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외교안보포럼 결정 한나라당 공천부적격자

국제외교안보포럼(이사장 김현욱) 회원 전원이 2월14일 결정한 명단 및 내용
<한나라당 공천부적격자>

1. 국가보안법 폐지 및 전면적 개정론자

(1) 배일도 의원(남양주갑)

裵의원은 2004년 9월15일, 2004년 12월1일, 2004년 12월23일 국가보안법폐지 기자회견에 참여, 국보법폐지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그는 이들 행사에서 『민주개혁세력들이 연대하여 2004년 안에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결의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2) 고진화 의원(영등포갑)

高의원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해 온 늙은 망령(2004년 12월9일 성명)』등으로 비난하며, 3년간 적용되는 한시적(限時的) 특별법으로 개정한 후 형법으로 통합, 즉 폐지할 것을 주장해왔다.

(3) 원희룡 의원(양천갑)

元의원은 『한나라당은 거의 국보법 폐지에 가까운 개정안을 내야하고 열린우리당에선 개정안에 가까운 대체 입법을 만들라(2004년 9월14일 평화방송)』며 국보법 전면개정 내지 사실상 폐지를 주장해왔다.

(4) 남경필 의원(수원팔달,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南의원은 2007년 4월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국보법 전면개정 논의를 주도해야하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5) 권오을 의원(안동)

權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이후인 2007년 4월19일 국회 의원총회에서도 『국보법은 대체입법을 해야 하며, (북핵문제는) 일본 수준의 평화적 核이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 정체성 훼손 논란(좌파비호 등)

(1) 배일도 의원

裵의원은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라는 이름의 간첩·빨치산추모제에 추모위원(追慕委員)으로 참여했다.

裵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전국교수노조 합법화를 주도해왔다. 2007년 1월31일에도 교수노조 합법화 공청회를 열어 『하루 빨리 교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이 노조 운동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아니냐(2005년 12월14일 조선일보)』,『사학법 개정과 理念문제를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2005년 12월4일)』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저지 투쟁을 비난해왔다.

그는 『강정구 교수가 학문과 사상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났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2005년 10월19일 연합뉴스)』,『냉전의 굿판을 접어야 할 때(同年 10월14일 PBC라디오)』라며 동국대 교수 강정구의 反국가 선동을 비호하고 나섰다.

(3) 정문헌 의원(속초·고성·양양)

鄭의원은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5일 북한의 법적(法的)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전향적인 「남북관계기본법案」을 제출했다.

그는 2005년 6월14일~17일 6·15 민족통일 평양축전에 참가, 『평양에서 자랑하는 개선문은 프랑스의 개선문보다 웅장하고 화려했다』,『평양시를 40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 國家의 수도답게』라고 격찬했다.

그는 2007년 5월17일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탑승했다. 당시 남한 제진驛에서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노래가 울려 퍼진 데 대해 북한 김용삼 철도상이 관심을 표하자, 鄭의원은 『나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좋았다』며 『철도상께서는 제게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4)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2005년 강정구 파문 당시 『강정구 교수 문제에 색깔론으로 몰고 나가는 것은 소모적인 색깔론의 함정(2005년 10월17일 내일신문)』이라며 비호에 나섰다.

3. 정통성 훼손 논란(영토조항 폐지 주장 등)

(1)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2005년 盧대통령이 改憲 제안을 하자 1월4일, 1월22일 연이어 성명을 발표, 『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마저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기 위한 『 헌법 영토조항 및 통일조항의 개정』 등을 주장했다.

(2)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2007년 4월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對北정책에 있어 지켜야할 가치와 원칙을 빼놓곤 모든 것을 바꾸자』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의도 개시될 필요가 있으며, 헌법 영토(領土)조항 수정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 홍준표 의원(동대문을,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洪의원은 2007년 6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북한정권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2년 UN동시가입에 따른 「신법(新法)우선의 원칙」 등의 논리를 동원, 헌법 제3조 존치(存置)를 주장하는 朴槿惠 前 한나라당 대표를 몰아세웠다.

(4) 정문헌 의원

鄭의원은 2005년 5월12일 국가인원위원회 제2배움터에서 열린 「2005 남북화해와 평화정착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헌법 제3조 삭제를 공개 주장했다.

