨가 출마를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후보의 안보와 법치 소홀이다. 안보와 법치 분야에서 박근혜씨가 이명박 후보보다 낫다는 증거가 없다.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명박 후보보다 더 애매모호하다. 특히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로는 6·15 반역선언의 계승을 말하고 김정일을 일체 비판하지 않는다.

이회창씨가 이런 박근혜씨의 지원을 기대한다면 이명박 후보를 비판할 자격이 없고 출마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씨는 黨人의 의무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해야 한다. 法治를 중시하는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게 오히려 충고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밀어주라고.

이회창 지지자들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純血 보수층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박근혜씨가 이회창씨를 지지하든 말든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애국심을 표현한다. 상당수는 이명박뿐 아니라 박근혜씨에게도 실망했다.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런 후 목숨을 건 자세로 비장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이회창씨를 밀어줄 사람은 자신 이외엔 아무도 없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영혼을 흔들고 가슴을 감동시키지 않고선 이길 방도가 없을 것이다.
-
李明博의 귀와 눈: 좌파참모들
한나라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 말誌 편집위원 출신이 대변인.

金成昱(좌익전문 기자)



 중앙일보 10월8일자 ‘이명박 대선준비팀 이끄는 젊은 실세들’ 題下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작전지도를 그리는 대선 준비팀 간사들은 보수색 짙은 당의 기존 이미지와 판이한 컬러다. 학생 운동권 출신의 40대 소장파가 주축이다. 이들이 곧 선보일 선거 구상이 과거 한나라당 방식과 차이가 클 것임을 예고한다> 
‘대한민국 赤化보고서’의 필자인 좌익전문기자 金成昱씨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386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여론 동향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 선거의 기본전략을 마련하는 李후보의 ‘눈’과 ‘귀’에 해당한다. 정두언 의원을 전략기획회의 총괄팀장으로 하여 김해수(48) 비서실 부실장, 김성식(48) 조직기획팀장, 이태규(43) 전략기획팀장, 은진수(45) 법률지원팀장 및 김인규(57) 방송전략팀장(전 KBS 이사), 이우찬(47) 홍보기획팀장(제일기획 출신), 진성호(45) 뉴미디어팀장(전 조선일보 기자) 등이다.  김성식 조직기획팀장은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78년 ‘유신철폐시위’에 이어 1986년 ‘제헌의회 그룹(CA : Constituent Assembly)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CA그룹은 한국사회를 ‘제국주의의 新식민지’로 간주하면서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한 左派혁명 운동단체였다. 金팀장은 출소 후 전국화학노조 기획부장과 민주당 동대문乙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2000년 한나라당 서울관악甲 지구당 위원장으로 들어갔다. 2004년 총선에서 떨어진 후에는 손학규 前경기지사를 보필하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동했고, 孫 前지사 탈당 후에는 MB캠프에 발탁됐다. 金팀장은 부시장 시절 평양을 왕래하며, 소위 ‘북한 농촌현대화 사업’ 등 경기도의 對北지원 사업에 관여했다. 
金팀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KSOI 출신들은 左派대선후보 캠프에 대거 진출해 있다. 각각 KSOI 소장·副소장·수석전문위원·기획위원 출신인 김헌태·정기남·정창교·문명학氏는 각각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 권영길 후보 정무특보를 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K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美문화원 점거사건으로 복역  

전략기획회의 멤버는 아니지만, 이명박 후보의 측근 중 한 명인 정태근 중앙선대위 유세수행 단장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鄭단장은 ‘삼민투(三民鬪)’ 활동을 벌이다 19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三民鬪는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위원회’ 약칭인 反韓·反美단체였다. 三民鬪는 작년에 386간첩단사건인 ‘일심회(一心會)’ 사건으로 다시 거론됐었다. 一心會 사건의 공범인 이정훈, 손정목氏는 각각 고려대, 연세대 三民鬪 출신이다.  鄭단장은 출소 후 친북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1999년에 ‘한국의 미래, 제3의 힘’ 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지난 해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鄭단장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출신들을 대거 영입할 때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이명박 사람’이 됐다. 김해수(49) 후보 비서실 부실장은 고려대 출신으로서 캠퍼스 커플인 부인 전현주氏와 함께 대학 졸업 후 공단에 들어간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부평공단에서 그는 악기 공장 도장공으로 2년 반 일했고, 부인은 미싱사로 취업했다.  감옥을 다녀온 그는 정치 광고회사를 거쳐 안상수 원내대표의 96년 총선을 도우며 정치권에 발을 딛는다.
이명박 후보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류했다. 캠프 합류는 이재오 前최고위원과의 친분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43)전략기획팀장 역시 한국항공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운동가 출신이다. 1990년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통합하면서 한나라당 사람이 됐다.  그는 한나라당 윤여준 前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후 여의도연구소 전략기획팀장 등을 지냈고, 지난 6월 정두언·박형준 의원 추천으로 캠프에 공식 합류했다고 한다. 

