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甲濟의 현대사 강좌 부산에서 성황리 개최!

"신라는 삼국통일 후 ‘一流國家’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건국은 신라의 재현이다"
  
조갑제 대표(조갑제닷컴)의 월례 부산 시국강연 '민족사의 2대 쾌거: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이 23일 오후 부산 동구 소재 부산일보사 10층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아래는 이날 강연의 요약 <편집자 주>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프리존뉴스
며칠 전 국민행동본부가 현직 대통령을 내란·외환 죄(罪)로 검찰에 고발했다. 노무현은 지금 전직대통령이자 피고발인 신분이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면 노무현을 내란동조내지 여적죄(與敵罪)로 기소,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된다.

노무현은 집권 기간 내내 김정일 정권을 유리하게 하고 북한 동포들을 외면했으며 국군과 한미동맹을 약화시켜 대한민국을 흠집 내는데 전력을 다했다.

노무현은 지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적(敵)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행 헌법체계·형법체계 아래서 그에 대한 심판을 내리자는 운동을 서울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YS는 전두환 전(前) 대통령에게 12·12사건과 광주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형선고를 내렸다. 전두환·노태우 두 사람은 부패하고 군사반란인 12·12를 일으켰지만 대한민국에 반역(反逆)하지는 않았다.

반면 김대중·노무현은 김정일 정권에 약점을 잡혔는지 아니면 원래 소신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 반역한 게 많았다. 민주주의는 서양에서 왕(王)을 처단하거나 권좌에서 몰아내면서 발전했다. 여기서 주도적인 역할은 국회가 했다. 대표적인 예가 영국이다. 영국은 의회가 주도해 찰스1세(1625~1649)를 처형했다.

“신라 삼국통일·이승만 건국에 대한 평가 모두 높아야”

우리나라의 경우 건국이후 지난 60년 동안 전두환·노태우 전(前) 대통령이 감옥을 갔다. 이것은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흔히 있는 국민들의 심판이다. 같은 맥락에서 김대중·노무현을 어떻게 심판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강의의 제목을 ‘민족사의 2대 쾌거: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 건국’으로 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박정희 전(前) 대통령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20%정도인 듯 하다. 이승만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전체의 80%가 되어야 정상적인 국가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승만에 대한 평가와 일치한다.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평가도 이승만에 대한 평가처럼 낮게 나오는데 정상적 교육을 받은 교양 있는 한국인이라면 이승만과 신라의 삼국통일, 그리고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모두 다 높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깊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박정희의 업적은 대개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반면 이승만의 업적인 한미동맹·농지개혁·교육개혁 등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업적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줄 전문가들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 올해는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이니 만큼 이승만의 건국을 제대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인물관이 잘못되면 교육에 문제가 생기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 한국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 균형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주간지 ‘시사저널’이 매년 발표하는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조사 결과가 최근에 공개됐다. 이 조사에는 ‘한국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인물’이란 항목이 있다. 역사적 인물까지 포함한 조사이다. 이 조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했다. 즉, 행정관료·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 활동가·문화 예술인·종교인에서 각100명씩 1000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다.

“한국 지도층, 신라통일과 대한민국 건국 무시하거나 적대적”

따라서 한국의 지도층이 어떤 인물관과 역사관을 가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가장 자랑스런 인물 1위는 세종대왕으로서 28.2%의 지지를 받았다. 2위가 이순신 24.6%, 3위가 김구 24.3%, 박정희가 11.4%로서 4위였다. 이어 반기문·김대중·광개토대왕·박지성·안창호·정약용 순이다. 10위권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몇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민족사의 2대 쾌거인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의 삼국통일 주역들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박찬호·최경주 보다 한참 뒤인 27등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3대 주역인 김유신, 태종무열왕(김춘추), 문무왕은 아예 이름이 없다. 조선조를 개국한 이성계는 43위고 을지문덕, 강감찬은 58위다. 박지원·유시민은 들어있는데 민족통일국가의 원훈(元勳)들은 다 빠졌다.

한국의 지도층은 자신들의 실존을 가능하게 만든 대한민국 건국과 신라의 통일을 무시하거나 어느 면에선 적대적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7위인데 신라통일대왕인 문무왕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요사이 한국인들의 정신을 좀 먹고 있는 고구려 미화와 신라 죽이기의 흐름이 사회 지도층에도 스며들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10대 인물을 순위를 매긴다면 김유신·태종무열왕·문무왕이 공동 1위고, 이승만·박정희·세종대왕이 공동 2위다. 그 다음으로 이순신, 김방경(고려 장수), 이병철, 원효대사, 왕건, 이성계, 유성룡, 각각 3~9위고, 공동 10위가 광개토대왕과 근초고왕이다.

