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학살정당, 김정일은 통 큰 지도자"

정동영, 제주장관급회담에서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채 북측 대표단을 『동지』라고 호칭하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대선후보는 「적(敵)」과 「동지(同志)」의 구분이 분명한 정치인이다.

그가 주창해 온 소위 「5대 양극화(南北·소득·기업·교육·일자리)」라는 개념 역시 「없는 자」와 「있는 자」에 대한 호감(好感)과 반감(反感)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鄭후보가 호감을 느끼는 동지(同志)와 반감을 느끼는 적(敵)은 대체 누구일까?

우선 鄭후보는 김정일 정권에 비판적인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해 『왜곡된 보수집단』,『시대착오적 집단』,『기득권 극우세력』,『냉전수구세력』 등 극도의 증오심을 표현해왔다.

반면 김정일은 『통이 큰 지도자』,『시원시원하고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북한 대표에겐 심지어 『동지』라고 부르며 북한정권에 대한 각종 지지·지원정책을 주도해왔다.

<보수세력은 『시민학살(虐殺)세력』>

鄭후보는 대선출마의 목적을 소위 『수구·냉전·부패·극우 세력의 집권 저지』로 거듭 밝혀왔다. 이는 舊열린당을 중심으로 한 汎좌파세력이 소위 진보·평화·개혁 세력이라는 인식의 결과였다.

지난 해 5월17일 광주에서는 『민주·평화세력이 위기를 맞고 있다. 시민학살 세력에게 전국을 통째로 내줄 순 없다』,『이번 지방선거는 광주정신 계승 정당과 시민학살 정당의 대결』이라며 한나라당을 『학살(虐殺)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보수세력을 『학살(虐殺)세력』으로 매도했다.

8월6일 汎좌파 통합을 주장하면서도 『지난 몇 년 동안 민주세력이 분열된 틈을 타서 광주 학살 세력이 부활하고 발호했다』, 『군사독재, 지역주의, 광주학살 세력에게 패배하지 않기 위해, 그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 굳게 뭉쳤다』며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을 다시 『학살(虐殺)세력』, 『독재세력』, 『지역주의 세력』으로 비방했다.

鄭후보는 최근 펴 낸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이하 「개성역...」】에서 『냉전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살아 온 한국의 왜곡된 보수집단...한국에서만 아직까지 극우세력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데, 이런 시대착오적 집단의 「힘을 빌려」 국민의 대표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며 반공적 성향인 보수세력을 『시도착오적이고 왜곡된 극우기득권세력』으로 비난했다.

<김정일에 『이러한 경지가 한반도평화철학의 목표』>

반면 鄭후보는 김정일과 북한 정권에 대해 일관된 관용과 애정을 보여 왔다.

鄭후보는 김정일과 2005년 6월17일 평양에서 2시간30분에 걸친 밀담을 하고 돌아와서, 『金위원장은 대단히 시원시원하고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라는 인상이었다』라고 책【개성역...】에 적어 놓았다.

그는 같은 책에서 「개성공단에 모자란 인력을 어떻게 보충할 것」이냐는 정주영의 질문에 대한 『인민군대를 옷 벗겨서 공장에 투입하면 되지 않느냐』는 김정일의 답변을 가리켜, 『바로 이러한 경지가 「한반도 평화」철학의 목표다』라고 격찬했다.

鄭후보는 2005년 10월31일 서강대 특강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은 통 큰 지도자라고 밑에서 이야기 한다』며 김정일에 대한 우호적 감정을 드러냈다.

<태극기 거꾸로 달고 『동지』 호칭>

反국가단체인 김정일 정권의 하수인들은 급기야 鄭후보의 「동지」가 됐다. 鄭후보는 2005년 12월 제주장관급회담에서 태극기 배지를 거꾸로 단 채 북측 대표단을 『동지』라고 호칭하며 환영했다.

鄭후보는 2004년 8월15일 『남북관계 소강상황의 기저에 金日成 조문件(남한 反美단체의 金日成 조문을 금지해 북한이 틀어진 사건)과 탈북자 국내 이송件이 있는 것에 대해서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金日成 조문 금지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鄭후보는 2005년 10월24일 「남북장관급회담 남측 수석대표 정동영 통일부장관」 명의로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 연형묵 사망에 대해 조의를 표시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냈다.

鄭후보는 같은 해 3월14일 헨리 하이드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한국은 누가 敵인지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관련, 『적절하지 않고 동의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해 7월8일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美대사가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으로 묘사하자, 『정부는 6자회담을 훼손하고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증가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총련·범민련 등 이적세력 방북 길 열어>

鄭후보의 조선로동당에 대한 우호적 감정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해 온 간첩·빨치산, 친북좌익에게까지 확장됐다.

