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도 아픔도 함께
저는 국민을 일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이끌려 다니는 대통령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꿈과 아픔을 같이 하는 국민의 同行者, 이것이 제가 진실로 추구하는 대통령의 모습입니다.
---1988. 2. 25. 제13대 大統領 취임사
▶ 잃어버린 이야기들
어떤 때엔 백열전구를 끌어 놓고 자정이 넘어 새벽까지 작품을 읽던 기억이 아직 새롭습니다. 장작불을 지폈지만 방안 대접의 물이 꽁꽁 얼러붙던 그 즈음의 겨울을 생각합니다. 그 숱한 이야기들은 이제 거의 잊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낳은 虛無와 絶望의 늪에 버려진 인간의 생명력, 잃어버린 황토 빛 고향의 이야기들 그리고 황량한 도시의 거리 위에 별빛처럼 빛나는 詩語들과 이미지는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그때 친숙하게 느꼈던 작가, 시인, 평론가의 이름을 대하면 지금도 知人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한 세대의 年輪이 지났습니다.
--- 1988.4. 1 月刊「현대문학」통권 400호 축하서한
▶ 잡지들이 코치하는 대로 …
따님의 婚事 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 잡지에 먼저 나옵니다. 잡지가 이렇게도 유도하고 저렇게도 유도해서 어떤 것은 따라서 좀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폭소)
--- 1988. 4.21 就任 후 첫 記者會見
▶ 다 벗겨 놓고 …
가족얘기나 私生活 등을 털어 놓으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양파껍질 벗기듯이 다 벗겨보고 또 무엇을 벗기려 합니까 …'(폭소)
--- 1988. 6. 9「한국일보」 創刊 34돌 기념 특별회견
▶ 내 무덤 보러 왔다
4 년전 한국의 政情이 불안하다 하여 國際올림픽委員會 집행위원회가 올림픽 開催地 변경을 논의했을 때 곧장 國際올림픽委員會 집행위가 열리는 '로잔느'로 날아가 '온 한국 국민이 모든 것을 쏟아 준비해 온 손실은 누가 보상하느냐 … 開催地를 변경하면 잠실 主競技場 한가운데에 國際올림픽委員會 위원들의 큰 무덤을 만들어 서울올림픽을 죽인 사람들의 이름을 새기겠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폭소)
사마란치 위원장이 그 뒤 서울에 왔을 때 '나의 무덤을 보러 왔다'고 말해 함께 크게 웃은 기억이 납니다.(폭소)
--- 1988. 9.22 「中央日報」 創刊 23주년 기념 특별회견
▶ 피땀어린 노력의 金子塔
서울올림픽의 영광은 전쟁과 가난에서 스스로 일어나 세계가 놀란 발전을 이룩한 우리 국민의 위대한 힘 … 그 피땀어린 노력의 金子塔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계 속에 우뚝 서 이처럼 자랑스러웠을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 1988.10. 4 1989년도 豫算案 제출에 즈음한 국정연설
▶ 칼을 녹여 쟁기를
한반도에서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드는 날, 세계에는 확실한 평화가 올 것입니다. 나는 그날을 바라보면서 남북의 6천만 겨레와 함께 民族的 大和合을 이룩해 나갈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세대의 엄숙한 사명이며, 새로 자라나는 세대의 꿈이자 정열인 것입니다.
--- 1988. 10. 18. 유엔 총회 연설
▶ 高宗의 친절
지난 세기말 양국간의 관계가 열릴 즈음 한국의 高宗皇帝는 서양의 선교사, 의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신하에게 '왜 저 신사들에게 저렇게 힘든 일을 하게 하나 … 하인들이 대신 해주도록 하라'고 친절한 명령을 내렸습니다.(폭소)
---1988. 11. 8 호크 濠洲 수상내외 주최 午餐 답사
▶ 손잡고 어려움을 떨쳐 나가자
언제까지 과거의 일에 얽매여 있어야 합니까.
지난날의 문제로 안정이 깨어질 때, 어느 누구에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이제는 서로 용서하고 손잡아 어려움을 떨치고 나가야 합니다.