3. 북한인권 외면

(1)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2006년 12월11일 민중의 소리 인터뷰에서 『人權문제 등의 작은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문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南北간의 신뢰와 이해가 전제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북한의 인권개선이나 개혁개방은 기아문제부터 해결한 뒤 시간을 갖고 해도 늦지 않다(2005년 6월9일 불교방송)』거나 『통일외교 문제에서 북한 인권만을 문제 삼는 건 일면적 접근(2005년 4월26일 서강대특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7월1일 「북한인권개선안촉구결의案」 국회통과 시 불참했다.

4. 북한 핵실험 후 포용정책 지지

(1) 고진화 의원

高의원은 『포용정책이 동북아시아 평화체제의 기반을 만들어 왔다(2006년 10월12일 성명)』,『포용정책이 南北관계를 망쳤다는 주장은 관련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것』,『포용정책과 北핵실험과 무슨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겠느냐(同年 10월29일 「시사포커스」 인터뷰)』며 핵실험 이후에도 소위 포용정책 지속을 역설했다.

(2) 원희룡 의원

元의원은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對北포용정책 자체에 물어서는 안 된다(2007년 11월15일 평화재단창립세미나)』며 핵실험 후에도 對北포용정책을 고수해왔고,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소장파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을 주장했다.

(3)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3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비바람도 맞아봐야 햇볕의 따뜻함을 알 수 있다』면서 소위 對北포용정책 유지를 주장했다. 그는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소장파들과 함께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을 주장했다.

(4) 정의화 의원(부산 중·동구)

鄭의원은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인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2007년 7월10일 「한반도평화비전」이 등장하자, 『한반도평화비전案을 만시지탄이 있으나 적극 환영한다』며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러한 비판과 반발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부 냉전(冷戰)·수구적(守舊的)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비난했다.

(5) 정형근 의원

「한반도평화비전」의 입안자인 鄭亨根 의원은 정책수정 가능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5. 6·15실현 및 연방제 주장

(1) 고진화·원희룡·배일도 의원

한나라당에서 元喜龍·高鎭和·裵一道 의원은 열린당 배기선 의원이 2007년 5월31일 대표(代表)발의한「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결의안에 서명했다.

元의원은 『한국의 모델로 (북한을) 흡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金正日과의 평화공존』을 통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주장했다(以上 2005년 12월19일 「뉴스앤조이」인터뷰).

高의원은 2007년 1월4일 『남북한 정상회담·의회회담·고위회담 등 전방위적 남북회담의 정례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2) 남경필 의원

南의원은 2005년 6월8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對정부 질문에서 『對北경제제재는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시킬 뿐』이라고 지적한 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단계, 즉 연방 또는 연합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南의원은 2004년 6월15일 「6·15남북정상회담 4주년 기념행사」에서 『6·15선언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金大中 前대통령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對北송금이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국민적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비판적 평가가 아닌 역사적 평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3) 정의화 의원

鄭의원은 2007년 6월15일 칼럼에서 『6·15공동선언은 상호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은 탈냉전 평화공존의 길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섰다』며 『통일을 향한 여러분과 저의 열정을 담아 앞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鄭의원은 2007년 3월30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에 元喜龍 의원 등과 함께 취임했다. 민화협은 對北지원에 앞장서는 한편 6·15선언 이행을 주장해 온 단체이다.

(4) 정형근 의원

鄭의원은 2007년 10월8일 한겨레 신문인터뷰에서 ①한나라당이 집권해도 6·15선언 승계를 천명한 10·4선언을 수용할 것, ②평양 盧·金회담은 6·15선언보다 바른 방향으로 진일보했음, ③對北지원 계속, ④한나라당의 큰 틀(전반적 분위기)은 나의 생각과 같다는 요지로 인터뷰했다.

6. 좌파정권 고위직 출신들

舊열린당 실정(失政)으로 4월 총선에서도 참패가 예상되면서, 이번 한나라당 공천에는 정체성이 모호한 인사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盧정권의 좌경화에 반기를 들었던 김희상 前대통령 국방보좌관(경남 산청·함양·거창)이나 최종찬 前건설교통부 장관(경기 안양 동안갑), 이현재 前중소기업청장(경기 하남), 허범도 前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부산 사하갑), 권오갑 前과학기술부 차관(경기 고양 덕양갑), 이기우 前중소기업청 차장(경남 창원을) 허준영 前경찰청장(서울 중구)등 盧정권 아래서 고위직을 역임한 인사들이 한나라당에 공천신청을 했다.

