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에 북한을 탈출, 귀순하였다가 1969년에 한국을 탈출, 홍콩으로 피신했다가 사이공에서 잡혀와 위장귀순한 간첩으로 기소되어 사형판결을 받자마자 처형된 李穗根(이수근)씨의 조카 裵慶玉(배경옥)씨에 대한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裵씨는 이수근씨가 여권을 위조할 때 도와주었다고 하여 간첩의 공범으로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징역 20년을 살고 난 후 출소하여 줄곧 무고함을 호소해왔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올해 이수근은 위장귀순을 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귀순했으나 정보부가 李씨를 괴롭히는 바람에 제3국에 가서 살려고 탈출한 것이며 김형욱 정보부장이 이 사건을 위장귀순으로 조작한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배경옥씨는 재심을 신청했고 며칠 전 서울고등법원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 더구나 사형이 집행된 사건에 대하여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리는 예는 극히 드물다. 확정된 사건을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증인이나 증언 증거가 발견되었을 때라든지 사건이 고문 등에 의하여 조작되었다는 확정적 증거가 나타날 때만 재심을 한다. 기자가 1989년 3월호에 '李穗根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추적 기사를 쓴 것이 이 사건의 진실을 다시 파헤치는 시작이 되었다. 법원이 과거의 판단을 번복하고 새로운 진실을 찾아나서도록 만드는 데 18년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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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울 고 등 법 원
제 6 형 사 부
결 정
사 건 2005재노20 가. 국가보안법위반
나. 반공법위반
다. 공문서위조
라. 위조공문서행사
피 고 인 배경옥 (380811-1★★19210)
주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165 목련아파트 104- 본적 서울 종로구 장사동 122
재심청구인 피고인
검 사 최진규
변 호 인 법무법인 동호합동법률사무소
담당변호사 이진우
재심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1969. 10. 7. 선고 69노451 판결 중 피고인 부분
주 문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한다.
이 유
1. 재심대상판결의 확정
각 판결문 등본의 기재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이 인정된다.
가. 재심대상판결의 범죄사실의 요지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에 재직하고 있던 이수근은 1967. 3. 22. 북한 노동당 남조선국장 이효순의 지령에 따라 판문점을 통하여 위장귀순한 후 대한민국에 잠입하여 활동하다가 1969. 1. 27.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탈출한 사람이고, 피고인은 이수근의 처조카인바,
피고인은, 북한은 대한민국을 전복하여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로서 항시 국가기밀탐지, 시설파괴, 양민살상 등 목적수행을 위하여 간첩 또는 공작원을 남파함은 물론 허위선전으로 동조세력 규합, 민심교란, 용공사상의 부식 등에 광분하고 있어 북한 노선을 지지하여 그 허위선전에 동조 또는 그 구성원과 화합하거나 금품을 수수하고 반국가활동에 종사하면 북한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 1968. 5. 3. 경 이수근으로부터, 피고인이 베트남에 가는 도중 홍콩에서 모스크바 경유 북한으로 발송하는 암호연락문을 소련 외무성이나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 앞으로 우송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 당시 위 암호연락문에는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후 대한민국에서 수집한 정보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접선 공작원 남파를 요청함과 동시에 그 동안 수집탐지한 국가기밀을 누설하는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수락한 다음, 이수근의 지시대로 위 암호연락문을 성경책에 은닉하고서 1968. 5. 5. 17:00경 비행기편으로 홍콩으로 출국한 후 수신처를 이수근의 지시대로 소련 외무성 또는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으로 하게 되면 당국의 의심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고 성경책이 한글판이라 모스크바 주재 신부 앞으로 발송하여도 북한대사관에 전달되리라고 판단한 나머지 수신인을 ‘소련 모스크바 중앙천주교회 신부’로 하여 위 암호연락문을 국제소포로 발송하고, 그 무렵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을 경유하여 북한으로 이를 우송전달되게 함으로써 반국가 단체 구성원인 이수근이 북한지령사항 수행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수집탐지한 것을 누설하고 있다는 정을 알면서도 위 암호연락문을 발송하여 간첩인 이수근의 국가기밀 누설행위를 방조하고,
