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明博 후보, 여덟 번 幸運 뒤의 惡運


李 후보는 압승 직전에 장애물을 만났다. 이를 轉禍爲福으로 만들 묘약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직'이란 쓴약이다.

李明博 한나라당 후보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확신이 매우 센 사람이다. 어머니의 胎夢(태몽)이 해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이름을 明博(널리 비친다)이라 지었다고 자랑한다. 그는 국회의원들과 백두산에 오르기 전 頂上에 구름이 끼어 있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가면 틀림 없이 개일 터이니 갑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일행이 오를 때는 백두산의 구름이 걷히더라고 동행했던 한나라당 의원이 증언했다.

오늘 새벽까지 李明博 후보는 행운의 연속이다.

1. 작년 10월9일 김정일의 핵실험이 그를 도왔다. 그때까지 李 전 시장은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를 여론조사에서 쫓아가고 있는 입장이었다. 朴 전 대표는 칼을 맞아가면서 5.31 지방선거를 한나라당의 大勝으로 이끌었다. 김정일의 핵실험 이후 李明博 지지율이 朴 전 대표를 앞서기 시작했다. 위기가 조성되니 여성보다는 남성 쪽으로 여론이 기운 면도 있고, 상대적으로 安保型으로 알려져 있었던 朴槿惠씨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2. 올해 초 黨內 지지율에서 3등을 달리던 손학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한 것도 결과적으로 李 후보의 競選 승리를 도왔다. 孫 전 지사는 한나라당내에서 李明博씨와 중도 표를 共有하고 있었다. 만약 손학규씨가 한나라당 競選에 참여하여 3파전으로 흘렀다면 李 후보는 중도 표를 상당 수 빼앗겨 朴 전 대표에게 졌을 가능성이 있다.

3. 競選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7월 하순 탈레반 인질사태가 터졌다. 李 후보에 대한 朴 캠프의 도덕성 검증 공세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인질사태는 열흘 정도 한나라당 競選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4. 8월8일의 제2차 평양회담 발표도 사흘 정도 李明博 후보에 대한 검증공세를 둔하게 만들었다. 이 회담 발표는 朴槿惠 전 대표의 기회였다. 그는 임기를 반년도 남겨놓지 않은 대통령의 무리한 회담을 세게 공격하면서 선명성을 부각시켜 보수 표를 결집시킬 수 있었다. 朴 전 대표는 김정일을 의식했음인지 李 후보보다 더 유화적으로 나옴으로써 反轉의 기회를 놓쳤다.

5. 8월19일 경선 당일 비가 왔더라면 李明博 후보 지지층인 청장년층의 투표율이 朴 전 대표 지지층인 기성층보다 낮아져 勝敗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

6. 북한정권이 水害를 이유로 평양회담을 약35일 연기한 것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끼칠 타이밍을 놓치는 결과를 만든 것 같다. 투표일을 80일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하는 평양회담은 상식인의 눈에 더 이상하게 비치게 되어 있다.

7.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이 시작되는 것과 타이밍을 맞추어 터진 신정아 사건은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아 新黨의 경선 투표율이 한나라당 경선 투표율의 4분의 1 정도인 20%에 머물게 했다.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하여 1등을 달리는 정동영 후보의 여론 지지율이 아직 10%를 넘지 못하고 있다(李明博 후보는 55~59%).

8. BBK 의혹으로 코너에 몰린 그는 우호적인 검찰을 만났다.

지금까지 李明博 후보는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았다. 오늘 새벽 마침내 惡運이 나타났다. 그가 2000년에 광운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강연하면서 '내가 BBK를 설립하여 잘 경영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李 후보는 압승 직전에 장애물을 만났다. 이를 轉禍爲福으로 만들 묘약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직'이란 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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