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 형사합의8부(재판장 최성준)는 최근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 근교에 소위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조성, 비석에 이 같은 내용의 문구를 넣은 ‘통일광장’ 공동대표 권낙기 등 2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에서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해당 행위로 라이트코리아(대표 봉태홍) 등의 우파 단체들에 의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으나, 1심과 2심 모두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려 최종판단은 대법원에 의해 가려질 전망이다. 한편, 무죄판결을 받은 권 씨는 14일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국보법의 허무맹랑함이 드러난 것”이라며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였다. 권 씨는 “다시 말하면 검찰이나 국가권력, 수구단체 이 사람들이 국민들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보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며 “기쁘다하기 보다도, 정말 이제는 국민들도 이런 문제에 예의주시하면서 관심도 갖고 여론이 들끓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시대정신을 살피지 않고 표를 얻기 위해서 어떤 후보는 국보법이 있어야 하고, 전쟁도 불사할 만큼 민족말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민중들이 대선문제에서 시대에 맞게 이성적으로 정책을 바라보면서 투표에 임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2005년 12월 5일 HID등 우파단체에 의해 해체된 보광사 비전향 장기수 묘역에 안장된 ‘간첩·빨치산’ 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류락진은 6.25 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1957년 가석방된 후 1963년 ‘혁신정당’사건으로 구속돼 1967년 석방됐다. 그러나 1971년 다시금 ‘호남통혁당재건위’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988년 가석방됐다. 출소 후 운동권을 상대로 빨치산 강연을 벌여 온 류낙진은 94년‘구국전위’ 사건으로 구속돼 8년형을 선고받고 1999년 광복절특사로 석방됐다. 1993년 1월 조직된 구국전위는 ‘조선노동당’의 남한 내 지하조직으로서 창립선언문과 강령 및 규약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조직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규약 중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구국전위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께서 창시하시고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발전 풍부화 시켜 오신 새로운 노동계급의 혁명적 세계관이며 남반부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완수의 가장 정확한 학설인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삼는 주체형의 김일성주의 지하조직이다” 류낙진의 반(反)국가 활동은 1999년 석방 이후에도 죽는 날까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백운산지구 빨치산위령비 비문(碑文)작성 사건으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류낙진은 영화배우 문근영의 외조부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의 사망당시 조선일보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문근영 외조부 통일운동가 류낙진씨 사망’ 등의 제목으로 연예면에서 대서특필했다. △최남규(1999년 사망): 스스로 “백두산 장군(김정일)에 대한 충성” 때문에 전향하지 않았다고 밝힌 최남규는 1912년 함경북도 명천 태생으로 청진대학 지리학교수로 재직 중 1957년 간첩으로 남파됐다. 그는 남파 후 서울서 간첩활동을 벌이다 1957년 9월12일 동료 공작원의 밀고로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1973년 만기 출소했다. 최남규는 출소 후 3년 간 엿장수 생활을 하다 1975년 7월 사회안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돼 89년 풀려났다. 그는 출소 직전인 1989년 5월11일 청주보안감호소에서 ‘그날 그때가 올 때까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가고픈 내 고향에 가고파도 내 못가네. 광복된 이 조국에 38선 웬 말인가 이 땅 뉘 땅인데 주인행세 누가하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짓밟질 랑 말고서 돌아가라, 사라져라, 어서 꺼져버려라. 고-홈 고-홈 양키 고 홈” △정순덕(2004년 사망): 정순덕은 1933년 경남 산청 출신으로 6.25사변 발발 후 인민위원회 활동을 하던 남편을 따라 1951년 스스로 빨치산이 됐다. 정순덕은 국군의 대대적 토벌작전으로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쫓겨 가 빨치산 활동을 지속하다 1963년 11월 체포됐다. 이후 정순덕은 대구·공주·대전교도소에서 23년 간 복역하다 1985년 8월 가석방됐다. 정순덕은 지난 2003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북한에 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전향서를 썼다고 하지만, 강제로 한 거니까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재성(1998년 사망): 1924년 충남 대전 출생인 금재성은 보통학교 졸업 후 원산에서 사회주의 활동 중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됐다. 금재성은 출소 후 1945년 공산당에 입당해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활동하던 중 6.25사변 발발과 함께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정전(停戰) 후 제대해 원산 주을 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중 1956년 정치공작원으로 남파돼 고향인 대전에서 간첩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1972년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손윤규(1976년 사망): 전북 부안 태생의 손윤규는 해방 후 남로당에 가입해 활동하다 6·25사변 당시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55년 경찰특무대에 구속돼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던 중 76년 옥사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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