(2) 1968. 7. 17. 베트남에서 귀국한 후 1968. 7 말경 이수근과 회합하여 위 암호연락문발송경위를 보고하고, 1968. 8 중순 이수근과 회합한 자리에서 동인으로부터 “이북에서 이렇게 와 있지만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있다. 당국의 감시가 심하여 자유가 없으니 중립국으로 탈출, 이남의 정치정세를 날조폭로하는 내용의 글을 국제적으로 발표하여 대한민국을 비난 공격하는 한편 북한중앙당에 서신연락하여 북한과 접선하게 되면 북한을 위하여 공작할 수 있다. 그런데 탈출을 위하여 밀선같은 선편을 구할 수 있겠느냐”라는 등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국외로 탈출할 것을 제의받자 밀선은 불가능하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여권은 돈만 있으면 발급받을 수 있으니 연구해 보자고 한 후, 그 무렵부터 이수근과 수차례 탈출방법을 논의한 끝에 1968. 12.경 타인 명의의 여권을 위조하여 탈출하기로 하고, 1969. 1. 23.경 미리 오제영 명의로 발급받아 소지하고 있던 여권의 사진첩에 오제영의 사진을 뜯어내고 1969. 1. 25. 그 곳에 이수근의 변장사진을 붙여 여권인 공문서를 위조하고, 1969. 1. 27. 17:00경 위 위조된 여권을 행사하여 김포공항발 시.피.에이(C.P.A) 비행기편으로 이수근과 함께 출국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구성원으로서 지도적 임무에 종사하여 온 이수근과 공모합동하여 북한 지령에 의해 국가기밀탐지, 국내지하조직체와 비밀통신연락 등 반국가활동을 하고자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탈출하고,
(3) 1968. 12. 초순경 이수근으로부터 “나도 이북방송을 듣고 있는데 앞으로 통일이 되면 필요하니 너도 이북방송을 들어라.”는 요지의 지시를 받고 1969. 1. 25. 및 26. 양일간 각 자정경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소재 약혼녀인 최부전의 집에서 각 약 10분간에 걸쳐 라디오 다이얼을 북한 평양방송 채널에 조정하여 북한 찬양 가곡, 농업생산량보도, 시사문제 해설 등 북한의 선전방송을 청취하여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허위선전활동에 동조하여 이를 이롭게 하고,
(4) 1968. 12. 초순경부터 1968. 12. 말경까지 3차례에 걸쳐 피고인의 집 등에서 반국가단체인 구성원인 이수근으로부터 여권발급 소속비 명목으로 합계 55만 원을 교부받았다.
나. 재심대상판결의 선고 및 확정 내용
피고인은 1969. 3. 22. 위와 같은 범죄사실로 서울형사지방법원 69고11142, 69고11535(병합) 국가보안법위반죄, 반공법위반죄, 공문서위조죄, 위조공문서행사죄로 기소되어 1969. 5. 10. 위 법원에서 그 범죄사실이 모두 유죄로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1969. 10. 7. 항소심(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판결은 상고심(대법원 69도1991)에서 1969. 12. 23. 상고가 기각되어 그대로 확정되었다.
2. 재심청구이유의 요지
가. 재심대상판결은 피고인의 국가보안법위반죄, 반공법위반죄 부분에 대하여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위장귀순한 자로서 간첩이라는 전제하에 유죄로 인정하였고, 그 판결은 상고심을 거쳐 1969. 12. 23. 확정되었는데, 그 후 이수근이 북한의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이 언론기관 등을 통하여 밝혀졌다. 따라서 이는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이 발견된 것이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 소정의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나. 또한 피고인은 1969. 1. 31. 베트남에서 체포되어 1969. 2. 1.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후 1969. 2. 11.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영장 없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그 조사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받았는데,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피고인에 대한 불법구금행위는 형법 제124조 소정의 ‘직권남용 체포, 감금죄’를 구성하고, 고문 등의 가혹행위는 형법 제125조 소정의 ‘독직 폭행, 가혹행위죄’를 구성하여 이는 각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바22 이수근 간첩 조작의혹사건’에서 2006. 12. 19.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제26조에 따라 ‘진실규명결정’을 하면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피고인에 대한 직권남용감금죄, 독직가혹행위죄가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는데, 위 위원회의 위와 같은 판단은 형사소송법 제422조 소정의 확정판결에 갈음한 증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므로, 결국 재심대상판결에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소정의 재심청구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3. 재심사유에 대한 판단
가. 관련 규정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는 “원판결, 전심판결 또는 그 판결의 기초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의 제기 또는 그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증명된 때”를 재심사유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422조는 “전 2조의 규정에 의하여 확정판결로써 범죄가 증명됨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할 경우에 그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 단,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라 함은 유죄판결을 할 수 없는 사실상, 법률상의 장애가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고, “그 사실을 증명하여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재심사유가 된 범죄가 있다는 사실의 증명이 있으면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 것이다.
