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관 및 이념]
1. 국가보안법 폐지 및 전면적 개정론자
(1) 배일도 의원(남양주갑)
裵의원은 2004년 9월15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4당 국회의원 기자회견」, 2004년 12월1일 국회에서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공동대표 오종렬 外)가 주최한 「국가보안법 제정 56주년을 맞이한 입장 기자회견」, 2004년 12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대표-국회의원 공동기자회견」 등에 참여하면서 국보법폐지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그는 이들 행사에서 『민주개혁세력들이 연대하여 2004년 안에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결의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2) 고진화 의원(영등포갑)
高의원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해 온 늙은 망령(2004년 12월9일 성명)』등으로 비난하며, 3년간 적용되는 한시적(限時的) 특별법으로 개정한 후 형법으로 통합, 즉 폐지할 것을 주장해왔다.
2004년 12월9일 성명은 『국보법 폐지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도모하면서 국보법을 한시적 특별법으로 개정』할 것을 주장하며, 우선 국보법 제2조(정부참칭)·제6조(잠입ㆍ탈출)·제7조(찬양·고무)·제8조(회합ㆍ통신) 등 핵심조항 개정 및 삭제를 주장했다.
(3) 원희룡 의원(양천갑)
元의원은 『정부참칭(僭稱)하는 것을 곧바로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부분은 국보법에서 삭제해야 한다(2004년 12월14일 오마이뉴스)』, 『한나라당은 거의 국보법 폐지에 가까운 개정안을 내야하고 열린우리당에선 개정안에 가까운 대체 입법을 만들라(2004년 9월14일 평화방송)』며 국보법 전면개정 내지 사실상 폐지를 주장해왔다.
(4) 남경필 의원(수원팔달,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南의원은 2007년 4월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국보법 전면개정 논의를 주도해야하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당 차원에서 對北선언문 발표를 검토하고, 對北접촉창구를 설치해야하며, 국회 내 南北친선협회 창립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5) 권오을 의원(안동)
權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인 2007년 4월19일 국회 의원총회에서도 『국보법은 대체입법을 해야 하며, (북핵문제는) 일본 수준의 평화적 核이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한나라당의 對北기조 수정을 촉구했다. 權의원은 2005년 8월10일 6자회담과 관련,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과 남한의 핵연료 농축 및 재처리 권리가 동시에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정체성 훼손 논란(좌파비호 등)
(1) 배일도 의원
裵의원은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추모위원(追慕委員)으로 참여했다. 당시 裵一道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추모대상에 간첩이나 빨치산 출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나는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裵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전국교수노조 합법화를 주도해왔다. 2007년 1월31일에도 교수노조 합법화 공청회를 열어 『하루 빨리 교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이 노조 운동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아니냐(2005년 12월14일 조선일보)』,『사학법 개정과 理念문제를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2005년 12월4일)』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저지 투쟁을 비난해왔다.
그는 『강정구 교수가 학문과 사상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2005년 10월19일 연합뉴스)』,『냉전의 굿판을 접어야 할 때(同年 10월14일 PBC라디오)』라며 동국대 교수 강정구의 反국가 선동을 비호하고 나섰다.
(3) 정문헌 의원(속초·고성·양양)
鄭의원은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5일 북한의 법적(法的)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전향적인 「남북관계기본법案」을 제출했다.
그는 2005년 6월14일~17일 6·15 민족통일 평양축전에 참가, 『평양에서 자랑하는 개선문은 프랑스의 개선문보다 웅장하고 화려했다』,『평양시를 40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 國家의 수도답게』라고 격찬했다.
그는 2007년 5월17일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탑승했다. 당시 남한 제진驛에서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노래가 울려 퍼진 데 대해 북한 김용삼 철도상이 관심을 표하자, 鄭의원은 『나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좋았다』며 『철도상께서는 제게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4)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2005년 강정구 파문 당시 『강정구 교수 문제에 색깔론으로 몰고 나가는 것은 소모적인 색깔론의 함정(2005년 10월17일 내일신문)』이라며 비호에 나섰다.
3. 정통성 훼손 논란(영토조항 폐지 주장 등)
(1)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2007년 4월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對北정책에 있어 지켜야할 가치와 원칙을 빼놓곤 모든 것을 바꾸자』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의도 개시될 필요가 있으며, 헌법 영토(領土)조항 수정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 홍준표 의원(동대문을,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洪의원은 2007년 6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북한정권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2년 UN동시가입에 따른 「신법(新法)우선의 원칙」 등의 논리를 동원, 헌법 제3조 존치(存置)를 주장하는 朴槿惠 前 한나라당 대표를 몰아세웠다.
