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의 노예근성
2002년 5월 민주당 盧武鉉 후보의 지지율이 50%를 넘었을 때 나는 보수세력의 大選패배를 예감하고 月刊朝鮮 '편집장의 편지'에서 이런 대목의 글을 남겼다.
<보수세력들은 세미나를 좋아합니다. 좋은 호텔을 골라 그런 모임을 열고 보수논객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 자리에 가면 한때 한국 사회를 주름잡았던 인사들이 좋은 옷을 입고 나타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나라를 걱정합니다. 그리고 그뿐입니다.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하여 싸우는 단체나 사람들을 위하여 손발도 돈도 빌려 주지 않습니다. 마음만으로써의 憂國(우국), 거리로 나서지 않는 憂國이란 自慰(자위), 또는 가짜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호텔에 들를 때마다 감탄합니다. 귀족 같은 모습을 한 善男善女들이 로비, 객실, 음식점에서 우아하게 어울려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태평성대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들을 사정권 안에 넣고 있는, 시간당 50만 발을 쏠 수 있는 북한군의 장거리포 같은 것들을 저분들이 의식하고 있을까, 좌익들이 국가를 배신하는 행동을 할 때 저분들이 맞서 싸울까, 저분들의 子弟들은 軍 복무를 다했을까, 저 돈많은 사람들이 좌익과 싸우는 보수세력을 위해서 체제유지비를 한 푼이라도 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자신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행동도 희생도 부담도 하지 않고 체제의 보호막만 공짜로 이용하려 든다면 그런 보수야말로 守舊(수구), 寄生(기생)세력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고귀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정신면에선 노예이고 창녀들일 것입니다. 한국 보수세력의 自力更生(자력갱생)은 기본적으로 노예의식, 창녀의식을 버리고 조국의 주인이 되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主人이 되자면 용기·희생·공부가 필요하고 親北좌익을 순화·전향시킬 만한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主人이 되면 그래서 고생스럽습니다. 좌익 400만 시대에 보수세력이 대한민국과 함께 살아남으려면 그런 고생을 즐겨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준 5년이란 기회
그해 12월19일 밤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가 50만 표 차이로 노무현 후보에게 지는 것을 보고 나는 '편집장의 편지'에 이런 글을 남겼다.
<역사는, 대한민국은, 핏발 선 主流層(주류층)의 손을 뿌리치고 盧武鉉 후보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하여 5년이란 기회를 주었다. 이 5년 사이에 한국의 주류층이 대한민국의 좌경화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크나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5년간 기성세대가 나서서 젊은, 좌파 세력을 설득하고 교육하여 이들의 위험한 國家觀과 對北觀, 때로는 저질로 치닫는 반항심을 순화할 수 있느냐가 5년 뒤의 大選 승자를 결정할 것이다. 이들 젊은, 좌파들에게 교양과 公民윤리와 정의감을 심어 주어야 하는 책무는 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주어졌다.
李會昌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左右대결의 체제문제를 주요 쟁점으로 삼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했으나 이념 무장 대치상황의 한반도 조건이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李會昌 후보는 마시기 싫어했던 쓴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그는 이 시련을 통해서 뒤늦었지만 이념적으로 무장된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났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의 주류층도 수렁에 빠진 李會昌 후보를 건져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우리 곁으로, 집 안으로 들어온 反美·親北 세력의 엄청난 힘을 알고 전율하였다. 그들은 金大中 정부 5년 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알았을 것이다. 이번의 가정內 大選戰에서 보수층이 안간힘을 썼듯이 앞으로는 대담하게 나서야 한다. 보수층이 가진 현대사의 경험을 후배, 자녀와 나누고 金正日의 악마성과 대한민국의 苦鬪(고투)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 미군이 6·25 전쟁 때 1000명 정도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어야 한다.