월간 ‘말’ 편집위원 출신이 대변인  

현역의원 중 정두언·주호영 의원과 함께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형준 의원은 동아대 교수출신으로 소위 진보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朴의원은 91년 무렵부터 左派매체인 월간 ‘말’ 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朴의원은 2004년 국회 입성 후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과 ‘수요모임’이라는 소위 소장파·개혁파 모임을 이끌며 당내의 소위 강경보수파에 맞서왔다.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에는 정부참칭 조항·찬양고무罪·불고지罪 폐지 등 국가보안법의 전면적 개정을 주장하며 보수적 의원들 모임인 ‘자유포럼’과 논쟁을 벌였다. 李후보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朴의원은 10월22일 PBC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 보수 세력이 단합한 정권교체”를 강조하여 반공(反共)성향의 정통보수를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MB캠프에는 한나라당의 ‘좌’ 클릭 수정을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태규 전략기획팀장은 2004년 1월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가야 할 총선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일단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보수(保守)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수구(守舊)라고 생각한다. ‘왼쪽’으로 한참 가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한나라당이 좌파(左派)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왼쪽으로 많이 가서 우리 사회의 중도적인 입장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통일뉴스 등 親北매체에 따르면, MB캠프 정태근 유세수행단장은 2003년 4월27일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같은 三民鬪 동지였던 허인회氏 등과 함께 서명한 것으로 나온다. MB캠프는 경선 이후 조직정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정통보수 심지어 뉴라이트 인사들까지 캠프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출신에서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을 벌여 온 한 인사는 MB캠프 내 운동권출신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도 좌파였지만 많은 후회와 반성 끝에 우파로 돌아섰다. 반면 캠프 내 많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再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도 정통보수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역시 우리와 적지 않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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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會昌씨에게는 당선이 유일한 목표인가?
지고도 이기려면 선명보수 정당을 만들어야. 그 정당이 여러 명의 미래 대통령을 낳는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趙甲濟

李會昌씨는 신중한 분이다. 기동성은 떨어진다. 金泳三 전 대통령은 신중하진 않지만 기민하다. 타이밍을 잡는 결단이 빠르다. 수시로 변하는 정치판에서, 특히 時限이 있는 선거에선 기동성이 신중성보다 유리하다. 결정에 너무 시간을 끌면 상황이 앞서 달리는 바람에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의미가 없어진다. 졸속으로 빨리 한 결정은 실수로 판명되었을 때도 수정할 수 있다. 늦게 내려진 결정은 잘못되어도 수정할 수 없다.
李會昌씨가 신중한 것은 이해타산을 오래 한다는 뜻이다. 신념에 충실한 결단은 쉽게 빨리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李會昌 후보가 타산적 선거전략을 짜면 지고도 남는 것이 없는 싸움이 될 것이다. 신념에 충실한 전략을 짜면 이길 수도 있을 것이고, 져도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李會昌씨가 대통령 당선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선거운동을 하면 실패할 것이고, 안보와 법치를 살리고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겠다는 大義를 목표로 한다면 당선도 가능하고 낙선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선 李會昌씨의 당락보다는 그가 이번 大選 이후에 자신의 지지층이 열망하는 선명보수당을 만들어 내년 총선에 임한다는 목표를 가졌느냐의 여부가 더 궁금하다.
그가 지고도 근사한 정당 하나를 남길 수 있는가, 그것이 궁금하다. 그 정당이 여러 명의 미래 대통령을 낳는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회창은 좌고우면 하지 말라! 기왕 나섰으니,

당신께서는 기억하시라. 가까이 보고 셈법만 읖조린다면, 귀하만 두 번 죽는 것이 아니라…

토론(회원)


좌고우면하지 말고,

귀하가 가고자 했던 큰,
곧게 뻗은 신작로로

우리의 소원과 귀하의 염원을 함께 담아
당당하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가시라.