나. 인정사실
피고인이 이 사건 재심사건에서 제출한 증 제1호 내지 증 제30호증,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증거로 된 피고인, 이수근, 김세준이 중앙정보부에서 작성한 각 진술서, 동인들에 대한 중앙정보부에서의 각 피의자신문조서, 공판조서 등의 기재 등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라 한다)의 결정 내용 등
(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과정 및 결정 내용
①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 등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하여 2005. 5. 31. 법률 제7542호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제정되었는데, 위 법에 의하면, 위 법이 정하는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되(제3조) 그 위원은 공인된 전임교수 이상의 직에,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의 직에, 3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공무원의 직에, 성직자 또는 역사고증·사료편찬 등의 연구활동에 각 10년 이상 종사한 자 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8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으로 구성하고(제4조), 직무독립성과 신분을 보장받으며(제8조), 조사 과정에서 자료 등의 제출 요구를 받은 기관 등은 지체 없이 이에 응하여야 하고(제23조 제5항) 출석요구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자에 대하여는 동행 명령장을 발부할 수도 있으며(제24조),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조사가 종료되어 진실규명이 된 경우 진실규명 조사결과를 의결로써 결정하며(제26조) 그 활동을 조사보고서로 작성하여 매년 2회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여야 하며, 그 종합보고서에는 진실규명 사건 피해자, 희생자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가가 하여야 할 조치사항에 대한 권고를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제32조).
②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피고인이 2005. 12. 2.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 등에 의하여 이수근과 피고인이 간첩으로 조작되었으니 진실을 규명해달라”는 취지로 ‘바22’호로 진실규명을 신청하자, 사전조사를 거쳐 2006. 4. 25. 조사개시의결을 하고 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이수근이 1967. 3. 22. 위장귀순한 후 간첩으로 활동하다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피고인과 공모하여 1969. 1. 27. 대한민국을 탈출하였다는 등의 범죄사실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제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항소를 포기하여 1969. 7. 2. 사형이 집행됨), 피고인이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안에 대하여, ㉮ 이수근의 자백은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되고 변호인 접견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장기간 동안 구금된 상태에서 변호인 조력을 받거나 방어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한 상황에서 구타나 강요로 인하여 자백하였을 개연성이 있는 점, ㉯ 중앙정보부 직원들도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라고 진술하고 있으며, 이수근이 간첩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암호명, 난수표 등을 소지하지 않았고, 위 암호연락문도 난수표에 의해 암호화 된 것이 아니며 국가기밀을 담고 있지도 않았으며, 이수근의 운전기사, 중앙정보부의 감찰실 직원들에 의한 동향감시로 독자적인 외부활동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국가기밀 탐지행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던 점, ㉰ 중앙정보부는 이수근, 피고인 등을 영장 없이 11일간 불법구금한 채 수사하였으며, 위장귀순을 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작성된 이수근의 최초 진술서를 수사기록에 편철하지 않은 점, ㉱ 피고인이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의 구타와 물고문 등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의 공동피고인이자 이수근의 조카로서 이수근의 탈출행위를 방조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김세준도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관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하여 허위자백을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바, 당시 동인들의 중앙정보부에서의 진술은 자백과 부인의 상반된 진술이 되풀이 된 것에 비추어 동인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수사과정에서의 구타, 강요 등이 있었을 개연성이 큰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이수근이 귀순하였을 당시 행한 전략신문 결과 위장귀순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이수근을 중앙정보부의 판단관으로 채용하여 국민승공 계몽사업에 활용하였으나 동인이 중앙정보부의 지나친 감시 및 在北 가족의 안위에 대한 염려 등으로 피고인과 함께 대한민국을 출국하자 당혹한 나머지 이수근을 위장간첩으로 조작, 처형하여 귀순자인 이수근의 생명권이 박탈된 비인도적, 반민주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평가된다는 이유로, 2006. 12. 19. 위 법 제26조에 따라 “진실이 규명되었음을 결정한다.”는 내용의 의결을 하였다.