또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차흥봉 前보건복지부 장관, 남궁석 前정통부 장관도 각각 경북 군위ㆍ의성ㆍ청송과 경기 용인갑 지역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2003년 10월부터 최근까지 국군의무사령부 의료관리실 실장(준장)을 지낸 여성 장군 이재순씨는 경북 구미 갑에 공천신청을 했다.

최종찬 前건설교통부 장관은 김대중 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실 기획조정비서관(1998.2-1998.9), 건설교통부 차관(1998.10-1999.5)을 지냈고, 盧정권에서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2002.7.11-2003.2.24), 건설교통부 장관(2003.2.27-2003.12.28) 등 요직을 섭렵했다.

崔 前장관은 2003년 10월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와 함께 盧정권 부동산 규제 정책의 시발이 된 10·29 부동산 대책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는 그해 12월 개각 때 장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지난해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 경선에선 이해찬 前총리의 자문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현재 前중소기업청장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을 거쳐 盧정권 아래서 대통령비서실 산업정책비서(2004.8-2006.3)를 지냈고, 2006년 3월 이래 중소기업청장을 맡아왔다.

허범도 前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盧정권 아래서 산업자원부 차관보(2005.8- 2006.3)를 지냈고, 2006년 4월 이래 종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을 맡아왔다.

권오갑 前과학기술부 차관은 盧정권 아래서 과학기술부 차관(2003.3.3-2004.1.28)을 지냈고, 2004년 4월 이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재단(KOSEF) 이사장을 맡아오다,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 상임특보로 합류했다.

차흥봉 前보건복지부 장관은 김대중 정권에서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설립위원장(1998.3 -1998.9),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1999.2-1999.5), 보건복지부 장관(1999.5.24-2000.8.6) 등 요직을 거치며 소위 의약분업을 주도했고, 盧정권 들어 2006년 2월 이래 공공기관인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 회장으로 일해 왔다.

남궁석 前정통부 장관은 김대중 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1998.12.21-2000.2.11)을 거쳐 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보통신 특별보좌관을 역임했다.

그는 盧정권 들어 열린당 중앙위원(2003.10), 열린당 후원회장(2003.11), 열린당 예산결산위원장(2003.11), 열린당 총무위원장(2004.5) 등을 두루 거친 후 2004년 7월 이래 국회사무처 사무총장으로 일해 왔다.

허준영 前경찰청장은 농민시위 원칙대응으로 옷을 벗었으나, 2005년 8월 경찰청장 재임 시 경찰이 태극기를 배포하는 시민들을 금지시키고 강탈했다. 같은 달 인공기 소각행위를 집시법으로 처벌케 했다.

[상세설명]

<1. 고진화 의원, 『전시작통권 환수가 자주국방의 화룡점정』>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의 배후인물이었던 고진화(高鎭和. 남양주갑)의원은 국회 진출 이후에도 反美색채를 드러내왔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가 자주국방의 화룡정점(2006년 8월16일 국회 세미나)』이라며 韓美연합사 해체를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에 감사(感謝)말고 감사(監査)청구를 수용하라(2004년 11월4일 용산미군기지 이전협상 비판보고서)』며 韓美관계의 불평등성(?)을 강변했다.

△ 高의원은 북한 핵실험 직후엔 『동아시아의 新냉전구도를 다시금 추진하는 네오콘 정책의 실패(2006년 10월29일 「시사포커스」인터뷰)』라며 미국 탓으로 돌렸다. 반면 『포용정책과 北핵실험과 무슨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겠느냐(2006년10월29일 「시사포커스」 인터뷰)』며 핵실험 이후에도 소위 포용정책 지속을 역설했다.