앞으로 5년간 보수층이 나서서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매질하고 고쳐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점은 고마움일 것이다. 부모 세대에 대한,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 등 우방국에 대한, 우리 민족사의 위인들에 대한 고마움은 과장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보수층은 젊은 그들에게 제대로 미워할 줄 아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金正日과 그를 추종하고 굴종했던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북한동포들과 한국內의 소외층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번 선거 과정과 그 결과는 우리의 거듭 태어남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主流 보수층은 盧武鉉 당선자를 도와야 한다. 그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켜 주기를 기도해야 한다. 盧武鉉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서뿐 아니라 金正日에 대해서도 한국민의 자존심·국가이익·민족 정통성을 수호해 줄 수 있도록 보수층이 충고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아스팔트 우익'의 등장
그 석 달 뒤 서울시청 광장에선 '反核反金 3·1국민대회'가 열렸다. 10만 명의 보수층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들의 머리 위로 대형 성조기와 태극기가 지나가는 장면을 상공에서 찍은 사진은 애국운동의 한 상징이 되었다. 애국단체들이 연합하여 주최했던 그해 6·25 국민대회, 그 다음해 10·4 국민대회는 한국의 보수층도 좌익 못지않게 아스팔트 위로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004년 10월4일 국민대회는 사상최대의 인파를 동원했다. 이날의 주제는 국가보안법 死守였다. 대회가 끝나고 청와대로 평화롭게 행진하는 것을 경찰이 막고 아버지뻘 되는 6·25 참전용사들을 향해서 물대포를 쏘고 방패로 짓이겼다. 친북좌익 집단에 정권을 넘겨준 보수층의 비참한 모습이었다. 검찰은 대회가 있은 지 3년이 지난 지난 가을 이 대회의 운영위원장이었던 徐貞甲 국민행동본부장을 시위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하여 재판이 진행중이다.
'아스팔트 우파'의 상징적 존재가 된 국민행동본부의 徐 본부장은 좌익들로부터 가장 많은 고발 고소를 당한 인물이 되었다. 이 단체가 거의 매주 신문에 내는 선명한 광고는 1회당 300~400명이 1,2만원씩 보내주는 후원회비로 유지되어 왔다. 2002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 이후 많은 국민들이 '애국은 지갑과 손발을 통해 표현됩니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
광화문과 인터넷을 좌익으로부터 탈환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보수층은 2004년 3월 국회의 盧武鉉 대통령 탄핵 의결에 기대를 걸었으나 상황은 하루 만에 逆轉되었다. KBS와 MBC의 선동방송이 반격에 나서고 親盧-親北세력이 촛불로 밤거리를 뒤덮자 70%의 국민들도 '어떻게 나랏님을 그렇게 할 수 있나'라면서 탄핵반대로 돌았다. 그 연장선상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전멸의 위기에 몰렸으나 朴槿惠 대표가 善戰하여 개헌 저지선을 확보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 재판에서 盧대통령의 위헌적 행동을 인정하고 엄중경고한 뒤 대통령직 파면을 결정하지는 않고 改悛(개전)의 기회를 주었다.
그놈, 별놈, 인생 썩히는 곳
노무현 대통령은 복직하자마자 反헌법적 언동과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대학생들 앞에서 한 공개 강연에서 보수층을 개혁할 줄 모르는 '별놈'이라고 했다. 그 뒤 헌법을 '그놈'이라고 저주했다. 국군을 '인생 썩히는 곳'이라고 부정했다.
2004년 탄핵재판에서 그를 살려주었던 헌법재판소는 그해 가을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위장한 '수도이전', 즉 遷都(천도)계획에 대해서 '사실상의 수도이전이므로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고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받아내는 일을 뒷받침했던 이가 李明博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한나라당과 열린당은 그 뒤 수도를 사실상 분할하는 행정복합도시로 개념을 바꾸어주었고 이 사업에 투입된 토지보상비가 강남 일원의 부동산 값을 올렸다.
2005년부터 민심이 돌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치러진 모든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 連勝(연승)을 계속했다. 노무현 정권과 친북좌익 세력의 무능, 부패, 행패가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이들은 국민과 역사 앞에선 안하무인이고, 김정일 앞에만 서면 한없이 비굴해졌다. 올해 초의 한 국제통계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만족도와 국가운영에 대한 만족도가 팔레스타인 같은 內戰상태의 나라 수준으로 떨어졌다. 80% 이상의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 대통령이었다.
2005년 여름엔 인천의 맥아더 동상을 파괴하려는 친북좌익들과 이를 방관하는 盧정권의 행태가 보수층을 분노케 했다. 6·25 때 중공군을 투입하여 北進통일을 막았던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공언했던 盧대통령은 한번도 맥아더 장군을 옹호하지 않았다. 맥아더 동상 앞에선 70代 老兵들이 몽둥이와 쇠파이프로 무장한 20, 30代의 좌익행동대를 향해 계란을 던졌다. 그 이듬해엔 평택에서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좌익폭도들이 쇠파이프로 무장하여 총검 착용이 금지된 군인들을 두들겨 패 군인들이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KBS, MBC는 폭도들 편을 들었고 국무총리는 폭도와 경찰을 모두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盧정권은 좌익들의 폭력시위를 엄정하게 진압한 경찰청장의 옷을 벗김으로써 '우리 편을 너무 심하게 다루면 혼난다'는 암시를 주었다.