---1988. 11. 26 時局과 관련하여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
▶ 때 늦은 새해 인사는 보좌관들의 탓
89년 2월 청와대에서 駐韓 外交團을 위한 신년 만찬을 베풀면서 이 만찬행사가 年初에 열리지 못하고 2월에야 열리게 된 것과 관련하여,
'외교관들 사이에 '외교관은 골프를 할 때도 본부 훈령이 없이는 티샷을 하지 않는다'는 조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 자신은 여러 분과 반대의 경우로 이 조크의 의미를 실감하고 있습니다. 나는 보좌관들이 日程에 따른 준비를 마치기 전에는 골프 코스에도 나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을 만나 새해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2월에 들어 이루어진 것은 나의 뜻이라기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분께서 익히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폭소)
--- 1989. 2. 2. 駐韓 外交團을 위한 晩餐 연설
▶ 여남은 가지의 대통령
국민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참고 寬容하는 대통령도 원하고… 큰 칼을 휘두르는 대통령도 원하고… 하루 한번씩 決斷을 내리는 대통령도 원하고… 여남은 가지의 대통령이 있어야 여러분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아요.(폭소)
--- 1989. 2. 24 靑瓦臺 출입기자 간담회
▶ 樂觀 쪽이 언제나 勝者
한국에 관한 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결과에 관하여 내기를 한다면 언제나 樂觀的인 쪽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일들에서 보면 더욱 과감한 樂觀 쪽이 언제나 勝者였으며, 회의적이거나 비관적인 예측을 한 쪽이 패했습니다.(박수)
--- 1989. 2. 2. 駐韓 外交團을 위한 晩餐 연설
▶ ‘물태우’라는 별명에 대하여
7, 8년전 우연히 소크라테스의 指導者論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가 말하는 가장 바람직한 지도자의 특성은 '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너그러운가 하면 인색하고, 소름끼치도록 무서우면서도 또 어머니처럼 부드럽고, 고정된 형태가 없이 물과 같은 사람이 지도자로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억압의 세월이 길었던 만큼 욕구분출도 과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 과열된 열기를 억지로 냉각시키지 말고 忍耐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광로가 터지지만 않으면 됩니다. 1천도 올라가도 좋고 3천도로 올라가도 좋습니다. 나무도 타고 석탄도 타고 잡동사니가 타도 끝내 소망스러운 쇳물만 나오면 됩니다.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이렇게 참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자세이고,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물대통령'이란 별명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 1989. 6. 9 「한국일보」창간 35돌 기념 특별회견
▶ 오늘은 눈물 참지 않아도 되니 다행
6·29선언 당시를 회고하면서,
'당시의 혼미했던 정치적 기류를 반영하듯 記者會見長의 공기도 무거웠습니다.
한국의 民主主義에 대한 여러분의 매서운 질문공세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옷에 묻히고 들어선 최루탄가스의 잔재로 회견장 내의 공기는 더욱 매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옷에는 최루가스 냄새가 나지 않아, 내가 억지로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입니다.'(폭소)
--- 1989. 6. 28. 서울 常駐 및 訪韓 外信記者團 회견
▶ 金日成은 金日成
金日成이 어떤 사람인지 평가해 달라는 외신기자의 질문을 받고,
'가장 정확한 답변은, 金日成이라고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고 하면… 金日成과 같은 인물입니다.(폭소) 40년간 쭉 북한을 지배해 온 역사를 여러 분이 잘 아시리라고 생각 되기 때문에 긴 시간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 1989. 6. 28 서울 常駐 및 訪韓 外信記者團 회견
▶ 북한의 변화
저는 이러한 상황을 直視하면서 북한은 도도한 세계적 변화의 물결이 도달하는 마지막 海岸이 될는지는 모르나, 결코 이 물결은 끝내 거역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閉鎖路線에 限界狀況을 맞고 있는 북한은 변화의 물결에 순응하여 끝내는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앞당겨지도록 돕고 이끌 것입니다.
--- 1989. 9. 11 제147회 定期國會 本會議, 民族統一과 관련한 특별연설
▶ 우리말 하기가 더 쉬워
기자 : 마지막 질문인데 오늘 아침 兩院 合同議會에서는 유창한 영어로 연설하던데 이 자리에서는 왜 한국말로 하셨는지요.
