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마음의 38선 제거해야

북한에서의 고통이 인간의 초보적 삶을 위한 원시적 고통이었다면 남한에서의 고통은 지능적인, 정신적 고통이었다.]

최근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다시 신분을 속이고 남한 땅을 떠나 영국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례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물론 영국에 재정착한 탈북자들은 언어장애로 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남한에서의 어려운 취업난과 정부의 무관심이 이들의 마음을 더욱 떠밀고 있다.

또다른 한 가지 이유는 탈북자 정착지원금과 생계비가 끊기면 더욱 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이다. 남한에 혈육 한 점 없고, 끈끈한 인관관계도 없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카네기의 인관관계론'을 뒤적거리며 모대겨 보지만, 이론과 현실과의 공백은 너무도 크다. 남한 국민들이 영국과 같은 선진국 사람들의 의식수준에 도달하지 못해서일까? 물론 본인의 주관적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객관도 무시할 수 없다.

이로부터 탈북자들은 주관적 욕망과 객관적 조건이 주어진 선진국 영국을 바라보게 된다. 영국은 사회적으로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되여 있고 한국처럼 취업준비 기간도 없이 일자리 찾기에 급급하지 않아도 일정한 여유를 가지고 취업준비를 할 수 있다. 또한 영국에 들어가면 집과 혜택이 많고 넉넉한 생활비를 제공해 준다는 것도 그들에게는 희망으로 된다.

어렵게 남한에 정착했지만 대다수의 탈북자들은 또다시 새 삶을 찾아 철새마냥 영국으로 떠나가고 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떠나가며 한결같이 남기는 말이 있다.

2002년 남한에 입국한 한현옥(36살, 여)씨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한 씨는 평양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대학교수 생활을 하다가 배고픔을 참지 못해 언니와 함께 1998년 중국으로 탈북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중국에 대한 환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끈질기게 위협하는 중국공안들과 안착된 생활을 못하는 탈북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찾아 취직하면 또 다른 고통이 기다렸다. 한씨 형제는 수십 번을 집과 직업을 옮겨가며 살아야 했다.

이러한 때 우연히 한국 사람을 알게 되었고 이들은 서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씨는 한국에 입국하게 되었으며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한씨는 북한에서도 대학교수로서 능력을 인정해주는 일급교수였다. 비록 결혼은 했지만 남한에서 자기의 재능과 지식을 써먹으려고 많은 애를 썼다.

물론 살아온 경력과 남북한사회의 모순은 있지만 사업가 기질이 있는 의학자로서 그는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씨의 학력과 경력을 남한사회는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탈북자라는 이유로 취업하기도 힘들었다. 여기에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남편은 한씨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부터 학대와 멸시가 시작됐다. 여기에 끝내 참지 못한 한씨는 2006년 이혼소송을 했고 남편과 헤어지게 되었다.

그런 한씨를 우연히 만났다. 하지만 당시 그는 영국으로 이민 갈 준비에 몰두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한씨의 생각에 “목숨 걸고 힘들게 남한에 입국하였는데 왜 영국으로 떠나려고 하는가?”고 물었다.

한참 후 한씨는 “남한인들이 탈북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아직도 모르십니까? 아무리 지식과 학식이 있고 희망과 꿈이 있어도 남한인들에게는 우리가 무지하고 위험한 남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라며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연했다. 취업이 힘든데다 이혼까지 당하게 된 그녀의 가슴속에는 남한사회에서 입은 또다른 상처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인간의 초보적인 삶을 위한 원시적인 고통이었다면 남한에서의 고통은 지능적인, 정신적 고통이었다.

'귀순자'라고 불렀던 90년대만 해도 탈북자수는 몇천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탈북자 수는 1만3000여명을 넘어섰다. 최근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이민을 가고 싶다”고 한 탈북자들은 65∼70%였고, 나머지 20∼30%의 응답자는 “조선이 통일만 되면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혈통으로 보나 국적으로 보나 그들은 남한인과 같은 '한국사람'이지만 실상은 탈북자임을 숨겨야 할 정도로 한국 사회가 탈북자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탈북자 차별의 발원지는 다름 아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남한체제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해 탈북자들은 매우 쓸모 있는 존재로 부각되어 있었다.

단편적인 예를 든다면 안보강연을 진행하며 독재사회의 단점과 민주주의 사회제도의 우월성을 터득하며 북한사회의 인권개선, 민주화, 그리고 통일이라는 꿈을 만들어 나가는 긍지가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독재정권에 눈치놀음만 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0년 세월은 그런 꿈과 희망을 정신이상자로 취급해 버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남한의 많은 사람들이 몇년 전 在中 한국대사관에서 벌어졌던 일명 '대사관녀' 사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또 1998년 10월18일 방송된 “국군포로 장무환-50일간의 북한탈출기”편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장씨는 6·25 전쟁 당시 국군포로로 북한에 끌려가 함경북도 아오지탄광 등에서 생활하다가 1998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체류했다. 그 과정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대사관 여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쌀쌀하게 거절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일반 탈북자가 아닌 남한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포로된 국군 출신이 냉대의 대상이 되어 결국 문제가 됐지만, '대사관녀'의 태도는 탈북자들을 '귀찮은 빈민'으로 인식해 문제처리의 부담을 피하려는 한국관료 집단의 뜻을 잘 반영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장무환씨처럼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은 무수히 많다. 중국에서 대사관 직원이나 국정원 직원을 만나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들에게 들을 수 있는 것은 “도와줄 수 없다”는 답변밖에 없다.

사실 대사관 여직원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렇게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는 많은 탈북자들을 외면하는 한국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앞으로도 한국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무관심이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을 떠나가는 탈북자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소원인 북한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의 길을 앞당기는데 많은 영향이 있게 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2월이면 이명박 새 정부가 들어선다. 남한주민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1만여 탈북자들도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새 정부가 솔선수범으로 김정일 독재정권아래서 원시적인 삶을 살아온 탈북자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 정부의 많은 관심이 탈북자들의 가슴속에 그어진 38선이 사라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정경일 기자 wjdruddlf@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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