나의 랭킹이 이처럼 일반인들의 랭킹과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서기 668년 신라와 당나라 군대는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리고 나서 당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이고 신라까지 멸망시키려 했을 때 신라 국가지도부가 대당전쟁을 결심하지 않고 당나라의 지시를 받는 평화적인 관계로 나아갈 것을 결정했다면 지금쯤 우리는 산동성(山東省)의 일부인 조선성(朝鮮省)이 되어 모두 중국어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무시하는 친북좌익

‘일본은 지금 우리보다 잘 살지만 언젠가는 따라잡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10대 경제대국이지만 7대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민족적 자신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670~676년 대당(對唐)결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사의 위대한 업적이자 세계 역사상 매우 드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는 이유는 좌익(左翼)들 때문이다.

친북좌파로 일컬어지는 이 사람들은 지난 60년 동안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고 이승만의 건국을 부정하는 일을 해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사람들의 역사관을 바꾸려 했다. 역사관을 바꾸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대한민국은 태어나면 안 되는 나라가 된다.

그래서 ‘북한에 붙는 게 낫겠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어야 한다’, ‘신라는 민족반역국가다’라는 논리로 책을 내고, 교육하고, 선전하고 해서 수많은 한국인들을 지금과 같이 조상이 한 일을 나쁘게 평가하게 만들었다. 지난 60년 동안 친북좌익의 선전선동이 성공한 결과다.

친북좌익세력은 민족사의 불효(不孝)집단이다. 조상을 욕하는 게 불효다. 역사를 욕하는 것은 조국을 욕하는 것이다. 불효(不孝)와 불충(不忠)은 같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없어진다. 불효와 불충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닌다.

북한 역사서인 ‘조선통사’의 경우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 책은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신라통치배들은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랑곳 않고 계급적 이익을 위해 외적을 끌어들여 국내전쟁을 일으켰다’고 기술하고 있다. 여기서 국내전쟁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당시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같은 나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백제·신라는 서로 다른 외국이었다. 한민족이란 개념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민족주의 선동에 잘 넘어간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민족공조라는 표현이다. 김정일 정권은 민족반역집단인데 어떻게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과 민족공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좌익이 주도권 잡게 된 이유는 민족이란 단어 선점했기 때문”

그런데 ‘민족공조는 좋은 것’, ‘우리민족끼리 잘 해야지’ 하다보면 완전히 대한민국과 우리의 역사를 요절내는 흉기가 된다. 민족이란 단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으면 좌익들의 선동에 넘어간다. 좌익이 주도권을 잡게 된 이유도 민족이란 단어를 선점했기 때문이다.

민족(民族)이란 말은 원래 유럽에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본이 이를 들여와 번역을 하면서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했다. 민족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려 형성된다. 민족이 형성되려면 첫째, 같은 국토에서 살아야 한다. 둘째, 같은 종교와 풍습을 공유해야 한다. 셋째, 같은 정치제도 하에 살면서 이와 동시에 같은 언어를 써야 한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신라는 서로 남이었다. 당시는 민족의식(民族意識)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한반도가 우리의 차지가 되면서 언어도 신라어로 정리가 됐고 그 상태로 천년을 살면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중국과 다르게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신라의 통일로 한반도라는 공통의 무대에 살면서 민족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에다 민족주의를 들이대서 고구려·백제·신라를 같은 민족이라 한다면 이는 선전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주의를 잘못 해석하면 반드시 좌파에게 넘어간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이 고구려에 의해 통일됐다면 일본에게 점령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면서 약소국이 된 책임을 신라에 떠넘긴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단재 신채호다. 이 분은 존경받을 점도 많지만 비판받을 점도 많다. 특히 그가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신채호는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이종(異種)을 초(招)하여 동족(同族)을 멸(滅)함은 구적(寇賊)을 인(引)하여 형제를 살(殺)함과 다르지 않다”고 함으로써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지금의 북한과 같은 논리로 전개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당나라와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당나라는 중국을 통일 후 고구려와 싸웠다.

외교에 실패한 고구려 연개소문과 북한 김정일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는 외교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제일 강한 나라와 적이 되는 게 외교를 가장 못하는 것이다. 작금의 북한도 마찬가지다. 고구려가 망한 이유와 북한 정권이 망하는 이유가 굉장히 비슷하다. 실제로 탈북자들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김정일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첫째, 두 인물 모두 포악하다. 둘째, 외교에 실패해 당나라와 미국의 원수가 됐다. 셋째, 아들들을 잘못 키웠다. 김정일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방송은 지난 2~3년 동안 우리 고대사를 고구려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편성해왔다. 신라를 중심으로 해도 충분할 텐데 실패한 역사 인물(연개소문)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삐뚤어진 역사관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성공한 역사다. 대한민국이 적화되지 않은 것도 이승만의 한미동맹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김춘추의 대당외교가 성공해 나당동맹이 만들어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다. 신라가 위대한 이유는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도움을 준 당나라가 마지막으로 신라까지 취하려 들자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는 당나라라는 최강국을 상대로 싸웠다. 지금의 아프리카 수단과 같은 나라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신라는 당나라를 쫓아냈고 이렇게 해서 한민족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김유신·김춘추·문무왕·신라지도부에 존경을 표해야 한다. 한국인들은 신라 삼국통일의 가치를 모른다. 일본의 경우 옷깃을 여미며 존경을 표하는 것이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동시에 이승만·박정희 이후의 한국사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대한민국의 건국은 민족사의 2대 쾌거이자 세계사에 보기 드문 사건이란 사실을 일본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라 삼국통일과 그 속에 내재된 김춘추 일가(一家)의 복수심