당신께서는 기억하시라.
가까이 보고 셈법만 읖조린다면
귀하만 두 번 죽는 것이 아니라,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귀하를 지지했던 모든 사람,
세 번째 당신에게서 희망의 빛을 본 순수한 사람들까지
모두 죽는다는 걸 기억하시라.
당신이 멀리 보고, 크게 보시면
그래서 이 땅을 반듯하게 재건할 수 있는
계기라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10년간 당신을 지지했던 사람뿐만 아니라
귀하가 대한민국 현대사에 빚졌던 부채를
일시에 상환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그 남음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우리 현대사에 기록될 것이다.

깃발을 곧추세우시라!
진정,대의의 깃발이라면

총알이 날아들어도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찢기면 꿰매 다시 세울 것이고,

당신이 쓰러지면 수십수백만의 아들들이 다시 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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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法治를 중시하는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게 오히려 충고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밀어주라고.

趙甲濟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에게 "이회창씨 출마는 正道가 아니다"라고 했다는 말이 언론의 머리 기사이다. "이회창씨 출마는 정도이다"라고 해야 뉴스가 될 터인데 "물은 물이다"라고 한 말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세상은 비정상적인 행위가 일상적으로 정상으로 취급되어 왔다는 의미이다.

朴 대표의 이 한 마디에 李會昌 캠프는 실망하고 李明博측은 용기 백배했다고 한다. 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는 지난 7일의 출마 성명문에서도 박근혜씨를 거명하면서 추켜세우고 이명박씨에 대해선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 비판했다. 朴씨에 기대를 거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회창씨의 親朴反李 자세는 자기 부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회창씨가 출마를 선언한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후보의 안보와 법치 소홀이다. 안보와 법치 분야에서 박근혜씨가 이명박 후보보다 낫다는 증거가 없다. 안보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이명박 후보보다 더 애매모호하다. 특히 김정일을 만나고 온 뒤로는 6·15 반역선언의 계승을 말하고 김정일을 일체 비판하지 않는다.

이회창씨가 이런 박근혜씨의 지원을 기대한다면 이명박 후보를 비판할 자격이 없고 출마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씨는 黨人의 의무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해야 한다. 法治를 중시하는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게 오히려 충고해야 한다.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밀어주라고.

이회창 지지자들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대한민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純血 보수층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박근혜씨가 이회창씨를 지지하든 말든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애국심을 표현한다. 상당수는 이명박뿐 아니라 박근혜씨에게도 실망했다.

이회창씨는 박근혜씨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런 후 목숨을 건 자세로 비장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이회창씨를 밀어줄 사람은 자신 이외엔 아무도 없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영혼을 흔들고 가슴을 감동시키지 않고선 이길 방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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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明博의 귀와 눈: 좌파참모들
한나라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 말誌 편집위원 출신이 대변인.

金成昱(좌익전문 기자)



중앙일보 10월8일자 ‘이명박 대선준비팀 이끄는 젊은 실세들’ 題下 기사 일부를 인용한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작전지도를 그리는 대선 준비팀 간사들은 보수색 짙은 당의 기존 이미지와 판이한 컬러다. 학생 운동권 출신의 40대 소장파가 주축이다. 이들이 곧 선보일 선거 구상이 과거 한나라당 방식과 차이가 클 것임을 예고한다>
‘대한민국 赤化보고서’의 필자인 좌익전문기자 金成昱씨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386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여론 동향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 선거의 기본전략을 마련하는 李후보의 ‘눈’과 ‘귀’에 해당한다. 정두언 의원을 전략기획회의 총괄팀장으로 하여 김해수(48) 비서실 부실장, 김성식(48) 조직기획팀장, 이태규(43) 전략기획팀장, 은진수(45) 법률지원팀장 및 김인규(57) 방송전략팀장(전 KBS 이사), 이우찬(47) 홍보기획팀장(제일기획 출신), 진성호(45) 뉴미디어팀장(전 조선일보 기자) 등이다. 김성식 조직기획팀장은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78년 ‘유신철폐시위’에 이어 1986년 ‘제헌의회 그룹(CA : Constituent Assembly)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CA그룹은 한국사회를 ‘제국주의의 新식민지’로 간주하면서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한 左派혁명 운동단체였다. 金팀장은 출소 후 전국화학노조 기획부장과 민주당 동대문乙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2000년 한나라당 서울관악甲 지구당 위원장으로 들어갔다. 2004년 총선에서 떨어진 후에는 손학규 前경기지사를 보필하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동했고, 孫 前지사 탈당 후에는 MB캠프에 발탁됐다. 金팀장은 부시장 시절 평양을 왕래하며, 소위 ‘북한 농촌현대화 사업’ 등 경기도의 對北지원 사업에 관여했다.
金팀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KSOI 출신들은 左派대선후보 캠프에 대거 진출해 있다. 각각 KSOI 소장·副소장·수석전문위원·기획위원 출신인 김헌태·정기남·정창교·문명학氏는 각각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 권영길 후보 정무특보를 맡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K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美문화원 점거사건으로 복역

