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위한 찬사

고르바초프의 비문(碑文)은 로널드 레이건의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정당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공헌했노라고.
조갑제닷컴에서 곧 출간할 '레이건의 십자군'(폴 켄고르)은 냉전을 종식시킨 우리 시대의 두 거인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역할을 이렇게 비교했다. 레이건은 냉전종식, 즉 소련의 붕괴를 의도했고 또 성취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체제의 개혁을 의도했으나 소련 해체를 의도하진 않았다. 고르바초프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보전하기 위하여, 소련 위성국을 보전하기 위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점에서 고르바초프는 인류의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레이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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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초가 되자, 아무리 마지막 순간까지 반공의 기치(旗幟)를 높이 들고 있었던 냉전의 용사라 해도 이미 분명해진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즉, 오랫동안 전투 중이던 두 나라 중 하나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이로써 냉전은 끝나게 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중 누가 더 냉전의 종식에 공을 세웠는지를 두고 역사학자들과 언론인들 사이에서 두 번째 전투가 시작되었다.
레이건을 향해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고르바초프의 역할을 흠잡기도 하지만, 레에건 본인이 고르바초프가 ‘남다른 종류의 지도자’임을 누차 강조했다는 점을 떠올리는 것은 중요하다. 레이건은 고르바초프를 애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친구’로 여기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믿고 있고, 그들의 체제에 대해 온전히 헌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식의 관계에 고집스러울 정도로 매달렸다. 그는 고르바초프에게 이 말을 너무나 자주 사용해서 그를 짜증스럽게 할 정도였다. 레이건은 후에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고르바초프라는 인물을 매우 잘 포착(捕捉)해 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만한 통찰력과 변화를 위해 투쟁할 만한 용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실마리가 될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 경제를 도입할 만한 지혜를 갖고 있었다.”
레이건을 편파적(偏頗的)으로 지지했던 이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냉전 종식에 있어 고르바초프가 한 역할을 칭찬하는 반면 레이건의 영향은 단연코 무시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고르바초프가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다. 1988년 5월과 6월에 있었던 모스크바 정상회담 후, 레이건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르바초프는 미국 대통령이 소비에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주된 공로자임을 인정했다. 최근에 비밀이 해제된 그 편지에서 고르바초프는 “소련 국민들은 귀하를 가까이서 만나보았고, 귀하의 선의(善意)와 미국과 소련 양국에서 이루어진 그 모든 일에 있어서 귀하의 역할에 대해 깊이 감사하게 되었다”라고 썼다. 고르바초프는 회고록에서 “나의 견해로는 미국의 40번째 대통령은 보기 드문 통찰력으로 인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또 한 인터뷰에서 그는 “레이건은 매우 큰 인물, 매우 위대한 정치 지도자다”라고 덧붙였다. 레이건이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었던 1990년 9월 17일,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일곱 번째로 모스크바에서 만났을 때, 고르바초프는 “우리 두 나라의 관계를 바로 지금처럼 만들기 위해 많은 일을 한 인물”이라며 레이건을 위해 축배(祝杯)를 들었다.
10여 년이 지난 2001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가진 저녁 식사에서 영국의 한 학자가 레이건을 ‘지적으로는 다소 떨어지는 인물’이라고 부르는 일이 발생했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을 무시하는 이러한 말을 참고 넘어갈 수 없었고, 자신을 초대한 주인을 향해 따끔한 충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당신은 틀렸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진정한 통찰력과 견고한 정치적 식견 그리고 용기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2002년,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을 ‘중요한 인물’이라고 칭하며 “만약 그때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역사가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두 지도자 모두 냉전을 끝내는 데 있어 필수적이고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에, 둘다 진정으로 그 공로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소비에트 공산주의 제국의 해체는 그들이 함께 이뤄 낸 사건이었다. 하지만 주요한 차이점은 두 사람 중 오직 레이건만이 처음부터 그러한 결과를 의도(意圖)했다는 사실에 있다. 의도는 공로를 가리는 데, 그리고 심지어 한 지도자에게 위대성을 부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다.
냉전의 의도라는 측면에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보다 훨씬 더 탄탄한 기반 위에 서 있으며, 이는 고르바초프의 눈부신 개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레이건은 자신이 소련에 대해 갖고 있던, 그 불가능해 보이던 핵심 의도를 성취해 냈다. 이에 비해 고르바초프는 그가 이루고자 했던 주요 의도를 성취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러한 실패는 지금까지도 고르바초프를 괴롭히고 있는데, 그는 2006년 4월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와 가진 인터뷰에서 “소련은 보전될 수 있었고 보전되어야 했다”고 말했다. 레이건은 소련 제국과 소련 자체를 붕괴시키고자 했고, 고르바초프의 핵심 목표는 소련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목표했던 바를 성취한 것은 바로 레이건이었다.
그가 처음 가졌던 의도에도 불구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비문(碑文)은 로널드 레이건의 것과 마찬가지로 다음과 같이 정당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는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키는 데 공헌했노라고.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두 인물에게 영원히 감사해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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