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야당 지도자인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27일 라왈핀디에서 선거 유세 도중뒤 자살 테러범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부토 여사는 선거 연설을 마치고 무개차를 타고 가던중 테러범으로부터 저격을 받았다. 테러범은 부토 여사의 목을 쏜 직후 갖고 있던 폭탄을 터뜨리고 자살했다. 54세의 부토 여사는 종합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사망했다. 이 폭탄테러로 15명 이상이 죽은 것으로 보인다.
1988-1996년 사이에 두 차례 파키스탄 총리를 역임한 부토 여사는 지난 10월18일 8년간의 해외 망명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귀국 과정에서 현 무샤라프 대통령과 권력 분점에 관한 묵계가 이뤄졌다고 한다. 부토 여사는 귀국 직후 카라치에서 폭탄 테러를 당했으나 살아 남았다. 134명이 죽었다.
부토 여사의 아버지 알리 부토도 총리를 역임하다가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에 의해 처형되었다(그를 죽였던 지아울 하크 대통령도 재임중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부토 여사는 수상 재직시 남편이 利權에 개입하도록 방조하여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남편은 횡령 등 죄로 8년간 옥살이를 했다. 부토 여사는 1996년 金泳三 대통령 시절 한국을 방문했다. 그녀는 하버드 대학 출신인데 총리 시절 이 대학의 졸업식 연설을 한 적도 있다. 하버드 대학의 졸업식 연설은 세계적 명사들이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유세중엔 정치인들이 테러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난 大選 기간에도 후보에 대한 테러 위험이 거론되어 스페어 후보론까지 나왔었다.
한국과 같은 나이의 민주주의를 시험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만성적인 정치불안을 겪고 있다. 알 카에다가 설치고, 군대가 수시로 쿠데타를 일으키고, 민간 정치인들은 선동을 일삼는다. 농지개혁이 되지 않아 지금도 地主 계급이 군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 지배계급은 민중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개발했고 북한과는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무샤라프 정권에 많은 원조를 하면서 이슬람 테러조직을 소탕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효과가 별로 없다. 빈 라덴은 지금도 파키스탄 북부 산악 지대에서 활동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부토를 암살한 것도 알 카에다일 가능성이 있다. 부토는 총선에서 이기면 미국과 협력하여 알 카에다를 소탕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녀는 선거기간중에도 이슬람 극단파의 테러를 단속하겠다는 약속을 여러 번 했다.
방금 전 부시 대통령은 부토의 피살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는데, 아주 어두운 표정이었다. 무샤라프와 부토를 손 잡게 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 그 힘으로써 알 카에다 진압을 제대로 하도록 하려던 미국의 계획이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런 파키스탄을 1960년대 한국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국가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필리핀도 그런 모델 국가중의 하나였다. 한국의 성공과 파키스탄 및 필리핀의 실패, 그 이유중 하나가 農地개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農地개혁을 강행하여 농민의 약 80%나 되던 소작농들에게 땅을 나눠주었으나 파키스탄과 필리핀은 地主계급의 압력으로 농지개혁을 하지 못했다. 농지개혁을 하지 못한 나라에선 地主계급이 군대와 政界를 독점하고 민주주의의 맹점을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게임을 즐긴다.
새삼 한국의 민주주의가 대견해보인다. 특히 선거가 안전하고 공명하게 치러진 점이 돋보인다. 한국 민주주의의 두 공로자 이승만, 박정희를 다시 생각한다.
부토 여사 선거유세중 사살되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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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8, 00: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