대통령 : 첫째 미국 국회는 전부 미국사람들로 구성돼 있지만 이곳에는 세계각국의 기자들이 와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영어보다 한국말 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폭소)
---1989, 10. 18 美 내셔널 프레스클럽 記者會見
▶ 돌아오지 않는 다리
'브란덴부르크문'은 열렸으나 板門店의 다리는 아직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다리'입니다.
--- 1989.11.20 폰 바이체커 獨逸聯邦共和國 대통령내외 주최 晩餐 답사
▶ 우의와 협력의 조류
세익스피어는 그의 작품 ‘줄리어스 시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人間事에는 조류가 있나니 밀물 때를 이용하면 행운을 얻으리라'
우리는 여러분 영국인 친구들과 그 밀물을 타고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 1989. 11.28 비드웰 영국 런던시장 내외 주최 오찬 연설
▶ 1990년대를 맞으며
21세기는 우리의 다음 세대가 세계의 先頭에 선 당당한 나라를 이어받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보다 전향적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가야 합니다.
歷史의 分水嶺이라고 할 이 시기의 소중함 때문에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決然한 마음가짐으로 1990년대를 맞아야겠습니다.
--- 1989.12.25 라디오 週例放送(23) '1980년대를 보내며'
▶ 勤勉과 精進의 美德
한 마리의 매미가 날아 오르려면 두꺼운 허물을 벗어야 하며, 또 높은 탑을 세우려면 수없이 많은 밑돌들을 쌓아 올려야 한다. 우리 모두 합심해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근면과 정진의 미덕을 발휘해야 하겠다.
--- 1990. 1. 20「국책연구」신년호 권두언
▶ 우리 정치의 교훈
옛날 400여 년 전에 우리 栗谷 선생께서 당시의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한탄하던 말씀이 기억이 나는군요. '論議太銳 作事無漸'이라 '옳고 그르고 따지는 데는 날카롭기 그지없는데 하나하나 뭐가 이룩된 것은 없구나'하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정치에 좋은 교훈으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
--- 1990. 2. 24 就任 2주년 KBS-TV 특별회견
▶ 상을 버리는 용단
李性撤 宗正스님께서의 '기독교는 예수를 버리고 불교는 부처를 버리라'는 法語는 모두에게 큰 깨우침을 줍니다. 모든 相을 버리고 法을 깨닫는 데는 용단이 필요합니다.
--- 1990. 4. 27 나라와 民族을 위한 祈願法會 인사말
▶ 현해탄의 해저 터널을 가로질러
일본의 속담에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물레방아를 돌릴 새로운 물은 쉬임없이 흘러오고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간에 진정한 善隣友好의 시기는 이렇게 하게 다시 열릴 것입니다.
다음 世紀 東京을 출발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玄海灘의 해저 터널을 가로질러 서울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北京과 모스크바로, 파리와 런던으로, 대륙을 잇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우정어린 동반여행을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 나갑시다.
--- 1990. 5. 25 일본 국회 연설
▶ 히말라야 산맥이 높아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新思考에 의한 개혁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데 히말라야 산맥이 높아서인지 韓半島는 아직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웃음) 유럽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도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오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1960. 6. 4 韓·蘇 정상회담 중
▶ 내가 익었다면 익은 것
'修交라는 과일이 익어 가는데 그 매듭은 實務次元에서 짓자'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말에 대해,
'내가 東洋에서 제일 오래 기다리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니 내가 익었다고 하면 익은 줄 아시오.'(웃음)
--- 1990. 6. 4. 韓·蘇 정상회담 중
▶ 보통사람끼리의 만남
李元榮 : 저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4학년 재학중인 李元榮입니다. 저는 대학생의 대표는 아니고 아주 평범한 보통 대학생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대통령 : 잘 만났군요. 보통 대학생과 보통 대통령이 만났으니…(폭소)
--- 1990. 6. 29 6·29宣言 3주년 記念 '國民과의 對話'
▶ 南北循環
대통령 : 오늘 나온 설록차가 全南地方에서 재배된 것인데, 血液循環에도 좋으니 차들고 얘기합시다.