△ 高의원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많은 국민의 인권을 탄압해 온 늙은 망령(2004년 12월9일 성명)』등으로 비난하며, 3년간 적용되는 한시적(限時的) 특별법으로 개정한 후 형법으로 통합, 즉 폐지할 것을 주장해왔다. 『냉전의 굿판을 접어야 할 때(2005년 10월14일 PBC라디오)』라며 동국대 교수 강정구의 反국가 선동을 비호하기도 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작은 문제』>

△ 高의원은 2005년 4월 과거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이후에도 이를 『누더기 과거사법』으로 비난하며 더욱 강력한 과거청산(?)을 주장해왔다. 같은 해 6월29일엔 과거사委 조사권한 강화 등을 내용으로 한 개정안을 한나라당 元喜龍·裵一道·朴啓東 등 여야 의원 64명과 함께 제출했다.

△ 高의원은 『전교조는 민족·민주·인간화 교육 아니냐(2005년 12월14일 조선일보)』,『사학법 개정과 理念문제를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2005년 12월4일)』며 한나라당의 사학법 저지 투쟁을 비난해왔다.

△ 高의원은 2005년 盧대통령이 改憲 제안을 하자 1월4일, 1월22일 연이어 성명을 발표, 『한나라당이 개헌 논의마저 차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하기 위한 『헌법 영토조항 및 통일조항의 개정』 등을 주장했다.

△ 高의원은 2006년 12월11일 민중의 소리 인터뷰에서 『人權문제 등의 작은 문제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문제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南北간의 신뢰와 이해가 전제돼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북한인권 문제를 작은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 高의원은 2004년 10월4일 美國의 북한인권법에 대해 『북한주민에 대한 인도주의 구현을 主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아니라 북한내부에 인권문제를 압박하여 북한을 붕괴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서 시작되었다』고 비난했다.

△ 같은 성명은 심지어 탈북자문제와 관련, 『갈수록 증가하는 탈북자에 비례해 위장(僞裝)탈북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며 『불순한 의도로 탈북한 僞裝탈북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안요소이며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속하게 규명할 것』을 주장했다.

△ 高의원은 金大中 대통령의 방북과 6·15선언 상의 연합·연방제 실현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2006년 2월13일에는 『평화를 제도화시키고자 노구의 몸을 던지는 그(DJ)의 모습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몸 바친 김구, 장준하 선생의 그림자가 느껴지기도 한다』며 『金大中 前대통령에게만 그 짐을 맡기거나, 그의 역할에 대해 애써 의미를 축소하려는 치졸한 정쟁을 걷어내고 국회의원 모두가 통일을 위한 심부름꾼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미화했다.

△ 高의원은 2006년 2월22일 『국가연합 형식의 통일방안은 金大中 前대통령의 「남북연합-연방-완전한 통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의 통일방안이다. 이는 또한 역대 정부들의 통일방안에 공통적인 내용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며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동일한 내용으로 평가받아 온 DJ식 연합·연방제 통일을 지지해왔다.

△ 高의원은 2007년 1월4일 『남북한 정상회담·의회회담·고위회담 등 전방위적 남북회담의 정례화』를 주장하면서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6·15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원희룡 의원, 金正日과 평화공존 통한 『낮은 단계 연방제』주장>

△ 원희룡(元喜龍. 양천갑) 의원은 『한국의 모델로 (북한을) 흡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金正日과의 평화공존』을 통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주장했다(以上 2005년 12월19일 「뉴스앤조이」인터뷰).

△ 또 『북한의 핵실험을 막지 못했다는 책임을 對北포용정책 자체에 물어서는 안 된다(2007년 11월15일 평화재단창립세미나)』며 핵실험 후에도 對北포용정책을 고수해왔고, 심지어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까지 주장해왔다.

△ 元의원은 『정부참칭(僭稱)하는 것을 곧바로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부분은 국보법에서 삭제해야 한다(2004년 12월14일 오마이뉴스)』, 『한나라당은 거의 국보법 폐지에 가까운 개정안을 내야하고 열린우리당에선 개정안에 가까운 대체 입법을 만들라(2004년 9월14일 평화방송)』며 국보법 전면개정 내지 사실상 폐지를 주장해왔다.

△ 元의원은 2005년 강정구 파문 당시 『강정구 교수 문제에 색깔론으로 몰고 나가는 것은 소모적인 색깔론의 함정(2005년 10월17일 내일신문)』이라며 비호했다.

△ 元의원은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열린당과 한나라당의 대립 시 한나라당 지도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는 2006년 1월5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朴대표의 「사학법 투쟁」과 관련해 『朴대표 리더십 밑바닥은 과거 회귀적·대결적·관념적 이념틀』,『극단적으로 과민하고 경직돼 있다』,『이건 병이라고 생각한다』며 원색적 비난에 나섰다.

