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인간의 심리와 사회 문제를 내밀하게 탐구해왔던 여류작가 손장순이 한국전쟁으로 비롯된 한 가족의 비극적 운명과 사랑을 다룬 서정적 로맨스 소설 『폭죽』(은행나무 刊)으로 돌아왔다. 그는 숙명의 줄에 얽혀있는 모녀의 삶과 사랑, 전쟁의 아픈 기억이 빚어낸 부자간의 이념적 갈등과 화합을 간결하면서도 로맨틱한 문체로 풀어냄으로써, 인간의 사랑과 삶의 함의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제시한다.
『폭죽』을 통해 작가는 다랑과 수빈 모녀의 사랑을 중심축으로 하여, 노년에 재회한 추억의 사랑(다랑과 현준), 혼자가 된 중년들의 줄다리기 사랑(수빈과 효찬), 풋사랑을 끝내고 성숙해지는 젊은 청춘들의 사랑(중하의 사랑)을 제각기 다른 삼색의 빛깔로 강렬하고도 아름답게 펼쳐낸다.
‘비극적인 운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의 세 빛깔의 사랑 이면에는 삶의 고통을 끊임없이 안겨주는 ‘이데올로기’의 내재적 갈등이 존재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근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가장 큰 역사적 충격과 상처를 안겨주었던 6.25전쟁을 삶의 역경과 대물림 되는 아픔의 근원으로 삼고 있다. 전쟁에서 파생되는 참담한 고통의 기억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은 다랑과 현준을 일생동안 괴롭혔다. 전쟁은 그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갔고, 부자지간의 단절을 초래했으며, 그들의 인생 자체를 바뀌게 한 원흉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은 자식 세대에까지 비극적 숙명을 대물림하였다. 오누이인지도 모르고 순간적인 열정으로 임신에까지 이르는 효찬과 수빈, 이들 역시 다 같은 전쟁의 희생자인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운명에 당당히 맞섬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감내해간다.
'인간은 무척 복잡한 다중인격의 소유자다. 인간의 정체를 알기 위해 이때까지 소설 쓰기를 계속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인간 오지의 심오한 미궁은 흔들리는 부표와 같아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 불가사의를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을 해체하여 그 실체를 알아낸 다음 어떻게 재미있고 그럴듯하게 재조립하는가가 바로 소설 쓰기인 것 같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줄거리)
혼자가 된 중년의 남녀 수빈과 효찬은 한 동창의 소개로 만난 자리에서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서로 끌린다. 효찬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그녀는 잠시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신적 사랑을 추구하는 그녀는 그가 원하는 육체적 사랑에 응대하지 않는다.
수빈의 어머니인 다랑은 6.25전쟁에서 만났던 운명의 연인 현준을 가슴속에 담아둔 채 그들의 딸인 수빈만을 기르며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다랑은 헤어진 지 50여 년 만에 현준과 재회하게 되고, 그들은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이미 흐르고 흐른 세월 속에서 늙고 병약해진 현준은 중병에 걸리고, 누군가의 간호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되자 좌절하고 만다. 다랑 역시 참혹했던 전쟁터에서 중공군, 인민군, 국군, 국적을 불문한 적과의 동침으로 그녀가 낳은 아들이 이들 중 누구의 아들인지 알 수조차 없는 능욕을 당한데다, 그런 자식마저 떠나보내야만 했던 자신만의 뼈아픈 과거를 지니고 고통 속에 살아왔다. 이러한 양심의 가책은 타인에 의해 짓밟혔던 그녀를 일생동안 괴롭혔고, 그녀는 고해성사를 통해 그 무거운 멍에를 벗어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는 신산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삶은 아름다운 것이란 깨달음을 얻고, 현준과 서로 의지하며 헤쳐 나갈 행복한 미래를 꿈꾸게 된다.
한편 수빈은 효찬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의 어린아이 같고 의존적인 성격에 적잖이 실망하고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끌림도 사랑도 아닌 그에 대한 막연한 감정으로 고민스러워하던 어느 날, 그녀는 모임을 통해 놀러간 곳에서 우연히 효찬을 발견한다. 그들의 갑작스런 재회는 강한 운명 같은 사랑의 동기를 부여하고 마침내 연인의 관계를 완성시킨다. 하지만 이런 열정도 잠시, 헤어졌던 다랑의 가족들이 다시 모이게 된 운명의 날에 그들은 예상치 못했던 파국과 마주한다.
작가 소개
(손장순)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불어불문과와 프랑스 소르본 대학원에서 현대 프랑스 소설을 연구했으며, 한양대학교 불어불문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단편 『입상』과 『전신』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데뷔한 그는 인간 심층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실체를 깊고도 예리한 통찰력으로 형상화해 왔다.여성 작가로는 드물게 욕망의 핵심과 애증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사회성 짙은 이데올로기의 문제와 함께 치열하게 다루어온 그는 일찍이 화제의 베스트셀러 『한국인』『공지』『세화의 성(城)』을 통해 장편 작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장편 『심씨 일가의 사람들』『야망의 여자』『돌바람』『나의 삶은 다시 바그다드에서』, 영역본 『물 위에 떠 있는 도시 A Floating City on the Water』, 중단편 소설집『대화』『불타는 빙벽』『절규』『도시일기』『허수아비와 근사치』『두 개의 얼굴』『약속』, 칼럼집 『이룰 수 없는 서원(誓願)』, 단편 『작두』 등이 있다. 도서출판 문화공간 발행인과 문학계간지 《라쁠륨》 편집인 겸 주간을 역임한 작가는 《현대문학》《문학사상》《월간중앙》《조선일보》 등에 연재를 하였다.
256쪽/ 값 9,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