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刊朝鮮 2008년 신년호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다. 주목할 만한 제안이 들어 있어 소개한다.
<國論의 통합은 국민국가 대통령의 의무이지만 단순히 異見의 중재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左右를 떠나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확인하고 지키는 일이 바로 국민 된 의무이며 國論 통합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國憲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하는데 國憲, 즉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인 가치는 1, 3, 4조에 들어 있습니다. 헌법의 심장이고 뇌수인 이 세 조항은 개정불가 사항입니다.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선언했고, 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북한까지 민주공화국화하여 헌법 제4조의 명령인 평화적 자유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차기 대통령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이 3개 헌법 조항의 신성한 의미를 국민들에게 잘 설명하여 영토조항 개정 등 國體변경의 논란을 영구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보, 법질서, 경제는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 三位一體的으로 연결된 개념입니다. 안보가 튼튼하면 법질서가 잡히고 이렇게 해서 사회가 안정되면 경제는 민간부문의 자율성에 맡겨놓아도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실천 20년을 넘기는 이 시점에서 法治확립은 더 지체할 수 없는 대명제일 것입니다. 특히 反헌법적, 反국가적 성격을 가진 집단이 폭력시위로써 도심을 마비시키고 경찰뿐 아니라 군인들까지 공격하는 일은 國基 수호 차원에서 엄히 다루어야 합니다. 선량한 시민들을 공공의 敵으로부터 지켜내는 일은 국가의 1차적 존재 의미일 것입니다>
<대통령은 너무 바빠선 안 됩니다. 日程을 짤 때 대통령이 혼자 있는 시간을 반드시 넣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戰略과 大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할 때는 반드시 참모들이 써준 ‘말씀자료’를 참고로 하였습니다.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싶을 때도 있지만, 또 그렇게 해야 분위기가 살아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國政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생각하니 미리 검토된 발언을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힘은 권한이 뒷받침된 정확한 말의 설득력이라고 봅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둘러 추진하는 終戰선언에 대해서 우려하는 입장입니다. 6.25 남침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서는 남침에 대한 사과, 책임자 처벌, 배상이 있어야 하고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이 있어야 합니다. 남침 전쟁에 대한 이런 정리절차 없이 北核 폐기 이전에 종선선언만 한다는 것은 김일성의 민족반역행위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核폐기 의지를 오히려 약화시킬 것입니다.
1993년 이후 한국 정부가 北核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치고 구경꾼으로 전락한 것은 韓美공조보다도 南北공조를 우선시켰기 때문입니다. 북한정권은 헌법상 反국가단체이고 핵무장까지 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공조를 동맹국과의 공조보다 우선시키는 일은 차기 정부에서 맨 먼저 폐기해야 할 정책일 것입니다>
<국민 皆兵制에 기초한 국군은 절도 있고 효율성이 높은 애국시민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이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이들을 강건하게 키우는 한국의 군대라고 합니다. 15년간 군사문화를 매도해보았으면 이젠 충분합니다. 차기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국군 장교단의 고충을 가장 먼저 들어주고 고민꺼리를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국군이 든든하면 나라가 편해집니다. 軍心과 民心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金九 선생의 기념관을 거창하게 만든 마당에 자유민주체제와 한미동맹을 만들어낸 李承晩 건국 대통령의 기념관을 세우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합니다. 대통령은 국가정통성의 수호자이고 정통성은 건국에 대한 국민들의 확신과 자랑에서 생길 것입니다. 차기 대통령이 내년 建國 60주년 행사를 직접 챙겨서 위대한 建國세대와 李承晩 대통령의 노고를 젊은이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대통령 재임 시절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씨를 자주 만났다. 그는 1977년 포드 대통령과 함께 현직에서 은퇴한 뒤로도 세계 지도층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다. 대우 그룹의 고문으로 일하는 관계로 한국에 자주 왔고 그 기회에 청와대에서 면담하면서 세계정세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 했다. 1990년 9월10일 낮에 만났을 때의 화제는 한소 정상회담 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밀사역을 했던 도르리닌 전 주미소련 대사였다. 키신저 박사는 “지난 5월말 뉴욕에서 도브리닌을 만났더니 각하와 고르바초프 회담이 추진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하고는 주미 대사시절부터 가깝게 지냈습니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서울에서 열렸던 전직 정부수반회의에 참석해서 고르바초프의 메시지를 전달하습니다”라고 했더니 키신저는 “뉴욕에서 만났더니 마침 서울에서 그 회의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그는 소련국내 문제에 대한 보도에 관하여 자학적인 농(弄)도 하였습니다”라고 했다.