그는 『북한은 91년 UN에 가입해서 국제법상으로 국가가 됐고, 국가보안법은 52년에 제정된 그 이전 법인데, 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할 때는 선후 원칙을 따르는 게 원칙』이라며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정문헌 의원
鄭의원은 2005년 5월12일 국가인원위원회 제2배움터에서 열린 「2005 남북화해와 평화정착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헌법 제3조 삭제를 공개 주장하기도 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통일교육협의회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한나라당의 정문헌 의원은 남북교류협력이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기보다는 영토를 넘어선 한민족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도록 시야를 확대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헌법의 영토조항의 삭제가 필요하다는 파격적인 의견도 개진했다』.
3. 북한인권 외면
(1)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2006년 12월11일 민중의 소리 인터뷰에서 『人權문제 등의 작은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문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南北간의 신뢰와 이해가 전제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북한인권 문제를 작은 문제로 치부했다.
2004년 10월4일에는 美國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주의 구현을 主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북한내부에 인권문제를 압박하여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비난했다.
같은 성명은 탈북자문제와 관련, 『갈수록 증가하는 탈북자에 비례해 위장(僞裝)탈북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불순한 의도로 탈북한 僞裝탈북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안요소이며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규명할 것』을 주장했다.
(2)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북한의 인권개선이나 개혁개방은 기아문제부터 해결한 뒤 시간을 갖고 해도 늦지 않다(2005년 6월9일 불교방송)』거나 『통일외교 문제에서 북한 인권만을 문제 삼는 건 일면적 접근(2005년 4월26일 서강대특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7월1일 「북한인권개선안촉구결의案」 국회통과 시 불참했다.
4. 북한 핵실험 후 포용정책 지지
(1)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포용정책이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2006년 10월12일 성명)』,『포용정책이 南北관계를 망쳤다는 주장은 관련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포용정책과 北핵실험과 무슨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겠느냐(同年 10월29일 「시사포커스」 인터뷰)』며 핵실험 이후에도 소위 포용정책 지속을 역설했다.
(2)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對北포용정책 자체에 물어서는 안 된다(2007년 11월15일 평화재단창립세미나)』며 핵실험 후에도 對北포용정책을 고수해왔고,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소장파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을 주장했다.
(3)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3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비바람도 맞아봐야 햇볕의 따뜻함을 알 수 있다』면서 소위 對北포용정책 유지를 주장하면서 다만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추궁과 응징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는 「전략적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소장파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을 주장했다.
(4) 정의화 의원(부산 중·동구)
鄭의원은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인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2007년 7월10일 「한반도평화비전」이 등장하자, 『한반도평화비전案을 만시지탄이 있으나 적극 환영한다』며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러한 비판과 반발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부 냉전(冷戰)·수구적(守舊的)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비난했다.
(5) 정형근 의원
「한반도평화비전」의 입안자인 鄭亨根 의원은 정책수정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鄭의원은 2007년 7월12일 성명을 통해서도 『기존의 대안 없는 비판, 냉전적(冷戰的) 사고와 현상유지(現狀維持)적 접근 등 당에 대한 부정적(否定的) 인식을 극복하고자 했다』,『한나라당이 계속 보수적(保守的)이고 현상유지(現狀維持)적이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북한붕괴론(北韓崩壞論), 흡수통일론(吸收統一論) 등과 같은 비현실적인 주장에도 동조할 수 없다』며 『이제 한나라당은 스스로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鄭의원은 보수단체 관계자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은 직후인 2007년 7월2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평화비전은 12월 대선승리를 위한 구체적이고 전향적이며 실천 가능한 對北정책』이라며 『앞으로 계란투척을 10번, 100번 당한다고 해도 설득과 토론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5. 6·15실현 및 연방제 주장
(1) 고진화·원희룡·배일도 의원
한나라당에서 元喜龍·高鎭和·裵一道 의원은 열린당 배기선 의원이 2007년 5월31일 대표(代表)발의한「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결의안에 서명했다.
발의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념하기에 마땅한 의미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고 칭송하면서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고 결의했다.
元의원은 2005년 6월 평양서 열린 「6·15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축전 참가 여야의원들은 같은 달 27일 「남북간 교류·협력 확대를 국회가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의안은 △2차 南北정상회담 조기 개최 △南北국회회담 조기 재개 △정부 차원의 對北지원 법적장치 마련 등을 규정했다.
元의원은 『한국의 모델로 (북한을) 흡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金正日과의 평화공존』을 통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주장했다(以上 2005년 12월19일 「뉴스앤조이」인터뷰).