(나)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의 관련자들의 진술내용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과정에서, ① 피고인은, 중앙정보부에서의 수사 당시 남산 소재 중앙정보부 5국 분실이라고 하는 미군 막사인 콘셋 건물에서 고문을 당하였는데, 계속 의자에 묶여있는 상태에서 검찰에 송치될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은 것을 비롯하여 의자에 묶인 채 고개가 뒤로 젖혀진 다음 얼굴에 수건이 씌워진 후 물을 붓는 식의 물고문을 당하였고, 양손 또는 양발에 전기선을 연결시켜 놓은 채 속칭 228 전화기 손잡이를 돌리는 방법으로 전기고문을 당하였고, 그 외 구타는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지금도 그 휴우증으로 왼쪽 다리는 감각이 없으며, 당시 발로 채인 가슴부위의 갈비뼈가 으스러졌는지 지금도 만져보면 뽀죡한 것이 잡힐 정도라고 진술하였으며, 또한 위와 같은 고문으로 인하여 중앙정보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검찰에 송치된 후에도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은 것이 아니라 검사가 서대문구치소로 출장을 나와 소장실 옆에 있는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조사하였고, 조사과정에서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 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그 즉시 중앙정보부 수사요원이 들어와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고 겁을 주고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사는 것 자체가 구차스럽게 느껴져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어 중앙정보부에서 진술한대로 진술할 수 밖에 없었고, 재판과정에서도 중앙정보부 요원이 지켜보고 있는데다 서대문경찰서 직원들이 법정을 둘러싸고 있어서 달리 진술할 상황도 아니었다고 진술하였으며, ② 위 김세준은, 중앙정보부에서 20일간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물고문을 당하지 않았지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했는데, 마치 갱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여러 명이 삥 둘러서서 한 사람을 축구공 차듯이 이리저리 돌려가며 찼으며, 당시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썼다는 취지로 진술하였고, ③ 베트남 공항에서 이수근 및 피고인을 체포한 사람으로서 당시 주베트남 공사로 근무하였던 이대용은, 체포 당시 이수근은 “김일성의 2.8절 순방시 김일성 뜻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하는 바람에 숙청되게 되었는데 이북에서는 아무리 성분이 좋더라도 숙청은 피할 수 없어 귀순하였다. 그런데 중앙정보부의 감찰실장인 방준모가 1~2주에 한 번씩 감찰실로 불러 ‘이북에 전문을 보냈지’ 하면서 의심을 하고 한 번은 ‘직접 죽여 버리겠다’고 권총을 쏘기까지 하여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남북한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국을 탈출하였다”고 말한 사실이 있으며,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이수근이 간첩이 아니다”라는 말을 직접 들은 사실이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2) 피고인, 이수근, 김세준 등에 대한 구금과정 및 동인들의 진술 번복 경위 등
㉮ 피고인과 이수근은 1969. 1. 31. 베트남 공항에서 체포되어 1969. 2. 1. 중앙정보부로 압송되었고, 김세준은 1969. 1. 28.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었으며, 동인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1969. 2. 11. 각 발부되어 피고인과 김세준에 대하여는 1969. 2. 12에, 이수근에 대하여는 1969. 2. 14. 에 각 구속영장의 집행이 이루어졌는데, 중앙정보부로 연행된 후 위 각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동인들은 구속영장 없이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중앙정보부로부터 수사를 받았다. 그 후 동인들은 1969. 3. 22 각 구속기소된 후, 법원으로부터 1969. 3. 25 비 변호인의 접견을 금지하는 내용의 접견금지결정을 받았다.
㉯ 이수근은 중앙정보부에서 1969. 2. 3. 1회 진술서를 작성한 것을 비롯하여 10여 차례 이상 진술서를 작성하고, 10여 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을 받음에 있어 대체로 범죄 사실을 자백하기는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북한이 아니라 중립국에서 살 것을 염두에 두고 대한민국을 탈출하였다거나(제4회 진술서) 북한의 중앙당 선전부에서는 자신에 대한 숙청을 고려했는데 이를 모르는 문화부에서 판문점 출입기자로 나가 줄 것을 간청하여 숙청을 면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서 귀순한 것이라고 하여 위장귀순이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하는(제6회 진술서) 등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하였는데,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의하면 이수근이 중앙정보부에서 수사기록에 편철된 제1회 진술서 작성 이전에 위장귀순이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서를 작성하였음에도 그 진술서가 수사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수근은 법정에서도 대부분 범죄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중앙정보부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제3국으로 도피하려고 생각한 것이지 북한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며, 제1심 법정의 최후진술에서도 “나는 북을 넘어올 때 공산주의를 버렸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다. 또한 서울구치소 사형수 교화담당 직원이었던 고중열은 언론기관과의 인터뷰에서 이수근이 사형집행을 당하면서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 피고인은 중앙정보부에서 1969. 2. 2. 1회 진술서를 작성한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쳐 진술서를 작성하고, 2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을 받았는데, 1회 진술서에는 이수근의 지시에 따라 홍콩에서 모스크바 소재 천주교회 신부 앞으로 보냈다는 위 암호연락문에 대하여 그 내용을 모른 채 이를 홍콩에서 발송하였다고 진술하였다가 2회 진술서 작성시부터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며 진술을 번복한 후 그 나머지 범죄사실에 대하여는 대체로 범죄사실을 자백하면서도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목적은 모른다는 취지로(제1회 피의자신문) 진술하기도 하였다. 그 후 피고인은 1심 법정에서도 대부분 범죄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수근이 귀순한 사람이어서 사상적으로 의심한 사실이 없다거나 자신은 대한민국 탈출 후에 다시 돌아올 생각으로 1969. 1. 23. 최부전과 약혼하였고, 위 암호연락문은 단순히 이수근의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로 알고 있었다고 진술하였다가, 항소심에서는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서도 여권위조와 관련된 사항을 제외하고는 전면 부인하였다.
