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가 12.19 승리의 원인

정기간행물과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의 양적 증가가 좌파정권의 거짓말과 선동을 희석시켰다.
1961년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을 때 한국의 일간신문은 115개, 통신사가 308개, 주간지가 487개, 월간지 464개, 기타 193개로 정기간행물 숫자가 1,567개나 되었다. 공갈기자의 폐해가 군사혁명의 한 이유로 거론될 정도였다. 박정희 소장은 집권하자 폭력배와 공갈기자를 같이 취급하여 잡아들였다. 일간신문사 수가 가장 적었던 때는 유신시절과 5공화국 초반기였다. 1981년부터 87년까지 신문사 수는 29~30개 선을 유지했다.

한국의 언론이 양적으로 폭발한 것은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이후였다. 정기간행물 등록이 자유롭게 되었다. 1987년 11월28일 언론규제의 틀이었던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 등록이 자유화되었다. 1988년 3월1일 이후엔 신문지면과 구독료의 자율경쟁 체제가 만들어졌다. 1990년말 현재 정기간행물 통계를 보면 일간신문이 85개, 통신사 2개, 주간지 1,028개, 월간지 2,460개, 기타 1,608개로 도합 5,183개였다. 6.29 선언 직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2006년 초 통계에 따르면 일간신문 164개(전국지 38개), 주간지 2421개, 월간지 2727개, 격월간지 407개, 계간지 828개, 연2회 발간 273개로서 총 정기간행물수가 7,229개이다. 한국인은 세계 어디를 가든지 신문을 많이 만든다. 조선조에서도 선비들 사이에 言路는 넓었고 언론은 활발했다. 입을 닫고는 못 사는 민족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은 언론자유이다. 언론자유는 모든 자유의 어머니라고 한다.

정기간행물 이외에 방송은 지상파에다가 케이블 텔레비전이 더해지고 인터넷이란 새로운 언론이 등장하였다. 한국은 그야말로 언론의 천국이다. 너무 많은 데서 오는 피해도 크지만 장점도 많다. 거짓말과 선동이 예전처럼 통하지 않는다. KBS나 전교조가 편향된 정보를 퍼뜨려도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수많은 정보源과 언론수단이 널려 있다.

12.19 선거에서 드러난 것처럼 친북좌익 세력의 對국민 선동은 한계에 부딪쳤다. 2006년의 통계에 따르면 지상파 텔레비전의 시청률은 21.8%인데 케이블 텔레비전의 시청률은 16.9%로서 그 차이가 4.9%에 불과했다. 좌파정권과 어용방송과 친북매체가 쏟아내는 왜곡된 정보는 언론의 바다에서 상당히 정화되었다는 이야기이다.

1961년의 언론과잉은 사회불안을 야기했으나 2000년대 한국의 언론 홍수는 좌파를 쓸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6.29 선언으로 한국 언론의 자유 시대를 연 盧泰愚 전 대통령이 12.19 승리의 한 공로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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