高의원은 2007년 1월4일 『남북한 정상회담·의회회담·고위회담 등 전방위적 남북회담의 정례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2)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2005년 6월8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對정부 질문에서 『對北경제제재는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시킬 뿐』이라고 지적한 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단계, 즉 연방 또는 연합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南의원은 2004년 6월15일 「6·15남북정상회담 4주년 기념행사」에서 『6·15선언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金大中 前대통령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對北송금이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국민적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비판적 평가가 아닌 역사적 평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3) 정의화 의원
鄭의원은 2007년 6월15일 칼럼에서 『6·15공동선언은 상호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은 탈냉전 평화공존의 길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섰다』며 『통일을 향한 여러분과 저의 열정을 담아 앞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鄭의원은 2007년 3월30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에 元喜龍 의원 등과 함께 취임했다.
민화협은 對北지원에 앞장서는 한편 6·15선언 이행을 주장해 온 단체이다. 민화협은 2007년 6월7일 「국회의 6·15기념일 제정 추진을 환영한다」는 성명에서『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의 버팀목이자 민족미래의 나침반』이라며 『기념일 제정으로 우리와 우리 후손이 6·15남북공동선언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통한의 분단을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4) 정형근 의원
鄭의원은 2007년 10월8일 한겨레 신문인터뷰에서 ①한나라당이 집권해도 6·15선언 승계를 천명한 10·4선언을 수용할 것, ②평양 盧·金회담은 6·15선언보다 바른 방향으로 진일보했음, ③對北지원 계속, ④한나라당의 큰 틀(전반적 분위기)은 나의 생각과 같다는 요지로 인터뷰했다.
[좌파정권 고위직 출신들]
한나라당 공천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노무현 정권 아래서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의 공천 여부다. 舊열린당 실정(失政)으로 4월 총선에서도 참패가 예상되면서,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는 정체성이 모호한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盧정권의 좌경화에 반기를 들었던 김희상 前대통령 국방보좌관(경남 산청·함양·거창)은 배제하고서라도 최종찬 前건설교통부 장관(경기 안양 동안갑), 이현재 前중소기업청장(경기 하남), 허범도 前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부산 사하갑), 권오갑 前과학기술부 차관(경기 고양 덕양갑), 이기우 前중소기업청 차장(경남 창원을) 허준영 前경찰청장(서울 중구)등 盧정권 아래서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공천신청을 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차흥봉 前보건복지부 장관, 남궁석 前정통부 장관도 각각 경북 군위ㆍ의성ㆍ청송과 경기 용인갑 지역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2003년 10월부터 최근까지 국군의무사령부 의료관리실 실장(준장)을 지낸 여성 장군 이재순씨는 경북 구미 갑에 공천신청을 했다.
최종찬 前건설교통부 장관은 김대중 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기획조정비서관(1998.2-1998.9), 건설교통부 차관(1998.10-1999.5)을 지냈고, 盧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2002.7.11-2003.2.24), 건설교통부 장관(2003.2.27-2003.12.28) 등 요직을 섭렵했다.
崔 前장관은 2003년 10월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와 함께 盧정권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시발이 된 10·29 부동산 대책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는 그해 12월 개각 때 장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지난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이해찬 前총리의 자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현재 前중소기업청장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盧정권 아래서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2004.8-2006.3)를 지냈고, 2006년 3월 이래 중소기업청장을 맡아왔다.
허범도 前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盧정권 아래서 산업자원부 차관보(2005.8- 2006.3)를 지냈고, 2006년 4월 이래 종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권오갑 前과학기술부 차관은 盧정권 아래서 과학기술부 차관(2003.3.3-2004.1.28)을 지냈고, 2004년 4월 이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재단(KOSEF) 이사장을 맡아오다,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 상임특보로 합류했다.
차흥봉 前보건복지부 장관은 김대중 정권에서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설립위원장(1998.3 -1998.9),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1999.2-1999.5), 보건복지부 장관(1999.5.24-2000.8.6) 등 요직을 거치며 소위 의약분업을 주도했고, 盧정권 들어 2006년 2월 이래 공공기관인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회장으로 일해 왔다.
남궁석 前정통부 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1998.12.21-2000.2.11)을 거쳐 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보통신 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는 盧정권 들어 열린당 중앙위원(2003.10), 열린당 후원회장(2003.11), 열린당 예산결산위원장(2003.11), 열린당 총무위원장(2004.5) 등을 두루 거친 후 2004년 7월 이래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으로 일해 왔다.
허준영 前경찰청장은 농민시위 원칙대응으로 옷을 벗었으나, 2005년 8월 경찰청장 재임 시 경찰이 태극기를 배포하는 시민들을 금지시키고 강탈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게 될 것인가?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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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2-13, 23: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