수도권 민심 잡은 청계천 복원, 교통체계 개편
자기편의 행패를 끔찍이 봐주던 노무현 정권은 지율이란 여승이 단식을 하면서 경부고속전철 공사를 막고나서자 멋대로 천성산 터널 공사를 중지시켜 대구~부산 구간의 개통을 수년간 지체시켰다. 대통령의 권한 남용으로 국가는 약 2조5000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건축비가 1억 먹히는 근사한 집 2만5000채를 지을 수 있는 돈을 억지부린 여승에게 선물한 셈이다. 이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깊었고, 성실한 사람들이 그래도 더 많았던 덕분이다.
2005년 가을 서울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盧정권이 國論(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정체성을 해체해가는 가운데 그래도 건설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감동을 준 사업이었다. 李明博 서울시장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업적을 유형적으로 남겼다. 그는 또 대중교통체계 개선을 이룩하여 수도권 서민층의 민심을 잡았다. 유권자의 50%를 차지하는 수도권 民心이 결국 한나라당 경선과 大選판의 大勢(대세)를 결정지었다.
2006년 여름, 가을은 韓美연합사 해체와 북한 핵실험으로 시끄러웠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 대통령과 戰時(전시)작전지휘권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미국 대통령이 작전권을 독점하고 있어 전쟁이 나도 한국 대통령은 자기 군대에 대해서 지휘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올해 별세한 金聖恩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老兵들과 전직 외교관들, 그리고 절대 다수 국민들이 반대했음에도 盧정권은 미국의 마지못한 동의를 얻어 연합사 해체 계획을 확정, 그 실천을 다음 정권에 넘겼다. 민주국가이지만 제왕적 대통령이 결심만 하면 매국적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더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하여 한미동맹의 강화가 절실해진 시점을 택해서 盧정권은 안보에 구멍을 냈다. 이런 어이없는 반역적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더니 드디어 거대한 민심의 변화로 모이기 시작한 것이 2006년 하반기였다.
차기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李明博 전 서울시장이 1위로 올라오고 朴槿惠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 뒤를 따랐다. 좌파 인물들은 여론조사 지도에서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2006년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목에 칼질을 당하고도 한나라당을 완승으로 이끌었던 朴 전 대표였지만 韓美연합사 해체와 북한 핵실험이란 안보위기에서 침묵함으로써 失機(실기)했다. 李 전 시장도 마찬가지였으나 朴 전 대표가 더 많은 손해를 보면서 지지율이 逆轉되었다. 안보위기가 닥치자 국민들이 관리능력이 입증된 '유능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를 넓힌 보수층
2007년 대통령 선거 결과는 사실상 8월19일의 한나라당 競選(경선)에서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경선에서 李明博 후보가 예상외의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이후 그의 지지율은 50~60%, 鄭東泳 후보 지지율은 1對 1 가상대결에서 20~25%였다. 李明博-朴槿惠 두 슈퍼스타가 근 반년 가까이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바람에 좌파 후보들의 경쟁은 기사거리가 되지 않았다. 열린당은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위장폐업-야반도주-신장개업 같은 당의 해체, 통합, 재해체, 재통합의 쇼를 벌였다. 국민들은 속아주지 않았다. 김대업 사기 때보다는 훨씬 근거가 있는 BBK 폭로도 먹혀들지 않았다. 좌파들을 선거판에서 공황상태로 몰고간 것은, 다수 국민들이 李明博 후보가 BBK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찍겠다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파는 국민들을 속이는 데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국민들의 방송에 대한 불신과 김대업 학습 효과를 李明博 후보가 거두어 들인 셈이다.
2005년 이후 강화되고 고착된 민심의 본질은 청장년층의 脫좌파 실용화와 기성층의 보수결집 흐름의 合流(합류)였다. 경제와 실용을 위해 ‘민족’과 ‘통일’을 버린 20代의 李明博-한나라당 지지율이 부모 세대의 지지율과 비슷해졌다. 이런 보수정치시장의 확대는 李會昌씨의 출마를 불렀다. 李會昌씨의 출마를 보수분열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강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보수경쟁에 의한 보수확대를 가져왔다. 李會昌 출마는 李明博 후보의 중도화를 견제하고 정동영 후보의 충청권 진출을 봉쇄하는 2중 효과가 있었다. 李明博 후보에 대한 테러 가능성도 줄여주었다. 李會昌 후보가 선거기간중 공약한 대로 보수新黨을 만들어 총선에 임한다면 한국의 보수층은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고 李明博 대통령의 제2 金泳三화를 견제할 수단을 갖게 된다.
한국의 보수혁명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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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0, 2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