그는 2005년 9월22일 비전향장기수 북송 반대라는 기존 입장을 뒤집고, 『인도주의적, 인권적·인간적 도리 차원에서 비전향장기수 중 희망자에 대해 북송을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 통일부장관 임기 중인 2004년~2005년간 기존의 방북(放北) 불허 대상자인 이적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인물들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단체의 구성원 신분으로 방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범민련·한총련 등 이적단체 구성원들은 금강산 등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북한 김일성청년동맹 등 조선로동당원들과 함께 남한 내 보수세력 척결 및 각종 反美·反韓 회합을 할 수 있게 됐다.

<軍병력 줄여 김정일 정권 지원 주장>

鄭후보는 소위 「5대 양극화(소득·일자리·기업·교육)」 해소를 주장해왔다. 이 양극화의 핵심은 『남북 양극화 해소』이다. 김정일 정권에 대한 지원을 통하여 북한 체제를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鄭후보는 재원마련 방안으로 2006년 1월22일 軍병력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축하는 해법(?)까지 제시했다.

북한이 2005년 2월10일 핵무기 보유선언을 한 상황인 같은 해 7월12일에는 200만kW 對北송전, 소위 「중대제안」을 제시했다.

한 달 후인 8월11일에는 『북한은 평화적(平和的) 목적의 핵 이용 권리는 마땅히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소위 「평화적 核이용권」 주장은 이후에도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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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보법 망령이 사회지배』, 정동영의 강정구 비호>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지만, 정동영(鄭東泳) 후보는 국가보안법을 부정한다. 그는 최근 펴 낸 책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참여정부 들어 국가보안법 시대가 종언을 고하리라 기대했다. 2004년 말 야당도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체입법안에 동의하면서 여야 정파 간 합의에 의해 보안법 시대를 끝내는 역사적 계기가 마련됐다. 그러나 국회는 이에 부응하지 못했고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범벅된 채 남북 간의 냉전체제는 답보하고 있다.』

鄭후보는 2005년 10월17일 강정구 파동 당시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조항은 이미 죽어있는 법인데 그 법의 망령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며 『작년 국회에서 보안법 문제가 정리됐으면 이런 파동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鄭후보는 강정구 파동 당시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을 전제로 하는데 극단적인 의견도 들어간다』는 등 헌법파괴세력에 대해서도 포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정작 헌정(憲政)수호를 주장하고 있는 대한민국 정통세력은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중성을 드러내왔다.

鄭후보는 2005년 12월 제주도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의 『국보법 철폐』 요구에 호응, 『대결시대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그를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나간다(제1항)』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鄭후보는 2005년 10월24일 국회에서 『平和體制 구축을 넘어서서 남북연합을 내다본다면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손질해야 한다』며 북한을 反국가단체가 아닌 국가적 실체를 인정해야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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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鄭, 주변반대에도 北선박 제주해협 통항 허가>

2005년 8월15일 당시 NSC상임의장인 정동영(鄭東泳)는 「북한상선(商船)의 제주해협 통과」를 허용했다.

북한은 정전체제(停戰體制) 무력화를 위해 「NLL(서해북방한계선) 무효화」와 함께 「북한상선의 제주해협 통과」를 주장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상선(商船)과 군함(軍艦)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는 정전체제 무력화 뿐 아니라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인식돼왔다.

정부 실무자들 역시 「북한상선 제주해협 통과」 허용이 결국 군함(軍艦)은 물론 잠수함(潛水艦)·군용 항공기 통항 등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최근 펴 낸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에는 鄭후보가 주변의 완강한 반대를 물리치고 「북한상선 제주해협 통과」를 강행했다는 자술(自述)이 나온다. 일부를 인용해 보자.

《장관급회담 합의를 앞두고 부처 간 회의가 열렸을 때 북측의 제주해협 통과 문제에 관해 참석자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안보적 관행으로 통과 허용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국방당국의 입장이 완강하다는 이유 등이 거론됐다. 이러한 반대논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 쿠바 국적의 선박도 이라크 국적의 선박도 제주해협을 통과할 수 있는데 유독 북한 국적의 선박만 안 된다는 논리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실무 당국자 수준에서는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나는 해군 출신인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 다행스럽게도 윤 장관은 제주해협은 제3국 선박에도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 지역인 만큼 북측 상선에 대해서도 동등한 권리를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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