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태계, 보수적 공화당보다 민주당 선호

좌파성향 反戰주의자 존 케리, 오바마 지지선언
 
여배우 제인 폰다(유태계)와 함께 반전 시위에 나서 연설을 하고 있는 존 케리.ⓒ urbanlegends.com
좌파 성향의 반전주의자인 존 케리 상원의원(유태계·2004년 민주당 대선후보)이 버락 오바마의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케리 의원은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다른 후보들도 존경할 만한 후보이지만 오바마 후보가 미국을 하나로 묶고 변화를 가져올 적임자로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케리 의원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옳은 일은 언제 하든 바로 그 시간이 옳은 시간’이라고 했다”면서 “오바마가 차기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며, 또 그렇게 돼야 한다”고 강력한 지지 의사를 전달했다.

케리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대중적 지명도가 있는 유력 정치인 가운데 한명으로 지난 2004년 존 에드워즈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됐다. 오바마 진영에서는 케리의 지지 선언이 향후 힐러리와의 경선에서 상당한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태계, 정치색 짙은 각종 사회단체 활동 관여

미국 유태인의 대다수는 매우 리버럴(liberal)하다. 이로 인해 이들의 정치적 성향도 자연히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상대적으로 소수민족을 우대하며 리버럴한 성향을 띤 민주당 선호로 기울어져 있다. 따라서 케리 상원의원의 오바마 지지선언은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 유태인 중에는 사회주의자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 내 정치색이 짙은 각종 사회활동(노동· 성운동)에는 유태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 단체와의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1886년 시가(담배) 제조 노동자들의 조합을 이끌던 유태인 사무엘 곰퍼스(Samuel Gompers)가 창설한 미국노동총연맹(AFL)의 경우 1904년 1백75만 조합원을 거느린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 조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60년대 이후 흑인 민권운동을 성원한 주축세력도 유태인이었으며, 월남전 이후 기승을 부리던 인권단체 등의 지도부 역시 거의 유태인 일색이었다.

미 공산당 중앙위원회 유태계 비율 33.5퍼센트

일례로 1921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유대인이 차지했던 비율은 33.5퍼센트였으며 평당원 수준에서는 40퍼센트를 차지했다. 1950년대를 거쳐 5만 명에 달했던 미국 공산당에서 유대인은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으며 이들에 있어 입당자의 숫자는 항상 탈당자의 숫자를 상회했다.

다른 민족출신들에 비해 인구비례상 유대인의 공산당 입당율은 10배가 넘는 것이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비슷한 숫자의 유대인 사회주의자 및 무정부주의자들과 같은 좌경급진주의자들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Natha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1920년대 초반부터 미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국 내에서 소련의 입장을 옹호하고 소련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지하에서는 소련 비밀경찰의 지령에 따라 미국에 대한 간첩임무도 수행했다. (1947년 소련에 원자폭탄 비밀을 넘긴 죄로 처형된 유대인 로젠버그 부부 역시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다.)

1930년대 미국에서 유대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이 심어놓은 공산주의 지하세포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으며 1947년 스미스 법안에 의해 기소된 공안사범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사실상 유대인의 운동이었던 공산주의를 만인 보편적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미국 공산당의 유대인 수뇌부는 간부들을 상대로는 그들의 이름을 미국식으로 개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했고 외부의 눈에 띄는 직위에는 항상 지방출신의 비유대계 인물을 배치했다. (Source: H. Klehr, Communist Cadre, 1978; N. Glazer, The New Left and the Jews, 1969; K. Kann, Joe Rapoport, 1981; Klehr, Haynes &; Firsov,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 1995; A. Liebman, Jews and the Left, 1979)

특히 유태계 좌파 핵심세력들은 미국의 베트남 완전철수를 요구했으며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자 공산주의자들의 완전한 승리를 원하기도 했다. 특히 반전론자들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하자 美 의회 앞으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증오했던 사람들 그리고 존 케리(John Kerry·체코계 유태인)와 제인 폰다(Jane Fonda)처럼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은 미국의 북 베트남 폭격을 비난했다. 뉴욕 출신의 여성 국회의원이었던 벨라 앱저그(Bella Abzug·유태계 페미니스트)의 경우 수천 명에 이르는 남부 베트남의 정치범 석방을 주장하기도 했다.

적은 숫자의 유태인이 이처럼 다양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이들 활동이 필요로 하는 개방적 성향과 함께 자금과 언론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낙태문제, 정교분리 문제에 개방적 태도 지녀

실제로 소득면만 보더라도 유태인 한 사람의 연 평균 소득이 4~5만 달러인데 비해 일반 미국인은 3만 7천 달러 선이므로 미국사회 전반에 걸쳐 유태인은 대체로 안정된 상류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태인은 실상 민주당 인사보다 더욱 리버럴하다.

특히 낙태문제, 정교분리 등 주요 사회문제에 대한 유태인의 성향은 민주당보다 더 개방적이다. 특히 각종 선거 때마다 미국 일반인의 평균 투표율은 53%인데 비해 유태인의 투표율은 80%를 넘는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있은 출구조사를 보면 유태인 78%가 클린턴(민주당)에게 투표하고 12%는 부시(공화당), 10%는 페로(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태인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당락에 상관없이 평균 55~65%가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고, 약 10%선이 공화당후보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리버럴 혹은 무소속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Jewish Power’, 1997년 판)

4선에 성공한 유태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

특히 친(親)유태적 성향이 강했던 루즈벨트(네덜란드계 유태인) 대통령은 4선 모두 유태인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반대로 유태계 혈통이지만 보수주의자 이었던 골드 워터(Barry Goldwater) 공화당 후보의 경우 1964년 대선서 약 10%의 유태인 득표에 그쳤다.

한편 부시 가문의 경우 유태인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부시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Jeb Bush)가 수년 전 플로리다 주지사 출마했을 때 유태인들은 멕시코 인을 아내로 맞은 그를 낙선시키려고 했고, 2000년 대선의 플로리다 재검표 사건 때도 유태인들이 고어 편에 서서 부시를 낙선시키려고 법정투쟁을 주도한 바 있다.

일례로 지난 미 대선직전 여론조사 기관인 ‘그린버그 리서치’가 유태인 유권자 8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가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던 것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잘 이해 할 수 있다.

반(反) 공화당 운동의 화신 유태계 ‘조지 소로스’

특히 세계적인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막역한 사이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유태인)는 지난 대선에서 전례 없는 반(反)부시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반(反)부시 단체인 ‘함께 가는 미국’(America Coming Together)에 1000만 달러 기부를 약속한 뒤 500만 달러를 전달했으며, 부시 정책을 반대해온 인터넷 시민단체 ‘무브온’(Move On)에 25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당시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소로스가 기부를 약속한 돈은 드러난 것만 1550만 달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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