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끄럽게 만든 뉴욕타임스 기사

한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왜 매년 2000명의 고아들이 해외로 입양되는가?
오늘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에 웃음기 없는 어린이들의 사진과 함께 '한국의 어린이들'(South Korea and Its Children)이란 제목하의 기고문이 실렸다. 필자는 홀리 맥기니스(Hollee McGinnis)인데 한국 고아로서 미국의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한 사람이다. 그가 쓴 글을 읽다가 뭉클한 느낌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기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나는 24세가 되었을 때 내가 태어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한국은 내가 예상했던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소란스러우면서도 번영하는 부자 나라였다.

4년 뒤 나는 해외입양되었던 한국인들과 함께 다시 母國방문길에 올랐다. 이번에는 전주의 고아원을 방문했다. 어린이들이 문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손바닥을 유리창에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점에 놀랐다. 한 아이는 안아주려고 했더니 피했다. 다른 아이는 나를 꼭 껴안더니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나의 온기를 빨아먹으면서 인간의 체취에 안도하는 듯했다. 다른 몇 아이들은 나를 꿰뚫어보면서 나를 무시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곧 그들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이들이 있긴 했으나 1 대 1로 이들을 돌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그렇게 부자인데 왜 이들이 여기 있어야 하는가. 누가 이 아이들을 대변하는가? 누가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인가, 단순히 살아남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 뒤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사회봉사활동을 전공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전주에서 만났던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던가를 알 수 있었다.

루마니아 고아원에 대한 최근 조사는 어린이를 기관 차원에서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生後 1년 사이 어린이와 보호자의 인간적 접촉의 질은 섭취하는 영양의 양보다 더 중요하다. 자신에 대한 인간적 무관심 상태를 경험한 어린이는 자라면서 감정적, 행태적 결함을 갖게 되고 이는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배우고 일하는 데 장애가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입양이다.

한국은 가장 많은 고아들을 해외로 보낸 나라이다. 1953년에서 2006년까지 15만944명을 해외입양시켰다. 그 중 10만4319명이 미국으로 입양했다.

한국 정부가 국내입양을 늘리려고 애를 쓰고 있으나 2005년의 경우 9420명의 고아들 중 1461명만이 입양되었고, 2101명은 해외입양되었다. 나머지 약6000명은 고아원에 수용될 수밖에 없었다. 고아원에 들어가는 어린이의 숫자는 2004년의 1만7675명에서 2007년엔 1만9000명으로 늘었다. 매년 18세 이상된 800~900명의 고아출신들이 수용시설을 떠나게 되는데 주택, 교육, 취업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아내가 외손녀, 외손자를 키워주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아이들이 자랄 때 얼마나 많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지 깨닫게 된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生後 13개월짜리 외손자 한 명을 위해서 최소 한 사람, 많을 때는 네 사람이 항상 눈길을 떼지 않고 보살핀다. 아이는 사랑스러워하고 걱정해주는 그 눈망울들을 항상 느끼면서 자라는 것이다. 유아기에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실이고 타격이며, 그 상처가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것이라는 실감을 하게 된다.

해외 입양된 15만 여명의 한국고아들은 그런 점에서 행운아였다. 이들을 받아준 고마운 부모님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이 모두 폐를 끼치고 신세를 진 셈이다. 특히 10만 명을 받아준 미국인들에게는 고마움과 부끄럼으로 얼굴을 들 수 없다. 6.25 때 그들의 젊은이들을 한국전선에 보내 약5만 명을 죽게 한 미국인들이 아닌가?

뉴욕 타임스 기고문의 필자가 썼지만 한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왜 매년 2000명 이상이 해외입양되어야 하는가? 버려진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받아 키우지 못하는 이 상황에 대해 나를 포함하여 국민 모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96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그때 미국 보스턴에서 유학중이던 나는 한국에서 오는 친지를 마중하려고 로간 공항으로 나갔다. 텔레비전 취재팀이 출국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한국인 남자가 두살박이 정도의 아이를 안고 나왔다. 입양 아이를 기다리던 미국인 가족이 꽃다발을 들고 달려가 아이를 에워쌌다. 이 모습을 촬영한 텔레비전 뉴스와 사진이 지방 방송과 지방지의 머리 기사였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악질적 행동은, 한국의 고아들을 입양시켜 잘 키워준 해외의 양부모들을 험담하고, 입양기관들의 사소한 약점을 캐고 다니고, 이를 反美운동에 이용하고, 고아수출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 기고문과 함께 실려 있는 사진에 나온 한국 고아들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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