신라의 삼국통일을 말하면 먼저 서기 532년 법흥왕(法興王) 시기를 얘기 한다. 이 시기 신라는 금관가야를 멸망시켰다.(당시 금관가야의 왕이었던 구형왕의 증손자가 바로 김유신(金庾信)이다. 그리고 신라는 금관가야 사람들에게 벼슬을 줘서 신라에 중용했다. 한 나라가 상대방 나라를 점령하고 나서 그 나라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그 나라의 수준이다. 그런데 신라의 경우 포용력이 매우 넓었다. 이후 진흥왕이 531년 한강유역을 확보하게 된다.

신라는 이를 통해 서쪽으로 당과 교역을 하게 되어 상당한 경제력을 확충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지금의 충북 옥천 땅에서 진흥왕 휘하 군사 3만 명, 성왕 휘하 군사 3만 명(백제군 1만 명, 가야군 1만 명, 왜군 수천 명)이 관산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관산성 전투는 서기 554년 신라의 침공으로 나제 동맹이 깨지고 성왕이 이 지역을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첫 번째 전투에서는 백제군이 관산성을 거의 차지했는데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인 신라의 김무력 장군이 한강 유역에 주둔하고 있던 정예군을 끌고 오면서 전세가 혼전이 됐다. 그 상태에서 성왕의 아들 여청이 이 성에 주둔하면서 신라군과 접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병에 걸렸다. 이 소식을 들은 성왕이 다른 곳에 있다가 아들을 문병하러 밤에 5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오다가 신라장수 도도의 매복에 걸려 잡혀 죽었다.

신라는 성왕의 목을 친 뒤 그의 몸을 경주에 묻어 아무나 밟고 지나가도록 했다. 그리고 김무력은 관산성 전투로 공을 얻어 김유신 출세의 발판을 마련했다. 한편, 백제에서는 이후 의자왕이 등장해 조상의 원수를 갚겠다며 642년 신라를 쳐서 대야성(경남 합천)을 함락시켰다. 여기서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 백제에 항복했는데 백제는 이들을 그대로 죽여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하루 종일 눈을 뜨고 멍하니 있었다 한다. 그러면서 복수심에 불타 삼국통일을 결심하게 됐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그 위대성에도 불구하고 김춘추 일가(一家)의 복수심이 그 안에 내재되어 있다.

“나당연합, 가장 성공한 외교로 오늘날의 한미동맹과 같아”

김춘추는 이후 고구려를 찾아가 백제를 공격할 때 도와달라고 했다.(실패) 그 다음 김춘추는 647년 왜에 가서 다이카 개신을 한 쿠데타 정부와 손을 잡으려 했으나 왜는 김춘추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김춘추는 서해를 건너 648년 당태종을 만났고 여기서 이로부터 나당연합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배로 돌아오는 도중 고구려 군선에 잡혔다.

그러나 그를 가장한 김유신 부하의 도움으로 무사히 신라로 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김유신은 목숨을 건 외교를 했다. 적국인 일본과 고구려, 당나라를 배를 타고 왕래했다. 나당연합은 가장 성공한 외교로 오늘날의 한미동맹과도 같다.

나당연합을 통해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고 한미동맹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자유통일을 이룰 것이다.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은 신라까지 점령하려 했다. 이에 태종무열왕은 회의를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다미공(多美公)은 당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을 제안했다. 태종무열왕은 내키지 않았다. 그는 “당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 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소”라고 말했다.

이에 김유신이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이다. 어찌 어려움을 당해 자신을 구하지 않겠는가.” 김유신이 한 말은 삼국사기에 자구(自救)로 표현되어 있다. 신라가 개 노릇을 해서 당을 섬길 용의는 있다. 당이 신라를 존중해 주면 말이다. 그러나 당이 크고 힘센 것만 믿고 신라의 자존심과 그 존재 자체를 말살하려 한다면 신라는 당을 물어뜯어서라도 자구(自救)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야말로 신라와 같은 소국이 대국을 옆에 두고도 자아(自我)를 지켜갈 수 있게 한 정신무장의 핵심 논리이다. 신라가 임전(臨戰)태세를 갖추자 소정방의 당군은 백제 포로들만 데리고 귀환했다. 당시는 당의 전성기 고종시대 였다. 고종은 “어찌하여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의 대답은 그대로 신라에 대한 세계 최강국의 최고 찬사이다.

