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에 ‘김용갑 효과’라는 말이 번지고 있다. 지난 1월 3일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한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72·3선·경남 밀양·창녕)의 결단이 ‘물갈이’를 촉발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 논란이 일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당 전체가 김용갑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중진들을 향했고, 지난 1월 6일 3선인 김한길 의원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파장을 몰고 온 당사자는 담담했다. 지난 1월 8일 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용갑 의원은 자신의 결단 배경에 대해 “‘김용갑 효과’ 같은 걸 노린 게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미 4년 전 ‘한 번만 더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고, 사나이답게 자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만둔 겁니다. 국회의원이 처음은 아무나 하지만 끝날 때는 지저분하게 밀려나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회에서의 강경 발언을 통해 ‘원조보수’ ‘꼴통보수’라는 말을 들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이지만, 세 차례의 국회의원 임기 중 욕심 내서 도전한 것은 15대 초선 임기뿐이었다고 한다.
“16대 때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집 사람(김하야·68) 때문에 출마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밀양과 창녕 선거구가 통합돼 창녕을 지역구로 두고 있던 노기태 의원한테 양보했죠. 그런데 공천 작업을 하던 중진들이 ‘양보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니 공천을 해버렸습니다. 17대 때도 스스로 물려나려고 했는데 소장파 의원들이 ‘김용갑·정형근 물러나라’고 정치 플레이를 하기에 격분해 싸우다가 공천이 돼 버렸죠.”
그의 인생에서 사퇴 결단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차관급인 안기부 기조실장 자리를 스스로 그만뒀고, 노태우 정권에서는 총무처 장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는 “특히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한번 젖어들면 마약처럼 끊기 어렵다”며 “자유로우면서도 여러 가지 보장을 받는 자리여서 좋다”고 말했다. “여당 국회의원은 더더욱 좋죠. 요즘 우리당 사람들 만나면 ‘여당 국회의원 한번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처럼 매일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 의원은 고생만 하죠. 정부에 찍힐까봐 후원회에 돈도 안 들어옵니다. 어렵게 정치를 했지만 소신껏 하다가 그만두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는 “국회의원은 3선이면 환갑”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보통 40대 후반에 국회의원이 되지 않습니까. 3선이면 12년인데 물리적 나이로도 60살 가까이 됩니다. 초선 재선까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지만 3선부터는 자리만 챙기려 듭니다.”
스스로 ‘정치 환갑’이라고 판단해 ‘명예제대’를 한 것이지만 보수단체에서 만류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철승 헌정회 회장도 전화를 걸어와 “한나라당에 김용갑이 있는 것과 없는 것과는 차이가 엄청나다. 너 혼자 생각만 하고 나갈 수 있느냐”고 ‘기합’을 줬다고 한다.
격려의 말도 많았다. 창당작업 중인 이회창 대표는 전화를 걸어와 “한나라당에 김용갑이 없으면 어떻게 보수당이냐”면서도 “그 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김진현 전 과기부 장관은 “한국의 보수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해 도덕성에 문제가 있었는데 김용갑 때문에 한국의 보수에도 희망이 생겼다”는 격려를 해왔다고 한다.
김용갑 의원은 “국회의원 12년 동안 건교, 산자위 등을 거쳤지만 결국 안보와 대북관계, 국가 정체성 문제만 물고늘어졌다”며 “그 동안 안보, 대북 관계 성명서만 일주일에 1.5회꼴로 냈고 ‘나라 안보를 걱정하는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8년간 이끌었다”고 의정생활을 회고했다. 그가 자신의 발언 중 가장 ‘역작’으로 생각하는 것은 2000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을 ‘조선노동당 2중대’로 비유한 발언. “대정부질문을 앞두고 김영일·현경대 두 의원이 ‘형님, 뭔가 한 말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해낸 말이 ‘조선노동당 2중대’였다”고 한다.
국회 파행도 서슴지 않으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였지만 “물러나는 마당에 나로 인해 개인적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며 “간첩에 빗대 ‘세작’이라고 비판했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에게 특히 미안하고, 2006년의 ‘광주 해방구’ 발언 역시 본의가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그는 “이제는 내가 물러나도 될 만큼 상황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고, 무엇보다 이명박 당선인의 이념과 안보관도 믿을 만하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선 후 이명박 후보가 국회 통외통위, 국방위 의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념을 뛰어넘어 실용으로 간다고 하는데 이념은 국가 경영철학 아니냐, 이념이 뭐냐’고 따져물었죠.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대답하기에 ‘그건 헌법에도 있고 열린우리당도 주장했다’며 계속 다그쳤죠. 이명박 후보로부터 ‘한·미동맹 강화’ 등의 얘기를 듣고서야 끝냈습니다.”
사실 이명박 당선인과 그의 인연은 오래됐다. 전두환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할 때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던 이명박 당선인이 면담을 요청해오면 만나곤 했다는 것이다. 인연으로 보면 지난 경선 때 이명박 당선인을 도와야 했지만 그는 대북 문제, 이념 문제에서 자신과 더 가까운 박근혜 후보 진영에 아무 주저 없이 들어갔다. “나야 그만둘 사람이지만 경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반대 진영에 섰다는 이유로 한나라당 내부에서 적으로 취급받는 사람들이 나오면 곤란합니다. 지금의 공천 갈등을 보면 박근혜 진영은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은데 이명박 당선인 주변 사람들이 자꾸 그렇게 만듭니다.
'‘우리가 이겼으니까 독식해도 된다’는 말은 여야 관계에서나 해당하는 말입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면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쓴소리를 잘 듣고 수용하는 게 중요하다”며 “기업하던 사람은 ‘자신이 옳다’는 고집과 아집이 있지만 이명박 당선인도 쓴소리와 반대의견을 수용하기를 바란다”는 충고도 했다.
그는 북·미 수교 전망이 나올 만큼 한반도 상황이 변하고 있지만 ‘원조 보수주의자’답게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2000년과 지난해 두 번의 정상회담 후 청와대가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북한산 송이버섯을 보내왔지만 다 돌려보냈다. 산자위 시절 개성공단을 방문한 동료 의원들에게 북한 간부들이 “왜 김용갑 의원은 오지 않느냐”는 말도 건넸지만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통일이 되거나 북한이 진짜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면 가볼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나는 북한 체제가 쉽게 변하지 않고 핵 문제도 잘 해결되지 않으리라 봅니다. 개혁개방을 하면 저들 체제는 붕괴됩니다. 어떤 핑계를 대든지 핵을 몇 개 정도 숨겨놓으려 할 겁니다. 이명박 정부에 북한 문제는 가장 큰 시험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그는 “지난 10년간 북한이 매년 발표하는 ‘통일 5적’에 빠짐없이 들어간 사람은 나랑 조갑제씨밖에 없는데 현역에서 물러났으니 북한이 빼주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김용갑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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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생. 밀양농잠고, 육사 17기. 육군 소령 예편 후 안기부 기조실장, 청와대 민정수석, 총무처 장관 등을 지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느냐”는 말을 남기고 총무처 장관직을 사퇴하면서 대표적 보수우익 인사로 떠올랐다. 1996년 15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고향 밀양에서 출마해 당선된 뒤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