참석자 : 血液循環뿐 아니라 南北循環에도 좋았으면 좋겠습니다.(폭소)
--- 1990. 9. 6.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접견 대화록
▶ 어느 것도 포기 못해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 '신문없는 정부보다 정부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신문없는 정부와 정부없는 신문… 어느 것도 택할 수 없습니다.
--- 1990. 9. 29 春秋館 개관식 연설
▶ 경찰이 바로 서야
법률을 집행하는 데는 公明正大해야 합니다.
공정하면 밝음이 일고 깨끗하면 위엄이 저절로 서게 됩니다.
경찰이 바로 서는 것은 곧 法秩序가 바로 서는 첫걸음입니다.
---1990. 10.22 제45주년 警察의 날 記念式 연설
▶ 奇蹟의 순간
로구노프 總長, 교수․학생 여러분.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 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 (나는 奇蹟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詩人 뿌쉬낀이 노래한 '奇蹟의 순간'처럼 驚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990. 12. 14. 모스크바大學 연설 및 質疑應答
▶ 2월이지만 새해 사흘 전
외교관 여러분은 골프장에서 本國의 訓令이 올 때까지 티샷을 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러나 대통령인 나는 보좌관들이 일정을 잡을 때까지 골프장까지 나갈 수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보좌관들이(지난해에는 2월로 너무 늦게 잡았지만) 올해는 외교단 여러분과 신년인사를 나눌 일정을 새해 사흘 전(실제는 같은 2월이나 음력으로 따져서 볼 때)에 잡아 놓았습니다.(폭소)
--- 1991. 2. 12 駐韓 外交團을 위한 晩餐 연설
▶ 최고의 珍客
우리나라에선 옛부터 生日에 맞는 손님을 '최고의 珍客'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이 저의 就任 3週年이 되는 날로서, 이 晩餐은 6공화국의 생일파티가 되는 셈입니다.… 이 뜻깊은 날에 각하께서 訪韓해 주신 것은 '統一韓國의 상서로운 조짐'이라고 하겠습니다.(웃음)
--- 1991. 2. 25. 폰 바이처케 독일 대통령내외를 위한 晩餐 중 歡談
▶ 손자의 운명
87년 대선 유세 때 사위로 과학기술자를 맞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기자들의 공박에 대해,
'미안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노력을 했습니다. 노력도 많이 했는데 (딸이) 이제 유학도 가고 하다 보니까… 이번 결혼만은 꼭 좀 허락해 주십사 간청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승낙을 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손자가 생기게 되면 그 손자는 꼭 과학기술자로 양성하겠습니다.'(폭소)
--- 1991. 4. 30 韓國科學記者클럽 초청 懇談會 중
▶ 시장이 반찬
우리나라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리 솜씨가 나쁜 부인은 가능하면 저녁을 늦게 내 놓는다는 것입니다. 시장하니까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녁이 이렇게 늦은 것은 결코 나쁜 요리 솜씨 때문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방문하는 소련 대통령 내외분은 귀중한 손님입니다. 여러분에게 내놓을 요리도 정성을 들인 것입니다.
濟州道에는 갓 결혼을 한 신혼부부가 많이 찾아옵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신혼부부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오늘 우리들이 귀한 신혼부부를 맞는 마음으로 저녁을 준비하다보니까 이렇게 늦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1991. 4. 19 고르바초프 소련 大統領內外를 위한 晩餐 만찬사
▶ ‘보통 사람’의 知的 所有權
링컨 대통령께서는 '보통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보통사람이 제일 잘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보통사람을 가장 많이 만든 것을 보더라도 이것이 설명된다'라고 말한 것이 생각납니다.
이 '보통사람'이 바로 나의 대통령 선거구호였고, 그 후 제6공화국에 와서도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는 것이 내가 이끄는 정부의 國政目標가 되었습니다.