전략기획회의 멤버는 아니지만, 이명박 후보의 측근 중 한 명인 정태근 중앙선대위 유세수행 단장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鄭단장은 ‘삼민투(三民鬪)’ 활동을 벌이다 19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三民鬪는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위원회’ 약칭인 反韓·反美단체였다. 三民鬪는 작년에 386간첩단사건인 ‘일심회(一心會)’ 사건으로 다시 거론됐었다. 一心會 사건의 공범인 이정훈, 손정목氏는 각각 고려대, 연세대 三民鬪 출신이다. 鄭단장은 출소 후 친북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1999년에 ‘한국의 미래, 제3의 힘’ 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지난 해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鄭단장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출신들을 대거 영입할 때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이명박 사람’이 됐다. 부인 한신자(43·이즈피엠피 대표)氏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김해수(49) 후보 비서실 부실장은 고려대 출신으로서 캠퍼스 커플인 부인 전현주氏와 함께 대학 졸업 후 공단에 들어간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부평공단에서 그는 악기 공장 도장공으로 2년 반 일했고, 부인은 미싱사로 취업했다. 감옥을 다녀온 그는 정치 광고회사를 거쳐 안상수 원내대표의 96년 총선을 도우며 정치권에 발을 딛는다.
이명박 후보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류했다. 캠프 합류는 이재오 前최고위원과의 친분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43)전략기획팀장 역시 한국항공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운동가 출신이다. 1990년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통합하면서 한나라당 사람이 됐다. 그는 한나라당 윤여준 前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후 여의도연구소 전략기획팀장 등을 지냈고, 지난 6월 정두언·박형준 의원 추천으로 캠프에 공식 합류했다고 한다.

월간 ‘말’ 편집위원 출신이 대변인

현역의원 중 정두언·주호영 의원과 함께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형준 의원은 동아대 교수출신으로 소위 진보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朴의원은 91년 무렵부터 左派매체인 월간 ‘말’ 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朴의원은 2004년 국회 입성 후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과 ‘수요모임’이라는 소위 소장파·개혁파 모임을 이끌며 당내의 소위 강경보수파에 맞서왔다.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에는 정부참칭 조항·찬양고무罪·불고지罪 폐지 등 국가보안법의 전면적 개정을 주장하며 보수적 의원들 모임인 ‘자유포럼’과 논쟁을 벌였다. 李후보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朴의원은 10월22일 PBC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 보수 세력이 단합한 정권교체”를 강조하여 반공(反共)성향의 정통보수를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MB캠프에는 한나라당의 ‘좌’ 클릭 수정을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태규 전략기획팀장은 2004년 1월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가야 할 총선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일단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보수(保守)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수구(守舊)라고 생각한다. ‘왼쪽’으로 한참 가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한나라당이 좌파(左派)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왼쪽으로 많이 가서 우리 사회의 중도적인 입장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통일뉴스 등 親北매체에 따르면, MB캠프 정태근 유세수행단장은 2003년 4월27일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같은 三民鬪 동지였던 허인회氏 등과 함께 서명한 것으로 나온다. MB캠프는 경선 이후 조직정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정통보수 심지어 뉴라이트 인사들까지 캠프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출신에서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을 벌여 온 한 인사는 MB캠프 내 운동권출신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도 좌파였지만 많은 후회와 반성 끝에 우파로 돌아섰다. 반면 캠프 내 많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再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도 정통보수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역시 우리와 적지 않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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