△ 元의원은 『북한의 인권개선이나 개혁개방은 기아문제부터 해결한 뒤 시간을 갖고 해도 늦지 않다(2005년 6월9일 불교방송)』거나 『통일외교 문제에서 북한 인권만을 문제 삼는 건 일면적 접근(2005년 4월26일 서강대특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2003년 7월1일 「북한인권개선안촉구결의案」 국회통과 시에도 불참했다.

△ 元의원은 열린당의 수도이전(首都移轉)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여 왔다. 『행정부, 청와대는 물론 입법부까지 이전하는 정부안에 찬성한다(2004년 9월17일 오마이뉴스)』거나 『나는 (수도이전) 반대당론이 결정돼도 따르지 않겠다...충청권을 포기해서는 다음 대선도 기약하기 힘들다(2004년 9월22일 오마이뉴스)』는 등의 견해를 밝혀왔다.

△ 元의원은 2005년 6월 평양서 열린 「6·15선언 5주년 민족통일대축전」에 남측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축전 참가 여야의원들은 같은 달 27일 「남북간 교류·협력 확대를 국회가 적극 지원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의안은 △2차 南北정상회담 조기 개최 △南北 국회회담 조기 재개 △정부 차원의 對北지원 법적장치 마련 등을 규정했다.

<3. 배일도 의원, 『나는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

△ 한나라당에는 소위 「간첩·빨치산」추모행사에 이름을 올리는 이까지 나왔다. 한나라당 배일도(裵一道. 남양주갑) 의원은 2007년 10월13일 광화문 열린공원에서 열린 소위「제18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 추모위원(追慕委員)으로 참여했다. 당시 裵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추모대상에 간첩이나 빨치산 출신들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며 『나는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裵의원은 2004년 9월15일 국회에서 열린 「국보법폐지를 촉구하는 4당 국회의원 기자회견」, 2004년 12월1일 국보법폐지국민연대 주최 「국가보안법 제정 56주년을 맞이한 입장 국회기자회견」, 2004년 12월23일 국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위한 시민사회단체대표·국회의원 공동기자회견」 등에 참여, 국보법폐지를 집요하게 주장해왔다.

△ 裵의원은 2007년 1월31일에도 교수노조 합법화 공청회를 열어 『하루 빨리 교수노조가 허용되는 것이 노조 운동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국교수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으로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등 참여단체이다. 민주노총은 소위 「2007민주노총의 요구와 과제(2007과제)」등을 통해 국보법철폐-미군철수-연방·연합제통일 등 북한의 對南전략에 동조해 온 단체이다.

△ 한나라당에서 元喜龍·高鎭和·裵一道 의원은 열린당 배기선 의원이 2007년 5월31일 대표(代表)발의한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결의안에 서명했다. 발의안은 『「6·15 남북공동선언」은 통일의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소중한 합의』라며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념하기에 마땅한 의미 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고 칭송하면서 『6월15일을 국가기념일로 정하자』고 결의했다.

<4. 남경필 의원, 상대방 체제 인정하는 연방·연합 단계 필요>

△ 남경필(南景弼. 수원팔달,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의원은 북한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할 것과 함께 소위 포용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南의원은 2005년 6월8일 통일·외교·안보 분야 對정부 질문에서 『對北경제제재는 북한의 핵개발을 가속시킬 뿐』이라고 지적한 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단계, 즉 연방 또는 연합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南의원은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31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비바람도 맞아봐야 햇볕의 따뜻함을 알 수 있다』면서 소위 對北포용정책 유지를 주장하면서 다만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추궁과 응징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하는 「전략적 포용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 南의원은 2007년 4월1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논의도 개시될 필요가 있으며, 헌법 영토(領土)조항 수정도 논의가 필요하다』며 『국보법 전면개정 논의를 주도해야하며,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유연한 자세를 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南의원은 2004년 6월15일 「6·15남북정상회담 4주년 기념행사」에서 『6·15선언을 전향적으로 평가하고 金大中 前대통령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對北송금이 잘못된 점도 있지만, 남북관계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국민적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비판적 평가가 아닌 역사적 평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南의원은 2007년 1월1일 DJ의 동교동 자택을 찾아가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대통령의 말씀이 큰 힘이 된다』며 『가끔 한나라당 내에서 金 前대통령에 대해 옳지 않은 얘기가 나오지만 한나라당 의원 대다수의 생각과 다르다. 괘념치 말아주십시오』라고 말했다.