'보통사람'을 선거구호로 선택했을 때 나는 링컨 대통령이 이런 말을 먼저 썼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내가 링컨 대통령의 '지적 소유권'을 침해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고의적인 침해행위는 아니었음을 믿어 주시기 바랍니다.(폭소와 박수)
--- 1991. 7. 2 부시 미국 대통령내외 주최 국빈만찬 답사
▶ 陸史詩集
6·25 동란이 일어나 軍門에 들어갈 때까지 오랫동안 책머리에 놓아 두었던「陸史詩集」의 서문에는 이역 北京의 감옥에서 눈을 감은 시인 陸史의 恨 많은, 그러나 빛나는 삶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전쟁의 砲煙 속에서 삶과 죽음이 엇갈리고 모든 사람이 갈 길을 몰라 방황하던 그 시절에도 이 한 편의 주옥 같은 시를 생각하는 것으로 새벽 하늘의 별빛 같은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여 지은 旅團歌와 師團歌를 젊은이들이 아직도 부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 일이다.
--- 1991. 9. 1 계간「시와 시학」91년 가을호 특별기고
▶ 40년 걸린 수십미터의 거리
우리 유엔 대표단의 자리가 옴서버席에서 회원석으로 불과 수십 미터 옮겨 오는데 40년 넘어 걸렸고 동․서독의 두 의석이 하나로 합쳐지는 데는 17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남북한의 두 의석이 하나로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 1991. 9. 24 제46차 유엔總會 연설
▶ 기적이란
꿈에 비해 성취가 적은 것이 이 세상의 통상적인 일입니다.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것을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奇蹟'이라고 합니다.
서로 단절되고 폐쇄된 사회 속에서 식민주의의 桎梏과 落後性, 貧困이 主調를 이루던 반세기 전의 아시아를 상기할 때 발전의 活力이 넘치는 오늘의 태평양 西岸은 '기적'이란 말로도 부족한 것입니다.
--- 1991. 11. 13 제3차 아·태 경제협력각료회의 기조연설
▶ 민주주의의 강점
'민주주의자들은 토론할 때는 분열하지만 실천할 때는 하나가 되고… 공산주의자들은 토론할 때는 하나가 되지만 실천할 때는 분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이러한 强點을 발휘할 수 있어야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고 통일도 성취할 수 있습니다.
--- 1991. 10. 14 民主平和統一諮問會議 제5기 運營·常任委員會 合同會議 연설
▶ 羊 같은 韓國人
어느 韓國人이 몽골人에게 肉食만 하고 전혀 菜食을 안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몽골人이 답하기를 '양이 풀을 먹고, 그 羊을 사람이 먹는데 무엇때문에 사람이 힘들게 풀까지 먹겠느냐'하더라는 것입니다.(웃음)
그렇다면 韓國人은 '양'이 되는 셈입니다…(폭소)
韓國人은 양처럼 善良하고 平和로운 民族입니다.
---1991.10.23 오치르바트 몽골 대통령내외를 위한 晩餐 중 歡談
▶ 南北韓의 距離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서울과 平壤間의 距離는 이 地球上 가장 머나먼 것이었습니다. 온 겨레의 뜻과 여러분들의 努力으로 그 距離는 이제 반나절의 距離로 줄었습니다.
내년에 建設이 시작되는 경부고속전철이 98년에 完工되면 한 시간 반이면 서울에서 釜山까지 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平壤까지는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距離입니다.
이제 南北의 모든 同胞가 서울에서 아침을 먹고 平壤 가서 볼 일을 보고 돌아와 서울에서 저녁을 드는 世上을 빨리 만듭시다.
---1991.12.13 南北 高位級會談 북측대표단 접견 중
▶ 南男北女
옛말에 南男北女라고 했는데 우리 농촌 총각들 신부감이 없어 중국 동포 처녀들을 신부감으로 구하기도 한답니다. 두 분 총리가 남북의 처녀 총각들을 중매할 수 있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진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1991.12.13 南北 高位級會談 북측대표단 접견 중
▶ 言論이 더 잘 알아
南北頂上會談의 개최 여부에 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
'요즈음 신문을 보니깐 이 문제는 언론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대로 따라갈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폭소)
---1992. 1. 10 1992년도 年頭記者會見
▶ 테니스 브리핑
작년 11월 APEC 會議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베이커 國務長官 內外와 테니스 시합을 한 적이 있는데 장관이 대통령 각하의 善戰을 위해 나의 최근 테니스 實力과 靑瓦臺 코트의 特性 등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하지는 않았는지요?(폭소)
---1992. 1. 6. 부시 美大統領 내외를 위한 만찬중 환담
▶ 日本의 先見之明
韓國에서는 미국을 美國이라고 쓰고, 日本에서는 米國이라고 씁니다.