신라의 공민 윤리, 어짐·사랑·충성·섬김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모시기를 부형(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인애충사’(仁愛忠事). 즉 어짐, 사랑, 충성, 섬김, 이것이 신라의 공민 윤리였다는 것이다. 이런 공덕심은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가감(加減) 없이 쓸모 있는 국가와 국민의 윤리이다. 국가와 지도층은 국민들을 어짐과 사랑으로 대하고, 국민은 국가에 충성하며 지도층을 섬긴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이상적인 ‘국가-국민’의 관계다. 화랑도의 무사도(武士道)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국가윤리는 근대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근대성의 핵심은 자존심과 실용성이다. 김유신의 말에서 잘 묻어 나온다. 우리는 아무리 개처럼 작은 나라지만 주인이 그 존재를 무시하면 사생결단(死生決斷)하여 싸워서 지킬 만한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야말로 아무리 힘센 것과도 맞바꿀 수 없는 나만의, 우리만의 자아(自我)인 것이다. 신라 지도층의 위대성은 이런 집단적 자아(自我)를 발견하고 이를 막대한 희생을 무릅쓰고 지켜내는 과정에서 민족적 자아(自我)로 확대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여기서 종족을 민족으로 만든 동족의식이 생겨났던 것이다. 신라김씨는 원래 흉노(匈奴)계통의 북방민족 출신이다. 신라의 천마총을 보면 중국의 영향은 전혀 없고 북방계통과 깊은 연관이 있다. 백제와 고구려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신라는 중국과 달리 서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일례로 천마총에서 출토된 유리잔은 모두 로마(Roma)산이다. 신라김씨 머릿속에는 ‘나는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대당결전은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신라가 승리했다. 당나라는 신라를 향해 육상과 해상으로 군대를 보냈다. 그러나 신라는 육지에서도 이기고 해전에서도 승리했다. 당나라는 신라와 전쟁을 하던 중 토번의 공격을 받게 된다. 당재상 장문관(張文瓘)은 결국 안동도호부(평양)를 심양으로 철수시켰고 이렇게 해서 신라는 독립하게 된 것이다. 이 당시 신라가 차지한 영토가 원산선 이남이다.

그 뒤 신라·고려·조선은 이 경계선을 북쪽으로 더 밀어 올렸다. 현재의 국경선은 1430년 세종대왕 때 4군 6진 개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고구려 중심으로 삼국이 통일됐더라면 만주는 우리 땅이 됐을 것이고 지금쯤 우리는 매우 큰 나라가 됐을 것인데’ 하는 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바로 친북좌익이고 이들의 논리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넘어가 이런 얘기를 한다. 여기에 반박을 하면 당시 민족주의란 존재하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은 신라의 재현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 까라는 상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소설 쓸 때나 하는 것이다. 만주지역에서 발흥한 발해, 금나라, 요나라, 청나라 모두 중국에 흡수되어 지금은 그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신라의 삼국통일로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가 잘 설정됐다. 신라와 당나라는 신문왕·선덕왕 시기에 오면서 국교를 정상화 하게 된다.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한족과는 큰 전쟁이 없었다.(중국의 금나라와 요나라는 한족이 아니다.) 신라 삼국통일 30년이 지나서는 일본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이 시기 신라는 국가의 기틀을 잡는데 있어 일본에 많은 노하우를 전수했다. 신라의 삼국 통일 후 동아시아는 2백년간 평화시기였다.

한반도에서 약한 정권이 나오면 전쟁이 일어난다. 한반도에 강한 신라가 나오자 한국·일본·당나라가 편해졌다. 신라는 삼국통일 후 문화·경제·군사적으로 일류국가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신라의 재현이다. 신라와 대한민국은 공통점이 많다. 동맹외교를 잘하고 상무정신이 강하고 해양국가로 내부단결이 잘 되어 있다. 일류국가(一流國家)는 대개 공통점이 많다.

신라와 대한민국이 공통점이 많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역사 상식을 높이는 것이며, 대한민국을 잘 발전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우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저력은 김춘추·김유신·문무왕·신라지도부로 대표되는 당시 국가지도부의 정신력·자존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라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우리는 문약(文弱)에 빠졌다. 그러다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신라와 비슷한 나라가 됐다. 신라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라의 삼국통일을 잘 이해하는 것만큼 떳떳한 한국인이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정리/프리존뉴스 김필재 기자 (spooner1@freezon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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