△ 南의원과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소장파들은 『對北현금(現金)지원』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2004년 3월1일 「뉴-한나라를 위한 제언」이라는 이름으로 『북한 측에 현금지원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에 진출한 남한 기업들이 법인세 형식의 세금을 북한정권에 내도록 하는 현금지원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다.

<5. 정의화 의원, 6·15선언으로 脫냉전의 길로 들어섰다>

△ 의사 출신인 정의화(鄭義和. 부산 중·동구)의원은 2006년 6월 「남북의료협력재단」을 창립시켜 對北지원에 앞장서 온 인물이다. 그는 소위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한편 6·15선언과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인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혀왔다.

△ 2007년 6월15일 칼럼에서는 『6·15공동선언은 상호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풀 수 있는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6ㆍ15공동선언으로 남북은 탈냉전 평화공존의 길로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깊이 들어섰다』며 『통일을 향한 여러분과 저의 열정을 담아 앞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했다.

△ 같은 해 7월10일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인 「한반도평화비전」이 등장하자, 『한반도평화비전案을 만시지탄이 있으나 적극 환영한다』며 한반도평화비전에 대한 비판에 대해 『이러한 비판과 반발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부 냉전(冷戰)·수구적(守舊的) 사고방식에 젖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비난했다.

△ 鄭의원은 2007년 3월30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공동의장에 元喜龍 의원 등과 함께 취임했다. 민화협은 對北지원에 앞장서는 한편 6·15선언 이행을 주장해 온 단체이다. 민화협은 2007년 6월7일 「국회의 6·15기념일 제정 추진을 환영한다」는 성명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의 버팀목이자 민족미래의 나침반』이라고 주장했다.



<6. 권오을 의원, 북한의 평화적 核이용권 주장>



△ 권오을(權五乙. 안동)의원은 소위 「북한의 평화적 核이용권」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權의원은 2005년 8월10일 6자회담과 관련,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과 남한의 핵연료 농축 및 재처리 권리가 동시에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실험 후인 2007년 4월19일 국회 의원총회에서도 『국보법은 대체입법을 해야 하며, (북핵문제는) 일본 수준의 평화적 核이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한나라당의 對北기조 수정을 촉구했다.

△ 權의원은 2004년 7월13일 한나라당 元喜龍·高鎭和·裵一道·李在五·鄭柄國 의원 및 열린당·민노당 의원 등 170명과 함께 「親日진상규명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했다. 개정안은 朴正熙 前대통령과 조선·동아 창업주를 조사대상으로 추가하는 등 소위 親日반민족행위자의 조사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 權의원과 2004년 6월10일 여야 국회의원 및 좌파성향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국회에서 확대간담회를 갖고 파병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같은 달 23일 여야 국회의원 50명과 함께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이 두 행사에 한나라당에선 高鎭和·裵一道·李在五·朴啓東 의원이 참여했다.

△ 權의원은 「韓美FTA 타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 소속 여야의원 48명을 이끌면서 韓美FTA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7. 정문헌 의원, 『평양개선문, 프랑스보다 화려하고 웅장!』>



△ 정문헌(鄭文憲. 속초·고성·양양) 의원은 「한반도협의회」라는 단체 참여로 지역민들과 마찰을 빚어왔다. 한반도협의회라는 단체는 정식명칭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회의원·시민단체협의회(상임대표 김원웅·이장희)」로서 2006년 3월6일 창립됐다. 창립 당시 이 단체는 이장희 상임대표의 발제를 통해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국회에서 비준, 국가보안법·헌법 제3조 등 소위 냉전(冷戰)법령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 한반도협의회는 親北단체인 통일연대의 간부들인 노정선·심재환氏,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을 주장해 온 홍근수氏, 金日成종합대학 등 對北지원에 앞장서 온 최병모氏, 南北영세중립을 통한 미군철수 논리를 설파해 온 강종일氏 등 左派인사들이 준비위원으로 대거 참여했었다. 鄭의원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유일하게 준비위원에 이름이 올랐었고, 창립세미나 발제자로 나서는 등 단체 활동에 적극성을 보여 왔다. 鄭의원은 2006년 6월13일 한반도협의회에 다시 참여, 남북기본합의서 국회비준 청원에 나섰다.