㉱ 김세준은 1969. 1. 28. 중앙정보부에 연행된 후 그 다음날인 1. 29. 진술서를 작성하고, 피의자신문을 받으면서 이수근이 단순히 밀항한 것으로만 알았다고 진술하여 범죄사실을 부인한 후 1969. 2. 1. 피의자신문(2회)을 받으면서도 이수근이 목숨을 걸고 공산주의를 탈출한 것에 비추어 공산세계로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가, 1969. 2. 2. 진술서(4회)를 작성하면서 이수근이 위장귀순한 간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고 그 진술을 번복한 후 1969. 2. 4. 피의자신문시(3회)에는 재차 이수근이 위장귀순하였다거나 간첩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 후 김세준은 1심 법정에서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에 의하여 탈출하는 것은 모르고 대한민국에서 배신을 당하여 제3국으로 가는 것으로 알았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항소심에서 범죄사실을 부인하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한 후, 법정에서도 같은 태도를 취하였다.
다. 판단
위 인정사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① 이수근은 1969. 1. 31. 베트남 공항에서 이대용으로부터 체포되었을 당시 중앙정보부 감찰실장인 방준모의 지나친 간섭 등을 견디지 못하여 스위스 같은 중립국에 가서 남북한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국을 탈출하였다고 말하였으며, 중앙정보부에서도 최초 진술서를 작성할 때에는 위장귀순이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하였는데(위 진술서가 수사기록에 편철되어 있지 아니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다), 그 후 조사를 받음에 있어서는 위 진술과는 상반되게 위장귀순을 하였고,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탈출하였다고 자백한 후 그 후에도 대체로 범죄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 자백에 반하는 진술을 하기도 하였고, 특히 1심 법정에서는 중앙정보부에서 자신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 제3국으로 도피하려고 생각한 것이지 북한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진술하여 위 이대용 앞에서 진술한 내용과 동일한 취지로 진술을 하였는데, 이수근 등의 자백 진술 외에는 동인이 위장귀순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탈출하였음을 직접적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어 보이는 이 사건에 있어서, 이수근의 진술 번복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말고는 이수근이 체포 당시의 진술을 뒤집고 범죄사실을 자백할 만한 사정이 엿보이지 않는 점, ② 피고인은 중앙정보부에서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음에 있어 대체로 범죄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에 반하는 진술을 하기도 하였고, 특히 1심 법정에서는 자백과 모순되는 진술을 하였으며, 1심 판결 선고 이후 전면적으로 그 범죄사실을 부인하였는데, 이수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피고인의 주장처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가혹행위 이외에는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자백할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는 점, ③ 김세준도 중앙정보부에서 장기간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음에 있어 처음에는 범죄사실을 부인하다가 범죄사실을 자백하였는데, 당시 특별히 중요한 증거가 발견되거나 종전 진술을 번복하여 자백할 만한 별다른 사정변화가 없음에도 진술을 번복한 것에 비추어 이는 수사관들의 가혹행위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④ 과거사정리위원회는 그 조사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진술 및 여러 정황을 종합하여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피고인, 이수근, 김세준 등에 대하여 가혹행위를 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는데, 그 판단은 직무의 독립성과 신분을 보장받고 있는 위원들에 의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서 존중될 필요성이 있는 점, ⑤ 피고인은 이 사건 재심법정에서도 중앙정보부 수사관들로부터 무수한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그 진술에 특별히 불합리하다거나 모순되는 사항이 없는 점을 종합하여 보면,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피고인을 영장 없이 불법구금하였고, 그 수사과정에서 피고인에게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를 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는 재심대상판결의 공소의 기초된 수사에 관여한 수사관이 그 직무에 관하여 형법 제124조 소정의 직권남용감금죄, 제125조 소정의 독직가혹행위죄를 범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피고인이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은 것은 1969년이고 그 수사관들의 피고인에 대한 직권남용감금죄의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이고, 독직가혹행위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이므로 이미 형사소송법 제249조 제1항 제4호에서 정한 5년의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어서, 형사소송법 제422조 소정의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수사관들이 피고인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함으로써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음이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재심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435조 제1항에 의하여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07. 11. 7.
재판장 판사 서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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