요사이 美國과의 쌀시장 開放 問題가 있는 것을 보면 日本에서 先見之明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1992. 1. 16 미야자와 日本總理 내외를 위한 만찬 중 환담
▶ 言論은 第1府
여러분들 '政府의 言論支配'라는 冊子를 書店의 어느 코너에서 찾을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小說코너'에나 있습니다.(폭소)
言論을 가리켜 立法, 司法, 行政에 이어 第4府라고 하지만 오늘날 自由國家의 言論은 第1府라고 생각됩니다.(폭소)
---1991. 2. 25 就任 4週年 賀禮
▶ 忍耐學 博士
외국의 어떤 유명대학의 총장을 만났을 때 그 분이 저에게 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해요.
그래서 '무슨 박사학위를 주겠느냐'고 물었더니 당신은 참기를 잘하니까 인내학 박사… 닥터 어브 페이션스(Doctor of Patience)를 주겠다는 거였습니다.(폭소)
--- 1992. 6. 29 6·29 5주년 기념 보통사람과의 대화
▶ 참용기
'참고' '용서하고' '기다리는 것' 것, 그것이 참용기입니다.
---1992. 6. 29. 6·29 5주년 기념 보통사람과의 대화
▶ 民主化 시대의 憲法
우리나라 헌법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헌법입니다.
2차대전 후 신생국 대부분이 식민 본국에서 전문가를 데려다 헌법을 만들었으나 우리는 미군정하에서도 순수 국산헌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헌법을 8번이나 개정해서 헌법이 아니라 '흔법'이라고도 한답니다.(폭소)
나는 헌법에 손대지 않은 대통령이 돼 퍽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날의 헌법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한을 주었습니다. 각종 비상대권을 비롯, 대통령이면 못할 것이 없었죠.
그래서 지난날의 헌법을「대통령의, 대통령에 의한, 대통령을 위한 헌법」이라고까지 부릅니다.(폭소)
그러나 오늘의 헌법은「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헌법」이 되었습니다.
--- 1992. 7. 17 高校 동문·은사 만찬
▶ 가뭄 걱정 안해
나는 비 안 올까봐 걱정하지 않았습니다.(마침 이날 오랜 가뭄끝에 남쪽에도 비가 꽤 왔다). 비서실장 이름에 바다 해(海)자(丁海昌 비서실장)가 있고, 경호실장 이름에 비 우(雨)자(李賢雨 경호실장)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양쪽에 염수 담수 다 거느리고 있으니 비 걱정할 필요없었습니다.(폭소)
--- 1992.7.17 高校동문·은사 만찬
▶ '독한 민족'이 아니라 '강한 민족'
어느 外國人이 이번 마라톤 競技에서 韓國, 日本, 獨逸의 세 나라 選手가 각축을 벌이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독한 民族들끼리 붙었군'(폭소)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표현이 잘못 됐습니다.
'독한 民族'이 아니라 '强한 民族'입니다.(박수)
---1992.8.13 바르셀로나 올림픽參加 選手團 茶菓會
▶ 成年式
'過去에는 人生七十 古來稀이나 지금은 人生六十 靑春來'라고 하지만 내 생각에도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다 靑春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행사도 回甲宴이 아니라 成年式입니다. 이제 내 나이 回甲지나 겨우 한살입니다.(폭소)
---1991. 8. 14 回甲 하례
▶ 아내
'젊은 아내는 아름다워 좋고, 중년 아내는 싸우고도 웃어 좋고, 나이든 아내는 어머니 같아 좋다'는 말 아시는지요?
이는 특히 군인의 부인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부인여러분, 나, 점수 좀 땄습니까?(폭소)
---1992.10.24 육사동기생 초청 만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