△ 鄭의원은 이전에도 소위 南北화해협력을 주장해 온 인물이다. 2004년 7월3일 제출한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개정案」은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북한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였다. 鄭의원은 당시 『남북 간 인터넷을 통한 교류 확대는 화해협력과 상호 이해증진에 기여해 분단 관리와 위협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 鄭의원은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5일 북한의 법적(法的)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전향적인 「남북관계기본법案」을 제출했었고, 2005년 6월14일~17일 6·15 민족통일 평양축전에 참가, 『평양에서 자랑하는 개선문은 프랑스의 개선문보다 웅장하고 화려했다』,『평양시를 4000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 國家의 수도답게』라고 격찬했다.

△ 鄭의원은 2005년 5월12일 국가인원위원회 제2배움터에서 열린 「2005 남북화해와 평화정착을 위한 시민토론회」에서 헌법 제3조 삭제를 주장했다. 이 행사를 주관한 통일교육협의회는 이렇게 보도했다. 『한나라당의 정문헌 의원은 남북교류협력이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기보다는 영토를 넘어선 한민족 네트워크가 이루어지도록 시야를 확대해야 할 때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헌법의 영토조항의 삭제가 필요하다는 파격적인 의견도 개진했다』

△ 鄭의원은 2007년 5월17일 남북열차 시험운행에 탑승했다. 당시 남한 제진驛에서 『반갑습니다』라는 북한 노래가 울려 퍼진 데 대해 북한 김용삼 철도상이 관심을 표하자, 鄭의원은 『나는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노래가 좋았다』며 『철도상께서는 제게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은 89년 제작된 金正日 찬양 북한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의 주제가인 북한체제찬양가이다.


<8. 홍준표 의원, 북한정권은 反국가단체가 아니다!?>


한나라당 중진으로 분류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애매한 발언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홍준표(洪準杓. 동대문을, 단독신청으로 공천확정) 의원은 2007년 6월1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북한정권을 국가적 실체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92년 UN동시가입에 따른 「신법(新法)우선의 원칙」 등의 논리를 동원, 헌법 제3조 존치(存置)를 주장하는 朴槿惠 前 한나라당 대표를 몰아세웠다. 그는 『북한은 91년 UN에 가입해서 국제법상으로 국가가 됐고, 국가보안법은 52년에 제정된 그 이전 법인데, 국제법과 국내법이 충돌할 때는 선후 원칙을 따르는 게 원칙』이라며 『북한을 反국가단체로 규정한 조항들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 정형근 의원, 『한나라당 집권해도 10·4선언 수용』>


정형근(鄭亨根. 부산 강서갑) 의원은 2007년 7월4일 발표된 한나라당판 햇볕정책인 신대북정책, 「한반도평화비전」을 주도했다. 그는 비판여론 속에서도 정책수정 가능성을 보이지 않아왔다. 鄭의원은 같은 해 7월12일 성명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기존의 대안 없는 비판, 냉전적(冷戰的) 사고 등 당에 대한 부정적(否定的) 인식을 극복하고자 했다...한나라당이 계속 보수적(保守的)이고 현상유지(現狀維持)적이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이제 한나라당은 스스로 변화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낙오자가 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서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鄭의원의 달라진 모습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이뤄진 盧武鉉·金正日 간의 「10·4선언」에 대한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10월8일 한겨레 신문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10·4 선언은 계승되냐?」는 질문에 『기술적 수정이 있을지는 모르나, 기본적 틀은 (한나라당이) 수용하고, 그대로 갈 것』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또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한나라당은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공동선언보다 진일보했다. 전반적으로 진전되고, 바른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번 회담 결과를 일방적 퍼주기라며 비판하기도 한다」는 질문에는 『남한이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히 우월하다. 우리가 밑지고 양보하는 것 같아도 포용하면서 풀어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한나라당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고 묻자, 『(한나라당의) 큰 틀은 내 이야기가 맞다 보면 된다. 미흡한 부분을 강하게 지적하다 보니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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