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刊 ‘보통사람’이 쓴 ‘값진 삶’

인터뷰/ 50년을 자료 모으고 3년 걸려 직접 손으로 ‘開發年代’의 기록을 쓴 趙龍衍(조용연)씨.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금방 들었던 것, 본 것도 하루, 한 달,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한 기억만 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回顧錄(회고록)을 쓴다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더구나 趙龍衍(조용연·75) 선생의 회고록「값진 삶」(정민사刊, 568쪽, 비매품)은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다룬 책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기록문화의 不在(부재)로 전해지지 못한 전통이나 유산이 많은 것이 아쉬웠다”는 趙선생은 195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회고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우리 사회가 뭔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절실하게 받았다는 그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라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00년, 1000년이 지난 후 우리 후손들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개발 시대를 산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연구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고 했다. 50여 년간 자료를 모아왔지만, 실제 집필하는 데는 3년이 걸렸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해 일일이 손으로 써야 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소설가 박경리도 컴퓨터 없이 '土地(토지)' 같은 대작을 썼는데 나라고 왜 못하랴’는 생각에 포기하지 않았다.

제목은 ‘값진 삶’으로 정했다. 80세에 가깝도록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남은 인생이나마 그렇게 살아보고 싶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제목으로 택하게 됐다고 한다.

自費(자비) 1850만원을 들여 1700부를 인쇄한 趙씨는 전국 공공 도서관에 550부, 대학 도서관에 500부, 조갑제닷컴에 100부를 기증했다.

“趙甲濟(조갑제) 대표의 강연(현대사 강좌)을 들은 지 2년 6개월 정도가 됩니다. 趙대표는 개인의 영달이나 권력, 돈을 위해 남 앞에 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분의 강연을 들으러 오시는 분들 중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 마음은 있지만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자극을 주고 싶어 특별히 기증하게 됐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知人(지인)과 가족, 모교인 공주고·성균관대 등에 100여권 정도를 나누어주었다. 나머지는 ‘나중에 나이가 들면 나처럼 이런 책을 써보라’는 마음에서 아들에게 남겨주었다.

조용연 선생은 193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엔 당시 변희용 성균관대 총장과 여성 정치인인 박순천 의원 부부 댁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생활했다. 趙선생은 두 분으로부터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많이 터득했다고 한다. 朴의원은 여성으로서 5選 의원을 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제1야당 당수였다. 정치에 뜻은 없었지만 당시 朴의원 곁에서 심부름도 많이 했었기 때문에 정치계에 인맥이 있었다. 그러나 朴의원이 야당 당수를 하던 시절 “너는 앞으로 절대 정치를 하지 말라”는 말에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다.

1957년 조흥은행에 入行(입행)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직장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빠른 승진을 했고 영업부장을 거쳐 수석 상무이사에까지 올랐다. 입행한 지 27년째 되던 해인 1983년, 장영자 사기사건에 이어 이복례 사건이 터졌고 그는 담당임원으로 책임을 지고 은행을 떠나게 되었다. 전두환 정부는 당시 물러난 임원들이 다른 회사에 취직하도록 알선해주지 말라고까지 지시해 그는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내가 누군데 이러고 있나…’는 생각도 들었고, 가족에 대한 걱정도 컸다. 우울증 증상도 나타나 몇 년을 무기력한 생활을 하며 보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과 미국에 이민을 가 있던 손아래 처남의 거듭된 설득으로 내키지 않는 미국행을 결정했다. 막상 미국에 가보니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Park & Recreation'을 전공과목으로 59학점을 이수해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80여년의 인생에서 이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이야기한다.

조용연 선생은 앞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나, 가족, 사회, 조국, 및 온 인류를 위해 열심히 성실하게 그리고 멋있게 살자’는 家訓(가훈)처럼 종교와 더불어 남을 위한 봉사를 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반성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소원했던 이에게 이해를 구하고 후세에게 교훈을 주는, 자신이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이「값진 삶」안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부인 한인순씨와 1남3녀를 두었고 네 자녀는 모두 출가했다. <李知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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