“그 사람은 전에는 공산주의 신봉자였을텐데 개혁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분위기 하에서 공직자로서 심리적 갈등을 느끼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은 철저한 공산주의자였습니다. 그의 부인은 더욱 철저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믿을 수 있고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미대사 시절에는 본국의 최고위층과 직접 통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외무부의 경로를 피하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는 어느 정도 자유주의적 경향이 있기는 하나 공산주의자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마 요즈음 심적 불편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미국사람들은 이제 소련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련인은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러시아사람입니다. 러시아는 과거 400년 동안 근본적으로 그 대외정책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고르바초프가 서울에 온다면 우리는 그가 평화를 위해서 온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그는 중국을 더욱 고립화시키고 한·미 관계를 이간시키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그런 점에 크게 개의하지 않습니다. 도브리닌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소련이 한국을 중요시하고 각하를 존경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국가원수는 친선단체의 장이 아닙니다. 그들은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입니다.”
닉슨 대통령 시절 키신저는 소련과는 데탕트를 추진하면서 비밀접촉을 통해서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는 길을 열었다. 이는 소련을 고립시킨 세계전략이었다. 그는 세계정세를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키신저 박사께선 이번에 중국을 다녀오셨는데, 전에 우리 입장을 그쪽에 전달해달라고 부탁드렸고 수고 많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듣고 싶군요.”
“이번에 중국에 가서 강택민 총서기, 양상곤 주석, 이붕 수상 등을 만났는데, 등소평씨는 피서지에 가 있다고 해서 못 만났습니다. 중국 지도층에 한국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그에 대하여 그들은 남한과 좋은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고 修交문제와 관련해서 모스크바와 시기를 맞추는 것이 좋다는 데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을 설득하는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그의 死後에 아들이 승계하겠지만 곧 내부적 권력투쟁이 전개될 것이고, 그것이 통일을 진전시킬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말이 신문에 보도되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당면 최대과제는 아시안 게임의 성공적 개최인데, 그를 위한 한국의 도움도 알고 있었습니다. 북경대회가 끝난 후에는 한국과 통상대표부를 교환할 수도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김일성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고 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하여는 분명한 전략적 사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또 일본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국제기구에서는 중국에 대한 차관증액을 주장해서 생색을 내면서도 兩者관계에서는 인색하다고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에 대해서는 고르바초프가 훌륭한 정치가가 못된다고 혹평하고 국내외적 혼란만을 자초하였고 아시아 지배의 욕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노대통령께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전달해달라고 하면서, 한국에 대한 호의를 표시했습니다. 저로서는 한국이 우선 중국과 통상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 좋을 듯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관계개선이 시작되고서도 1년 반 동안은 아무런 공식 연락기관이 개설되지 않았습니다. 통상대표부를 개설할 경우, 정규외교관을 적당한 대외명칭을 부여하여 파견하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을 것으로 봅니다. 미국도 초창기 주중 연락대표부에 CIA요원을 보냈었는데, 저는 중국 측에 그 요원들의 명단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어차피 나중에는 그들이 알아낼 것이고 신분이 알려졌다고 하여 그들의 기능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기 때문이었습니다만,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것이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데 유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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