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통권 환수가 자주국방의 화룡점정』>
고진화(高鎭和) 의원은 盧武鉉 정권의 국보법·사학법·신문법·과거사법 등 4대입법 추진에 동조 내지 더욱 강력한 추진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의 배후인물이었던 高의원은 국회 진출 이후에도 反美색채를 드러내왔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자주국방의 화룡정점(8월16일 국회 세미나)』이라며 韓美연합사 해체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에 감사(感謝)말고 감사(監査)청구를 수용하라(2004년 11월4일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상 비판보고서)』며 韓美관계의 불평등성(?)을 강변했다.
북한 核실험 직후엔 『동아시아의 新냉전구도를 다시금 추진하는 네오콘 정책의 실패(2006년 10월29일 「시사포커스」인터뷰)』라며 미국 탓으로 돌렸다. 또 『이라크전은 네오콘이 세계시민을 야만(野蠻)화시킨 것(2006년 11월13일 성명)』이라며 이라크파병철회를 주장해왔다.
반면 高의원은 『포용정책이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2006년 10월12일 성명)』,『포용정책이 南北관계를 망쳤다는 주장은 관련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포용정책과 北핵실험과 무슨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겠느냐(同年 10월29일 「시사포커스」 인터뷰)』며 核실험 이후에도 소위 포용정책 지속을 역설했다.
<『냉전의 굿판을 거둬야 할 때』강정구 비호 나서>
高의원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해 온 늙은 망령(2004년 12월9일 성명)』등으로 비난하며, 3년간 적용되는 한시적(限時的) 특별법으로 개정한 후 형법으로 통합, 즉 폐지할 것을 주장해왔다.
2004년 12월9일 성명은 『국보법 폐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도모하면서 국보법을 한시적 특별법으로 개정』할 것을 주장하며, 우선 국보법 제2조(정부참칭)·제6조(잠입ㆍ탈출)·제7조(찬양·고무)·제8조(회합ㆍ통신) 등 핵심조항 개정 및 삭제를 주장했다.
또 『강정구 교수가 학문과 사상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2005년 10월19일 연합뉴스)』,『냉전의 굿판을 접어야 할 때(同年 10월14일 PBC라디오)』라며 동국대 교수 강정구의 反국가 선동을 비호하고 나섰다.
<과거사위 권한 강화 개정안 제출>
高의원은 2005년 4월 과거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에도 이를 『누더기 과거사법』으로 비난하며 더욱 강력한 과거청산(?)을 주장해왔다. 같은 해 6월29일엔 과거사委 조사권한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개정안을 한나라당 元喜龍·裵一道·朴啓東 등 여야 의원 64명과 함께 제출했다.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아니냐(2005년 12월14일 조선일보)』고 주장해 온 高의원은 『사학법 개정과 理念문제를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2005년 12월4일)』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저지 투쟁을 비난해왔다.
高의원은 2005년 盧대통령이 改憲 제안을 하자 1월4일, 1월22일 연이어 성명을 발표,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마저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기 위한 『헌법 영토조항 및 통일조항의 개정』 등을 주장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작은 문제』>
高의원은 2006년 12월11일 민중의 소리 인터뷰에서 『人權문제 등의 작은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문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南北간의 신뢰와 이해가 전제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북한인권 문제를 작은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2004년 10월4일에는 美國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주의 구현을 主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북한내부에 인권문제를 압박하여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비난했다.
같은 성명은 심지어 탈북자문제와 관련, 『갈수록 증가하는 탈북자에 비례해 위장(僞裝)탈북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불순한 의도로 탈북한 僞裝탈북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안요소이며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규명할 것』을 주장했다.
<『金大中·盧武鉉 장점 합친 대통령 나와야』>
親北운동권 삼민투(三民鬪, 85년)·전민련(全民聯, 89년) 출신인 高鎭和 의원은 2006년 11월29일 통일뉴스 후원의 밤 행사, 2005년 6월11일 민족민주열사범국민추모제 등 左派매체·左派단체 행사에 얼굴을 비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는 2007년 1월8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高의원은 이 간담회에서 金大中·盧武鉉의 장점을 합친 리더십을 강조했다. 당시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高의원의 멘트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비전주도형 리더십을 가졌다. 국민에게 큰 그림을 그려주고 함께 가자는 리더십이다. 햇볕정책과 대중경제론도 그렇고 IMF가 끝나고 4대부분 개혁을 한 점과 핵문제 위기가 있고 남북교착관계가 계속될 때 큰 틀에서 논리를 제공한 것은 (DJ의)장점이다.
盧武鉉 대통령은 그런 부분은 약했다. 그러나 구체적 이슈, 정책에 시선을 끌게 하고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는 탁월하다. 국민과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는 DJ 같은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두 분의 장점을 통합하는 리더가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6·15실현, 金大中 식 연합·연방제 실현 주장>
高의원은 金大中 대통령의 방북과 6·15선언 상의 연합·연방제 실현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2006년 2월13일에는 『평화를 제도화시키고자 노구의 몸을 던지는 그(DJ)의 모습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몸 바친 김구, 장준하 선생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한다』며 『金大中 前대통령에게만 그 짐을 맡기거나, 그의 역할에 대해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치졸한 정쟁을 걷어내고 국회의원 모두가 통일을 위한 심부름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미화했다.
같은 해 2월22일에는 『국가연합 형식의 통일방안은 金大中 前대통령의 「남북연합-연방-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의 통일방안이다. 이는 또한 역대 정부들의 통일방안에 공통적인 내용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며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동일한 내용으로 평가받아 온 DJ식 연합·연방제 통일을 지지해왔다.
2007년 1월4일에는 『남북한 정상회담·의회회담·고위회담 등 전방위적 남북회담의 정례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6.15기념일 만들겠다는 元喜龍·高鎭和·裵一道>
高鎭和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元喜龍·裵一道 의원은 열린당 배기선 의원이 2007년 5월31일 대표(代表)발의한「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결의안에 서명했다.
발의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념하기에 마땅한 의미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고 칭송하면서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고 결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