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76-2번지, 문화관광부 옆 구(舊) 경기도청사 터에 1999년 개원한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는 육조(六曹) 거리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는 육조마당이 있다. 출입부에 전통 담장을 설치하고, 좌우에는 육조를 상징하는 구조벽을 설치하였다. 이 육조 상징벽 일부에 육조거리 및 의정부의 내력을 기록해 놓은 동판이 있다. 동판 내용의 총 302개 단어 중 약25.1%인 76개 단어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漢字語를 한글로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25%의 키워드가 암호가 되니 문맥 전체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 머리가 아프다. 한자 倂記를 하지 않은 게으른 공무뭔 때문에 많은 예산이 쓰이고도 의미 없는 조형물이 생겼다. 내 돈을 써가면서 漢字語를 찾아넣고 교정을 봐준다.
  조선시대 행정실무 기관이었던 육조(六曹)는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글로만 표기할 경우 이 기관들이 어떤 업무를 보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조(吏曹)’라고 쓰면 벼슬아치 이(吏), 관아 조(曹)의 ‘관리와 관련된 업무를 보는 관청’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다음은 육조 상징벽 동판의 내용을 옮기고 틀린 부분을 수정해 한자와 병기한 것이다. 한자표기와 육조설명 내용은 조선시대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를 비롯한 제반내용을 규정한 법전인 대전회통(大典會通) 중 기본적인 통치조직과 그 운용에 관한 사항이 수록된 이전(吏典)의 조문 및 '문화 콘텐츠 닷컴 디지털한양' (http://digitalhanyang.culturecontent.com/)을 참고했다.
 
<동판내용> 이조 (천관)
▷<수정 및 한자병기> 이조(吏曹): 천관(天官-이조를 달리 이르던 말)
조선시대 6조의 하나로서 고려시대의 제도를 이어받아 태조1년(서기1392년)에 설치하였다. 관리의 임명, 공훈봉작(功勳封爵), 관원들의 성적고사(成績考査) 등에 관한 직무를 맡아보던 기관으로 오늘날 행정자치부의 역할을 했다.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2인, 좌랑(佐郞 정6품)2인을 두었으며 아전(衙前)으로 서리(書吏) 18명을 두었다. 이조관아가 있던 위치는 중부 징청방(澄淸坊), 오늘날 세종로 동편 미대사관이 있는 곳이다.
호조 (지관)
태조가 고려제도를 따라서 건국과 동시에 설치한 관아로서 호구, 공물 무역, 전량, 기타의 재화 등 재정 경제에 관한 정사를 관장하였다. 관원으로 판서(정이품)1인, 참판(종이품)1인, 참의(정삼품)1인, 정랑(정오품)3인, 좌랑(정육품)3인, 제학교수(종육품)1인, 승교수(종육품)1인, 별제(종육품)1인, 승사(종칠품)1인, 계사(종팔품)1인, 제학훈도(정구품)1인, 회사(종구품)1인을 두었다. 호조관아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중부 등청방, 오늘날 세종로 동편 한국통신 자리이다.
▷호조(戶曹): 지관(地官-호조를 달리 이르던 말)
태조가 고려제도를 따라서 건국과 동시에 설치한 관아로서 호구(戶口), 공물 무역, 전량(田糧), 기타의 재화(食貨) 등 재정 경제에 관한 정사를 관장했고, 오늘날의 재정경제부에 해당한다. 관원으로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3인, 좌랑(佐郞 정6품)3인, 산학교수(算學敎授 종6품)1인, 겸교수(兼敎授 종6품)1인, 별제(別提 종6품)1인, 산사(算士 종7품)1인, 계사(計士 종8품)1인, 산학훈도(算學訓導 정9품)1인, 회사(會士 종9품)1인을 두었다. 호조관아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중부 징청방(澄淸房), 오늘날 세종로 동편 한국통신 자리이다.
예조 (춘관)
  ▷예조(禮曹): 春官(춘관-예조를 달리 이르던 말)
태조가 고려의 제도를 답습하여 건국초인 1392년에 설치하였으며, 예악(禮樂), 제사, 연회(宴會), 조빙(朝聘), 학교, 과거 등에 관한 일을 담당해 오늘날의 교육인적자원부와 문화관광부 역할을 했다. 관원으로,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3인, 좌랑(佐郞 정6품)3인을 두었다. 예조관아가 있던 위치는 서부 적선방(積善坊), 오늘날 세종로 서편 정부종합청사 북쪽이다.
병조 (하관)
고려제도를 모방하여 1392년에 태조가 설치한 정이품 아문문으로 무선, 군무, 의위, 우역, 병갑, 기장 및 한성의 성문과 민가의 경비, 궁궐문 열쇠의 관리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다. 관원으로서 판서(정이품)1인, 참판(종이품)1인, 참의(정삼품)1인, 참지(정삼품)1인, 정랑(정오품)4인, 좌랑(정육품)4인을 두었다. 병조가 자리 잡고 있던 위치는 서부 자선방, 오늘날 세종로 서편인 세종문화회관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병조(兵曹): 하관(夏官-병조를 달리 이르던 말)
고려제도를 모방하여 1392년에 태조가 설치한 정2품 아문(衙門)으로 무선(武選), 군무(軍務), 의위(儀衛), 우역(郵驛), 병갑(兵甲), 기장(器仗) 및 한성의 성문과 민가의 경비, 궁궐문 열쇠의 관리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오늘날 국방부에 해당하는 기관이다. 관원으로서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참지(參知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4인, 좌랑(佐郞 정6품)4인을 두었다. 병조가 자리 잡고 있던 위치는 서부 적선방(積善坊), 오늘날 세종로 서편인 세종문화회관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형조 (추관)
▷형조 (刑曹): 추관(秋官-형조를 달리 이르던 말)
태조가 건국 초에 설치한 6조의 하나로서 고려제도를 모방하였으며, 법률, 소송, 노예 등에 관한 일을 맡이 보던 관아로서 처음에는 실무를 집행하는 기관이었는데, 오늘날의 법무부 역할을 했다. 태종5년(서기1405년)에 관제를 개혁하여 정2품 아문(衙門)으로 승격하였고 정책 수립과 실무를 아울러 담당하였던 것이다. 관원으로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4인, 좌랑(佐郞 정6품)4인, 율학교수(律學敎授 종6품)1인, 겸교수(兼敎授 종6품)1인, 별제(別提 종6품)1인, 명율(明律 종7품)1인, 심율(審律 종8품)2인, 율학훈도(律學訓導 정9품)1인, 검율(檢律 종9품)2인을 두었고 고종31년(서기1897년)에 폐지하였다. 형조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적선방(積善坊), 오늘날 세종로 서편 세종문화회관이다.
공조 (동관)
▷공조(工曹): 동관(冬官-공조를 달리 이르던 말)
조선시대 중앙관청의 하나로서 6조의 하나이며, 태조가 1392년 건국과 동시에 설치하였다. 산림(山林), 소택(沼澤), 공장(工匠), 건축(建築), 도요공(陶窯工), 야금(冶金)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기관으로서, 현재의 산업자원부와 건설교통부 역할을 했다. 판서(判書 정2품)1인, 참판(參判 종2품)1인, 참의(參議 정3품)1인, 정랑(正郞 정5품)3인, 좌랑(佐郞 정5품)3인의 관원이 있었다. 고종 31년(서기 1894년)에 공무아문(工務衙門)으로 개칭하였다가 다음해에 농상아문(農商衙門)과 합하여 농상공부(農商工部)로 개칭하였다. 공조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서부 적선방(積善坊), 오늘날 세종로 대로 서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