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15일 건국한 이후 대한민국은 지금까지 세 차례 구조개혁을 했다. 첫째가 1948년 체제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국가정체성으로 삼은 국민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민족사에서 최초로 국민들이 국가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48년 체제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민주주의 경험자도 없었고, 민주주의에 쓸 돈도 적었으며, 민주적 제도도 全無했다. 가진 것은 헌법뿐이었다.
더구나 6.25 남침을 당해 국가생존을 건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상당 부분이 실천 보류되거나 제약되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3大 요소인 선거의 자유, 언론자유, 私有재산권의 자유는 명맥을 이어갔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한번도 진정한 의미에서 독재였던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1948년 체제의 주역은 李承晩 대통령이다.
두번째 등장한 체제는 朴正熙가 만든 1961년 체제이다. 즉 5.16 군사혁명으로 국가지도층이 민간정치인에서 軍 장교단으로 바뀌고, 국가제도가 효율적으로 정비되었다. 직업 관료제도, 기업, 군대가 생산과 건설을 최고의 美德으로 삼고 국민들을 끌고 갔다. 이 체제下에서 대한민국은 경제발전에 성공하여 민주주의의 물질적 제도적 토대를 만들었다. 박정희, 全斗煥 시절과 겹치는 1961년 체제는 자유를 지향한 권위주의 체제였다. 독재라기보다는 '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였다. 민주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경제 우선 발전 전략으로 민주주의의 성공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체제였다.
세번째 구조개혁은 1987년 6.29 선언 이후이다. 盧泰愚 대통령이 개혁을 주도하여 만들어낸 1987년 체제는 脫권위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였다. 2008년의 한국은 1987년 체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1998년 좌파정권이 등장하고 2003년에는 2期 좌파정권이 들어섰으나 1987년 민주체제의 성격을 바꾸지는 못했다. 1987년 민주체제가 한국의 성숙해지는 사회경제발전을 반영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린 巨木이었으므로 좌파세력이 손을 대 보았지만 자를 수도, 뽑을 수도 없었다. 12월19일 선거는, 1987년 체제가 反민주적 좌파의 도전을 극복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일어났던 구조개혁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22개의 업적을 정리해보니 그의 在任 시절에 전면적인 민주화가 이뤄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1. 대통령 직선제 개헌
2.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
3. 언론자유 확대: 신문 출판의 자유화
4. 사회단체 자율적 운영: 농축산 조합 등.
5. 노사관계 자율화: 노조에 대한 정부 개입 금지
6. 여성권익 보호 및 사회참여 확대: 가족법 모자보건법 보육법 제정 및 개정. 공무원 채용 남녀구분 폐지.
7. 지방자치 시작
8. 유엔 가입
9. 韓中-한러수교
10. 북방정책: 동구 공산권으로 진출
11. 남북대화와 기본합의서
12.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13. KTX, 영종도 공항, 서해안 고속도로
14. 서해안 개발 시대 선언
15. 5대 신도시 및 주택 200만호 건설
16. 토지공개념 도입
17. 全국민 의료보험화
18. 국민연금도입
19. 중학교 의무교육 확대
20. 서울올림픽 성공
21. 전교조 불법화 및 해산
22. 범죄와의 전쟁
1987년 6.29 선언에서 盧泰愚 당시 민정당 대표는 8개항의 약속을 했었다.
1. 대통령 직선제 개헌
2. 공명한 선거관리
3. 김대중 사면 복권
4. 국민 기본권 보장
5. 언론규제 철폐
6. 지방자치와 사회단체의 자율 보장
7. 정당활동의 보장
8. 사회淨化
在任시절의 업적 22개항을 보면 노태우 대통령은 이 8개항을 실천하려고 정직하게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노태우씨가 6.29 선언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으나 그가 선언상의 약속을 실천했다는 점은 소홀히 한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 5년은 국내외의 전환기가 겹친 시기였다. 국내에서는 민주화의 소용돌이, 국외에서는 공산체제의 붕괴가 일어났다. 盧 대통령은 민주화의 핵심인 민간부분의 자율과 경쟁을 촉진하고, 북방정책으로써 공산권 붕괴의 好機(호기)를 이용하여 국가의 活路를 찾았다. 작년 韓中무역액은 1400억 달러에 달해 전체 무역액의 약20%를 차지하고 韓美 韓日 무역액을 합친 액수를 능가한다. 韓中수교는 노태우 대통령에 의해서 1992년에 이뤄졌다. 수교 16년만에 중국은 한국경제의 생명선이 되었다.
6.29 선언 실천의 결과로 한국은 硬性국가에서 軟性국가로 변했다. 경성국가는 지도자가 실패하면 체제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연성국가는 복원력과 유연성이 있다. 지도자가 실패해도 민간부문의 자율과 自生力으로 국가와 체제는 위기를 극복한다. 좌파정권 10년간의 도전에 1987년 체제가 응전하여 12월19일 선거에서 이긴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1987년 민주체제를 변질시키려 했으나 실패했다. 연약하게 보이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역경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뿌리를 상당히 깊게 내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2월19일의 선거를 계기로 노태우 시대를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1987년 체제의 연장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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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1-23, 15: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