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에 임명된 이상희씨는 스스로 사퇴해야

그는 군복을 벗고 나와 老兵들과 합세하여 反좌파 애국 투쟁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새 정부의 국방장관 자격이 충분하다.
2006년에 김정일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이 안보의 생명줄인 韓美연합사를 해체하는 戰時작전권 분리 계획을 강행할 때, 합참의장은 이상희 대장이었다.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은 戰時작전권을 행사하는 으뜸군인이다. 그 전에 우리 국군은 한 목소리로 戰時작전권의 분리와 韓美연합사 해체를 반대해왔었다.

좌경적 이념의 소유자인 盧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 대통령과 공유하고 있는 戰時작전지휘권을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고 국민들을 속인 뒤 '환수'라는 선동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국군을 압박했다. 군 지휘부가 스스로 반대 논리를 철회한 뒤 한미연합사 해체를 추진하도록 눌렀다. 윤광웅 국방장관, 이상희 합참의장은 이 노무현의 지시에 따라갔다. 국군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이었다. 韓美동맹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이 좌경적 책동에 반대해야 할 자리에 있었던 제1 책임자가 합참의장이었다.

전쟁이 터지면 한국군을 지휘하게 되어 있는 합참의장이 논리적으로 용기 있게 職을 걸고 반대했더라면 韓美연합사 해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언론과 여론은 압도적으로 연합사 해체에 반대했다. 故 김성은 장군 같은 80대 老兵들이 한여름의 뜨거운 아스팔트로 나와 연합사 해체를 반대하는 거리 투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상희씨가 盧 대통령에게 반론을 제기했다는 이야기가 요사이 들린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고 해도 그의 책임이 면해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반론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군복을 벗고 나와 老兵들과 합세하여 反좌파 애국 투쟁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다면 그는 새 정부의 국방장관 자격이 충분하다.

그는 노무현의 戰時작전권 二元化 및 韓美연합사 해체 작업에 충직하게 복무한 이후 임기를 다 채우고 나왔고 군복을 벗은 후에도 침묵했다.
돈으로 따지면 수천억 달러의 손해뿐 아니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규모의 國益을 해치는 일에 동참했던 사람이 새 정부의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이상희씨가 군인의 명예를 안다면, 우리 국군의 권위를 아낀다면, 장관 제의가 들어왔을 때 스스로 사양했어야 했다. 좌파정권에 굴복한 사람이 主敵 김정일에 맞설 수 있나? 70만 장병들이 그런 이상희씨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1977년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계획에 대해서 당시 미 8군 참모장 싱글러브 소장은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한직으로 밀려났다가 군복을 벗었다. 미군의 조직적 저항으로 카터의 철군계획은 결국 취소되었다. 이상희씨가 싱글러브 같은 행동을 했더라면 연합사 해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랬어야 그는 새 정부의 장관감이 될 수 있었다. 이상희씨는 지금이라도 스스로 사퇴하는 것이 맞다.

지금도 韓美연합사 해체 반대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는 星友會는 이상희씨의 국방장관 임명에 대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星友회는 친목단체가 아니라 안보단체이다. 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私情(사정)이 끼여선 안될 것이다.

군인은 결정적 순간에서 결정적 행동을 하도록 국가예산으로 길러진 사람이다. 결정적 순간에서 실패한 군인이 70만 국군의 지휘자가 될 수 있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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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국에 제2의 싱글러브 장군은 없는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한국의 전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벨 주한 미군사령관의 의견을 듣고 나서 “한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고 지시했다. 이어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윤광웅 국방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전시 작전통제권 2009년 이양 방침’을 밝혔다.

이대로 가면 전시 작통권 문제는 오는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원칙적인 선언이 있은 뒤에,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그에 따른 로드맵을 확정하는 절차가 진행되어 갈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과 미사일 발사, 그리고 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 통과로 한반도의 안보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만약 전시 작통권 단독행사가 시행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대북 억지력을 갖춘 한미연합사가 즉각 해체되고, 한·미 연합작전 계획인 ‘작계 5027’도 또한 폐기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국가 안보를 위한 여러 가지의 ‘안전장치’가 하루아침에 풀려 버림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안보 불안은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되고,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 자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1977년의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군정책을 밀어붙임으로써 한국 안보에 큰 위기가 닥쳐왔었다. 이때 주한미군사령부를 비롯한 미 군부에서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던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군정책에 반대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베시 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대통령의 철군계획이 부당하다는 것을 브라운 국방장관과 카터 대통령에게 건의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에 베시 사령관의 참모장인 싱글러브 소장은 현역 군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공개적으로, 정면으로 카터 대통령의 철군정책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일로 그는 즉각 워싱턴에 소환되어 강제 전역 조치되고 말았다. 한편 이미 미 육군 참모총장으로 추천돼 있던 베시 사령관은 워싱턴에서 카터 대통령과 면담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주한미군 철군정책에 대한 사령관의 견해를 물었을 때 서슴없이 강력한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격론이 벌어졌는데 통상 15분에 끝나는 면담이 70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베시 장군은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의 심기를 크게 건드림으로써 오랜 꿈이었던 미 육군 참모총장이 되지 못하고 참모차장으로 임명되고 말았다. 당시는 한·미 관계가 매우 나쁜 때였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과 우리나라 군부에서는 한국을 잘 아는 주한미군 출신이 워싱턴과 펜타곤에 보직되어 한국을 잘 도와줄 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싱글러브 장군의 강제 전역 조치와 베시 장군의 좌천에서 보인 미군 수뇌부의 강력한 반대로 카터 대통령은 결국 주한미군 철군정책을 포기해야 했다. 오히려 1978년에 한미연합사라는 강력한 작전지휘 체제를 만들었다.

한미연합사가 그 후 30여 년간 이 땅에 전쟁을 억지하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굳건한 안보태세를 갖추는 버팀목이 되어 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오늘의 긴박한 시기에 한국 안보를 위해 자신을 초개같이 버렸던 미국 군인, 싱글러브 장군과 베시 장군을 새삼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려는 절대위기에 처해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국가 존망이 걸려 있는 중대 안보문제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줄 제2의 싱글러브 장군과 베시 장군이 없는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정린 전 국방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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